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콜드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8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첫인상은 중요하다. 자꾸 만나보면 불퉁한 인상과는 달리 진국인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첫인상은 길게 간다. 스릴러에서도 그러하다. 게다가 시리즈물이라면 데뷔작에서 어떠한 인상을 받느냐에 따라 그 시리즈를 계속 탐독할 것이냐 첫 만남이 마지막이 될 것이냐 로 판가름 나게 된다. 형사 제인 리졸리 &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굉장히 불편한 인상을 남겼었다. 독신여성만을 골라 배를 가르고 자궁을 꺼내는 살인마 이야기 "외과의사"는 시종일관 욕구불만에 가득 찬 컴플렉스 덩어리 형사 제인 리졸리의 감정적 과잉에 지나치게 할애하는 바람에 허술한 스토리로 폭망했던 졸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너무 실망이 컸던 나머지 이 시리즈는 두 번 다시 읽을 일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어떤 계기인지 다시 재회했다. 1편에서 무려 6편을 건너뛴 8편으로 읽게 되었는데 공백기가 컸던 탓인지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인 리졸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 것 같더니 짚신도 제 이 있다고 결혼해서 딸도 두고 있는데 거친 야생마처럼 다루기 힘든 존재였던 제인 리졸리는 모성애의 영향인지 상당히 부드럽고 나긋나긋(?)해진 것 같다. 세상에 1편에서 봤던 그 시한폭탄이 이렇게 변하다니. 결혼소식은 들었다만 가정을 꾸린 일이 독신여성에게 가져다 준 변화는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마법 같은 현실일세. 

 

 

그래도 이번 8편의 주인공은 단연 마우라 아일스이다. 제인 리졸리와 투톱을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는 순전히 마우라 아일스의 개인적 고난과 위기상황들로 채워진다. 제인 리졸리는 원군일 뿐. 그러고 보니 박사님 첨 뵙겠습니다. 1편에 안 나오셔서 이번이 첫 등장이로군요. 후후. 자! 줄거리는 이러하다. 보스턴 경찰국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 박사는 의학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와이오밍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녀는 오랜만에 대학동창인 더그 캄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일행들과 함께 스키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실 계획에도 없는 일정이었지만 그렇게 동참하기로 결심한데는 남자친구인 대니얼 브로피와의 소원해진 관계에서 기인한 기분전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자친구가 목회자라니 그것 참 범상치 않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사정을 알 리 없으니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지금은 그 점이 중요하지 않으니 일단 패스.

 

 

추억 가득한 즐거운 여행이 될 뻔 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돌발 변수 발생!!!  엄청난 폭설과 눈보라 속에서 그들의 차는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면서 도보로 산을 걸어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마을은 어딘가 이상하다. 인적도 끊기고 분명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은 있는데... 개의 사체, 피 웅덩이, 집집마다 걸려 있는 한 남자의 초상화까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의심스럽지만 악천후 속에 중상자가 발생하고 구조는 기대하기 어려운 고립된 마을. 한편 보스턴 경찰국의 제인 리졸리 형사는 대니얼 브로피로부터 마우라 아일스가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갔다가 연락두절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남편과 함께 마우라 아일스를 찾아 그 곳으로 떠난다. 

 

 

분명 내일이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보지만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은 공포스럽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누군가는 죽고, 또는 실종되고, 또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그 무언가의 실체에 시시각각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냉기 속에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또 일단의 무리들이 필사적으로 추적해온다. 이들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살려두어선 안 된다고. 

 

