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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 - 예술과 실존의 근원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이근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평점 :
탈합치
프랑수아줄리앙
이근세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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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립과 동시에 고정되는 모든 질서를 내부에서 해체하며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자원을 나타나게 하는 탈-봉인을 나는 탈합치로 명명할 것이다."
(16쪽)
저자의 철학적 선언은 낯선 개념에 집중하게 한다. 그러나 탈합치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합치에서 벗어나라"는 단순한 제언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즉 긍정과 부정 어디에도 없는 개념이 낯선 이유는 당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당위를 벗어난 기준점은 새로운 철학적 정의를 통해 진정한 자유에 접속하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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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해지고 즉자적인 것으로부터 탈합치함으로써 또는 간극을 통해 실재적인 것이 실재로서 출현하며 눈에 띄기도 전에 활성화된다는 관념을 마주하는 것이다."(20쪽)
간극에는 미묘한 운동성이 있다. 사이의 긴장이 사유를 만든다. 긍정과 부정을 오고가는 인식의 진자는 그 운동을 통해 새로운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다. 탈합치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정적인 사유만이 아닌 간극에서 가능한 생명성을 떠올리고자 했다. 아마도 그 힘에서 고정관념을 전복시킬 수 있는 시도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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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서 문화철학의 세계적 석학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 개념을 미술, 성서, 문학, 윤리 등에 가동시켜 내재된 탈합치의 개념을 확인토록한다. 책의 내용은 어려웠지만 저자의 개념을 통해 사유의 전복적 시도를 통해 지적 확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예술과 인문학적 기반이 그리 깊지 않기에 내가 살아온 삶의 질문들과 대답들에 새로운 방점을 찍음으로써 조금은 자유로운 직업으로 읽어나갔다. 다음의 문장은 나의 시도에 큰 격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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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는 예술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실존의 사명을 말해주는 개념이다. 만일 탈합치로 자아의 적합성, 한 세계에 대한 자기 적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이것이 자신에 의한 것이라면 그 의미는 바로 실존한다는 것이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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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하지 못하고 무의미한 이탈로 상처를 남긴 젊음의 시간이 떠올랐다. "자기적응"을 안착 혹은 안주라고 생각했을 때야 비로서 탈합치라는 거대한 개념을 나의 삶으로 조금씩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실패한 도전의 시간들이 실존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의도는 존재의 위로는 결코 아니지만 나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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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복적 사유는 자유를 선사한다. 저자의 공고한 철학적 기반에 근거하기에 놀라운 사고에 해방감을 느꼈다. 이를 테면 26쪽이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지상낙원이 합치라면 그곳에 의심, 의문, 분란이 없으며 실존 또한 없다. 그러나 그들이 사과를 먹음으로써 균열이 일어나고 간극이 만들어진다. 비로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실존의 가능성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저항은 실존을 근거하기에 저항심을 유발하는 부정적 감정에서도 생동하는 에너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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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그대 스스로 내면에 혼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혼돈 역시 탈합치와 연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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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합치는 탐험이다. 탈합치는 우발적인 것, 창조적인 것, 미리 예견되거나 내포되지 않은 것, 개시될 수도 있고 불발될 수도 있는 것을 향해 열려 있다.”(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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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