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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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시내 중심가에서 눈꽃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는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았다. 하늘에서는 눈꽃이 흩날리고 아이들은 빙판에서 썰매를 신나게 타느라 여념이 없으며, 연인, 친구들과 포토존에서 이쁜 추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취를 맘껏 누리고 있었다. 특정한 날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데에는 종교적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지만 모두의 마음에 따듯한 외투를 둘러준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탄생을 의미하는 <노엘>을 지금 읽는다면 그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라면. 그는 이미 동화풍의 소설도 낸 적이 있으니 미스터리가 아니라도 선뜻 손에 들어보게 될 것이다.

 

 

게이스케는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로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려서부터 글쓰기가 특기이자 취미였던 게이스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 유명한 동화작가 되어있다. 동창생들을 기다리던 게이스케는 야요이의 참석여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중학생 시절 게이스케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이들의 멸시와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 때문에 늦으시는 엄마, 춥디추운 방에서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동화창작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의 구타 속에서 점차 지켜가던 그에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야요이라는 이름의 소녀와 친해지면서 두 사람은 이성의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게이스케는 글을 쓰고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는 협업을 통해 둘만의 동화책으로 위안과 동질감을 나누던 두 사람은 또 다른 여자아이까지 휘말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그만 절교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 그녀 생각에 호텔 문을 나선 게이스케는 갑작스레 택시에 치어 쓰러진다.

 

 

내내 그랬던가. 게이스케와 야요이는 부모의 부재에 따른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게이스케야 뻔한 것이고 야요이의 아버지는 엄마를 폭행하고 딸의 알몸사진을 찍는 등의 인면수심에 파렴치한이니 애초에 두 사람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이 외면하는 게이스케에 눈길이 자꾸 가는 야요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 타인의 불행에 자연스런 연민이 생기 수밖에. 그렇게 둘 만의 공통 관심사로 동화책을 만들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는데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고 슈스케가 그냥 이쁜 사랑 하세요, 라고 배려할 사람이 아니지.

 

 

입만 놀리면서. 늘 내게 마음을 쓴다고, 배려한다면서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다며 엄마를 원망하는 야요이의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라도 불러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의 불행한 사건에도 엄마의 무관심이 한 몫 했거니와 결과적으로 자신을 진정 믿어주지 않는 게이스케에 대한 원망이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요이에게 등 돌려 절교하는 게이스케를 그저 고개만 숙인 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쓰라리다. 네가 힘들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준 건 바로 나였어. 수업 중 게이스케를 깊은 눈길로 내내 응시하는 야요이의 모습은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계속 맴맴 돌 듯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진실을 알고서는 가책을 받고 대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너무 잔인한 설정에 심한 몰입에 빠져 버렸나 보다.

 

 

저기다. 야요이는 여전히 게이스케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게이스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경멸이 담기거나 야윈 개를 동정하는 듯한 어두운 눈이 아니라 야요이는 그저 차분하게 게이스케를 시야 중심에 잡아두고 있었다. - p.29 -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향방이 14년 후에 재회하게 된 그와 그녀의 용서와 화해로만 전개되지 않을까 성급한 예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리가 굽혀 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짙은 소외감을 느끼다가 게이스케가 쓴 동화를 읽으며 상처를 극복한 리코, 은퇴 후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도 게이스케의 동화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구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가 가지 의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힐링이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의도는 분명 나쁘지 않다.

 

 

그러면서 시한부 삶을 살며 투병 중인 리코의 할머니에게서는 오랜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떠올리며 간병에 지친 자녀들의 한숨은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에겐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절망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비록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잘 알겠다.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는 대중에게 친숙한 캐롤을 대상으로 삼아 편하고 훈훈하게 다가오지만 그 후의 동화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간 것처럼 쉽사리 동화되기 어려웠다.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배제하고 계속 더 몰입할만한 구도는 없었을까? 중반까지의 몰입과 상반되는 중반 이후의 이탈은 그래서 불확실한 감상만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는 공감이 가나 해법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진정한 힐링 스토리가 되기엔 많이 역부족이었다. 아, 뿜겠네. 그래도 올만에 읽은 슈스케의 소설인데 이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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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인간 ㅣ 한스 올라브 랄룸 범죄 스릴러 시리즈 1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 / 책에이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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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로만 각인되어있던 노르웨이의 추리소설을 또 다른 이름의 작가로 드물게나마 만나게 되었다. 작가 한스 올라브 랄룸의 첫 추리소설 <파리인간>을 읽기에 앞서 역사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노르웨이 인문학자이며 특히, 전쟁역사학자로 모국에서는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유명인사로 설명되고 있는 저자의 이력은 그가 좀 유별난 사람인 것 같다는 점,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수시로 일을 벌이는 공사다망한 성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왜 뜬금없이 추리소설을 냈을까 라는 의문도 당연히 포함되면서 그의 첫 데뷔작은 그의 소감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뻔 했지만 다행히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향후 차기작 2편이 국내에 소개될 예정으로 되어 있다. 

