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순간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떠올랐다. 하루를 무의미하게 배회하다가 내일은 꼭 좋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나의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친구들을 연상시킨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의 후회는 내일의 소설이 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지나오던 때. 구십년의 세월을 두고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을 열망하는 이들이 도시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방랑하는 여정은 반갑다. 하지만 언제즘 마음의 물결은 잔잔해질까. 12월이 되면 신춘문예 공모를 앞두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새해를 약간의 좌절감으로 시작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소설 앞에서 방황만을 거듭했다면 이 책을 통해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 대한 소설을 만났을 때 명료하지 않았으나 간절했던 열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소설로 답하는 소설. 바로 박금산의 <소설의 순간들>이다.
.
.
이 책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이루어져있다. 작가는 소설의 단계들을 소개하고 독자는 그에 걸맞는 짧은 소설 25편을 만날 수 있다.
.
.
멋진 파도가 왔고, 그것을 잡기 위해 팔을 젓기 시작하는 것이 발단이다

좋은 전개는 그것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독자가 앞뒤를 상상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절정은 끝이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서핑으로 따져볼까? 화려하게 파도를 잡은 후 마지막에 파도에 먹히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서핑이다. 파도에서 나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좋은 결말은 외길이다. (....)자연스러움이 그것이다.
.
.

이 책은 소설을 '읽는다'와 '배운다'사이에서 가장 정확한 중심을 잡는다. 소설 창작을 위해 소설을 읽어나갈 때 독자로서의 환호는 잠시일 뿐 감상만이 남는다. 한편으로는 작법을 배울 때 내 작품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창작과 작업이 괴리되어 그 절망의 낭떠러지 앞에서 좌절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 자체를 체득하게 만든다. 소설과 소설론이 하나가 되어 독자와 습작생 역시 하나의 정체성을 만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