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 신 본격 미스터리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홉 번째 관 시리즈로 내놓은 <기면관의 살인>을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의 괴기호러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본연의 퍼즐 맞추기의 심정으로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그 점과는 별개일지도 모르겠으나 연쇄살인 대신 단 하나의 살인만이 발생해서 예상했던 패턴과는 적잖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 살인 이후 폭설에 갇혀 기면관에 고립된 여섯 명의 초대 손님과 종업원들을 두고 분명히 후속살인이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보기 좋게 비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만의 재미와 뚝심이 엿보여서 괜찮았습니다.

 

서막은 추리소설 작가 시시야 가도미가 자신과 닮은 괴기환상 소설 작가 휴가 고스케로부터 자신 대신 어느 서양식 저택의 주인장이 초대하는 연회에 참석해달라는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참가수당을 반씩 나눈다는 조건도 나쁘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 저택의 설계자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것에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에서 발생했던 각종 살인사건에는 그의 건축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고 그 사건들에 연루되었던 시시야에게는 호기심이라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발을 딛게 된 것입니다. 그 저택의 이름은 진기한 가면을 수집해놓았다 하여, 기면관(奇面館)이라고 불리는데 가면관이 아닌 기면관이라는 호칭은 미스터리의 성격에도 부합되는 뉘앙스가 물씬 풍깁니다.

 

주인장인 가게야마 이쓰시는표정 증후군이라는 요상한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표정을 몹시 싫어하는, 마음속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비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라는 것을 견디기 힘든 공포로 받아들이는 증세라고 합니다. 사업가로서 원만한 대인관계가 필수라는 아킬레스건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공포를 견디고 억누른다는 건 웬만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인장 가게야마의 설명은 얼토 당토한 횡설수설로 치부되지 않고 무언가 마음속에서 수긍하고 동조하는 움직임이 느껴지기에 제게도 표정 증후군대신 비스무리한 대인 증후군이 있어 사람만큼 불신에 두려움 가득한 생명체도 없다는 것도 압니다.

 

가게야마는 표정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인또 하나의 자신’, 도플갱어를 찾고 있었던 것이고 자신과 유사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초대해 가면 연회를 열었던 것인데 참극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초대된 여섯 손님이 때늦은 폭설로 인해 돌아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냈는데 다음 날 주인장 가게야마가 손가락이 잘리고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되는 참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에서 깬 손님들에게는 각각의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가면을 풀 수 있는 열쇠 또한 사라졌습니다. 이쯤 되면 범인은 내부인의 소행인지, 외부인의 소행인지 그리고 사라진 목은 어디에 있는지 진득한 추리가 시작됩니다. 바로 시시야 가도미에 의해서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기면관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고 환희, 놀람, 탄식, 오뇌, 대소, 분노로 구분되어진 가면을 쓴 손님들의 신분부터 파악하는 일이 차순일 것입니다. 수집된 각종 가면들을 전시해 둔 컬렉션 룸부터 대면의 방, 그리고 기면의 방까지 위치, 구조, 용도 모두 인상적이고 특이한 것이 실제 거기에 가 본다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날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가면을 주인장의 요구에 따라 쓰고 얼굴을 잃어 버린 여섯 사람들을 지켜보며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본명대신 가면이름으로 불리는 손님들 때문에 때때로 구별하지 못하고 착각에 헤매며 몇 번이나 앞 페이지를 뒤적였는지 모릅니다. 각자의 신분확인은 기면관 별관 방 배치도의 객실 호수에 표시된 가면이름으로 가능했으니 익명성이라는 공통성은 살인을 은폐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면책특권을 보장한 셈입니다.

 

시시야 가도미의 일목요연한 추리 앞에 드러난 진실들은 아무도 모르는 기면관의 비밀통로와 작동장치, 그리고 특정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중의성, 사람이 하는 말 속에 있는 뜻밖의 함정(이것은 기면관의 배치도를 보고 무언가 잘못된 음모가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과 트릭 등 지나치기 쉬운 복선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쁨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범죄계획의 범위가 뜻하지 않게 확장되고 만 사연은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의 절묘한 재미였기에 추운 겨울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차근차근 읽으면 정말 좋을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이제까지와는 범행 동기나 수법에서도 차별화될 수작이라고 한다면 이제 아야츠지 유키토의 열 번째 관 시리즈가 점점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어떠한 트릭으로 독자들을 즐겁게 할까나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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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카니발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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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부가 팔린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최고봉으로 넬레 노이하우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화려한 문구와 함께 저자인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유작이라는 쓸쓸함, 그리고 다니엘 홀베가 중단된 집필을 이어서 완성하였다는 사연까지... 여러모로 관심을 끌만한 요소는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독일 스릴러는 2012년 상반기 초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후 오랜만에 읽어 보는지라 그녀 이전에 활약했던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계의 인기작은 어떠할지도 궁금했습니다.