 

1968년 노르웨이 오슬로 크렙스가 25번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대항하여 저항군으로 맹활약했고 종전 이후 정치적 입신까지 이룬 하랄 올레센이라는 인물이 살해된 것이었다.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사건해결을 위해 출동한 곳은 3층짜리 평범한 아파트였다. 살인동기와 범죄에 사용된 무기, 용의자와 관련된 단서까지 발견되지 않은, 결정적으로 범인이 어떻게 살인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밀실살인의 전형이다. 크리스티안센 경감은 어떤 계기로 장애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명석한 지능을 가진 열여덟 살 천재소녀 파트리시아의 도움을 받아 공조수사를 펼치게 된다. 전혀 진전이 없이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은 크리스티안센이 현장을 누비고 그의 설명을 들은 그녀가 추리해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방식이다.

 

확실히 파트리시아의 총명함은 크리스티안센 경감의 부족한 2%를 꼼꼼히 메워나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낸다. 오히려 크리스티안센 경감의 멀쩡한 육신은 그녀의 지혜 앞에서는 빛이 바랠 정도니. 때때로 경감의 수사방식은 초보적인 면이 많아 그 직책에 오르기까지의 능력에 대 한 의문이 들 정도로 한심할 때도 있기는 하다. 이제 두 사람은 아파트 주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일대일 심문에 들어간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던 망자와 주민들은 결국 어떤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있었다.

 

각자가 가진 사연들은 역사라는 과거가 현재에도 어떤 식으로 진행중이며 남들에게 말 못한 수치스런 개인사들이 거짓으로 위장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과거 특정시대의 사건은 노르웨이의 실제 과거사를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조차 저자의 주변인물에게 설정을 신세지고 있음도 고백한다. 파트리시아의 말처럼 과거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유사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거나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있는 파리인간이란 표현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가는 방식은 과도한 대화(마치 또 다른 존 버든 스타일을 보는 것 같은)로 채워지면서 알지 못했던,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들까지 따옴표와 설명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지루함이 증폭된다. 게다가 생뚱맞은 로맨스, 그리고 누가 범인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후반부는 아쉬움이 상당하다.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치밀하지 못한 탓에 범인을 조기 검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범인의 입으로 납득되어야 하니 그 허술함은 앞으로도 경감이 소녀의 협조 없이는 난국을 헤쳐 나가기 힘들거 라는 불완전한 미래가 뻔히 보이는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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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레인 ㅣ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4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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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히메카와 레이코, 금기를 깨뜨리다 또 다른 금기와 조우하다.

 

야쿠자 조직인 야마토회 계열 이시도 조직 산하 진유회의 하부조직인 로쿠류회 조직원이 살해되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는 찰나 야나이 겐토라는 남자가 범인이라는 의문의 제보가 날아드는데 이 남자에게는 9년 전 살해당한 누나가 있었고 피해자는 바로 누나의 애인이었던 것. 이것만이 아니다. 겐토의 아버지는 죽은 누나의 살해 용의자로 몰려 경관의 총을 낚아채어 자살했었다. 그렇다면 겐토는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에게 복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금기... 만약 겐토 아버지의 죽음이 경찰의 잘못된 수사가 빚어낸 애꿎은 희생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을 염려한 경시청 고위층은 은폐를 위해 야나이 겐토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다. 하지만 히메카와 레이코는 외압을 거부하고 은밀히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이것은 무모하리만치 만용일수도 있었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찍히게 될 텐데 말이다. 하나의 금기를 돌파하고 나니 의도하지 않았으며 예상치도 못했던 제2의 금기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시키는 대로 했으면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야나이 겐토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쳐 누나의 죽음을 목격한 후 복수를 실행하려는 과정을 그려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레이코와 겐토의 시점만 있진 않다. 야쿠자 조직 교쿠세이회의 회장 마키타 이사오도 자신에게 주요 정보제공자였던 겐토의 죽음을 조사하다 레이코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3인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맹렬히 돌진하지만 미스터리로서의 강점보다도 로맨스가 소설의 핵심 축이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레이코는 남자들만 득실한 경시청 조직에서 여성으로서 시기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남자는 동료, 경쟁자, 범인이라는 3가지 타입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비록 부하직원인 기쿠타와는 어설픈 러브라인이 가동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의 신분도 모른 상황에서 마키타와 급격한 사항에 빠지다니 덩달아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어떠한 조건이나 편견 없이 상대가 가진 원초적 매력에 한순간 빠져든 이 사랑은 세속적이며 조건부적인 사랑에 찌든 요즘 세태에 비하면 확실히 무결점의 본능이다.. 담배 냄새는 어느 순간 남성미의 상징이 되고 중년남자의 원숙함은 진짜 남자를 최초 체험케된 레이코가 정신없이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후끈해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나아간다.

