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1 - 보이지 않는 적,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 그리고 또 다른 사랑....

 

전작 <트와일라잇>에서 10대의 청춘과 방황을 뱀파이어라는 상상력으로 그려내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낸 스테파니 메이어가 이번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SF 로맨스 <호스트>를 내놓았다. 신작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재기발랄한 판타지 속에서 깊고 묵직하게 전달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현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듦으로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고 보여진다. 이제 뱀파이어가 아닌 또 다른 영혼의 이야기가 시작되려한다. 

 

특정 시점을 추정할 수없는 어느 가까운 미래, 살아있는 생명체의 뇌에 침투해서 정신을 우선 잠식하고 점차 육신까지 장악해버리는 외계종족 "소울(SOUL)"에 의해 지구의 인간들은 그들에게 정복당한다. 얼마남지 않은 최후의 인간 저항군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정보가 필요하게 되고 붙잡혀 온 인간 멜라니의 뇌 속에 종족 중 가장 노련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는 "완다(방랑자)"를 삽입한다. 성공적인 미션으로 비춰졌던 이 수술은 뜻밖에도 멜라니의 영혼이 육체에 남아 완다와 동거하게 되는 기이한 결과를 낳는다. 소멸되었어야할 멜라니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 속에 감금당하고 그녀의 영혼은 완다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연인이 있는 곳으로 이끈다. 완다는 난생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져버려 괴로워하면서도 멜라니의 옛 연인과 피할 수없는, 치명적인 로맨스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또 다른 로맨스가 끼어들면서 사각관계로 진행되는데....

 

 

완다 같은 소울들은 단 한 번뿐인 삶이 아니라 여러번의 삶을 살 수 있고 자신들이 기생하게 되는 숙주인 "호스트"를 떠나 다른 호스트로 옮겨갈때마다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또 다른 호스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다가 그 곳에서 정착하여 죽게되면 그 순간에는 영원불멸과 작별을 고하게 되는 기구하면서도 신비한 여정을 걷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계속 옮겨 다닐 수 있다하여 끝없는 욕심만 추구해서는 안되기에 죽음의 순간은 말로 표현못할 만큼의 절절한 소망을 무쇠 녹이듯 강하다는 것을 완다는 안다. 이 가슴아픈 사랑이 멜라니를 위해서만 살아남을 것이고 완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는 우울함 앞에서 운명은 그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은 쓸쓸하다. 순간 눈물이 난다.

 

