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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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아도 생각은 되고 만다
되는 것들에 굳이 관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고
또 생각하면서
썼던 문장을 지운다 지운 문장을 다시 쓰고 고친다
―「암묵」 

흔들리는 중의 물결을 어찌할 수 없다
높아지는 중의 건물을 어찌할 수 없다
당겨지는 중의 방아쇠를 어찌할 수 없다
결심 중의 결심 중의 결심 중의 결심을 어찌할 수 없다
견디지 않는 중의 상태를 견디는 중의 상태를 어찌할 수 없다
―「상태」

어찌할 수 없이 결국 되고 마는 것들 앞에서
시인은 응시할 뿐이다. 치열하게.
불능의 상태는 시인에게 무력감을 주지 않는다.
본질을 매개하는 언어를 의심하고
그 긴장을 시적 발화로 이끌어낸다.

신형철 평론가가 데카르트의 명제를 인용해
"나는 언어를 의심한다. 고로 시인이다."라고 했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시인의 의심이란 존재에 대한 사유와 반성을
내포한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라면
이영재 시인은 시적 탐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쉽지 않은 시도에
독자로 때때로 시 안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언어의 한계 앞에서 탐색하는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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