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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한 축구 감독의 말이
있을 만큼 SNS는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 간의 소통이 간편해졌고(심지어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정보의 공유 또한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SNS는
인터넷이 발전한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 쉽고 빠른 것만을 찾는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기본이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것에는 쉽게 빠지는 습성이 있는 인간은, 쏟아지는 많은 콘텐츠들 중 실제 유익하고, 필요하고, 제대로 된 것을 골라내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골라낼 필요 없이 흥미로우면 보고 아니면 무시하는 것이 가장 빠른
소거법이다. 난 제대로 된 정보만을 선택할 수 있고, 진실
된 이야기들만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SNS의 세계에선 단지
클릭하는 한 명의 유저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 번씩 하게 되는 클릭은 나비효과처럼 세계적으로 큰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B급 호텔 밴드 드러머였다가 해직당한 벤은 8N8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살인
복권의 사냥감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함께 심리학 전공자인 여대생 아레추 역시 사냥감이었고, 정해진 시간 내에 둘 중 하나를 죽이는 사람에겐 1000만
유로라는 상금이 주어진다는 영상이 SNS를 통해 전
세계에 공유된다.
8N8 은 사냥감을 죽이는 것이 독일 법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겐 그의 말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1000만 유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냥감들의
정보는 순식간에 SNS를 통해 공유되고, 그
또한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는 악의적인 글들이 특히나 많이 퍼진다.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은 SNS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만큼 원시의 상태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떡밥 하나가 한 사람의
종말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을 자의식 없는 사이코 패스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깨닫게 해준다. 아무런 의도 없는 클릭 한
번이 쌓이고 쌓여 누군가를 짓이길 수 있는 집채만
한 쇠망치가 될 수 있지만, 그 한 번의 클릭을 하는 이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냥 재밌어서 공유할 뿐, 자기가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눈에 보이는 해로운 물질이 아닌 인터넷 세상에서
존재하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와, 그의 확산을 만들어낸 우리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이 소설에
담겨 있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적 바이러스는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중상모략에 가까운 익명 제보자의 증오 섞인 증언을 보도하는 포털 기사 혹은 SNS의 댓글에서. 사회심리학적 바이러스는 그런
곳에서 숙주를 만나요. 구독자나 유튜브 시청자들이 병원체를 재채기나 기침이 아닌 마우스 클릭으로
퍼뜨리죠.”
p.186
아쉬웠던 것은 읽으면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몇몇 인물들의 설정은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맞추기 위해 급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했다. 8N8 살인
복권에 너무나 큰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설정이 살짝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딸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회피하려고만 했던 벤이, 사건의 중심으로 다가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은 인위적이지 않았으며 인간적이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벤과 그의 가족을 통해 하고 싶었던
또 다른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모자란 인물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은
진부하지만 독자에게 확실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뻔한 듯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반전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읽어내려가는 것이 좋은 책이다. 피체크의 소설이 재밌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따가울
정도로 쓰린 진실을 이야기하는 그와의 첫 만남이 좋았다. 언젠가는 나같이 평범한 인물도 범죄의 한가운데 있을 수 있다는 서늘한 상상을 하게 했던
이 소설은 꽤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네가 모든 걸 망쳤다. 율레는 삶을 포기해야만 했어. 그런 율레를 위해 넌 뭘 했냐? 넌 변한 것 없이 명성과 대형 무대만을 꿈꿨어. 책임이란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 자기 본분을 아는 거야. 제니퍼처럼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거야.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거야. 돈
때문에 전화한 거잖아, 안 그러냐? 빚
때문에 파산해서, 아니야? 그래서 자식에게 ‘무책임한 실패자’라고 면전에서 말하고 질책하기를 겁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훈계자에게 전화한 거잖아.”
p.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