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시인이 남긴 편지의 서두를 기억한다. ‘내 상처를 이해해 준 그대에게.’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불행과 불안에 대해 고백한 장문의 편지를 남긴다. 그 편지의 끝은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바라보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강물로 들어간다. 그녀의 강물 속에서 물의 흐름과 깊이를 빌려 시의 마지막 연을 완성했는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 1941328일 그녀는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신영배의 기억이동장치1’의 시적 정황은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을 목격한 바 없으므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2002년 작 디 아워스에서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버지니아 울프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 것이다.

시의 화자는 비가 내리는 날 창밖을 응시한다. 섬세한 눈길은 유리창에 묻은 지문마저 본다. 그 흔적에서 누구의 것인지 기억을 더듬는다. 관찰의 대상이 지문은 상상으로 전이되어 그녀를 붙잡는 손이 된다. 그녀는 강가를 거닐고 휘청거린다. 수면에 그녀의 그림자가 떠 있다. 발이 빠지고 죽은 이들의 얼굴을 아마도 본다. 여기까지의 정황은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 장면과 닮아 있다. 화자는 섬세한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마음의 불안으로 휘청인다. 결국 강가로 이끌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따라가려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의 정황에서 그녀는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손의 지문도 그대로다. 다시 집의 일상으로 그녀는 자리를 잡는다.

그녀가 돌아왔기 때문에 비극의 강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혹은 생의 인력이 그녀를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의 상상이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서 새로운 슬픔이 파생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 사정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화자를 애절하게 바라보게 한다. 그녀가 지문에서 손을 불러냈다면 우리는 시의 화자에게서 묘사되지 않은 얼굴을 비춰본 셈이다.

그녀, 즉 화자를 형상화에 집중되기 보다는 화자를 안고 있는 배경과 분위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비가 오는 날, 강가로 가는 그녀. 유리창의 지문마저 드러나는 습기가 찬 날이다. 물은 어디서나 내리고 흘러가고 고인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해도 그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 얼굴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신영배가 구축한(구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이미지는 내리고 흘러간다. 신영배의 화술은 물의 목소리와 닮아있다.

물은 흘러간다. 신영배의 물은 시어들을 적시며 행과 연을 타고 흘러간다.

의식도 흘러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은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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