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읽는다는 소비 행위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일용한 양식거리를 제공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경외심을 늘 갖고 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다니는 말들을 잡는 것이라고. 그리고 소설가란 마음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고, 그 괴물을 키우면서 작가가 되고, 그 괴물에 잡아먹힐 때 자살한다....”라는 책 속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하지요.

 

 

추상적인 형태의 감성들을 직접 손에 의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출판사에는단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며 원고를 들이미는 보통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출판사에도 사정은 있겠지요. 무턱대고 그리하겠노라 무의미한 공수표 남발은 진흙탕 속에서 발을 빼기 힘들게 하기 때문에 냉정해져야만 합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면 이윤이 나는 부문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메꿔야하니까 문예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은 책의 공생관계.

 

 

문예 잡지의 편집장인 미무라는 그런 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너에게 판매부수 실적달성을 독려 당하던 그에게 어느 날 병원 내과 의사인 히로세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지요. 병원 환자 중 다카오카 마키라는 여성이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일이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미무라에게 원고를 보내 달라고 했다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무라는 만나본 적 없어 알지 못하는 관계라 어리둥절하던 차에 그녀가 썼다는 <녹색 원숭이>라는 소설 제목을 듣고는 수년 전 작가 지망생이었던 기스기 쿄코라는 여성의 작품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적잖이 놀랍니다.

 

 

​기스기 쿄코는 3년 전에 실종되었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거대한 원고 꾸러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오기와 집념, 끈기,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도는 말을 잡겠다는 각오를 실천했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키라는 여성을 만나보니 자신이 이 작품을 직접 썼다고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쿄코의 버릇 등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며 자신을 이 세계에 데려오지 않았냐며 의미심장한 말까지 남기죠.

 

 

​어떻게 그녀가 교코의 작품을 알고 있을까? 알 길 없습니다. 연관관계의 맥락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혼토 모토코라는 여성 작가가 쓴 문학상 수상작 <꽃의 사람>이 교코의 작품을 도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네요. 누군가로부터 몰래 전달받아 자신의 창작으로 교묘히 위장하지는 않았을까, 수상쩍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원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출판사를 다니며 편집장들에게 출간을 의뢰하러 다니는 일은 역시 어려운 일이지요. <녹색 원숭이>가 범상치 않은 수준의 소설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세상에 나와 정식으로 소개되어 빛을 볼 기회마저 원천봉쇄 당했다면 꿈이 좌절된 자의 원념이 누군가를 조종하게 되지나 않을까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심 서글픈 일입니다.

 

 

