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띵 시리즈 10
배순탁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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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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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콜론의 띵시리즈는 재미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지만 레시피나 자부심에 치우치기보다는 일상에서 먹는 즐거움을 공감과 함께 나누는 유쾌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띵시리즈의 라인업을 보면서 어쩌면 '평양냉면'을 간절히 기다렸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묘한 평(양냉면)부심이 있어서 전통과 계파(의정부, 장충동)를 운운하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맛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고 또 최애 냉면집에 따라 장충동파인지 의정부파인지로 나눈다. 이어서는 면의 메밀함량이나 육수의 재료(꿩 소고기 등등)를 따지고 최종적으로 고추가루 첨가까지도 얘기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평양냉면에 대한 우월함을 보여주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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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평양냉면을 가장 선호하기는 하지만 내가 여타 냉면을 낮게 취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분식집 냉면이나 함흥냉면도 아주 잘 먹는다. 막국수나 밀면도 기회가 될 때마다 즐기는 편이다. 다만 먹는 횟수의 비율 면에서 평양냉면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이다. 그러니까 명심하기를 바란다. 모든 냉면은 인간 앞에서 평등하다는 엄숙한 진실을.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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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은 평양냉면에 진심인 작가가 음악과 삶에 대해 논하는 유쾌한 에세이다. 제목을 듣자마자 브라운 아이즈의 노래를 머릿속으로 재생하며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이라 그렇지만 며칠 뒤엔 괜찮아지는 일들이 세상엔 수없이 많겠지만, 평양냉면을 먹었을 때처럼 완벽히 일치할 때가 드물 것이다. 사실 내 경우는 처음부터 의외로 맛있었기에 내가 데려간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 의 배순탁 작가가 평양냉면에 대한 에세이를 낸다고 해서 굉장히 기대가 갔다. 평양냉면만이 아니라 음악과 삶에 대해 위트넘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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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을 입안 한가득 넣고, 공기 중에 은은하게 둥둥 떠다니는 불고기의 향을 코로 맡는다. 사리 추가는 필수다. 불고기 대신 사리 추가를 통해 마치 불고기도 먹은 것처럼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거 참, 눈물 겨운 플라세보 효과라 아니할 수 없다.(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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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지만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답게 음악과 방송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것이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곤란함은 유쾌하게 넘어가고 삶의 작은 기쁨들도 음미하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대목에서도 삶의 위로를 전하는 통찰력있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취향에는 실패해도 된다는 말이 깊이 남아있다. 이 말이 굉장히 따뜻하게 들리는 것은 평양냉면 매니아들의 순혈주의(?)를 예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취향마저도 실패를 자책하거나 타인이 의해 냉정한 평가를 받아서는 안될테니까.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엄격하고 경건한데 이 책에는 그런 대목이 딱 한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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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먼저 들이켠 뒤에 면을 천천히 목구멍으로 밀어넣는다. 조급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나는 지금 경건하게 나만의 냉면식을 치르는 중이니까"(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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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평양냉면과 음악에 대한 해박함은 이 짧은 책으로도 너무나 제대로 전달된다. 평양냉면 혹은 음악에 대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부하게 말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평양냉면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은 정말 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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