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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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기록은 있는 그대로를 공부하면 단순히 지식이 되지만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하면 창작이 되고 문학이 된다이쯤해서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논픽션이 되는지 경계가 아슬아슬해지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허무맹랑함에 귀 기울이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순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으리라 믿었건만 익숙함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사용할 줄 알았고 그것을 발판삼아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데 어떤 흔들림에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분명히 시작은 작위적이었다. 핀란드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던 비행기는 도착까지 8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조선시대 인물 "정여립"에 대한 영화 제작을 준비하던 27살 청년 동현은 우연히 자신이 올해 433살이며 정여립의 외손녀라고 주장하는 여인 홍도를 만나게 된다. 좌석은 달랐지만 동현의 스크랩에서 외조부의 존함을 발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 물론 동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했고 홍도의 이야기는 순전히 지어낸,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4백년 이상을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며, 이렇게 늙지도 않고 꽃다운 젊음을 유지하겠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남자는 여인의 미모에 약한 법, 우선 그녀는 예뻤다. 그리고 4차원적인 매력에 반해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동행이 되어 그녀가 살아온 4백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면 그녀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겠지,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는 점차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홍도의 말에 따르면 외할아버지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여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다가 조선 역사상 가장 불온한 역도로 몰려 처형당하였고 아버지 이진길도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른 바 기축옥사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홍도의 재능을 높이 산 정여립이 붙여준 그녀의 이름은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의 자에서 딴 것이라 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홍도는 백년해로를 약속한 자치기를 오라버니로 부르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역사적 사건들은 남녀를 갈라놓는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자치기는 병졸로 끌려가고 홍도는 철천지원수인 "선조"의 딸 정주옹주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이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홍도는 자신을 옹주로 칭하고 정주를 궁노라 하며 거짓말로 둘러 댄다. 그리고 일본 장수 우키다 히데이에의 신임을 받아 수년을 그의 수하로 일하다 고국인 조선으로 극적 귀환하게 되었다가 다시 오라버니를 만나지만 이번에는 영원한 이별을 한다. 이때 그녀는 한 노파의 영험한 주문에 의하여 그 때부터 늙지도 죽지는 않은 불로불사의 육신이 되는데 이 조화는 축복이 아니라 죽지 못해 연명해야하는 업보처럼 그녀를 짓누른다. 다시 세월이 흘러서 죽었던 아버지가 환생하지만 천주박해로 다시 아버지가 순교하게 되는 슬픔을 겪으면서 그녀가 사랑했던 이들은 아무도 그녀 곁을 지켜주는 이가 없었으니 이 얼마나 외롭고 애통했던가.  그래도 하늘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인연이라는 선물을 주신다. 죽었던 자치기오라버니가 네덜란드 의사로 환생하여 재상봉을 한 것. 두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흐름 앞에서는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 생과 사를 번복하는 일은 말이다. 

 

 

 

홍도4백여 년이란 삶 속에서 애끓는 사랑과 눈물의 이별은 때론 기쁨이었다가 절망이라는 무게를 낳았으며 앞서 언급한 기축옥사, 임진왜란, 천주박해 같은 역사속의 중요사건들과 얽히면서 파란만장한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국사 시간 속에서나 들어봤던 정여립은 반역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로 ‘동국지리지의 저자 한백겸은 실학의 선구자중 한 사람으로, 이진길 정여립과 뜻을 함께 했다가 장살당한 문신으로 소개되면서 역사라는 큰 틀에서 외면 받고 잊혀졌던 아웃사이더들을 오늘에 와서 부각시켜 재조명하게 만든 그 설정이야말로 죽어버린 역사의 살들에 숨결을 생생하게 불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천일야화같은 홍도의 삶에 울고 웃으며 애절하다가도 진중한 무게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빨려들게 할 만한 깊은 아름다움이 있다. 수백 년을 사는 동안 겪었던 풍파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기개와 호탕하고 활달한 기지로 헤쳐 나가기 때문인지 그 강렬한 흡입력에 읽다보면 완벽하게 제압당한 느낌이 든다. 밧줄로 꽁꽁 묶여버린 것 같이 에워싸면 결말에 도달할 때까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단단하고 화려했다. 정말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데 절절한 호소력에 맘을 추슬러야만 했다. 캐릭터의 매력에다 역사를 다른 각도로 재해석해 장악하는 능력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장대한 힘이자 진정성으로 뜨겁고 감동적이다. 결국 마지막은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고 그 점 때문에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감성 돋는 이야기라서 나는 눈물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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