그리고 인적이 끊겼던 마을에 숨겨진 미스터리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가히 경악할 만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인간은 때때로 이성보다 광기가 우선시 될 때가 있고 그 광기가 집단을 지배하면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명한 판단 대신 통제와 복종이라는 결정에 아무 이의 없이 동참하게 된다. 그 것을 조종하는 자가 종교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면 그는 선지가가 되고 신도들은 불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다. 설사 자신의 가족이 희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서. 여기서 인간성은 말살되고 눈 뜬 장님들은 인륜을 파괴하고 비극은 시작된다는 것에서 인간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무지몽매한 존재들인지 섬뜩함에 치를 떨게 한다. 인간은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추악한 욕망에는 또 다른 추악함이 구렁이처럼 도사리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로 몰아가는 극도의 스릴과 공포는 한 꺼풀씩 벗길 때 마다 오싹한 전율을 선사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논스톱으로 달리면서 이야기는 폭주하고 순간의 선택이 우리들을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란 아이러니가 충격적이고 소름끼친다. 마우라 아일스는 그래서 수시로 절망하고 후회한다. 그 때 그런 선택만 안 했으면 지금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을 텐데 라고 말이다. 결코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내일을 우리는 준비한다. 기대가 공포로 변하는 순간, 우리네 인생이 악몽으로 변하면서 아수라장이 되는 건 잠깐이란 사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희망이 될 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옵션이라는 삶이다. 결말은 훈훈했다. 

 

 

그렇다면 요즘같이 날이 푹푹 찔 것 같은 밤에 잠도 안 오고 TV 를 켜도 재미를 못 느낀다면 가차 없이 이 책을 펼쳐들어보라. 한 겨울의 냉기가 당신의 무더위를 정면 강타할 것이니 이만한 스릴러라면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짜릿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 있게 강추한다. 물론 숨 막히는 속도감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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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누가 뭐래도 2012년을 가장 빛낸 일본 미스터리 작가는 '누마타 마호카루'였다. 적어도 내게는 스스로 이의제기를 묵살하게 만들 정도의 그 파급력은 굉장했던,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으로 시작하여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게 지나친 적이 없으니 통과의례치고는 떠들썩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탑을 쌓다 마지막에 터뜨린 결정적 한 방에 나는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었고 그 소설을 2012년 최고의 작품으로 자체 선정하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랬던 '누마타 마호카루'가 이번에는 "고양이 울음"이라는 작품으로 내게 다시 귀환을 알려왔다. 20년 동안 사람 곁에서 사람을 지키며 사람을 사랑했던 아주 특별한 고양이 '몽'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로 이번에도 나를 제대로 흔들어버린다. 그녀는 강하고 그럴 때 마다 나는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한없이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것 같은 심정이 든다. 더군다나 미스터리가 아닌 일반소설로도 말이다.

 

 

사실 주인공 '몽'이는 비주얼적으로 그리 어여쁜 고양이라는 볼 수 없다. 얼굴에 기미처럼 검은 점이 덕지덕지 흩어져 있고 꼬리는 3분의 2 지점에서 뭉툭하게 잘려나간 것 같은 모양새하며, 오렌지 빛깔의 털을 가진 기묘한 고양이. 그래서 이 녀석을 보는 사람들마다 순간 멈칫하면서 주춤 주춤 뒤로 물러나 길을 돌아가게끔 만들지만 정작 외모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한 번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다.  

 

 

 

사실 '몽'이가 목수인 '도지'의 집에 눌러 앉게 살게 된 배경은 순탄하지 않았다. '도지'와 아내 '노부에'는 아이를 유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슬픈 공허함에 힘들어하던 부부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키울만한 마음의 공간은 없다. 오히려 '노부에'는 집 앞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한 번 키워볼까.'가 아니라 끈질기게 내다버리면서 숫제 죽어버렸으면 한다. 슈퍼마켓에서 남자아이와 어머니의 다정한 한때를 지켜보면 숨이 막혀서 자리를 뜨고 싶고 혈육이라는 은밀한 의미들이 고스란히 숨겨지고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할 정도이니. 그러니까 새끼 고양의 야옹야옹하고 끊임없이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다. 

 

 

 

숲 속에 버리면 까마귀밥이 될 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버리고 돌아오면 나중에 온 몸에 생채기를 안은 채 끈질기게 '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에는 새끼 고양이를 키우기로 하는 '도지' 부부의 결정까지가 소설의 1부격에 해당된다. 1부가 '몽'이의 유년기였다면 2부는 청년기. '유키오'라는 소년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이 아이는 엄마는 없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부친이라기보다는 철없는 형 같은 존재로서 일과 양육 사이에서 지치고 힘들어 '유키오'를 사실상 방임한다. 아버지의 단절된 부자관계에서 비롯된 염증은 세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사랑받는 모든 존재들에 살의를 느끼며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소년.

