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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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소리나무를 두드리면 미지의 존재인 ‘그것’이 와서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놀이가 있다소리나무들은 자신을 두드린 이에게 질문을 한다질문의 답이 틀리면 두드린 자는 소리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진다대답하지 않으면 자신은 지킬 수 있지만 답을 말할 때까지 ‘그것’이 찾아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것’은 두드린 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나의 얼굴을 하고서 뇌를 휘젓는 듯 내게 질문을 한다.

  “내가 누구게?

 단지 질문에 답을 못해서 두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두려운 것은 ‘나’를 잃는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 얼굴을 하고 있고,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도망을 다니면 시간을 벌 수 있겠지만 결국엔 찾아와서 같은 질문을 한다피가 낭자하고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것보다 훨씬 소름 끼치는 부분이다.

 

 박태이와 그의 친구 종목은 놀이 가담자이기에 ‘그것’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질문의 답을 찾는다그 과정에서 작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오직 나뿐이라 생각하지만 나의 내면을 깊숙이 볼 수 있었던 소리나무들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그렇기에 그들이 나타났을 때 더 두렵다내 자리를 빼앗기는 것도 무섭고 내가 사라진다는 것도 무섭지만내 속마음을 훤히 알기에 나를 발가벗겨 놓는듯한 그 질문이 더 두려운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때 ‘그것’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끔찍하고 무섭겠지만삶이 너무나 힘들 땐 차라리 내 자리를 주고서라도 사라져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어떤 위치인지 생각해보기도 했다내면의 나는 진짜 어디에 서있는 나일까.

 

 367페이지의 한 권의 공포소설이지만 읽어보면 단순한 공포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야기를 진행해가는 과정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뒷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지는 구성과 빠른 속도감을 타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모든 점이 다 완벽한 소설이라 할 순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공포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엔딩은 내가 원했던 방향이 아니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좋은 엔딩이라 생각한다내가 원하던 원초적인 공포소설은 아니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고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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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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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는 동양의 오컬트를 이해할 수 있는 호러 소설이다.

  히데키는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 찾아온 알 수 없는 손님이 또다시 찾아온 것을 깨닫는다할아버지를 찾았던 그 손님이,  어른이 되어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살고 있는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그 존재는 보기왕이라고 했다히데키는 보기왕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보기왕은 여전히 초인종을 누르며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부른다같이 산으로 가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감기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몸을 따뜻하게 하세요’ 하세요’라는 식의 말이에요왜 감기에 걸리는지감기가 무엇인지근본적인 건 몰라요.

- 94p

 

   3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1장은 히데키가 보기왕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다보기왕이 무엇인지어디서 온 것인지어떻게 맞서야 하는지에 대해 그는 필사적으로 알아내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는 그도독자도 전혀 모른다.

 

  1장까지만 보면 무섭고이상한 이야기이다그야 말로 호러 소설 그 자체로 끝이 난다엄청 두근거리고무슨 진실이 숨겨있는지 너무나 궁금한 상태로 2장이 이어진다. 2장은 히데키의 아내인 가나의 이야기이다히데키가 지키려 했던 행복한 가족을 가나 입장에서 볼 수 있고히데키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근본’에 대해 조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3장은 히데키의 가족을 바라보는  33자의 시선이다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물이 바라본 이 사건과 진실에 대해 알아가고 일들이 해결되는 과정이다

  클라이맥스로 다가갈수록 무서움은 줄어들지만 부기왕을 찾는 과정은 일본의 오컬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일본이 갖고 있는 문화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서양이나 우리나라와는 다른 오컬트적 요소가 빛을 낸다그리고 단순히 보기왕에 대한 공포를 원초적인 공포에 치중하지 않고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이유에도 비중을 두었다무작정 벌어지는 이상한 이야기가 아닌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만들었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초자연 현상이면서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로 읽힌다..  