 

세 명의 여대생과 세 명의 남학생이 술과 마약에 취해 한여름 밤 광란의 파티를 엽니다. 파티가 끝난 후 캐나다 여학생 제니퍼 메이슨이 강간 살해당한 채 시체로 발견되는데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은 그날 있었던 참극을 기억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한 편 1년 만에 수사현장으로 복귀한 율리아 뒤랑 형사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사참여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동료 형사들의 수사 결과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범인으로 검거되고 시간은 2년이 지나갑니다. 상사인 베르거의 직무대행으로 임명된 율리아가 사무실 근무에 염증을 느끼고 현장복귀를 갈망하던 차에 남자 대학생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됩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프랑크와 자비네 형사는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구원을 받은 듯 한 평온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를 보며 과거 제니퍼 메이슨 살인사건과 유사한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과거 사건과의 연관성을 눈치 챈 수사팀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죽은 줄 알았던 제니퍼 메이슨이 나타나자 일순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용의자의 시체가 발견되자 더욱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듭니다.

 

<신데렐라 카니발>은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탓에 주인공인 율리아가 과거 사이코 패스에게 납치당해 감금 강간까지 당하는 끔찍한 기억들로 인해 정신공황에 공포장애까지 아직 후유증이 남아있는 상태로 파악됩니다. 그녀의 진정한 고통은 그랬구나 하는 정도로만 짐작할 뿐 진심 공감되기에는 설명이 불충분한 점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현장수사에 처음 배제되는 점은 이야기 전개 상 당연할 것이고 직무대행은 그녀가 점차 수사조직에서 인정받아 크나큰 역할을 맡기 위한 권력의 발판 정도로도 인식될 수 있을 것 같아 주인공이면서도 지지부진했던 것에 활동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과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직접 사건해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육탄전을 보였으니 차기 시리즈에서는 제대로 된 그녀의 활약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수사팀의 일원이자 오랜 파트너인 프랭크 헬머와의 서열문제로 인한 트러블과 화해, 자비네와 슈렉 팀장의 비밀연애, 페터와 도리스 부부 형사의 연애사와 득녀 이야기까지, 한 가족 같은 구성원들이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빡빡한 수사 일지에서 빛을 발하고 깨소금 같은 고소함이 살아 있기에 읽는 재미가 더욱 풍성해서 좋았습니다. 물론 범인이 초반에 밝혀지고 어렵지 않게 범인을 알아내는 수사 과정들, 그리고 또 다른 범인의 등장 등 정체에 대한 모호함과 해결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다소 싱겁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듭니다. 반전이라고 할 만한 포인트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생전에 끝장을 내었더라면 전개방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이것이 최선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평이하고 안이한 선택을 다나엘 홀베는 분명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집필을 이어나간 핸디캡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재미는 웬만큼 보장됩니다. 그리고 생각거리를 여럿 남깁니다. 우선 객기를 주체 못하고 도덕적 불감증에 노출되어 쾌락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청춘들이 있습니다. 최고로 빛나야 할 시간들을 자유와 맞바꿔버린 채 피 눈물 나는 대가를 치러버린 비참한 말로는 많은 것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합니다. 죄의식이니 죄책감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다신 오지 않을 청춘이여!!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태적 성적 욕망에 눈이 멀어 섹스산업의 번창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일조하고 있는 사디스트들로 가학과 피학의 빈자리는 항상 누군가로 채워져 있다는 씁쓸함은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가 낳은 시대의 산물이요, 경종이기도 합니다. 범죄는 이러한 수요가 있는 한 지금도 이를 노린 배금주의에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의 스릴러적 긴장에 가독성까지 모두 이러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독자들을 지루할 틈도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몰아넣는데 성공한 편입니다. 그냥 물 흐르듯 끌고 가는 힘이라는 장점입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끌고나가는 힘이 장점이라 이만하면 괜찮더군요.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자니 이 소설은 이런 아픔들만 노출시키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마지막 결말을 보십시오. ‘최고로 빛나는 시간에 대한 정의에서 누군가에게는 헛되어 소비 되어 버린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율리아 뒤랑과 프랭크 헬머는 12년에서 1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소중한 그 시절에 경의를 표합니다. 최악의 고비에 털썩 주저앉으며 이번이 마지막인가라는 좌절을 극복해가며 이 모든 걸 함께 버텨 준 파트너에게 이해를 얻은 점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고 범인은 잔에 물을 채우듯이 빈자리를 대신하겠지요. 고난의 행군을 함께 한 두 사람의 파트너쉽의 결속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몽상대신 범죄해결에 남은 미래를 걸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희망으로 훈훈했습니다. 다니엘 홀베가 이어나갈 새로운 시리즈가 기대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과거 유작도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게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이후 만난 독일 스릴러의 즐거움이었으며,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보다도 훨 만족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에게는 명복을, 다니엘 홀베에게는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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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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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고즈넉이 저물려고 하는 자주 빛의 하늘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이 어디로인가 날아가는 중입니다, 고개 들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나와 있는 표지를 들여다보노라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왠지 담겨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가 누마타 마호카루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출간된 전작들로 극심한 호불호가 엇갈렸던 그녀의 소설들은 광명의 빛줄기 보다는 칠흑 같은 어둠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도록 독자들을 방임하는 것이 작풍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두 남녀의 기묘한 동거는 달콤함이 아니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혐오와 경멸로 점철되어 불쾌한 마음에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지독한 악취가 글로 읽혀져 세상이 거부하고 싶게끔 하지요. 8년 전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한 후 가차 없이 버린 쿠로사키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여자 토와코는 열다섯 연상의 진지라는 중년남자와 동거 중입니다. 진지는 볼품없고 지저분한 외모에다 어눌한 말투와 매사에 서투르고 미숙한 남자입니다. 여자들이라면 결코 쳐다보지도 않을 형편없는 남자라 토와코는 끔찍이 그를 싫어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기생하다시피 얹혀삽니다.

