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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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이 책의 제목을 낮은 목소리로 읽어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부류, 어쩌면 ‘그’라는 대상화로 거리를 만들고 있고 또한 마지막 존재라는 것은 안타까움 혹은 쓸쓸함을 막연히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표지에서는 두 명이 여성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거리에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흑백사진이 있다. 가장 강렬했던 시기라는 60년대 여성의 우정 혹은 연대를 예상할 만 했다. 하지만 ‘연대’라는 말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만큼 나는 너무 자주 그리고 편리하게 그 단어를 떠올렸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그토록 쉬운 것이 아니다. 곁에 있거나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을 뜨겁게 했던 ‘연대’라는 말이 이제는 어딘가 부끄럽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두 여성의 연대라기 보다는 계층과 인종을 넘어 치열하게 연대하고자 했던 가장 진실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두 여성의 서사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연대의 불꽃을 심도록 하는 강렬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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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 기분을 알아야해. 나한테는 겨우 한 시간이었지.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로.”(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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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뉴욕의 명문 버나드에 다니는 앤은 계층과 인종의 불평등에 대해 전투적으로 싸우는 학생이다. 그는 스스로 가난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룸메이트로 자신과는 가장 다른 세계의 사람을 요구한다. 그렇게 화자인 조지와 만나게 된다. 가난한 집에서 폭력에 노출되며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낸 조지는 앤을 동경하면서도 불편해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앤을 비롯한 친구들이 베트남전이나 계층 갈등 등 구체적인 현안에 목소리를 높일 때 정작 이를 경험한 가족과 함께 힘들게 살아온 조지만은 마음을 다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종, 계층 등 사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혜택과 특권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에서 지나친 도덕적 순결과 이분법적 성향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참혹한 현실을 견디어야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태도가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대부분 서술자가 조지이기 때문에 앤의 진심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조지는 타인을 서술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조지가 오로지 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 특히 가출했던 여동생 솔랜지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다뤄져있다. 아마도 1960년대 미국의 히피를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데 약물을 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면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인상을 남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조지가 앤을 회상하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며 사랑을 만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섬세한 서술로 조지가 앤을 말하더라도 그 안에서 조지를 읽어낼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서 앤은 독보적으로 강렬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태생적 행운과 부를 부끄러워하며 이를 착취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흑인인 연인이 백인 경찰로부터 모욕을 당하자 견디지 않고 주저없이 행동한다. 그는 교도소에서도 인간의 조건에 대해 통찰하며 비참한 생활 속에서 선행을 베푼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가난뱅이 놀이’ ‘혁명놀이’로 비하되며 사람들에게 냉소와 배신감을 준다. 앤은 어떤 존재로 성장했는가, 그의 부모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앤에게 가문과 부 그리고 재능을 물려준 그의 부모는 앤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이다. 자선의 의미를 그들로부터 배웠음에도 앤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희생자로 여기며 강박에 가까운 책임과 윤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의 부모 특히 아버지인 터너는 조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앤을 이해하려고 했던 노력들을 전한다. 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앤의 그림자가 얼굴에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앤은 일생을 다해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교도소에서도 그는 인도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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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고 관리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성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고 우리는 말했다. (5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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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를 순교자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 순교자가 될 수도 있었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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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소설의 제목으로 돌아온다. 부류라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지만 ‘이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누구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막막했던 안타까움이 결국 마지막 존재를 지키지 못한 것이 우리였음을 느끼며 부끄러움이 된다. 누구의 찬사와 환영도 없었지만 신념을 위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그의 결심 이전은 무너지고 일어서는 반복이었을까. 그를 어떻게 불러야할지 판단을 유보하겠지만 나는 명명 이전에 그를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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