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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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괴오똑

우울과 고통을 대하는 이 책의 태도는 솔직하고 대담하다. 동시에 고통을 기록하기 위해 고통을 경험하는 저자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자는 전달자에서 머무르지 않고 가장 치열하게 '우울'을 대면함으로써 독자와의 연대를 도모한다. 맥락없이 '온몸으로 쓰라'는 김수영이 떠오르기도 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가장 강렬하게 우울을 마주하고 이를 가감없이 기록함으로써 이 책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선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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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약 5년간 우울증, 나아가 정신질환이라는 주제에 몰입해 지냈다. 석사 논문 주제를 바꿔 우울증을 정의하고 측정하는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연구했고, 나와 같은 사람을 수십 명 만나 인터뷰했다. 이 글은 죄다 ‘조울증’이라는 진단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스스로 다시 쓰는 이야기이다. 내 권한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다.(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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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우울증에 걸린 환자는 여자라는 것이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제목을 따라 읽으면 여자를 수식하는 4개의 단어들이 묘한 긴장을 주며 동시에 해방감을 준다. 각각 미쳐있음, 괴상함, 오만함, 똑똑함은 타인의 이해에서 벗어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해받지 못하는 아픔 앞에서 위로의 태도가 아닌 연대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다. 우울한 이들이게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보내는 일반적인 메시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이 책의 제목,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은 자유로워지는 주문처럼 느껴진다. 자신에게 일어난 에세이면서 타인을 생각하는 친절한 가이드와도 같다. 특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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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약 삶에서 느끼는 감정을 행복과 불행이 아니라 풍요로움과 빈곤함이라는 기준으로 이해한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우울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연약함은 삶의 섬세한 결들을 읽을 수 있게 해주고, 나와 같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해준다. 돌아보건대 나는 나의 조울증을 한 번도 자랑스럽게 여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나의 일부로 여긴다.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과정은 나를 타인과 연결시켰고, 스스로 쓰게 만들었다. 나를 열어젖혔다.(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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