그렇다면 한 종족의 몸에서 다른 종족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완다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비록 멜라니의 육체를 통해 자신을 해하려한 인간에 대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물리적인 저항을 행한 것에 두려움과 후회를 느끼는 완다의 불안한 심정은 이 모든 것이 우리네 인간들의 어두운 이기심의 발로라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인간의 몸을 지녔지만 인간취급을 못받고 신체적인 접촉에 대한 반응도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불합리한 정당성에 반해 정말 바보 같고 쉽게 감정에 치우치는 보잘 것 없는 생명일 뿐인 인간이야말로 타인을 기만하고 불리하면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할 존재일뿐이라는 반론을 되새겨 보면 가엾은 완다도 인간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의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지구라는 행성에 던져져 자신의 종족과도 동떨어져 살고 있지만 인간의 사랑에 동화되는 완다의 심리적 변화와 순응은 인간이 사랑이 변덕스럽고 미묘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 만큼 아프기도 하고 이룰 수 없기도 하다. 그러한 완다의 투쟁과 인간으로 체험하여 느끼는 감정 즉, 희생과 사랑은 숭고하기에 이기적인 인간들마저 끝내 감화시키고마는 동화같은 마력이 살아 숨쉰다. 그러는 동안 맘은 점점 온도가 올라간다. 그런데도 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지하동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단순히 로맨스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군상의 갈등과 대립이 화합으로 봉합되는 과정들로 실감나면서도 재밌지만 영화 예고편과 비교해서는 외계종족 소울이 보낸 수색자가 벌이는 액션신같은 시각적인 쾌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에서는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을 듯 싶다. 그렇다면 원작이 영화(비록 관람도 않고 추측컨대)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강점이라면 섬세하면서 애틋한 심리묘사의 감성적 파장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영상으로 옮겨담지 못할 아날로그적이면서 순수하고 깊은 울림을 대신할 그 무엇은 없지만 한 편으로는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로맨스와 SF액션의 갈림길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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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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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참 영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히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식의 이분법으로 이 부부의 관계를 정리하기 보다는 두 사람 모두에게 페널티를 제시함으로서 어느 누구도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온도차가 달라지도록 교묘히 안배하여 논쟁이라는 뜨거운 불씨가 계속 살아 종국에는 활활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존리뷰가 8천개가 넘으면서 이 작품이 이슈화되는 일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결혼 5주년을 맞아 갑자기 사라진 아내 에이미. 어린 시절에 그녀를 주인공 모델로 한 동화책이 나올 정도로 인기와 지성, 미모, 재력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않던 그녀는 모두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여자였고, 그녀의 남편 닉은 다정한 미소와 자상하고 젠틀한 매력남으로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런데 돌연 사라진 그녀를 찾아 닉이 동분서주하는 동안 경찰이 찾아낸 정황과 단서들은 모두 닉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누명을 벗고자하는 닉의 바람과는 달리 시시각각 불리한 상황으로 옥죄어오는 아내 살인범이라는 의심과 오명 앞에서 그제서야 그는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매년 결혼 기념일 마다 에이미가 이벤트처럼 벌이던 보물찾기 게임은 한때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증표였지만 이제는 그와 그녀의 결혼생활에 놓인 권태기와 더 나아가 관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풀어내야할 사명으로 변질된다. 사실 두 사람은 모두 페널티를 안고 있다고 사전에 언급했듯 일상에서 대부분의 부부들이 풀지못해 숙제처럼 쌓여가는 갈등과 문제점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남편인 닉은 신혼초까지는 해도 달도 따줄 것 같던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였지만 작금에 와서는 실직상태에 놓이면서 경제적 악화에 따른 불만이 커지면서 아내에게 냉담한 남자가 되버렸다.  

 

아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쌓이면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어린 여제자와 불륜에 빠져있는데 어머니에게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일정부분은 은연중에 닮아가는 유전적 필연을 거친다. 아내 에이미는 흔히 말하는 알파걸이지만 어릴적 그녀를 떠받들게 한 '어메이징 에이미 신드롬' 현상의 독에 빠진 그녀는 자신에게 여신적 지위를 부여해서 불종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징벌하도록 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한다.

 

역시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여자. 그동안 부부는 에이미가 자신의 본성을 억압한 채 남편 닉을 위한 맞춤형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받고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고자 하는 그녀만의 부부 관계 재 정립을 위한 시도때문에 평온한 일상이 마침내 서스펜스로 촉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닉과 에이미의 시점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는 밀도높은 갈등과 순간순간의 위기상황들이 결말에 대한 예측을 불허하면서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할 정도의 긴박감 때문에 한시도 맘을 놓치 못했다.

 

닉이 처한 상황은 같은 남자로서 잘못에 대한 비판은 하면서도 그녀가 무의식중에 형성한 억압과 속박에 대한 반발로 인한 일탈에는 어느 정도의 공감을 했다. 에이미의 심리는 닉의 잘못된 처신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는 역시 공감하지만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특유의 사악한 요인들때문에 섬뜩한 한기를 자주 느껴야한다. 그러한 몇가지를 배제하고 주변상황들을 둘러보자면 닉을 아내 살인범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황색언론과 페미니즘의 무시무시한 위선적 광기 앞에서는 무수한 반발심과 혐오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히 이 책에서 페미니즘이 올바른 공정성을 갖지 못하면 남성혐오증만 부추기는 편협된 마녀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나름 균형잡힌 작가의 시각은 여느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신선한 생각인 것 같다. 그렇기에 닉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자 도움을 주고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여동생 고와 보니 경관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여성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니까....

