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 ㅣ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율리아 뒤랑 시리즈를 총 12편을 남겼고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은 시리즈의 두 번째 케이스에 해당된다. 1편부터 순차적으로 국내출간 되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유작부터 먼저 선을 보인 점은 뜬금없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차례차례 나와 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가. 보고 싶어도 1편만 선보이고 자취를 감춘 어느 인기 시리즈물이 복귀에 제동이 걸려 기약이 없다는 사례를 감안하면 고인이 된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사후에 비로소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범죄의 향연이 신묘하기만 하다. 이 시리즈는 그러하다.

 

 

 

 

열두 살 소녀 카를라는 한 달 전 처음 시작한 생리로 성장통을 겪고 있던 평범한 아이였다. 우연히 친구의 꾐에 빠져 파티에 초대받아 갔던 그날 밤에 어떤 일을 겪는다.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어린 소녀를 음흉한 무리들이 가만히 내 버려둘 리 만무한 것.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법이고 카를라의 인생은 지옥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율리아 뒤랑에게 12송이 백합과 성경 구절을 인용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율리아는 혼란스러워한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편지를 보낸 것일까에 골몰하고 있을 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 

이제야 알아차린다. 범인은 율리아에게 어떤 힌트를 남기면서 살인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율리아와 일면식이 있는 듯한데 그녀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듬뿍 담긴 살인예고장은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식의 전면적인 도발은 들어 있지 않지만 인용된 성경구절은 계속된 살인을 막기 위해 율리아에게 주어진 도전장이자 숙제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두통거리였기도 하고.

 

 

 

살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달아 발생하고 살인예고장에 담긴 의미를 밝혀내지 못한 율리아 뒤랑은 언제나 한발 늦게 범인의 그림자를 따라 가기에 급급하게 되는데 살해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저명인사들이었던 것도 특징이다. 율리아만 모를 뿐 독자들은 범인의 심리와 범행동기 그리고 범행실행을 빠뜨림 없이 확인하게 되는데 범인의 시점과 율리아 뒤랑의 시점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어떻게 하나의 뿌리로 다시 만나게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읽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8년 전의 사건이 불러온 비극은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 측의 지극히 사적인 복수극이다. 공권력에 의지하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이 이유이다.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연에는 생계 유지적 측면과 우발적인 측면, 원한, 돈 등이 대표적이겠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는 상류층에서의 범죄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겉으로는 화려한 성공에 풍족한 생활, 공인으로써 사회적 모범이란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면 뒤에 가려진 얼굴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상상 조차 하기 힘든 추악한 욕망 충족을 위해 위선적인 작태를 저지르고 있기에 평범한 소시민들은 그 실태를 상상 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 점을 노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행되는 이들의 범죄는 실로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으며 범인은 마치 도장 깨기를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몸통과 머리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어 처절한 피의 복수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살인자의 눈물겹고 안타까운 사연들은 누구도 그를 비난하기는커녕 두 손 모아 응원하게 되는 심정이 된다.

 

 

 

 

비록 범인이 원수를 상대하는 방법이 패턴화 되어 있다는 점이 우려할 만하나 의심을 피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악이라는 나무가 수많은 가지치기를 하고 있기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계통의 소설에서 범인이 범죄행위에 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속 뜻이 이런 용도로 재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은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선입견을 통렬히 와해시키면서 효과적으로 재생산해낸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기에 최고의 칭찬을 해 주고 싶은 결정적인 대목이다.

 

 

 

12송이 백합에 담긴 의미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숫자의 범위에 산정되지 않고 은밀히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방식은 얼마나 우아하고 산뜻한가. 틀에서 벗어나 관점을 확대시키는 그 시도가, 그 결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전개가 참 좋다. 무수한 상징과 은유들이 무리 없이 소설 전반에 잘 융화되니까 마지막 장을 덮고도 여운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사전에 꼼꼼한 조사를 통해 완성해 낸 결과물은 단지 일회성으로 즐기고 망각해버리는 가벼움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담아내면서 왜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는 안드레아스 프란츠로 통하게 되는지 세상에 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의의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작품세계는 당당히 전진한다. 여전히 훌륭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조각맞추기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에드 맥베인을 경찰소설의 효시라고 부른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 하나,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일까? 경찰이 주인공인 경찰소설이 이전에는 없었던 것도 아닐테고, 경찰에 대한 세부적이고 전문적이며 리얼리티한 설정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분명 깔려 있어야함은 당연하겠지만 고전에 상당히 취약한 내가 역사를 제대로 꿰고 있을 리가 없으니 비교는 불가하다. 그러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렇게나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경찰소설을 만나기란 힘들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경찰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은 많지만 직업적인 설정일 뿐이고 사건과 추리에만 더 정성을 쏟고 있기에 경찰이라는 캐릭터에 생명을 제대로 불어넣어 읽을수록 찰지고 고소한 이 맛은 비견할 데가 없다. 