 

  전체적으로 감상평을 하자면 무섭지 않은 호러 소설이지만오컬트 호러에 대해 조금의 지식이 있고그 느낌을 안다면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어쩌면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보기왕이 내게 찾아와서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내 진짜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고 상상해보자절대 유치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 으스스 함으로 이 소설을 즐기기에 꽤나 괜찮은 호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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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쉽게 만드는 마크라메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마크라메 원데이 클래스
조영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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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드디어 마크라메 서적을 만났습니다!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실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에 참 두근거리거든요.

그렇다고 뜨개 이외에 것들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요 -ㅂ-;;

이제 책도 생겼으니!!! 두근두근!! 슬슬 시작해보려 합니다 ~!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니 마크라메를 안 해본 건 아니더라고요.

학창시절에 많이 만들었던 실 팔찌라 불리는 미산가도 마크라메의 한 종류였어요. (씨익..)




마크라메는 딱히 특별해 보일 것 같은 재료들이 없어서 접근하기 쉬운 공예 중 하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기본 매듭 방법이 사진과 함께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QR코드가 있어서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연결이 돼요. 완전 유용 +_+!!!




Part2는 플랜트행어인데요.

사실 전 플랜테리어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들 하나하나가 다 갖고 싶어요 -_-!

각 작품마다 사진으로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으니 만들기 어렵지 않을 듯해요!




Part3는 월행잉입니다. 벽 장식이라고 하죠 후훗

요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마크라메의 하나인 것 같아요.

쇼핑몰 보다 보면 완제품들도 많이 팔더라고요.


언젠가 제대로 만들어보리라 다짐하며 책을 자꾸 보게 돼요.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벽 장식인 것 같아요.

어렵지 않은 아이템들로 마크라메를 시작해볼 수 있는 책이네요.


책만 보고 하는 셀프 원데이 클래스! 추천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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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요, 이렇게 좋은데 - 시시한 행복이 체질이다 보니
김유래 지음 / 레드박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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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빡한 삶이라는 게 절로 느껴지는 요즘이다아마도 초등학생때까진 몰랐던 것 같은데그 후부턴 천천히 내 삶을 조여왔던 이 빡빡함이, 30대가 되고 한 가정의 책임자 중 한 사람이 되면서 더 강하게 들어온다.

  나는 스스로가 자신과의 타협을 잘 한다는 걸 알고 있다말이 좋아 타협이지 게으른 사람의 포기라고 하는 말이 더 적절하다하지만 엄마라는 것이 되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자신과의 타협이 되어버렸다온전히 나 하나만 생각하고 맞춰갔던 일상의 흐름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나를 위한 무언가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갖기 어렵다나를 위한 타협은 정말 어렵다이런 빡빡한 내 삶에서 훌쩍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은 상상만 할 수 있는 사치 같은 것이다그래서 여행 책도 별로 안 좋아한다읽을 땐 즐겁지만 책을 덮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허상이란 걸 안다부러움을 넘어서 질투를 하고화를 내는 것이 여행 책을 읽고 나서의 내 뻔한 엔딩인걸 알기 때문이다.

  근데 왜 이 책은 읽는다고 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아마 제목 위에 써있는 저低자극 우붓 생활기’ 때문인 것 같다화려하고 자극적이며 눈을 즐겁게 해주는 여행기는 읽는 동안만 즐겁다온전히 책의 모든 것을 느끼고 뭔가를 나에게 남겨주는 책을 원했다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과 전혀 가고 싶지 않은 우붓이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읽게 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

 

  작가는 나만큼이나 소심했다나는 공포영화스릴러추리물을 좋아하는 장르물 매니아지만 현실세계에선 엄청난 쫄보다혼자가는 여행은 상상도 안하고어두운 곳은 시간이 걸려도 빙 돌아가며사람들의 만남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쫄보다나만큼이나 이 책의 작가도 소심하고 울보라 했기에 정말 그런줄 알았는데 아니었다하던 일을 관두고 여행을 훌쩍 떠난다는 것만큼이나 대담한 짓도 없다작가는 자기가 엄청 대담한데도 아직까지 소심하다고 광고를 한다이 부분이 참 재밌었다소심하다고 믿는 대담한 여자의 여행기어떤 식으로 써놓았을지 궁금해지는 포인트였다.