 

그렇지만 토와코의 경우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망상에 갇혀 살던 그녀는 백화점 직원 미즈시마와 불륜에 빠져있어 도적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점은 친 언니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도 별다른 반박을 못하는 토와코의 반응을 통해 독자들의 심정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죠. 정신적 공황에 놓여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옛 사랑 쿠로사키가 5년 전 부터 실종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녀는 혹시 진지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을 품게되는데요. 현재 그녀가 만나는 미즈시마의 주변에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자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자신의 사랑을 음해하려는 진지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날이 커져 갑니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어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듯한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을 못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녀는 왜 아직도 쿠로사키를 못 잊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후반에 들어서 그 비밀이 드러나면 비로소 그녀가 가진 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미즈시마는 그녀에게 타클라마칸 사막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는데 그 사막 이름에 담긴 드리운 죽음, 무한, 출구가 없는 것이란 의미들은 자생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네요.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모른 채 모래구덩이에 발이 빠져 휘청거리며 허망하고 기이한 허무감이 몸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녀에게 사랑이야말로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켜줄 구원의 손길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랑에 배신당한 그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행동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진지는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불우한 성장환경으로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토와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집착 수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녀로부터 수시로 구박받고도 공세를 멈추지 않지요. 같은 남자가 봐도 숨 막힐 정도의 집착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성이 악한 남자가 아니기에 연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인 튀김우동, 소 이야기 등을 통해 자신이 못 누렸던 애정과 행복을 토와코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은 눈물겨운 순정이 담겨있기에 이런 순애보가 또 있을까 싶어 무작정 미워할 수 없게 하지요.

 