 

 

 

와다 과장도 이마이즈미 계장에게 한 말이 있지 않나. 레이코는 집중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자기 안으로 쑤욱 빠져드는 듯 한,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데에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있을 때 지금 레이코의 심경은 그러했을 것이다. 사랑은 레이코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겐토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동병상련을 느꼈나 보다. 둘이 되어 지독한 외로움을 사람의 정으로 채워 나가고자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면모도 사랑의 또 다른 이유로 설명 가능하리라. 그 밖의 이유라면 그때부터 내리는 빗물 속에 불순물이 조금씩 섞여 들어갈 것만 같다. 순수하지 않으면 자칫 탈모가 될 위험도 감수하겠다면 우산을 쓰지 말고 온 몸으로 비를 맞아야겠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동기는 비난하지 못하겠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문제지, 사랑은 죄가 아니다, 라는 어느 동성애자의 말도 있지만 어떤 탐욕이 배후에 개입된 상황이 아니라 상대를 조건 없이 사랑하여 그를 위해 계획하고 자신을 희생하려한 배려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이번에는 안쓰럽지만 잔인한 설정이 없었기에 약간의 불편만 감수한다면 읽기엔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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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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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물심양면 지원받으며 온전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동안 눈앞의 문제들은 부모가 모두 알아서 처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 자신들을 양육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이 뒷받침 되는지 그 나이에는 짐작할 일 조차 없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여나 나쁜 일에 휘말리지나 않게 되는지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고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볼모 잡아 아이들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는 범죄야말로 인륜을 무참히 짓밟는 범죄일테니 가중 차벌로 강력 단죄해야 한다는 이 책 속의 주장은 일리가 있겠다.  

 

유괴된 아이가 내 자식이면 부모는 자식을 되찾기 위해 몸값 지불하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내 자식이 아니라면 선택은 달라진다. 게다가 더글라스 킹에게는 단순히 돈 문제를 떠나 사업의 명줄이 걸려있다. 어릴 적 지독한 가난 때문에 성공 지향적 인간이 되어버린 킹을 두고 구두 회사의 중역들은 그를 회유하여 회사를 집어 삼키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킹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에게는 회사운영과 관련된 별도의 플랜이 구상되어 있었으니.    

그런데 어떤 돌발 변수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의 운전사의 아들을 킹의 아들로 착각해 납치 유괴하고서는 5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이 유괴당하지 읺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지만 뒤늦게 킹의 아들이 아니란 것을 알에 된 범인들은 킹에게 몸값을 대신 내놓으라는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제 킹은 50만 달러냐? 아이의 목숨이냐?를 두고 심각한 도의적 딜레마에 빠진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닥쳤느냐고 울분을 토로할 만하다. 범인들의 요구대로 몸값을 주면 그의 사업인생은 파멸하게 된다. 회사의 중역들은 이것을 호재로 삼아 킹을 파멸시키기 위한 작당에 나서면서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세간의 비난 속으로 빠뜨릴 복안도 마련 중이다. 모든 것은 킹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이 책이 87분서 시리즈 중 가장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유괴범들로부터 유괴된 아이를 되찾는 이야기들도 물론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지만 87분서 형사들의 활약보다는 순전히 킹의 고뇌부분이 역시 중심이 된다. 특히 아이를 위해 조건 없이 몸값을 지불하기를 원하는 아내와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맞서는 킹의 논쟁은 차마 읽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이 압도적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몸값을 지불하는 결정이 당연하겠지만 평생을 고생만 해온 그에게 사업에서의 낙마는 절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리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본다. 나라도 그런 결정 쉽게 못 내릴 것이다. 킹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해서 가슴에 사무치고 동화되면서 마치 내가 킹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누가 그에게 냉혈한이라고 돌을 던질 수가 있으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천국과 지옥」은 원작과는 다른 결말이 그려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든 현실에서는 실재할 것만 같다. 킹에게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행위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책임하고 가혹한 처사이다. 유괴사건이 발생하자 킹에게 찾아와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기꾼의 등장이이나 87분서에 아이의 행방을 목격했다는 전화의 폭주는 일순 익살스레 묘사되어 킥킥대며 읽기도 했지만 타인의 고통을 악용하고 농간부리려는 혹자들의 저급한 시도가 얼마나 당사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지 모른 채 배려하는 마음의 양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도 악의적이다.  