​여기, 진짜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동분서주하는 사람에 미무라와 히로세 말고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미치코도 포함됩니다. 게다가 어린이 실종사건까지 개입하는데 전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쿄코의 실종과 어린이 실종사건에는 어떤 흑막이 있을 것 같아요. 이쯤되면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작가의 행방불명은 어둠의 저편에서 신경을 건드리면서 남아있는 불안감으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 끝에는 어떤 종착역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소설 한편을 탄생시키기 위한 창작은 현실과 끊임없이 혼동하도록 만들죠. 어리석다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바를 갈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한 마리의 괴물로 변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 부와 명성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본능적으로 충족시키고자 했지만 내면의 붕괴는 좌절을 가져왔고 불가능에 부딪히자 증오의 화살이 타인에게 향해 버렸습니다. 마술사처럼 언어를 마음대로 부리고 깜짝 놀랄만한 소설을 내놓고 싶다는 세상 모든 작가 지망생들은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과연 공감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여전히 소설을 읽고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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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ㅣ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누군가에게 길을 걷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다른 이에게 묻기 전에 내겐 길을 걷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먼저 물어본다. 그것은 생각을 줍는 것, 반성과 희망을 꿈꾸는 것,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는 것 등등 여러가지 잡동사니같은 답안이 떠오른다. 낯선 길을 혼자 걷다가 어쩌다 어쩌다 낯선 이를 만나 동행하는 그 길에는 연록색의 수채화같은 그림들과 인생을 조율하는 감각적인 대사들이 넘실거리면서 물이 스며들 듯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책에서 나온 그 골목길들을 진짜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아름다운 골목길도 마냥 걷고싶다. 덥지만 않다면 말이다. 걷고 또 걷고 싶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과정에 놓이게 하는 힘이 이 책의 매력이다. 옛 사랑을 찾아 한국으로 온 미키의 행보와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배우로 인해 드디어 감독 데뷔라는 기회를 얻은 희수의 행보,,,, 그리고 로맨스는 어떻게 연결될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두근두근 설레임으로 충만해진다. 그런데 알고보니 작가 주드 프라이데이는 남자다. 일순 놀랐지만 곧 "뭐 어때." 라며 훌훌 털어버린다. 감성돋는다는 표현은 이럴때 써야하는 법. 요런 걸 즐기는 나 또한 남자가 아니던가?  이런 책이 가끔씩 좋을 때가 있는데. 그래서 강추하는, 아름다운 대박!!!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 중인 주드 프라이데이의 "길에서 만나다"는 알고보면 그리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아직 자신의 창작물로 스크린에 내걸지 못한 은희수는 길을 정처없이 걷다 일본에서 온 미키를 만난다. 마치 비포 선라이즈 + 밤의 피크닉이 웹툰으로 탄생한 듯한 느낌. 대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서울을 배경으로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아름다운 골목길을 두 남녀의 동행과 함깨 한 폭의 작품집같은 션한 배경이 너무나도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눈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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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밀랍인형, 톱밥인형.

이라고 노래하는 것은 자명종.

 

누구나 장미및 인생을 꿈꾸지만 도중에, 아니 출발선부터가 남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 했고 행복에 대한 기준은 만족을 모르기에 그때부터 타협하는 것으로 안주하기 시작하지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하지만 꿈꾸던 소녀, 초등학교 5학년 열한살 후지코가 여기 있다.  한참 귀여움을 받고 자라야할 나이지만 태생이 추하다. 그렇다고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있으면 동정보다는 괴롭히고 싶은 잔인함이 본능적인 유전자로 가지고 있나 보다. 반 아이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면서 스스로 나는 이런 수준밖에 안되나보다 같은 자괴감이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밀랍인형, 톱밥인형으로 간주하기도한다. 그 인형들이 어쨋길래 싶어 정체를 확인해보면 후지코의 현 상황들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어쩜 이렇게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인가. 아무리 빙글빙글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해도 먼지와 곰팡이에 뒤덮인 곳에서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못하는 신세가 아니던가.  

 

문제적 아동은 결국 가정환경이나 교육에서 문제가 발단된다. 인간이 가장 먼저 구성하게 되는 기초적 집단 구성원인 가족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경제적 무능함과 자녀교육에 아무런 역할을 목하는 후지코의 부모와 철없는 여동생까지. 양보만 해야하는 모리사와 후지코의 일상은 어느날 일가족이 참살되는 비극 속에서 혼자 살아남으면서 인생 제2막이 시작되는 전환기를 맞이했다. 남자 아이들의 성적 괴롭힘에도 변변한 저항마저 못했던 순간들이 안타깝고 왜 싫다는 소릴 못하느냐며 스스로 화도 나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는 변변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그러나 한번 구겨진 인생은 다림질 하는 것 마냥 매끈하게 펴지지가 않았다. 매스컴의 호들갑스러운 보도 덕택에 극적으로 참극에서 살아남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포장되어 어른들의 관리와 보호를 받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이모가 있다. 이모는 친구를 신중히 사귀어야 미래를 담보받을 수 있다고 끊임없는 설교를 늘어놓으며 엄마를 닮아간다는 말로 후지코를 자극했다. 후지코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후지코가 그토록 싫어하는 엄마의 일생을 어느정도라도 따라가게 될 것이라는 짐작을 당연히 하겠지만 인생의 밝은 면을 보고 싶어하는 애쓰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와 후지코까지 포함이다. 그렇지만 후지코의 주변에는 어떡하든 그녀를 괴롭히거나 이용하려는 파렴치한밖에 없는 것도 업이라는 굴레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이다지도 무참히 짓밟혀야 할만큼 후지코의 일생은 혐오스러웠던가? 우연한 살인 그리고 그녀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길 때마다 반복되는 살인... 평범한 여자로 살 수도 있었던 후지코는 살인귀로 낙인찍히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된다. 마치 픽션같은 이야기 구조를 보여 더욱 그녀의 대한 동정과 연민이 짙어진다. 무엇이 그녀의 인생을 밝은 빛이 아닌 그림자가 뒤덮인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는지에 고민하게 된다. 이야미스의 세계는 그렇다. 질투, 분노, 미움, 살의 등이 부정적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혐오라는 산물을 쏟아내는 장르가 이야미스의 특징이라고 한다. 