  여자 혼자 가는 여행게다가 인도네시아의 도시라니 역시나 대담하다힐링 여행지로 많이 알려져있다는 우붓의 자연을 느끼고원주민들의 여유를 배우는 과정 역시 대담했다만약 내가 용기를 내어 우붓까지 갔다하더라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잘 다닌다낯선 나라의 시골 동네를 혼자 돌아다니다니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읽으면서도 속으로는 미쳤네 미쳤네라며 어르신들처럼 혀를 찼다내가 우붓에 대해 잘 몰라서 이럴수도 있지만 남편의 말에 따르면 엄청 소심해서 그런다고 한다그렇기에 작가는 역시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대담하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왜 그랬을까 생각하다 답을 찾을 수 없을 때혹시 원인을 제공한 게 내가 아닐까 생각하는 버릇누군가 생각 없이 던진 말과 행동의 원인을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으려 곱씹는 것이다누군가를 미워하는 일 자체가 힘든 나는 결국 나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나를 진짜 힘들게 하는 문제는 그런 것이었다.

p. 102

 

 작가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상처 주었던 사실들을 깨닫는 부분이 있었다여기서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신경쓰지않아도 될 부분까지 남들의 반응을 신경쓰다보니정작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발견하지 못해 결국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상처받아 주저 않아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일은 해결 되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은 경우가 나에게도 많았다이 부분을 보고 이해했다나도 나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었구나남에게는 행복한 하루가 되라면서 정작 나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다오늘 이 것을 깨닫고 내일 다시 잊는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은 나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었다.

 



  우리는 슬픈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해요.”

며칠 후 크틋이 낮은 선 베드에 앉아 말했다수영장 물이 달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반짝거렸다얼마 전 크틋의 형수님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형은 매일 술을 마셨고 온 집안이 슬픔에 잠겨 엉망이었다고 했다. “슬펐어요하지만 일하러 와서는 웃었어요우리는…” 그는 땅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며 밝게 한번 웃었다. “슬퍼도 웃어야만 해요.” 그의 웃음은 나를 울고 싶게 했다.

 혹시 알아요” 만약 어떤 문제를 피해 도망가잖아요그러면 그곳에 똑 같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대요.”

p.148

 

  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에 도피가 있다이 상황을 모면하고 피하기 위한 여행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약하게는 안 풀리던 일을 내팽개치고 휴가다녀와서 보면 그 일은 나를 웃으며 반겨주었다.

  많은 이들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어려움과 고통을 피하러 도망간다언제나 그 문제는 내 옆에 있다이 책이라고 해서 해결책을 주진 않는다하지만 도망이 답이 아니라 맞서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당연히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많은 이들은 이 사실을 망각한다나 역시 몇 년전 내 인생에서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고그 일은 죽을 때까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2년 이상 정말 많이 힘들었다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다보니 결국 깨달은 것은 맞서야 한다는 것 이었다내가 지치지만 않으면 그 녀석과는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참 오래 걸렸다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갈 수는 있다그렇게 살다 보니 내 마음도 그만큼 단단해지더라고통과 싸우면서 나도 강해지는 초사이언 같은 사람이 되더라.

 

