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키기 연습 - 스무 해를 잠식한 거식증의 기록
박지니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평점 :
#삼키기연습
#박지니
#글항아리
.
.
자신을 기록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자화상을 그리거나 그보다 간단하게 셀카를 찍는 것을 생각해본다. 아마도 거울을 보며 가장 만족스러운 얼굴로 스스로를 대면하고 그림이나 사진을 남길 것이다. 그 안에서 멈춰진 시간은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할 때다. 하지만 기록은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자신의 하루를 복기하며 일기를 쓸 때조차도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짐은 언제나 당위의 문장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가 나에게 구속인 지점이 있으며 나는 글 속에서 결박되어 있었고 이젠 그조차도 피하고 있다. 자신을 기록한다는 것에 대해 내면화된 감시와 지적 허영이 발동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해서는 쓰지 못한다. 나를 놓치고 있는 기분, 그래서 죄책감이 남는다. 그런데도 마음의 불안을 지우고 진심이 아닌 문장을 남기겠지. 이걸 위선이라고 불러야할까, 위악이라고 불러야할까.
.
.
스물일곱 살의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떤 분야에도 점유되지 않은 삶의 부분이 남아 있다. 나는 그런 개인적인 자리에 대한 글쓰기를 연습할 것이다.(178쪽)
.
.
자신에 대해서 기록한다는 것, 자신을 대면하는 용기에서 시작해 가감없이 자신을 문장으로 남긴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고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려내는 것이다. 일상이 순조롭고 평범한 하루를 살았다면 기록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성 섭식장애 환자로 살아온 스무해를, 회복도 극복도 아닌 고백을 쓰고 또한 책으로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 '어려운 시도'라는 것 역시 나의 통념임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고통과 실패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식증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몸과 마음으로 숙고하는 이 시도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여야할까.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대단하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지만 최소한 고통을 사유하는 시선만큼은 놀랍고도 강렬하다.
.
.
2001년 자살기도 그리고 폭식과 구토의 연속인 섭식장애를 겪은 저자는 처음으로 입원을 하고 '삼키기연습'을 한다. 거식증을 앓는 또래들과 음식을 간신히 먹어야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
.
"자기희생, 눈물, 종속, 침이 그렁그렁한 치아를 드러내며 집어삼킴, 식인, 무경계, 무치, 타의적인 함구와 실어, 긁을 수도 없는 뼛속이 간지러워 실실 웃는 웃음, 붉어진 살갗, 허벅지 안쪽의 장밋빛 살갗, 과식, 뒤엉켜 물고 뜯는 싸움.... 내가 먹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65쪽)
.
.
저자는 대학기숙사에서 자살시도를 하고 휴학을 하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삶에서도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대면한다. 늘 생각하고 읽고 또 쓴다. 동시에 병동에서 만난 같은 환자들에게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거식증, 아마도 이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환자의 아픔에 지극히 공감은 하지 못한더하더라도 투명하고 단단한 기록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아픈 사람인가. 연민을 가져야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진실하게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회복이 없을지 모르는, 아마 기승전결이라는 것도 없을, 삶에 관한 이야기다."(12쪽)
.
.
기승전결을 기대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거식증이라는 투병기라면 병을 이겨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기승전결보다 분투의 지속과 그 안에서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는 지를 확인하게 된다. 기승전결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서사에 허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극적인 작은 구획을 부르는 말일뿐 어차피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내일을 맞이하지 않는가. 잠깐이라도 병증을 이겨낸, 병을 극복하여 이제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협함에 대해 생각했다. 병이 사라져야 이겨낸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병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그 미지의 동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강렬하게 삶을 대면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며 의지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