 

 

 

자신보다 어린 남자아이들을 일부러 괴롭히는가 하면 심지어 흉기로 찌르고 달아나는 등 가학적 행위에 즐거움을 발견하는 위험천만한 녀석인데 어느 날 우연히 키우게 된 새끼 고양이가 갑자기 죽자 그제야 '절망'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다. 평생 매듭짓지 못할 일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 고양이의 죽음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몽'이는 잠깐 등장하고 2부의 막이 내린다.
 
 
마지막 3부는 노년이 된 '도지'와 '몽'이의 이야기이다. '도지'는 예순 중반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아내와는 사별했고 일주일전에는 형의 장례식에 다녀오느라 한동안 집을 비운다. 일주일 만에 다시 '도지'를 만나게 된 '몽'이의 그때 그 반응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주인의 환영을 본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두 번 다시 주인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느꼈다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몽'이. 녀석이 세상이 천지개벽할 것만 같은 망연자실함에 주인을 다시 만나 넋을 놓지만 곧 겸연쩍어하는 모습에서 '도지'는 '몽'이를 안고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느낀다. 서로에게 동화되고 경계없이 하나가 되어 한 흐름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이란 죽은 아내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각이다. 왠지 안심되고 의지가 되는 순간, 반려동물의 관계 그 이상이다.

 

 

어쩌면 '몽'이는 아이가 없던 '도지' 부부에게 하늘이 허락한 입양일 것이다. 아이를 떠나보낸 부부와 엄마에게 버림받은 '몽'이 모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몽'이가 살기 위해 끊임없는 발버둥 쳤던 눈물겨운 시간들은 얼어붙은 '노부에'의 맘을 열고 제2의 인생설계를 시작하게 했다. 아이의 빈자리라는 상실감을 최선을 다해 메꿔준 '몽'이는 눈부신 존재였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모든 생물은 생로병사의 섭리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세월은 '노부에'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고 '도지'와 '몽'이도 많이 늙고 쇠약해진다. 단 둘이 보낸 시간보다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고양이 '몽'은 먼저 떠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늘그막에 '몽'이에게 많이 정주며 의지했던 '도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다. 정처 없이 춥고 슬프고 피곤하며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는 이 심정,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예행연습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도 '도지'가 혼자가 될 준비를 차분히 기다렸던 의젓한 '몽'이에게서 타자의 죽음이 아닌 내 스스로의 죽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스리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길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문자답을 구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노부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더 애절한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유산한 애끓는 모성애로 아들 같았던 '몽'이와의 일생은 어쩌면 한 편의 신파극이 될 위험도 분명 보인다. 하지만 '누마타 마호카루'는 그런 것들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화자를 '도지'로 선택했다. 그래서 반려동물과의 이별 이야기는 하마터면 익숙한 스토리가 떠오를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적중은 거부하진 않되, 차분하고 담담하게 시간의 흐름을 기록해 나간다. 결코 눈물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역자의 경고(?)대로 눈물은 흐른다.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누마타 마호카루'에게 '또 다시 당했구나.'라는 자조 섞인 헛웃음마저 나오나 보다. 어떤 의미에선 '이번에도 통했구나.'

 

 