 

애처롭다. 혐오스런 시선을 끝내 안고 살아야했던 한 여자의 일생은 씁쓸한 반전과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사라져간다. 인생이 해피하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이러한 인생도 있을 수 있구나, 불행이라는 업보를 남의 운명으로만 단정짓지말고 잠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일도 의미있지 읺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랬다면 살인귀 후지코라는 존재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겠지. 후지코에게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을 묻고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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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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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만년의 행복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줄을 선다고 누구나 건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다리면 언젠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줄을 제대로 섰어도 자기 몫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애당초 줄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본문 중에서 - 

 

미미 여사의 작품을 다시 만나기까지 거의 5년에 가까운 공백이 있었던 것 같다. 한참 이 계통의 소설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즈음 읽었던 <모방범>은 분명 분량으로도 대작이었고 압도적인 서사에 강하게 매료되어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후반부로 가면서 촘촘하던 밀도가 느슨해지면서 지루했달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기존에 깔아놓은 멍석이 실로 대단했기에 종합적인 총평에는 크게 감점요소가 되지는 않았다. 첫 만남은 그렇게 훌륭했는데 어쩐지 이후 그녀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기란 여의치 않았는데 계속된 독서 속에서 새로운 작가들로 인한 관심분산과 함께 그녀의 시대물에 대한 부정적인 거리감 같은 점도 분명 존재했다고도 생각된다. 타 작가들의 시대물에서 이미 혼쭐이 난 적이 있는지라 그녀의 시대물에도 같은 감정이 반영되었으니까. 뭔가 나랑 취향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화차>는 영화로서 무척 재밌게 보았었고 이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에 이어 “2013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차석이라는 위엄을 확인해 볼 차례가 돌아온 것인가. 

 

도쿄 조토 제3중학교. 눈 내리던 크리스마스에 한 아이가 등교하면서 일부러 뒷문 담을 넘는다. 수업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정문을 놔두고 월담을 시도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아이가 담을 넘어 착지한 곳에는 한 남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2학년 가시와기 다쿠야로 밝혀진다. 평소 등교를 거부하며 학교생활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았던 다쿠야의 죽음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자살로 결론짓지만 누군가로부터 다쿠야는 자살이 아니라 교내 불량학생들인 오이데 3인조에게 떠밀려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담긴 투서가 날아들면서 학교는 이내 악의적인 소문과 의혹으로 혼란에 빠지고 추가적인 희생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진실은? 죽은 아이가 알고 있었던 진상은 무엇이며 무엇이 올바른 양심일까? 

 

