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세트 - 전4권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아무리얘기해도


이 책의 제목이 숨기고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는, 우리가 꼭 알고 기억해야할 5.18의 이야기라고 책을 읽기 전에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아무리 얘기해도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로 일관할수 있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괴로웠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문장을 떠올릴까. "아무리 얘기해도" 뒤로 이어지는 두 문장의 간극은 얼마나 큰가. 역사 앞에서 단절되어 갖는 거리감은 상처로 남는다.
5.18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사십년이 지난 일이지만 역사가 이를 기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광주를 증언하는 시민이나 역사 연구자가 아니다. 5.18이 사십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5.18을 기억하는 혹은 바라보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5.18에 대해 모르는, 심지어 일베에 접속하는 고등학생이다. 그렇다고 그가 5.18에 대해 알아가는 교훈적인 구성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사회가 5.18을 기억하는 방식. 개인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지만 시민군을 폭도로 혹은 간첩으로 ... 우리 사회의 민낯 그 자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어떻게 해야한다는 당위와 도덕의 문장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기억하는 현재의 단면을 거리낌없이 마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은 그 이후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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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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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선은 이 문장을 서성거리며 장례식이 되어 버린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소설가 한강은 광주출생이지만 5.18광주 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가 소설의 세계로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년시절의 작가와 이 소설의 소년들은 시간의 두고 한 공간에 있었다. 그곳을 떠올리며 작가는 소년들이 남긴 목소리의 음영을 감지한다. 소설은 1980년 광주를 경험하지 않은 작가에 의해서 쓰여졌지만 정서적 거리는 매우 가깝다. 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광주와 정서적 거리가 매우 먼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 주변에는 광주에 대해서 말하는 선생님이 있지만 주인공은 공감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반면 가짜뉴스를 떠드는 어른들도 있다. 역사적 사실 앞에서 선택이 가능한가. 대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광주를 바라보는 사회의 눈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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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빨리 읽었다. 만화이기도 했고 몰입감과 가독성이 높았다.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교훈과 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만화가 결코 아니다. 여전히 마주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는 것을 느끼며 집중해서 읽었다. 독서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에 남은 여운은 길게 이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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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때 먼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말할 수 없는 부채감이 있다. 이름도,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기억하고 고민하고 마음아파하는 것 뿐이라 죄송스럽다. 역사적 사실지만 참과 거짓 앞에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과거의 역사로 만나는 5.18을 여전히 현재의 삶에서 고통과 좌절 속에서 함께해야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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