고양이의 짧은 일생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익숙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의 감정선들이 유린당하면서 원상복구 되지도 않은 채, 모든 형태의 다양한 감정들이 빗장을 풀고 탈출을 시도한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이다. 2012년에 '누마타 마호카루'가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면 그 빛은 영롱함을 잃지 않고 또 다시 나를 격정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는다.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말미에 서평가 '도요자키 유미'도 말했듯이 '누마타 마호카루'는 강하다. 정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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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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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돛단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바다에서 세월을 허비하는 중이었다. 처음 사십일까지는 한 소년이 같이 있었지만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운수가 밑바닥난 지경이라며 소년을 다른 배에 타게 했다. 그러나 소년은 노인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매일 노인을 돌보러 찾아와서 바다 이야기 외에 메이저리거들을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겼다. 두 사람은 이미 연령을 초월한 우정으로 돈독해진 사이라 마치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토토와 알프레드의 관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마초적 기질이 있어 거친 모험 같은 남성적 활동을 무척 사랑했기에 1940년대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거주하면서 바다낚시를 즐겨했는데 그러한 개인적인 체험들이 바탕이 되어 나온 소설이 "노인과 바다"이다. 그는 전작의 혹평을 만회하고자 내 놓았던 이 소설로 퓰리처상 수상에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부여 받았는데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더불어 어네스트 해밍웨이의 소설 중 대중적 지지도를 가장 크게 이끌어낸 이 소설은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대단한 이야기 거리가 들어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낚시미끼와 도구, 낚시 배, 고기를 낚는 과정까지 바다낚시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는데 84일 동안 전혀 손맛을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먼 바다에 나가 큰 청새치 한 마리를 낚는데 성공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들의 공격을 받아 잡은 고기는 뼈대만 남는다는 이야기에 전혀 실망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청새치와의 사투, 상어 떼와의 사투 말고는 인물 간 갈등이나 특별히 눈여겨 봐야할 사건의 맥이 사실상 없는 단순한 줄거리지만 해밍웨이 특유의 작품관이랄까, 기법 또는 사람과 인생을 관조하는 나즈막한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기에 다르다. 노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와 사실 위주의 상황 묘사, 그리고 객관적 심리 묘사 등만으로 오로지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한다, 여기에 일체의 추상적 시각 없이 짧은 독백을 펼쳐 보임으로써 바다라는 푸르른 색감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게끔 할 정도이다.

 

 

이렇듯 '하드보일드'로 칭해지는 어네스트 해밍웨이의 특징적인 스타일은 신문사의 해외특파원으로 일했던 전력에서 알 수 있듯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신문기사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행위는 단순 어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배경에 맞서 생과 사의 본질적인 의의를 수립하며, 고난을 무릅쓰고 불굴의 투쟁으로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태양 같은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른 어부들이 바다를 남성에 비유할 때 그만은 반대로 여성에 비유하는 대목에서도 노인이 상징하는 기개와 이상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숱한 허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또 다시 도전한다는 각오로 임하기에 우직하지만 뭉클해진다.

 

 

또한 노인은 자연에 대해 오만한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영웅적 이상을 드높였으나 자아도취도 자기비하에도 빠지지 않은 채 절망에 맞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마지막까지 전력투구를 해낸다. 성취 없는 결과 앞에서도 패배를 아쉬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만 결과에 승복하고 자연에 감화할 줄 알며 자연을 포획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지 않고 공존의 가치를 인식할 줄 아는 현명함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경륜이 느껴지는 포근함과 넉넉함에 마음이 물처럼 젖어들어 간다.

 

 

이처럼 만물에 대한 원숙한 세계관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만이 보여주는 장대하고 엄숙한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감동, 그 영원불멸함 속에서 각자의 인식 또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잊혀질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은 오두막에서 사자 꿈을 꾸고 있구나. 용맹하고 위풍당당한 기억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의미만큼은 공감되어야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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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탐하다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3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4
마이클 코리타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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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스릴러계의 젊은 피 마이클 코리타가 링컨 페리 시리즈를 탈피하여 처음으로 내놓은 스탠드 얼론이 바로 이 "밤을  탐하다(Envy The Night)"라고 한다. "오늘 밤 안녕을"을 필두로 "숨은 강"까지 세번째로 만나게 되는 그의 이번 소설은 그야말로 스릴러의 원초적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원동력이 분노이고 그 분노의 바탕에는 복수라는 두 글자가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이름의 응징이 아닌, 사적인 동기에 의한 복수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향한 회자정리의 입장에서 번뜩이며 오랜만에 권선징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만난다.

  

 

아버지 프랭크 템플2세는 연방보안관인 동시에 살인 청부업자였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두 얼굴을 가졌던 아버지였지만 아들에게만은 존경받아 마땅할 버팀목이었고 험난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똑바로 세상을 직시할 수 있는 기술과 생존방식을 가르쳐주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동료였던 데빈 매트슨의 배신으로 절망하게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이제 세상은 아들 프랭크 템플3세를 살인자의 아들로 부르고 있다. 아버지는 비록 세상에 없지만 정신적 유대를 이어나가고 있기에 주니어가 아닌 3세라는 이름으로 남고 싶었던 것. 이 순간 7년이란 세월이 지나 아버지의 복수를 잊지 않고 있던 원수가 돌아온다는 첩보가  막 입수된다.  이제 직접 그를 쫓아 복수의 총구를 들이대어 이 악연의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템플 3세.

