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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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혁곤 작가가 6년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전작 에 이어 이니셜 B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나름 의미심장한 면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어떠한 선입견없이 읽고자 했지만 신작소개에서 전작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평가들때문에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다소 떨어지면서도 근래 한국 장르소설들의 부흥을 염원하듯 부쩍 접할 기회가 많이 제공되고 있는 것도 주목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밀리언셀러 클럽이 있구요. 일말의 불안감을 의식하며 읽었던 이 책은 기대를 넘어선 선방과 더불어 한계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한국형 웰메이드 스릴러 소설으로 탄생할 가능성은 어디까지 근접했는지 현 주소를 확인할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모텔에서 여자를 살해한 누명을 쓴 채 도주한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 그의 뒤를 좇아 특종을 낚고자 하는 신참 여기자 여에스더, 청부살인을 의뢰받지만 오히려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 킬러 미호, 그리고 킬러가 연관된 연쇄살인의 전모를 추적하는 고참기자 윤, 그 와중에서 정재계의 실세들이 차례대로 살해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네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교차되어 추격전과 액션, 서스펜스가 시종 스피디하게 전개됩니다. 특이하게도 이 네 사람은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이 아닌 소수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 메세지를 대중적 재미와 함께 버무립니다. 결코 가볍지만않은 진중함도 기하고 있어 중심축의 균형을 비교적 잘 지탱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은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은행에서도 인정받으며 전도유망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재였지만 한순간의 누명으로 인해 정상에서 벼랑으로 내몰립니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멸시와 차별이라는 폐쇄적 정체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철저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남습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마냥 호흠질환을 유발하는 주범이 되어 마스크없이 대화조차 싫은 민족공동체의 수성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앵글로색슨족에 끔뻑 죽다가도 인종적, 국적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중국에서 박해받고 우리에게는 눈치를 받아야하는 비루한 현실 앞에서 한국인들의 위선적민 민족성을 비판하기에 불편함에 외면하다가 끝내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민주일보의 두 기자 여에스더와 윤은 작가가 실제 기자로서 경험했던 언론의 보도관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스릴러적 요소와는 별개로 현장의 생생함을 견학하듯 만끽할 수 있도록 노련한 배치와 구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자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낙종과 특종을 구분짓는 순간적 캐치, 정보제공을 두고 밀당을 하는 경찰과 기자라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공정보도는 개나 줘버리라며 황색보도에 우선하고 파벌싸움에 밥그릇 챙기는 일에 사활 건 언론인의 삐뚤어진 관행 등 시종일관 진실은 외면한 채 사리사욕에 발을 담근 언론의 음지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체험에서 우러난 진정한 직업관을 다루고 있어 리얼리티가 빛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인물인 킬러 미호는 남자로 태어났지먼 성 정체성에 혼란을 껵으면서 여자가 되고 싶은 상적 소수자에 해당됩니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입양되지만 짧은 행복도 잠시, 손에 피를 묻혀야했던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 청부업을 접고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 다짐하지요. 아픔이 묻어있는 과거는 통속적이고 신파적이긴 하지만 찰나의 안위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훈풍이 불어와 얼었던 맘을 녹여주고픈 바람이 생길 정도로 잔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주류로 살아 남지 못한 네 사람을 B파일이라는 잉여인간 취급을 하는 것에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은 고기처럼 등급으로 매겨지는 거대자본의 횡포 앞에서 슬프고 우울하죠.

 

그렇게 네 사람은 각자의 루트에서 평행선을 달리다가 원더랜드라는 초고층 빌딩의 개관식에 모여 음모의 실체를 발히고자 합니다. 근원에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빌딩에서의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의 박진감이 넘쳐 흐르지만 정작 머리는 불확실한 미스터리적 해결방식에 급격히 냉각되는 처지에 빠져버립니다. 리영민의 누명에 얽힌 원한의 실체는 비록 풀어내지마 연쇄살인의 희생자에 대한 동기와 배후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피한 채, 안개 속 처럼 모호한 처리로 마감해버립니다. 지금까지 한계마저 뛰어넘을 듯 무시무시한 주행을 하던 스토리가 타이어에 펑크난 것 처럼 허무한 마무리에 공든 탑에 배어있는 정성과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결말인지, 엉킨 실타래를 풀 창의성의 부족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독자의 입장에선 감점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네 사람의 그 후 행보는 인생극장에서의 선택적 기로처럼 무지개와 잿빛이 공존하였기에 이것이 쓰디쓴 인생이 아닐까라고도 곰곰히 생각들기에 평가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그렇게 본다면 급정지때문에 도로에 스키드마크를 진하게 남겼지만 한국적 스릴러의 현실에 후반부 헐리우드적 전개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 속에는 폭발적인 추진력이 있는 소설이기에 한국 스릴러가 또 한 번 일취월장한 반등의 계기를 만든 최혁곤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합니다. 비판보다 격려가 더 필요한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끝맺고 싶은 말은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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