 

 

 

87분서 시리즈는 돌아가며 87분서 소속 형사들을 주인공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조각 맞추기”는 흑인 형사 아서 브라운이 되겠다. 87분서의 다른 형사들과는 별다른 개성이랄까, 특성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좀 있어서 한번 쯤 이 형사가 주인공인 87분서 시리즈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있었다. 보란 듯이 “조각 맞추기”는 나의 바람대로 아서 브라운 형사가 주인공이란다. 아마도 유색인종이란 유전적 요인에서 뭔가 튀는 점이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 점에서는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름이 블랙이었다면 검은 피부색이 더욱 강조되었겠지만 의외로 피부가 이름처럼 갈색이란다. 이런!! 아서 브라운은 흑인으로 분류되거나 차별당하는 것을 당연 원치 않았지만 그는 피부색의 컴플렉스에 온전히 구속받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성인인 되어서도 검은 피부는 백인들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치부되지만 생각보다 의연하게 잘 받아치고 잘 넘겨버리는 여유로움을 보이는데 이제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달관한 듯하다. “아 그러셔. 나는 검다. 어쩔래?”라고 당당히 대응할 수 있는 그 능청스러움이 좋다.

 

 

 

그래서일까? 아서 브라운에게 닥치는 인종차별적인 대사들은 상당히 민감하고 위험수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에드 멕베인은 논란을 교묘히 비껴나는 재주를 잘 부렸다. 인종차별적 요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일상적 유머로 승화시켜 흑인이 더 의연하고 백인이 더 구차하고 찌질하게 보일 수도 있는 조화로운 전개가 설정이 이번 작품의 최대강점이자 매력적인 요소라고 하겠다. 보라! 아서 브라운 형사의 저 당당함을 말이다. 그는 인종적 편견을 사건 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비장의 무기로도 적절히 활용해서 압박하는 묘안을 선보이는구나.

 

 

 

아서 브라운 형사는 이중 살인사건 현장으로 출동한다. 아파트에 침입한 남자와 집 주인 남자는 격투 끝에 서로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더 두고 볼 것도 없는 사건인 듯싶다. 강도에 맞선 정당방위처럼 종결될 뻔 했던 사건은 죽은 남자중 한 명이 손에 사진 조작을 쥐고 있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양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보험 조사원 어빙 크러치가 87분서에 짠 하고 등장하는데 그 남자의 손에도 찢어진 사진 한 조각이 있었다. 어빙 크러치의 설명에 의하면 강도단이 거금을 털어 도주하다 경찰에게 사살당한 사건이 있었고 사살당한 현장에는 돈이 없었다고 한다. 그 거금의 소재는 사진으로 찍어 강도단들이 주변 사람들에 찢어서 나누어 주었는데 자신과 공조하여 돈을 찾아내자는 제안이었다. 이제 브라운과 카렐라 형사는 뻔한 뻔자가 아닌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돈을 찾기 위해 사진 조각을 찾아 탐문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해설에도 나왔듯이 원제 “JIGSAW”의 표기를 두고 “직소”나 “지그소”냐를 두고 역자는 고민했던 걸로 나오는데 표기 대신 그 뜻인 “조각 맞추기”를 사용한 것이 타당했다고 본다. 돈의 소재가 찍힌 사진 조각들은 임의로 찢어 갈라놓은 게 아니라 퍼즐의 행태대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제목만이 아니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방식을 퍼즐 맞추기 한다는 표현에 적합하도록 한 구성과 안배가 그만큼 이채로왔다. 나머지 사진 조각들을 찾아 큰 틀을 맞추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아서 브라운 형사가 소유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 완성된 사진에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은 흡사 한정된 시간 내에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할 것 같은 두근거림과 기묘한 설레임으로 즐겁게 하였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는 실과 바늘처럼 가까이에 있었으며 그 어떤 순간에도 유머는 빛을 발한다. 그 걸죽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인하여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재미란! 유머 없는 87분서 시리즈는 그 자체로 죽음이다. 그래서 미스터리적 요소보다는 인간의 탐욕과 인간관계에서 더한 강점을 발하는 87분서 시리즈에 계속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죽음의 한가운데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4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하드보일드의 거장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죽음의 한 가운데(In The Midst Of Death)>를 읽었다. <아버지들의 죄>의 뒤를 이어 시리즈물로서는 두 번째 만남인데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에 수록된 단편에서도 이미 발견했던 것처럼 이 무면허 탐정은 항상 의와 악의 경계선상에서 도시의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미화원 같은 역할인 것 같다. 쓰레기를 청소해서 거리를 정화시키기도 하지만 청소 도중 습득한 고가의 분실물은 신고하지 않고 슬쩍 주머니로 챙겨 넣는 계산적인 면도 보이기에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로 각인된다.