 

 

하지만 초장부터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플로리다에서 온 차량번호만 보고 순간 데빈 매트슨인 줄 알고 템플3세는 냅다 뒤에서 차로 들이 박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남자였고 이 남자는 어딘가 수상하다. 보험처리하려 하지도 않고 대충 수습해서 현장을 벗어나려하니 의혹은 시작되고 이제는 미스터리이다.  이때 두 사람의 차량 수리를 위해 견인차를 불렀더니 나타난 사람이 젊은 아가씨 노라, 그녀는 쓰러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차량 정비소를  힘겹게  중이었고 우연한 사고가 인연을 필연으로 이어지게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한다. 그러면서 정체불명의 그 남자는 차 수리를 맡긴 채 어디론가 떠나고 또 다른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차량정비소에 나타나 사라진 남자의 행방을 묻고 차량에서 소지품을 무단으로 가져가려한다. 그리고 이를 거절하는 노라를 급습하고 위협하는 무리들로 인해 진실과 오해는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 템플3세는 야만을 꺼내들고 대응한다.

 

 

흔히 가족이 스릴러 장르에서 시작과 끝을 매듭짓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한다면 주인공 템플3세와 노라 모두 아버지의 과거라는 바다에서 아직도 헤엄치고 있으며 아직도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버지로부터 강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침을 받으며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았던 템플3세는 세간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복수만 꿈꾸며 살았다.  데빈 매트슨에 대한 어두운 분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세세한 배경적 설명 없이 함축적인 상황 설명에만 그쳐 템플3세가 감내했어야 할 심리적 지향점은 일정부분 이해했으나 진정한 분노의 깊은 우물은 사실 공감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라는 단순명료한 과제 앞에서 기승전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오로지 복수로 나아가는 출구가 필요했을 뿐이었고 프랭크 템플3세는 아버지와 다르다고 하면서도 부전자전을 유추할 수 있는 젊은 친구이지만 캐릭터적 설정이 명확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몰입에 한계도 보이고 딱히 이런 스타일이라고 단정지을만한 포인트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남자 주인공보다는 여자 주인공인 노라가 생활밀착형 캐릭터인 것 같은데 차량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는 젊은 여성이란 사실부터가 흥미를 끈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길을 걸었을 그녀가 아버지가 갑작스레 뇌졸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는 처지가 되자 차마 아버지를 내버려둔 채, 마을을 떠날 수가 없었던 1차적 선택과 아버지의 단골고객으로 겨우 연명하게 되는 차량 정비소애 대한 책임이라는 2차적 선택까지 무엇하나 자신의 바람대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던 그녀만의 고달픈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글로 전해져온다. 아버지가 호전되어 다시 정비소를 맡지 않는다면 서서히 소수의 고객들마저 하나 둘 멀어지게 되리란 건 자명한 이치. 기약없는 미래를 살고 있는 그녀가 괴한들의 피습에 엮이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끈끈한 연민의 정을 놓지 못하기에 애끓는 사부곡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이제 한 사람으로 인해 촉발된 연속된 죽음 앞에 프랭크 템플3세는 7년 동안 참고 기다리던 복수를 집행할 장소로 윌로우 플로위지를 선택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배경인 그 곳은 데빈 매트슨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차량사고의 주인인 남자와 그의 여인까지 한 자리에 모여 잔인한 총구가 불을 뿜으면 스릴 넘치는 격정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두뇌게임과 심리전은 그야말로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절묘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진으로 확인하게 된 윌로우 플로위지의 아름다운 풍광 앞에 각자의 가족사는 강하고 어두운 플롯때문에 탁월하면서도 절묘한 서스펜스가 무척이나 탁월하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건 작은 반전이 결말에 기다리고 서서 독자들을 충격이 아닌 가족이란 이름의 혈맹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하는 순간, 복수의 칼날은 비록 날카롭지만 때론 결정적 순간에 피를 본다는 사실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가슴에 새겨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물 중심의 관점에서 본다면 복수를 하고자 하는 자와 복수의 대상인 자 간의 느슨한 연결고리와 성격정립에는 아쉬웠지만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어야겠지.  