  그녀의 담백한 여행기는당연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느끼게 해주었다가끔 삶은 자신도 모르는 악마 같은 내 모습을 보여준다하지만 그녀가 만난 우붓의 사람들과그들의 삶은 그러한 악마 같은 내 모습 역시 나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그녀가 우붓과 사랑에 빠진 것 역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해준 곳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우붓에서의 일들을 잔잔한 음악처럼 써내려간 솔직한 이야기가 내게는 어떠한 장르 소설보다도 고자극으로 착착 꽂히면서 꽤나 괜찮은 여행기로 랭킹이 올라갔다사실 아직도 그녀처럼 우붓으로 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대담한 일은 꿈꾸지 않지만 이렇게 대리만족을 한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나도 이렇게 좋은 장소를 만날 날이 10년안에는 꼭 오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선 살짝 대담 스킬을 올려야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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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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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한 축구 감독의 말이 있을 만큼 SNS는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사람 간의 소통이 간편해졌고(심지어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정보의 공유 또한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SNS는 인터넷이 발전한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쉽고 빠른 것만을 찾는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더욱 어렵다재미있는 것은 기본이고자극적이며 선정적인 것에는 쉽게 빠지는 습성이 있는 인간은쏟아지는 많은 콘텐츠들 중 실제 유익하고필요하고제대로 된 것을 골라내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골라낼 필요 없이 흥미로우면 보고 아니면 무시하는 것이 가장 빠른 소거법이다난 제대로 된 정보만을 선택할 수 있고진실 된 이야기들만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SNS의 세계에선 단지 클릭하는 한 명의 유저일 뿐이다하지만 그들이 한 번씩 하게 되는 클릭은 나비효과처럼 세계적으로 큰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B급 호텔 밴드 드러머였다가 해직당한 벤은 8N8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살인 복권의 사냥감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와 함께 심리학 전공자인 여대생 아레추 역시 사냥감이었고정해진 시간 내에 둘 중 하나를 죽이는 사람에겐 1000만 유로라는 상금이 주어진다는 영상이 SNS를 통해 전 세계에 공유된다.

 8N8 은 사냥감을 죽이는 것이 독일 법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사람들에겐 그의 말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고오직 1000만 유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사냥감들의 정보는 순식간에 SNS를 통해 공유되고그 또한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는 악의적인 글들이 특히나 많이 퍼진다.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은 SNS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만큼 원시의 상태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작은 떡밥 하나가 한 사람의 종말은 물론이고많은 이들을 자의식 없는 사이코 패스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아무런 의도 없는 클릭 한 번이 쌓이고 쌓여 누군가를 짓이길 수 있는 집채만 한 쇠망치가 될 수 있지만 한 번의 클릭을 하는 이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그냥 재밌어서 공유할 뿐자기가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실제 눈에 보이는 해로운 물질이 아닌 인터넷 세상에서 존재하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와그의 확산을 만들어낸 우리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이 소설에 담겨 있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적 바이러스는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예를 들어 중상모략에 가까운 익명 제보자의 증오 섞인 증언을 보도하는 포털 기사 혹은 SNS의 댓글에서사회심리학적 바이러스는 그런 곳에서 숙주를 만나요구독자나 유튜브 시청자들이 병원체를 재채기나 기침이 아닌 마우스 클릭으로 퍼뜨리죠.

p.186

 

 아쉬웠던 것은 읽으면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몇몇 인물들의 설정은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맞추기 위해 급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했다. 8N8 살인 복권에 너무나 큰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설정이 살짝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딸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회피하려고만 했던 벤이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은 인위적이지 않았으며 인간적이었다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벤과 그의 가족을 통해 하고 싶었던 또 다른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조금 모자란 인물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은 진부하지만 독자에게 확실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뻔한 듯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반전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읽어내려가는 것이 좋은 책이다피체크의 소설이 재밌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따가울 정도로 쓰린 진실을 이야기하는 그와의 첫 만남이 좋았다언젠가는 나같이 평범한 인물도 범죄의 한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서늘한 상상을 하게 했던 이 소설은 꽤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네가 모든 걸 망쳤다율레는 삶을 포기해야만 했어그런 율레를 위해 넌 뭘 했냐넌 변한 것 없이 명성과 대형 무대만을 꿈꿨어책임이란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자기 본분을 아는 거야제니퍼처럼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거야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거야돈 때문에 전화한 거잖아안 그러냐빚 때문에 파산해서아니야그래서 자식에게 ‘무책임한 실패자’라고 면전에서 말하고 질책하기를 겁내지 않는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훈계자에게 전화한 거잖아.

p.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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