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 허수경이 사랑한 시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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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책의 제목을 읽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애잔하다. 김수영의 '사랑'의 구절이 연상되면서 동시에 마치지 않은 문장에서 여운을 느낀다. 배웠는데,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을 전할 수야 없지만 누구든 마음 속에서 말줄임표를 붙이며 짐작해보게 한다. 아마도 너는 사랑을 가르쳐주고 떠났을까. 아니면 너에게 배운 사랑을 나는 전하지 못했을까. 나는 후회를 하거나 포기를 할때 그러했는데, 라는 표현을 썼기에 이 제목은 마음에 정착하지 못한 채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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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놓치는 행간 속에서 맥락이 아닌 영감속에서 시는 숨쉬고 있는지 모른다. 나에게 시는 언어로 만든 견고한 벽처럼 느껴졌다. 구절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면서도 작품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낙담했다. 타자화된 감상 속에서 시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삶속에서 '번개처럼 금이간 얼굴'을 마주할 때 맥락없이 시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 실린 김수영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 너의 얼굴은 불안하다. 내가 너로부터 배운 사랑을 너는 지키지 않는다. 너에게서 배운 사랑은 너의 변함으로 인해서 나를 배신한다. 나는 사랑이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너의 얼굴은 "번개처럼 금이 가 있다. 그건 사랑 때문일까. 아니,너와 나 때문이다." 105쪽

나는 오래전부터 시에 관해서 특히 한국 현대시에 관해서 논문도, 비평도 아닌 글, 양쪽 모두이면서 어느쪽도 아닌 글, 내가 읽은 시들이 저절로 말하는 것 같은 그래서, 말이 말을 이어가는 것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시 한편에 실린 고 허수경 시인의 해설은 시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해준다. 그 안을 돌아보고 일상의 한 지점으로 이끌기도 한다. 시 안에서 헤매이던 마음이 이제야 길을 따라간다. 구절들은 전과 다른 무게와 깊이로, 그리고 마음에 새롭게 적힌다. 전해진 진심을 느끼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전해겠다고 다짐한다. 

수없이 멈추고 인덱스를 표시하고 따라 쓴 구절들은 활발한 활동을 하는 현대 시인 뿐아니라 문학교과서에서 만난 20세기 초반의 시인들을 그리고   타국의 낯선 시인들의 시도 담겨있다. 역자가 없는 경우는 고 허수경 시인이 직접 번역했다고 한다. 

우리 곁을 떠났지만 시를 읽고 쓴 애정깊은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책을 만나 기쁘다. <시로 여는 아침> 이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연재된 짧은 글들이 '허수경이 사랑한 시'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다. 시를 나는 허수경 시인으로 배웠다. 그때 만난 많은 시인들의 이름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오늘 가장 밝게 빛나는 별, 그리고 별을 따라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고맙고 소중한 별이 이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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