 

결국에는 말이다. 닉이 최후에 행한 선택은 부부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말고 내가 스스로 배우자에게 베푼다는 이타심을 가지라는 교훈을 대신하는 행동일 것이다. 또한 남자는 가장으로써 부양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결혼의 행복과 만족이라는 척도에 관계없이 어떻게해서든 앞만 보고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숙명이라는 점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그런다고 백점짜리 남편이나 백점짜리 아버지 소릴 듣는 것은 아니겠지만 체념하고 살 닉의 앞날을 상상하면 맘이 서글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이건 마치 <빅 픽처>에서 벤이 이루지못할 꿈을 택했다가 현실이라는 가정에 안주해버리는 마지막 선택과 끔찍하리만치 유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 번 정도는 지금 당신의 침대 옆에서 누워자고 있는 배우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과연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사람과 한 침대를 쓰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알 수없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배우자도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결코 남 일 같지 않고 2012년에 미국에서 가장 히트를 쳤다는 이 작품을 뛰어넘는 대박작품이 <다크 플레이스>라고? 진정 믿어도 될까? 그렇다면 길리언 플린은 한계를 모르는 작가라는 말이 된다. 지금이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작품으로 우리들을 더 놀라게 할 비장의 카드를 남겨둔게 사실이라면 어서 그 패를 꺼내보고 싶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건 잠시 아껴두었다가 확인사살할 때 다시 써먹어보자.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제껏 읽었던 여성 스릴러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역대급이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다. 길리언 플린은 정말 기대되고 주목할만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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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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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혁곤 작가가 6년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전작 에 이어 이니셜 B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나름 의미심장한 면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어떠한 선입견없이 읽고자 했지만 신작소개에서 전작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평가들때문에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다소 떨어지면서도 근래 한국 장르소설들의 부흥을 염원하듯 부쩍 접할 기회가 많이 제공되고 있는 것도 주목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밀리언셀러 클럽이 있구요. 일말의 불안감을 의식하며 읽었던 이 책은 기대를 넘어선 선방과 더불어 한계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한국형 웰메이드 스릴러 소설으로 탄생할 가능성은 어디까지 근접했는지 현 주소를 확인할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모텔에서 여자를 살해한 누명을 쓴 채 도주한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 그의 뒤를 좇아 특종을 낚고자 하는 신참 여기자 여에스더, 청부살인을 의뢰받지만 오히려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 킬러 미호, 그리고 킬러가 연관된 연쇄살인의 전모를 추적하는 고참기자 윤, 그 와중에서 정재계의 실세들이 차례대로 살해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네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교차되어 추격전과 액션, 서스펜스가 시종 스피디하게 전개됩니다. 특이하게도 이 네 사람은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이 아닌 소수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 메세지를 대중적 재미와 함께 버무립니다. 결코 가볍지만않은 진중함도 기하고 있어 중심축의 균형을 비교적 잘 지탱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은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은행에서도 인정받으며 전도유망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재였지만 한순간의 누명으로 인해 정상에서 벼랑으로 내몰립니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멸시와 차별이라는 폐쇄적 정체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철저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남습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마냥 호흠질환을 유발하는 주범이 되어 마스크없이 대화조차 싫은 민족공동체의 수성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앵글로색슨족에 끔뻑 죽다가도 인종적, 국적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중국에서 박해받고 우리에게는 눈치를 받아야하는 비루한 현실 앞에서 한국인들의 위선적민 민족성을 비판하기에 불편함에 외면하다가 끝내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민주일보의 두 기자 여에스더와 윤은 작가가 실제 기자로서 경험했던 언론의 보도관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스릴러적 요소와는 별개로 현장의 생생함을 견학하듯 만끽할 수 있도록 노련한 배치와 구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자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낙종과 특종을 구분짓는 순간적 캐치, 정보제공을 두고 밀당을 하는 경찰과 기자라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공정보도는 개나 줘버리라며 황색보도에 우선하고 파벌싸움에 밥그릇 챙기는 일에 사활 건 언론인의 삐뚤어진 관행 등 시종일관 진실은 외면한 채 사리사욕에 발을 담근 언론의 음지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체험에서 우러난 진정한 직업관을 다루고 있어 리얼리티가 빛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인물인 킬러 미호는 남자로 태어났지먼 성 정체성에 혼란을 껵으면서 여자가 되고 싶은 상적 소수자에 해당됩니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입양되지만 짧은 행복도 잠시, 손에 피를 묻혀야했던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 청부업을 접고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 다짐하지요. 아픔이 묻어있는 과거는 통속적이고 신파적이긴 하지만 찰나의 안위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훈풍이 불어와 얼었던 맘을 녹여주고픈 바람이 생길 정도로 잔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주류로 살아 남지 못한 네 사람을 B파일이라는 잉여인간 취급을 하는 것에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은 고기처럼 등급으로 매겨지는 거대자본의 횡포 앞에서 슬프고 우울하죠.