 

 

 

무면허 탐정 매튜 스커드는 부패 경찰 제리 브로드필드의 의뢰를 받는다. 사실 제리 브로드필드는 그리 평판이 좋지 않다. 아니 최악에 가깝다. 매튜 스커드에게도 솔직히 털어 놓지만 청렴결백과는 거리가 먼, 부정부패와 결탁한 인물이었고 그런 자신이 경찰 비리를 검사에게 정보제공 하겠다고 설쳐대고 있으니 동료경찰들은 그를 배신자에 기회주의자로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적당한 부정부패는 당연한 필요악 정도로 간주하고 동료들의 구린 내를 까발리겠다는 이중성에는 그리 개의치 않음이다. 그런 제리 브로도필드가 매튜 스커드에게 의뢰한 일은 콜걸 포샤 카가 제리 브로드필드가 자신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고 협박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고소했기 때문인데 순전히 경찰 비리 폭로에 찜찜해진 어느 누군가가 배후에 그녀를 조종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매튜 스커드가 포샤 카를 만나고 난 다음 날 뜻밖에도 그녀가 제리 브로드필드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경찰은 용의자로 제리 브로드필드를 검거하고 결백을 주장하는 그를 보며 매튜 스커드는 진범을 찾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어찌 보면 악어와 악어새의 만남이라고 보일지도 모를 관계였다. 선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구정물을 덮어쓴 의뢰인의 무죄를 밝히겠다고 나선 모양새가 남들이 보기엔 이쁜 그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녀석은 당해도 싸다는 식의, 실제로 무죄냐 유죄냐 하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론은, 특히 경찰들은 싸늘하고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게 없다. 여전히 매튜 스커드는 홀몸이었고 자신을 지지, 동정해줄 만한 이도 많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의뢰받은 것에 충실했을 뿐이었고 배경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숨은 진실의 배후를 알아내는 것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랑해선 안 될 누군가와 또 금지된 사랑에 빠졌을 뿐이다.

 

 

