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서양철학사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할까. 철학을 공부하는 도중에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 대답이 떠오른다.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철학’을 생각한다. 물론 모두에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은 나에게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어둠 속에서 삶의 방향을 인도하는 역할이 되어주었다.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그 질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고민해왔다. 그 치열한 고민들은 학문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방대한 저작들은 사상의 흐름을 이어왔다. 그 역사에 대한 가장 탁월한 명저가 <러셀 서양철학사>이다. 연대기별로 철학사를 기술하지만 어느 하나에 치우침이 없으며 이를 분석하는 자신만의 주관이 명확하여 감탄하게 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연대별 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역사적 배경과 함께 명쾌한 분석을 할 수 있는 학자는 드물 것이다.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고대철학을 설명하며 인간중심의 그리스 철학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계보로 받는 중대철학의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주관주의로 근대철학으로 그리스 철학이 계승된다. 하나의 큰 흐름과 대비되는 사상들이 대단히 일목요연하게 기술되며 이해의 깊이를 심화시킨다.다만 아쉬운 점은 의외로 다뤄지지 않은 철학자들이 있다는 점과 칸트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량이 대체로 20페이지 내외로 학자나 사상에 대해 서술되는 일관성이 철학사 전반을 다루는 데는 적절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철학사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칸트 비판 3부작 중 <순수이성비판>에 대해서만 나오는 점은 아쉬웠다. 윤리학의 가장 큰 업적인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미학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판단력비판>에 대한 언급을 기대했기 때문이다.분명 서양철학사 전반을 알기 위한 시도였으나 서양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으며 철학의 분과인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책 한권을 다 읽고나면 인간 버트런드 러셀에 대한 존경심을 떨칠 수가 없다. 97세까지 장수하며 철학자, 사회운동자, 논리학자, 수학자, 교육자, 저술가로 최고의 위치에서 수많은 저작을 남긴 그의 삶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분야에서 최고의 명저들을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 책을 읽고나면 대강의 짐작을 할 수 있다. 바로 자신만의 분석력과 비판력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명료한 논증과 지적인 문장이 이 책을 독보적인 저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를 추동하는 힘이었으리라는 생각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의 해제에는 러셀의 자서전 한 대목이 실려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견디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이 마치 거센 바람처럼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도 고통스럽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을 알았으므로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해제 1019p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