 

그렇게 네 사람은 각자의 루트에서 평행선을 달리다가 원더랜드라는 초고층 빌딩의 개관식에 모여 음모의 실체를 발히고자 합니다. 근원에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빌딩에서의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의 박진감이 넘쳐 흐르지만 정작 머리는 불확실한 미스터리적 해결방식에 급격히 냉각되는 처지에 빠져버립니다. 리영민의 누명에 얽힌 원한의 실체는 비록 풀어내지마 연쇄살인의 희생자에 대한 동기와 배후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피한 채, 안개 속 처럼 모호한 처리로 마감해버립니다. 지금까지 한계마저 뛰어넘을 듯 무시무시한 주행을 하던 스토리가 타이어에 펑크난 것 처럼 허무한 마무리에 공든 탑에 배어있는 정성과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결말인지, 엉킨 실타래를 풀 창의성의 부족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독자의 입장에선 감점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네 사람의 그 후 행보는 인생극장에서의 선택적 기로처럼 무지개와 잿빛이 공존하였기에 이것이 쓰디쓴 인생이 아닐까라고도 곰곰히 생각들기에 평가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그렇게 본다면 급정지때문에 도로에 스키드마크를 진하게 남겼지만 한국적 스릴러의 현실에 후반부 헐리우드적 전개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 속에는 폭발적인 추진력이 있는 소설이기에 한국 스릴러가 또 한 번 일취월장한 반등의 계기를 만든 최혁곤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합니다. 비판보다 격려가 더 필요한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끝맺고 싶은 말은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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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ㅣ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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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릴러물들을 읽다보면 기름기 쫙 빼서 지극히 건조한 하드보일드물을 접하게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수한 은유와 함축적 의미를 담고 해석에 상대한 시간을 들여 읽게 만드는 심리스릴러물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여 증거를 수집하기보다 머리 속에서 가설을 추출해 정황을 추측하고 범인의 심리와 패턴을 분석, 응용하므로서 범죄의 실체에 다가서는 학구파적 엘리트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유형입니다.

 

토니 힐 시리즈, 그리고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정의 내리고 싶네요. 저는 이 데이브 거니 시리즈를 다음 편인 <악녀를 위한 밤>으로 처음 읽고 지금에야 타임슬립하여 데뷔작을 읽었습니다. 후속작과 전작은 어떠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차별화된 변화는 있는걸까요? 영혼을 잠식할 불안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거니는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인 멜러리와 해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숫자를 임의로 생각해서 그 숫자를 한 번 말한 뒤, 받은 봉투를 열어보면 바로 그 숫자가 있을거라고 했다는군요. 장난이려니하며 열어 본 봉투 속에는 진짜 그 숫자가 있었고 이에 경악한 멜러니는 거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궁금해? 궁금하면 오백원말고 수표를 지정된 사서함으로 보내라는 설명과 함께...

 

도대체 그 숫자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이 낯선 이로부터 도착한 전화와 편지들은 멜러리의 신상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기에 해결을 바란 것이죠. 고심 끝에 도움을 주기로 한 거니가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뜻밖에도 멜러니는 자신이 운영 중인 수련원에서 총상과 함께 목에 수차례 찔린 자상을 남긴 모습으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동일한 수법으로 추가 살해한 희생자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살인에 얽힌 동일한 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면서 대결은 게임의 방식을 차용하게 됩니다. 