도덕적 잣대에는 무심하게, 그리고 일과 사랑은 과감히 구분해버리는 쿨한 남자... 알콜 중독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려는 과정이나 결심들이 과연 결실을 맺게 될지도 내심 궁금하게 만드는 행보를 보였다. 그 와중에 언급된 “짐 빔”에서 또 다른 동지 “해리 홀레”를 떠올리게 된 것은 거의 자동반사적인 연상이었다. 왠지 두 사람이 술을 나누는 그림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매튜 스커더의 추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답에 가까운 논리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 알아차리기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그만이 이미 범인은 알고 있으며 동기는 범인을 만나 범행을 발뺌하는 회피적 행위에 쐐기를 박아 넣는다, 그제서야 독자들은 범인의 정체를 눈치 채면서 그것이 육감이란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보다 트릭보다 비정한 현실과 분위기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 등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 까 싶다. 이 소설만 해도 그렇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의기양양도 잠시, 끝내 피의 댓가를 치르고야 마는 결말은 허무함 그 차제이다.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매튜 스커더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나 보다. 알딸딸한 상태에서 죽음을 관망하면서 때론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하고 죽은 자의 사연에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의 헌화 한 송이가 필요한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란 기록은 있는 그대로를 공부하면 단순히 지식이 되지만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하면 창작이 되고 문학이 된다.  이쯤해서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논픽션이 되는지 경계가 아슬아슬해지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허무맹랑함에 귀 기울이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순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으리라 믿었건만 익숙함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사용할 줄 알았고 그것을 발판삼아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데 어떤 흔들림에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분명히 시작은 작위적이었다. 핀란드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던 비행기는 도착까지 8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조선시대 인물 "정여립"에 대한 영화 제작을 준비하던 27살 청년 “동현”은 우연히 자신이 올해 433살이며 “정여립”의 외손녀라고 주장하는 여인 “홍도”를 만나게 된다. 좌석은 달랐지만 “동현”의 스크랩에서 외조부의 존함을 발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 물론 “동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고 “홍도”의 이야기는 순전히 지어낸,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4백년 이상을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며, 이렇게 늙지도 않고 꽃다운 젊음을 유지하겠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남자는 여인의 미모에 약한 법, 우선 그녀는 예뻤다. 그리고 4차원적인 매력에 반해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동행이 되어 그녀가 살아온 4백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면 그녀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겠지,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는 점차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홍도”의 말에 따르면 외할아버지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여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가 조선 역사상 가장 불온한 역도로 몰려 처형당하였고 아버지 “이진길”도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른 바 ‘기축옥사’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홍도”의 재능을 높이 산 “정여립”이 붙여준 그녀의 이름은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의 자에서 딴 것이라 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홍도”는 백년해로를 약속한 “자치기”를 오라버니로 부르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역사적 사건들은 남녀를 갈라놓는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자치기”는 병졸로 끌려가고 “홍도”는 철천지원수인 "선조"의 딸 “정주옹주”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이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홍도”는 자신을 옹주로 칭하고 “정주”를 궁노라 하며 거짓말로 둘러 댄다. 그리고 일본 장수 “우키다 히데이에”의 신임을 받아 수년을 그의 수하로 일하다 고국인 조선으로 극적 귀환하게 되었다가 다시 오라버니를 만나지만 이번에는 영원한 이별을 한다. 이때 그녀는 한 노파의 영험한 주문에 의하여 그 때부터 늙지도 죽지는 않은 불로불사의 육신이 되는데 이 조화는 축복이 아니라 죽지 못해 연명해야하는 업보처럼 그녀를 짓누른다. 다시 세월이 흘러서 죽었던 아버지가 환생하지만 천주박해로 다시 아버지가 순교하게 되는 슬픔을 겪으면서 그녀가 사랑했던 이들은 아무도 그녀 곁을 지켜주는 이가 없었으니 이 얼마나 외롭고 애통했던가.  그래도 하늘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인연이라는 선물을 주신다. 죽었던 “자치기” 오라버니가 네덜란드 의사로 환생하여 재상봉을 한 것. 두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흐름 앞에서는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 생과 사를 번복하는 일은 말이다. 

 

 

 

“홍도”의 4백여 년이란 삶 속에서 애끓는 사랑과 눈물의 이별은 때론 기쁨이었다가 절망이라는 무게를 낳았으며 앞서 언급한 기축옥사, 임진왜란, 천주박해 같은 역사속의 중요사건들과 얽히면서 파란만장한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국사 시간 속에서나 들어봤던 “정여립”은 반역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로 ‘동국지리지’의 저자 “한백겸”은 실학의 선구자중 한 사람으로, “이진길”은 “정여립”과 뜻을 함께 했다가 장살당한 문신으로 소개되면서 역사라는 큰 틀에서 외면 받고 잊혀졌던 아웃사이더들을 오늘에 와서 부각시켜 재조명하게 만든 그 설정이야말로 죽어버린 역사의 살들에 숨결을 생생하게 불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천일야화’ 같은 “홍도”의 삶에 울고 웃으며 애절하다가도 진중한 무게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들게 할 만한 깊은 아름다움이 있다. 수백 년을 사는 동안 겪었던 풍파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기개와 호탕하고 활달한 기지로 헤쳐 나가기 때문인지 그 강렬한 흡입력에 읽다보면 완벽하게 제압당한 느낌이 든다. 밧줄로 꽁꽁 묶여버린 것 같이 에워싸면 결말에 도달할 때까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단단하고 화려했다. 정말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데 절절한 호소력에 맘을 추슬러야만 했다. 캐릭터의 매력에다 역사를 다른 각도로 재해석해 장악하는 능력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장대한 힘이자 진정성으로 뜨겁고 감동적이다. 결국 마지막은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고 그 점 때문에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감성 돋는 이야기라서 나는 눈물이 나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영혼의 심판 2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세상에는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일이 비롯됩니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어둠의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일들 말입니다.

  우린 그 경계선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간혹 그 경계를 뚫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에는 언제나 거울이 하나 있다는 걸 말이야.