그렇게 왜곡된 사랑으로 힘겨운 전개를 보여주던 이야기가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라며 진지는 토와코에게 진정한 해방구를 제공하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남녀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진리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기준대로 반응하기를 기대하기에, 남녀 간의 사랑은 오해와 사고와 문제로 가득한 것이겠죠. 토와코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느끼는 회한을 보며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여성은 이상으로 사랑을 하고, 남성은 속셈으로 사랑을 한다는 명언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토와코를 만난 쿠로사키와 미즈시마가 그랬다면 목숨 걸고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진지는 속설을 거부한 남자기에 특별합니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에 빠져 있기도 쉽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므로. 하지만 한 사람 곁에 머물면서 그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을 주면서도 그 누구보다 외롭고 공허했던 두 사람 토와코와 진지. 처음부터 중반 이후까지 두 사람을 저주하던 제가 압도적인 결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랑을 준 사람도 후횐 따위 없었노라고 자신 있어 할 때 받은 사람도 억만금을 주어도 얻지 못할 진정한 행복을 누렸었음을 뒤늦게 알아 차렸기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사랑이 뭐길래 밉지 않나요? 이 순간에도 이 세상의 많은 남녀들이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이 탐탁치가 않다구요? 한 남자의 절대적 순애보를 한번 만난다면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감동과 슬픔에 몸을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2012년을 빛낸 최고의 일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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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모중석 스릴러 클럽 1
제임스 시겔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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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발길을 거의 끊다시피 했지만 한참 도서관에 드나들 때면 책장 속에 꽂힌 많은 책들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던 스릴러가 바로 제임스 시겔의 <탈선>이었습니다. 영화 <더티해리>의 감독 돈 시겔의 이름과 자주 헷갈렸던 작가의 이름도 기억에 남지만 짧은 제목에서 감지되는 강렬하고 묵직한 분위기 때문이라도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뒤늦게나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인연이자 행운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탈선, 단순히 정의하자면 선로를 이탈한 열차사고를 떠올릴 테고요, 인생에 대입한다면 반복되는 일상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개입하던가 아니면 작심하던지 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일탈되()는 것을 탈선이라고 장황하나마 정의를 내리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일탈된 삶을 선로 복구하듯 그리 쉽게 번복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계속 걷다보면 운 좋게 되돌아 올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을테고 아니면 미아가 되어 영영 파멸을 걷게 될지도 모릅니다. 탈선은 무엇보다 권태기에 소리 소문없이 찾아오는 치명적인 유혹이기에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것은 단지 소설만이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찰스 샤인이라는 한 중년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트 베닝턴 고등학교와 아티카 주 교도소에서 번갈아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찰스는 주 교도소 죄수들에게 작문과제를 내주는데 어느 날 출근을 위해 기차에 탑승했던 한 남자의 억울한 사연이 담겨있는 과제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시점은 그 남자의 이야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죠. 사건의 발단은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어린 딸을 둔 광고회사 중역인 찰스가 깜빡하고 승차권 없이 통근열차를 타고가다 루신다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찰스는 이후 루신다와 다시 만나 불륜에 빠지게 되는데 문제는 불륜현장에 강도가 침입해서 그녀를 겁탈하고 찰스를 구타한 후 지갑마저 빼앗아 가 버립니다.

 

어찌 보면 미친개에게 한번 물린 셈치고 잊으려했던 그날의 악몽은 점차 현실 속의 두려움이 되어 일상을 뒤흔들게 되는데요. 라울 바스케즈라는 그 강도는 두 사람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면서 돈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찰스 부부에게는 딸 안나의 당뇨치료와 미래를 위한 투자용도의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찰스는 비밀유지를 위해 어쩔 수없이 이번 만이라는 심정으로 돈을 아내 몰래 주고 맙니다. 그렇지만 집에까지 찾아와 위협하는 바스케즈에 시달리던 찰스는 그를 손보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데 오히려 피 청부인이 살해당하고야 맙니다. 죽은 시체를 비밀리에 처리해야 했던 찰스는 추가적인 현금 요구에 못 이겨 횡령까지 저질러가며 만든 돈을 바스케즈에게 건네주고 말죠.

 

내가 헛것을 본게 아니었다.

바스케즈는 분명히 메세지를 남겨놀놓고 간 것이었다.

자, 이제 보이지? 여긴 이제 내 구역이야. 네 집, 네 인생, 네 가족.

이젠 다 내 것이 되었다고.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법, 결국 횡령사실이 발각되어 정직당하고 아내에게는 별거 조치를 당합니다. 게다가 바스케즈의 협박 뒤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음을 알게 된 찰스는 이제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선택과 판단을 되돌리기 위해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통쾌하고 후련한 결말이 독자들을 짜릿한 롤러코스터로 인도하는 것이랍니다.

 

"난 당신이 뭐든 내게 마음 편히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가슴이 저려왔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일.

 

이 소설은 말이죠. 소재도 뻔하고 예측 가능한 전개입니다. 부부의 권태기, 자식에 대한 간병으로 등허리가 휠 지경인 아버지, 성공의 압박에 시달리는 회사생활,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킬 일탈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르면서 거듭되는 추락과 마지막 권토중래, 악은 지옥으로까지 스릴러의 정석에 더없이 충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습니다. 한 번 책을 잡으면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강한 흡입력에 조금만 더 읽어야지 하게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끊임없는 긴장감과 박진감, 그 속에 알차게 자리 잡은 정교함마저 어우러지며 매력적인 스릴러로 탄생되었군요. 잠시라도 안도할라치면 골목 모퉁이를 돌다 갑자기 도끼가 튀어나와 헛바람 들이키듯 심장박동을 조율하는 가공할 솜씨는 단연 발군입니다. 더구나 내가 찰스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했을까 라며 질문과 해답을 구하면서 깊숙이 감정 이입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신이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줬어요. 안나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안나와 함께 보내는 모든 소중한 순간들이 은행에 저축해 둔 예금액 같다고 말이예요. 계속 그렇게 모아가면, 그렇게 충분히 모아두면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좋은 추억들이 풍성해 인생을 부자로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찰스가 그 점을 바로잡기 위한 결단과 분투에 내내 처연해하다가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는 아내 디에나의 선택에서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점에서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울타리를, 인생이라는 갈림길에서 많은 생각과 감동들이 여진처럼 남습니다. 모클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서 탁월한 선정이었으며. 존 카첸바크 + 더글라스 케네디의 조합으로 불릴만한 멋진 작품입니다.

