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폭스 갬빗 1~3 세트 - 전4권 (가이드북 포함)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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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폭스갬빗

이윤하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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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의 중심에 탁월한 능력과 매력의 여성 영웅, 켈 체리스가 있다. 냉철한 분석과 예리한 통찰, 그리고 과감한 결단으로 젊은 장교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다. 수학과 마음으로 겨루는 전쟁이라는 역법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놀라운 전략이 등장한다. 바로 전술의 천재였으나 대량학살로 광인으로 불리며 검은 요람에 갇힌 슈오스 제다오의 망령을 ‘결박’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몸 그리고 두 개의 영혼으로 전쟁을 이끄는 그들은 갈등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한다. 수학(역법), 마음(영혼), 우주 그리고 미래세계의 광대한 전쟁을 황홀하게 그려내는 이 작품은 긴 페이지를 읽는 내내 감탄 그 자체였다.

'한국적 이미지를 토대로 설계된 SF 건축물'이라고 이윤하 작가가 말했듯이 이 소설에는 한국적 설정들이 수학과 우주과학의 SF상상력에 의해 가공되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SF를 읽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상되던 서구 우주과학의 이미지들이 단조롭게 느껴질 만큼 독창적이고 신선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 작품의 목표는 그러한 융합만이 아니다. 스토리 자체로서도 완벽하게 구축되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휴고상 수상자인 N. K. 제미신은 “동아시아의 풍미가 가미된, 숨 막힐 정도로 독창적인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극찬한 바 있다.


<나인폭스갬빗>이 다루고 있는 세계관과 담고 있는 가치들은 다채롭다. 이 작품은 우주 제국의 충성스러운 장교 ‘켈 체리스’와 그녀의 우주 함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로, ‘구미호 장군’을 만나 우주 제국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알게 된 ‘체리스’의 혼란한 내면을 통해 제국주의와 이민족 탄압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체리스의 여성 장교 캐릭터는 주체적이면서도 의식적 성장을 이루는 캐릭터로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지금까지 많은 SF소설을 보지는 못했지만 켈 체리스만큼 인상적인 인물을 보지 못했다. SF의 인물들이 허구적 상상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결과라고 하지만 현대 여성의 롤모델로 인식되어 여운이 남았다.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여성 장교의 캐릭터는 몹시 반가웠다. 또한 이 소설은 역법과 이능력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연상이 어려웠는데 수학 개념을 우주 전쟁의 SF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 또한 놀라웠다.

하지만 원래 전쟁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나. 그저 누군가의 미래를 앗아가는 일이지.333쪽

우주는 죽음을 연료 삼아 돌아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경이로운 기계 장치도 엔트로피로의 전환을 멈출 수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과 공조하거나 죽음을 방관하는 것뿐이다. 다른 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385쪽

역법 전쟁은 마음을 다루는 싸움이다. 적절한 숫자를 적절한 마음에 대입한다면, 숫자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459쪽

다음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뇌리게 깊게 남은 것은 ‘결박’이라는 설정이다. 전쟁의 전략을 위해 체리스에게 제다오의 영혼이 결박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전쟁의 전략을 공유하며 상명하복의 관계를 유지함과 동시에, 제다오를 통해 체리스는 군사작전의 차원에서는 발전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제다오는 믿음직한 상관으로서 체리스를 이끌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서로 갈등하며 반목하기도 한다.

“내 감정이 자네 안으로 새어 들어가고 있어서 그런 걸세.”

“이 자살 충동도 당신 거였어요.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던 거죠?” 239쪽

그들의 관계는 위기를 극복하거나 더한 극한의 상황에 봉착하며 감정의 동요 속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체리스와 슈다오의 관계는 어찌보면 영혼에 사로잡힌 상황이라는 전통적 상상력에서 기인할 수 있으나 놀라운 스페이스 오페라의 설정으로 독창적이었다.

이제 2,3권으로 이어지며 역법전쟁과 육두정부,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일 니라이 쿠젠에 대한 스토리도 궁금하다. 사실 SF장르를 읽는 것은 아직은 생소할 수 있기에 세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대략 1500장?)에 걱정도 있었지만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편집자님의 안내서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누군가는 스토리를 창작하는데 ‘나올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얼마나 무궁무진한 것인지 다시금 확인했다. 앞으로 이어질 2,3권에 대해서도 또 이윤하 작가가 완성할 <제국의 기계>3부작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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