  그 거울을 바라보면 자넨 진실을 알아낼 수 있어" 

  

<속삭이는 자>로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도나토 카리시"의 최신작 <영혼의 심판>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천금의 기회를 운 좋게 얻을 수 있었다. 전작으로부터 2년만이던가? <속삭이는 자>와 마찬가지로 연쇄살인범이 등장해서 살인사건이 터져서 해결하면 또 하나의 사건이 대기 중이어서 다소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조이다. 문을 열면 하나의 통로가 아니라 여러 갈래길로 시선이 분산되었다가 결국 출구는 두 개로 정리되는데 개별 사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으니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읽을 때 집중을 요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 남자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지고 응급 구조대가 긴급 출동하게 된다. 그런데 구조대원으로 현장에 출동했던 여의사는 뜻밖에도 남자가 과거에 자신의 여동생을 납치했던 범인임을 알게 되는데 그의 몸에는 “나를 죽여라” 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를 죽여 복수를 완성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던 여의사는 결국 그를 살려 놓지만 이제 악의 그림자는 서서히 가면을 벗고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 악을 추적하는 세 부류가 있다. 여대생 실종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 중인 “마르쿠스”와 “클레멘스”라는 두 사제, 6개월 전 남편이 실족사한 여형사 "산드라", "카멜레온 시리얼킬러"를 쫓는 추격자이다. 우선 두 사제는 바티칸 교황청의 내사원 소속 사면관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범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의외로 FBI나 인터폴도 아닌 바티칸 도서관인데 사면관들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연구와 관련된 활동과 경찰의 수사에도 참여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신변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조직의 해체가 결정되면서 일체의 활동이 금지되고 순응과 저항의 양자선택에 직면하게 되자 공중 해체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 듯 뻔했다.

 

두 사제는 은밀히 범죄수사를 단독 수행 중이었는데 “산드라”가 남편의 사망에 얽힌 의혹을 풀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사제들과 여형사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보를 보이다 하나의 결승점에 도달하게 된다.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들이 결코 순탄치가 않았다. 누군가가 개별적인 사건들에 두 사제와 “산드라”가 개입해서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었고 마치 십자풀이 낱말퀴즈 풀이를 하는 것 처럼 교묘히 안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멜레온 시리얼 킬러"는 19세기 실재하였던, “Nomen Nescio”, 약칭 “N.N”이라고 불렸던 인간 복사기 정도로 보면 된다. 타인의 외모, 말투, 습관 심지어 병력까지 그래도 위조해서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납치 살인 등 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실화에 근거해 탄생했기에 실체를 밝혀낸단 것이 두렵게 만드는 섬뜩한 존재이다. 언제라도 타인으로 변신할 수 있는 그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추격자의 이야기까지 세 명의 이야기가 씨줄이 날줄 엮이듯 진행되면서 숨 돌릴 틈 없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용암처럼 들끓어 부글부글 폭발할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악은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진실이 있다. 범인이 풀어 놓은 수수께끼 풀이에 골몰하다 보면 난관에 봉착한 사건으로 인해 범인은 실제보다 더 멀리 달아나있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악의 심연에 돋보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악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둠에 더 깊이 발을 들여야 되고 악을 이해하려면 자신이 악이 되어야만 하는 위험이 도사린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정체성은 지워지고 악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분노를 자극해 복수를 유도당하는 결과야말로 악이 진정으로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이자 달콤한 유혹이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억눌러 진정시키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내면적 갈등은 생생하게 전달되어 독자들을 고통스럽게 이끈다. 그리고 거대한 혼돈 그 자체이다. 그런데 그러한 느낌들을 실감나게 그려낸 이번 작품에서 어떤 유사한 연계점을 연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얼핏 <다빈치코드>에게 신세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검은 선>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악의 기원과 마주하고 있다. 마주치더라도 스스로 검은 피에 물들지 않도록 대오각성하기를, 그리고 악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언제나 매혹적이지만 섬뜩하다는 교훈을 남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만의 방식이 녹아 있다. 그래서 닮은 것 같지만 여타 스릴러들의 전형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도나토 카리시”의 스토리텔링은 말로는 설명하긴 힘들고 읽어보면 수긍하게 되는 차별화된 개성과 저력이 있어 흡족하게 된다. 그렇다면 곧 정식 출간되겠지만 성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전작의 유명세를 등에 업지 않더라도 이번 신작에는 자신감이 강하게 느껴지니까.  스릴러 팬들이라면 당연한 선택일 것이고.

 

아주리 스릴러의 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