 

그리하여 일련의 사태에 대한 주모자와 피해자가 모두 남성인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끊임없이 설득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까지 하는 능동적인 주체 모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어둠을 불 밝히는 등불 같은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고. 면죄부가 주어진 결말은 그런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포상으로 간주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87분서 시리즈는 다른 각도, 다른 차원에서 해석되면서 언제나 즐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검증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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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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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맥베인의 <살의의 쐐기>는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를 관할로 둔 87분서를 배경으로 안과 밖에서 인질극과 밀실살인사건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병렬구조로 연결하여 서스펜스와 추리적 쾌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작품인데, 솔직히 신간소개에서 별다른 감흥을 못느껴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경찰소설로 남을 뻔했습니다만 두 가지 이야기라는 구성처럼 저도 두 분의 추천글을 읽고서야 이건 질러야한다는 확신이 들긴 했습니다. 250페이지에 불과한 이 경찰소설에 당췌 스릴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을 밟고 지나가듯 불필요한 서두를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과감함에 늘어지는 대목은 전혀 없어 흥미는 지속됩니다.

 

표지에서도 성격을 드러낸 것 처럼 검은 옷으로 치장한 한 여인이 한 손에는 38구경의 권총과 한 손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담긴 병을 들고 87분서를 찾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검거해서 감옥에서 병으로 죽게했다는 이유만으로 스티브 카렐라 형사를 죽여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87분서 형사들을 인질로 삼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사태의 원흉(?)인 카렐라 형사는 때마침 한 거부 노인의 자살현장에 출동하고 없는 상태였기에 그가 복귀할 때까지 87분서 형사들을 인질로 계속 붙들어 놓이게 되는데 총이 문제가 아니라 니트로글리세린이 폭발할 것 같은 두려움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사들은 시킨대로 고분고분하게 인질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 편 자살현장에 도착한 카렐라 형사는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방에서 노인이 목을 맨 현장을 조사하며 구조상 완벽한 자살로 판단하면서도 생전에 의욕적인 삶을 살았다는 고인의 갑작스런 자살에 대한 의혹과 함께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둔 점과 늑대같은 아들들의 관계에서 냄새를 맡습니다. 이건 무엇인가 있다고요... 가려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해서 카렐라 형사가 사건종결 대신 탐문수사에 돌입하는 동안 87분서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카렐라 형사 대신 애꿎은 형사들만 계속 인질로 낚이면서 신경전이 극에 달합니다. 복수의 화신이 된 여자와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형사들간의 두뇌게임과 거짓으로 위장하고 있는 밀실살인의 트릭 파헤치기가 시간을 잊게 할 만큼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끈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를 한층 배가시킵니다.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이 오직 결말을 향해 간결하고 유머스러하게 돌진합니다. 제목에도 언급된 쐐기는 인질극과 자살현장을 설명할 용도로 사용되지만 무엇보다 잠시라도 방심을 허용치 않도록 읽는 이의 마음에 쐐기를 박아 빈틈을 봉쇄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50편이 나오는동안 경찰소설의 효시로서 당시 미국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로 충실히 반영되었다는 87분서 시리즈의 한 편인 <살의의 쐐기>가 최고작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장르소설의 최고덕목인 재미라는 미덕에 최적화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득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만약에 그 당시에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어떻게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상상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즐겁네요. 사무실과 외근중인 형사간에 상호 연락수단이 없었던 시대였기때문에 호출된 카렐라 형사와 여인이 처음부터 조우하는 사태는 성립되지 않은 채, 각각의 이야기들이 교차시점으로 전개되었기에 즐거움이 두배로 늘어나지 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문명의 진화척도도 리얼리즘을 끌어올리는데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이 시리즈의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요? 소소한 점들마저도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에 계속 관심을 둘 이유로 충분하다 봅니다. 그래서 만약에 마켓팅의 홍수 속에 묻혀 이 소설을 놓쳤더라면 후회할 뻔 했겠죠.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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