 

거니는 시작부텀 머그샷에 빠져있네요. 머그잔과 자주 헷갈리는 저로서는 범인들의 측면과 정면을 찍은 사진들에 무슨 예술적 가치가 담겨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거니는 예술적 성취감과 부수입이라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에 빠져있지만 아내 매들린은 강력계 뉴욕 강력계 형사에서 은퇴한 거니가 전원의 안락한 삶 대신 범죄의 잔여물들을 끝내 버리지못하고 집착과 미련을 가지는 것에는 당연히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니는 예전에 이버지가 일에 빠져 가족들과 소원했던 관계를 기억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은 어버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며 닮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미 첫번째 결혼생활에서 무심한 아버지로 일관해 아들을 뺑소니사고로 잃은 전력이 있는데다 재혼에서도 부인과 아들에 대하여 가정적인 모습보다 범죄해결에 관심을 두는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일에는 프로페셔널이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거니는 후속작에서도 변함없지만 껄끄럽고 영혼없는 관계에 삐걱하다가도 결말은 화해의 여지를 담고있는 점은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존 버든은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조금씩 복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멜러리를 살해한 범인이 남긴 발자국이 숲 속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끊기면서 증발한다든지. 세리든 클라인 검사 사무실에서의 대책회의 분위기, 사건 해결 과정에서 겪는 범인과의 대치상황 등은 <악녀를 위한 밤>에서 헥토르가 살인 후 증발된 흔적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놀랄만치 데자뷰 현상을 느끼게한다는 사실은 우연인지 의도적인 선택인지 의문점을 낳는것이지요.

 

또한 과도한 심리묘사를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과도한 행동묘사 내지 상황묘사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표정을 설명할 때 그냥 ~~~~ 했다 하면 될 것을 마치 ~~~ 하는 것 처럼 ~~~~ 했다 라는 동일반복적인 패턴이 집요하리만큼 공식화되어있는 겁니다. 가량 도자기 가게에 황소를 들여놓는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염세적인 개구리의 표정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해서라도 유머스럽게 보이고자하는 강박증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네요. 그렇지만 오히려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이시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녀를 위한 밤>에서 보여준 상상플러스 + 넘겨짚기보다는 가설 자체가 좀 더 현실성이 있었던 점은 장점입니다. 숫자퀴즈에 숨겨진 트릭이 무엇일지 범인의 정체나 범행동기보다 더 궁금했던 제게 밝혀진 진실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단순한 발상에 기인하면 기본이 확인된다는 퀴즈를 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답니다.

 

한 번의 숫자게임은 우연에 운을 걸고, 또 한 번의 숫자게임은 지리적 잇점을 선점한,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넓게 보지 못하고 눈 앞의 허상에 매몰된 편협된 마음이 낳은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데이브 거니 시리즈사 본궤도에 오르기 위한 션결과제가 많겠습니다만 여전히 독툭한 정신세계만큼은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다혈질이기도 하고요. 최향에 대한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임을 잊지 말야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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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종말이 오다 -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3
최경빈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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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여 동안 밀리언셀러클럽에서 한국장르소설들이 꾸준히,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수서평 회원 자격으로 받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외국 장르소설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 기왕이면 한국소설 보다는 외국소설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배어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전정보도 없이 읽게 된 이번 단편집은 “10개월, 종말이 오다”라는 제목의 종말문학 장르인데 좀 더 세분화하면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달고 있네요.

 

신체강탈자문학의 정의랄까, 역사 같은 것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대중화된 장르는 아니겠죠. <옥상으로 가는 길>이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4>같이 먼저 출간된 작품들은 여전히 척박한 토양 속에서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장르소설의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한 작가들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결과만큼은 대박에 미치지 못한 채 편차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큰 기대 없이 읽은 이번 수상작 모음집은 그야말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박력과 흥분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것들은 진짜였습니다. 당선작 <10개월>을 비롯하여 우수작 5편이 실려 있는데 편차가 크지 않음에 대만족이었습니다. 초속과 종속 차이가 크지 않은, 그야말로 오승환식 돌 직구였던 것입니다.