 

 

별이 빛나는 밤을 탐하다.  아, 내 마음 속에는 별이 없구나.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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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일기Z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2
마넬 로우레이로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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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리뷰를 통해 읽게 된 스페인 작가 마넬 로우레이로의 데뷔작 『종말일기Z』는 현 시대의 아이콘이 '좀비'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좀비 문학’의 또 다른 히트작이다. 사실 ‘좀비’는 ‘뱀파이어’와 더불어 서양 호러를 상징하는 영원불멸의 캐릭터들인데 대중에 회자되는 빈도수만 따지자는 게 아닌, 사실상 사멸되지 않는 육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헐리웃에서도 대중문학에 있어서도 끊임없는 반복과 변주를 뒤풀이하며 끈질기게 창조된다. ‘좀비’에서 매혹적인 요소들을 추출해낸 이번 소설이 배경을 스페인으로 선택한 건 괜찮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는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페르시아 고양이 루쿨루스를 기르며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내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시간이 지나도 아내의 체취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심리치료사는 블로그를 만들라고 충고한다. 그 곳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쓰라고, 그냥 넋두리를 하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이 싫었던 아내와는 달리 다시 블로그를 해보자는 심정이었던 ‘나’는 러시아의 다게스탄에서 일어난 폭발사고와 소요사태에 점차 흥미를 느낀다.

 

 

러시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대 혼돈에 빠져 있으며, 이것이 유행처럼 저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있지만 무슨 꿍꿍이인 유럽각국의 정부는 사태의 실체를 감추기에만 급급해서 모든 정보는 언론 통제를 받고 있는데... 하지만 정보는 국경을 초월하는 법, 서서히 그것의 정체가 인터넷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드러난다. '나'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일어난 일로 치부하지 않고 조금씩 경계수위를 높여가던 중 주변에서도 원인을 알 길 없는 정체불명의 폭력이 자행되고, 곧 전 인류를 멸종시킬 문제의 원인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대체 ‘그것들’의 뜻이란 무엇일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걸까? 감염자들이 매우 공격적이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왜 그들을 ‘감염자’가 아니라 ‘그것들’이라고 부르는 걸까? 그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 본문 중에서 -     

 

 

‘그것들’은 ‘언데드’로 불리기 시작한다. ‘죽지 않은, 되살아난 시체’의 개념으로 미쳤을 뿐 건강하다고 하는가 하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존재로, 확인되지 않은 괴 소문들은 시시각각 다양한 가설로 확대된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이것은 언론통제에서 기인한다.) 정확한 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길잡이를 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니 정보전을 겪고 있는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네티즌들은 각성하고 분발하게 될 것이다.

 

 

다행이다. 사이버 세상은 공개된 사생활이자 공개된 일기장이나 다름이 없어서 운영이 중지될 때까지 언론이 대신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들을 대체한다. 앞서 아내의 사별에 따른 정신적 상실과 허무를 달래기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는 인터넷이 살아있는 동안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각국의 블로거들의 불안한 심리를 공유하는 소통의 장이었는데 일기가 그 자릴 대신하더라도 기록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이채로운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일반적인 형식이 아닌 일기체이니까.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상황에서 블로그가, 일기가 아니었다면 정신적 피폐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고, 나락에 빠지는 상황을 방지할 예방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관점들은 『종말일기Z』 1권의 특성을 요약하는 주요 핵심이다. 그에 길들여지거나 길들여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이의 취향이고. 

 

 

그래서 스페인 작가 마넬 로우레이로의 이 데뷔작은 섬세한 묘사와 상당한 속도감, 그리고 압도적인 전개와 살아남은 자와 살아있지 못한 자 간의 대결을 통해서 고립된 인간들의 외로움과 이중적 인격이 '좀비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스페인의 스티븐 킹”이라는 찬사는 작가의 이야기 구성능력에 바치는 탁월한 헌사일 뿐 만 아니라 3부작의 시작을 알리는 효과 만점의 문구이다. 자! 판도라의 상자는 뚜껑을 열었다. 치열한 생존본능은 괴멸 직전에 빠진 전 세계를 과연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흥미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으니.

 

 

“나는 블로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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