8500페이지에 달한다는 압도적인 분량에 처음부터 기가 눌린 탓인지 읽는 내내 속도감이라는 물리적 흐름에 저항하느라 부담이 많이 가는 독서였는데 이제 3분의 1일을 읽었으니 결승점까지 가는 과정에 조바심을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더라는... 어찌 수년 만에 어렵사리 재회했음에도 이렇게도 돌파가 힘들까? <모방범>에 필적할만하다는 혹자들의 감상이 정당한지는 마지막에 도달해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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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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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불리고 있는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 한국문단 역사상 처음으로 귀고리를 하고 시상대에 올랐다는 도시적 남자 김영하에 대한 잔상은 몇 가지로 압축 정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소설제목으로, 다음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던 <위대한 개츠비>의 역자로, 마지막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발견하면서이다. 혹시 얼마 전에 종방되었던 TV드라마의 원작인 것일까? 아니었구나. 나만 그런 착각을 한 것은 아니었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미 많은 추측들이 후후... 하지만 의혹은 말끔히 걷히지 않았다. 제목을 김영하의 소설에서 따온 건 아닐까 하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난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이 중요하니까. 사실 많은 분들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시고는 추천도 많이 하시고 이미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올라있는데 단순히 재미있다는 일반적인 느낌만이 다는 아닐 거라는 예상을 해보았다. 김영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평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단순하면서도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는 찬사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30년 동안 살인을 저지르다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가 70세 노인이 되어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점차 사라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이다. 그가 살해했던 숱한 희생자들 중에는 현재 같이 살고 있는 딸 은희의 친부모도 포함되어 있다. 단기 기억이나 최근 기억부터 없어지다가 과거의 먼 기억까지 지워지는 과정에 놓여있음에도 은희의 친부모를 살해했던 기억만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 생생하게 잊지 않고 있다. 차마 은희에게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고 자신이 데려다 키운 양부라고만 했다. 은희는 박주태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소개하고 그 자에게서 연쇄살인범의 기운을 감지한 김병수는 은희를 지키기 위해 박주태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여생의 마지막 목표로 설정하는데.... 

 

살인에 대한 모든 과정과 느낌들을 복기하기 위해 일지를 썼던 김병수에게 기록이란 과오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오답노트이면서도 희노애락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까운 기분의 표출이기도 하다. 시를 읽고 금강경 같은 것을 읽기 시작한 이유도 문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나 열정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작업을 온전한 감정을 담아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왜곡된 심상에서 비롯된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본문 중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양부를 봉양하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은희는 그런 환자에게도 감정은 남아있다는 말로 자신의 역할에 당위성내지 위안을 부여하고자 하지만 정작 김병수는 망각의 강을 건너며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는 중이다. 과거의 기억이든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억 모두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달려가고자 하는 결단력이지만 레일 끊긴 기차처럼 영원한 현재는 없다. 이미 김병수는 도시를 싫어했고 조용한 세상에서 세상에 뒤섞여 사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오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에서 실패해왔으니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만물을 파괴하는 행위에 어떠한 기쁨마저 느낀다. 연쇄살인마들이 느끼는 전형적인 쾌감이라는 흥분상태를 엿볼 수 있기에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주태가 은희를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딸을 보호하겠다는 김병수의 마음을 파악한 독자들은 촉수에 걸려 마비된 상태로 무섭도록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의심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결구도로 흘러가겠거니 했는데 아뿔사, 이 소설에 담긴 사전경고를 간파했어야 했다. '단숨에 읽힌다면 반드시 경계하라, 그랬다면 이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이라는 경고문은 반전에 도달해서야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김병수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정상이 아니라는 상태는 이미 인지하고 있는 정보이다. 만약 그가 정상인이었다면 결말의 반전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깜짝쇼에 불과했을 테니까 말이다. 오히려 비정상에 익숙해있을 때, 아니 방심하고 있을 때 정말 예상치 못한 결말을 떡 하니 내놓았다. 순간 당황하기도 했고 어찌 보면 슬프다고 해야 할 목매임에 숨이 막히기도 했다. 기억을 잃는다는 사실만 해도 이렇게도 안타까운데 실제보다 더한 고독이 있었다는 진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물론 허무한 결말로 치부하는 이도 있겠지만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작가의 의도대로 마치 영화 <파이트 클럽>의 결말처럼 거대한 세트가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섬뜩한 공포를 나는 받아들였다. 이것은 악몽이다. 현대소설이 구축할 수 있는 최상의 시스템에 나는 진정 완패했으니 김영하라는 이름 석자를 반드시 각인시키겠다. 알츠하이머 예방에는 독서가 최고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려 한다.  진심으로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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