 

<10개월>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이 남자로 변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바이러스처럼 전 세계적으로 남자 변이 증후군이 퍼지면서 성비의 균형이 점차 무너지고 여자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듭니다. 세상은 당연 일대 혼란이 벌어집니다. 어제까지 여자 친구였던 그녀가 수염에 떡대 좋은 남자로 돌변하고 아내이자 엄마였던 여자는 잠이 들면 남자로 변이된다는 소문에 남편과 아이들이 교대로 밤새 지켜가며 뜬눈으로 지새우려는 사투를 벌입니다. 남자였던 여자와 여자였던 남자는 성적호기심에 뒤바뀐 육체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야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여자의 숫자가 줄어들자 성적충동을 억제 못하는 일단의 남자들이 임산부를 납치해서 겁탈하려는 대목입니다. 임산부는 남자로 변하지 않는 특이현상(?)에 피그미족을 사냥하듯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욕구를 채우려는 것입니다.  

 

이성과 도덕의 마지막 경계가 무너진 말세 그 자체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 적도 드물다 생각하니 충격의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여자들의 수난에, 비록 소설이었지만 남자로서 읽는 동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맘이 들었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는 소수자는 다수의 힘에 눌려 언제나 보호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공격당한다는 역사의 반복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 식 소신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지면 어떠한 불행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전달과 함께 우리가 대처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수작이죠.

 

<베르테르 증상>은 세계최고 수준의 자살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전직 유명 야구선수의 자살이 가져온 충격이 때마침 오버랩 되면서 자살증후군은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펴져나가는 내용입니다. 새삼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고민을 되새겨줍니다. 특히 자살을 유도하는 매개체가 물이라니 닥치면 피해가기 어려운 영겁의 저주가 따로 없습니다. 역시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귀환>의 경우에도 우주 탐사 후, 귀환한 탐사사선이 이미 멸망한 지구의 인류를 탐사한다는 내용인데 기술자들이 장난으로 프로그래밍한대로 자의적 판단대신 입력된 설정대로 탐사를 수행하면서 맞게 되는 기이한 생명체들과의 조우와 임무종료까지... 외국 유명 SF작가들의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보여주는데 무엇인가 뭉클함이 가슴 한켠을 치고 올라오는 순간은 말을 잊게 합니다. 그리고 여운이 남습니다. 작가의 범 우주론적 상상력이 뛰아나서 좋았습니다.

 

<미래도둑>은 <10개월>과 함께 이번 수상작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외계인이라는 전개는 재밌고 독특한 설정이 아니라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죽음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외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곧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됩니다. 즉 인간의 형상으로 바뀌게 되는데, 문제는 아이의 성장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서 단기간 내에 어른으로 자랍니다. 그런데다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엄마 이런 식으로 외모와 기억까지 전부 그대로 복제해버립니다. 진정한 신체복제 = 강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아들이 남편이 되고 딸은 아내가, 동생이 엄마역할을 같이 하는 대 혼돈의 가족동거가 되면서 근친상간이라는 최악의 악수마저 둡니다.

 

이제 원본은 카피본을 죽이려 들고 카피본은 원본을 죽여 먹으려 드는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극은 가족의 근간을 해체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드러내고 말죠. 극중 복제인간 은혜가 “나랑 같이 죽을테냐.”며 진짜 은혜를 집요하게 쫒아오는 순간은 등골이 오싹하면서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공포스러웠습니다. 뒤돌아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후덜덜함이란 진정 압권 그 자체입니다. 밤에는 결코 두 번 다시 해당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쩜 이리도 읽는 이의 심장을 조여들어갈 수 있는지 작가의 진정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향후 주목해야할 국내작가 중 한 명이 아닐까 합니다. 브라보!!!

 

그 밖에 한국근대문학에 신체강탈 소재를 퓨전화시킨 <운수 나쁜 날>이나 담배로 외계인과 대결하는 샐러리맨의 고군분투기 <금연 클럽>, 걸 그룹과 삼촌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 (극중 걸 그룹 ‘지소’는 분명 ‘소시’에 대한 풍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유’를 연상시키는 비유도 있지요.)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고퀄의 진수를 뽐내고 있어 은연중에 국내 장르작가의 필력을 과소평가했던 저를 반성토록 합니다. 이 수상작 모두가 인류의 종말을 테마로 펼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후유증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독성과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초에 만난 대박작으로 손색이 없는 필견의 소설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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