 

  추천도장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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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2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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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추리스릴러라는 장르가 마이너리티한 계급의 한가운데 놓여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일정부분에 있어 국산을 홀대하고 외제명품만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구매 선호도가 장르소설이라고 별 다르지는 않기에 외국 유명작가의 소설만 읽다 이번처럼 국내작가의 소설을 읽게 되면 그 생소함, 편견 등은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병폐들을 장르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실에 대한 공감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도 분명 내포하고 있다고도 보여지구요.

 

네 번째 시리즈로 돌아온(물론 이전 작들은 아직 만나본 일이 없는)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은 단편들의 집합체라는 특성상 모두가 만족스러울 일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단편들을 고르라면 시작과 마지막을 각각 담당했던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과 윤해환 작가의 <협찬은 아무나 받나>를 지목하렵니다. <악마의 증명>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일사부재리 원칙의 맹점을 이용해 무죄판결을 받자 그를 기소하고자 하는 검사의 기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솔직히 반전효과를 노린 것에 비해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뿐더러 우연과 작위의 남발이 아니었나 싶은 게 개연성이 없어 보여 수록작 중 가장 실망스러운 단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협찬은 아무나 받나>의 경우 설록 홈즈와 왓슨을 한국식으로 탈바꿈시킨 시도 자체가 별로였습니다. 그냥 사건해결기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경망스럽고 어수선해서 몰입이 안 되는, 작가에게는 무례한 표현일지는 모르나 시간낭비만 했다는 자책과 함께 대충 얼버무리며 독서를 끝냈습니다. 두 편 모두 올해 최악의 단편소설들이었다는 오점만 남긴 점은 안타까우나 다행인 점은 나머지 수록작은 불명예를 상쇄할만한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은 만족스러울만 합니다.

 

송시우 작가의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끌어들여 인권의 사각지대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도전과 선택으로 풀어낸 점은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소재에 대한 접근방식이라 비교적 신선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시급히 개선해야할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의 여지를 남겼다는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정명섭 작가의 <시장의 살인>에서도 감지됩니다. 고구려라는 고대사회에서의 독과점적 시장경제체제를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 현대사회의 여전한 병폐로 인식시킴으로서 장르소설의 재미는 시대를 반영하는 또 다른 거울이자 척도로 간주하게 된다는 확신을 남기는 겁니다.

 

이나경 작가의 <오늘의 탐정>은 <협찬은 아무나 받나>에서 실패한 위트가 살아있습니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던진 변화구가 타자의 삼진을 유도하듯 효과적이면서 즐거운 읽을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합니다. 진중하거나 아님 웃기거나... 생활 밀착형 추리의 재기발랄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또한 전건우 작가의 <은둔자(들)>은 예상 가능한 스토리와 결말임에도 스릴러의 긴장감을 잘 살려냈다고 생각됩니다. 제목에 있는 (들)이라는 단어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암시가 서스펜스를 증폭시키면서 고립무원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활극으로 탄생되어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그 외의 수록작들도 비교적 만족스럽거나 무난한 퀼리티를 선보이고 있어 한국형 추리스릴러 소설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옥의 티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제 취향에는요. 이렇듯 한국작가에 대한 지지와 애정은 작가와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화 될 문제이기에 무조건적인 옹호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점은 한국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헐리웃 영화를 패자로 묘사해 애국적 선동선전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호들갑에 평소 반감을 갖고 있기에 추리 스릴러 소설에 있어서도 칭찬과 비판이 고루 돌아가야 함은 마땅할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독자들은 즐겁게 읽을 독서거리를 바랍니다. 외국작가들로 인해 눈높이가 남다른 국내 독자들을 만족시킬 고퀄의 소설을 창작해야하는 것이 국내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요, 업그레이시켜야 할 역량일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일단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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