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술래잡기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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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적없는 산

길게 뻗어있는 돌계단

음산하고 기분 나쁜 사당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정지했다가 다시 꿈틀거리는 사람의 형체

 

"니시도쿄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원으로 자원봉사 중인 누마타 야에는 업무마감을 앞두고 이상한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를 건 남자는 자신의 괴로운 처지를 털어놓더니 매일 어릴 적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 명이라도 받지 않으면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던 추억의 벚나무에 밧줄을 걸어 목을 매어 자살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남자의 자살을 막기위해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혈흔만 남아있을 뿐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미 늦은건가?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경찰은 이 남자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어릴 적 친구들을 찾아와 탐문수사를 벌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작된 이 남자의 전화 한 통 이후 친구들은 "다레마가 죽였다"는 섬뜩한 아이의 목소리를 전화로 받습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친구들은 차례차례 연쇄살인을 당합니다. 그러자 전화를 걸었던 남자의 친구 중 한 명이었던 고이치는 이 기묘한 사건의 배후를 파해치기 위해 30년전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담긴 표주박산으로 향합니다.

 

다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해봤음직한(물론 연령별로 경험 유무는 차이가 있겠지만) 놀이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이 소설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게임치인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즐길 수 있었던 이 놀이를 일본에서는 "다루마가 굴렀다"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다루마"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싱징물 중 하나인 오뚝이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 달마선사에서 모델이 기원되었다고 하는데 "다루마가 굴렀다"는 이 놀이의 노래와 "다레마가 죽였다"는 아이의 전화 속 노래가 어딘가 유사합니다.  "다루마가 굴렀다"고 노래를 부르며 앞을 보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몰래 술래 가까이에 다가갑니다. 노래를 잽싸게 마친 술래가 뒤를 돌아보면 움직임을 들킨 사람은 술래의 포로가 되는 놀이방식도 다들 아실테고요. 그런데 여섯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술래가 세어보니 한 명이 더 있습니다.

 

 

그 한 명과 앞서 언급한 두 노래의 유사성에는 우리가 꺼내고 싶지않은 기억의 봉인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은 시간의 흐름에 의한 자연적인 망각도 있지만 세상이 칠흑같이 변할 만큼의 끔찍하고 두려운 순간만큼은 스스로 주술을 걸 듯  빗장을 걸어 영원히 묻어버리자는 방어적 기제도 작동하는 것입니다.  피하지말고 직접 맞섰더라면 곁코 촉발되지 않았을 이 참극에는 양심을 발판으로 한 도의적 책임이라는 것이 살인동기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떳떳이 고갤들고 세상을 활개치고 다닐 자신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 속 범인의 내면 속 고통에 일정 공감과 동정을 할 수 있는지가 자연스레 연계된다는 점에서 인생에서 순간의 선택은 항상 참회가 반복되는 과정들인 것 같습니다. 

  

일반독자란 그런 법이다.

애초에 부조리한 세상을 다루는 호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미스터리의 차이를 알고 있는 독자가 대체 얼마나 있을까?

그 수가 깜짝 놀랄만큼 적다는 사실을 고이치는 과거의 다양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이 문구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중 하나인데요.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에다 토속적 괴담을 얹어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미쓰다 신조의 집필에 대한 일반적인 소신을 반영한다고도 생각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끝내 이루지 못한 인과응보를 염두에 둔 말은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꿈꾸기도 벅찰 만큼 뒤틀려있어 나빠질 뿐. 개선되지 않는다는 염세적인 결말을 보여줍니다. 뿌린 대로 확실한 수확이 있었더라면 개운했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미스터리라는 수수께끼는 완전한 해법을 제시않은 채 독자들에게 상상력이라는 숙제로 남겨둔다는 점은 작가의 여전한 스타일입니다.  특히 고이치가 결말을 앞두고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면서 도조 겐야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는 점(고이치는 도조 겐야를 언급)은 재치만점에 위트마저 있어 입가에 미소를 떠오르게 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깔끔한 정리는 여전히 없지만 다른 작가와 차별화될만큼의 매력적 요소도 여전합니다. 

 

인간 본연의 공포는 잔인하고 엽기적인 상황 설정없이도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는 점이며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술래에 다가가듯 조금씩 실체를 풀어내면서 술래의 포로가 되는 것이 불편한 진실에 대한 침묵과 암묵적 동의라고 표현한 설정은 미쓰다 신조가 왜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이라고 불리는지 멋지게 증명하는 독보적 플롯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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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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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릴러물들을 읽다보면 기름기 쫙 빼서 지극히 건조한 하드보일드물을 접하게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수한 은유와 함축적 의미를 담고 해석에 상대한 시간을 들여 읽게 만드는 심리스릴러물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여 증거를 수집하기보다 머리 속에서 가설을 추출해 정황을 추측하고 범인의 심리와 패턴을 분석, 응용하므로서 범죄의 실체에 다가서는 학구파적 엘리트들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는 유형입니다. 토니 힐 시리즈, 그리고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정의 내리고 싶네요. 저는 이 데이브 거니 시리즈를 다음 편인 <악녀를 위한 밤>으로 처음 읽고 지금에야 타임슬립하여 데뷔작을 읽었습니다. 후속작과 전작은 어떠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차별화된 변화는 있는걸까요? 영혼을 잠식할 불안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거니는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인 멜러리와 해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숫자를 임의로 생각해서 그 숫자를 한 번 말한 뒤, 받은 봉투를 열어보면 바로 그 숫자가 있을거라고 했다는군요. 장난이려니하며 열어 본 봉투 속에는 진짜 그 숫자가 있었고 이에 경악한 멜러니는 거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궁금해? 궁금하면 오백원말고 수표를 지정된 사서함으로 보내라는 설명과 함께... 도대체 그 숫자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이 낯선 이로부터 도착한 전화와 편지들은 멜러리의 신상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기에 해결을 바란 것이죠. 고심 끝에 도움을 주기로 한 거니가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뜻밖에도 멜러니는 자신이 운영 중인 수련원에서 총상과 함께 목에 수차례 찔린 자상을 남긴 모습으로 끔찍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동일한 수법으로 추가 살해한 희생자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살인에 얽힌 동일한 동기를 밝히는 데 주력하면서 대결은 게임의 방식을 차용하게 됩니다. 

 

거니는 시작부텀 머그샷에 빠져있네요. 머그잔과 자주 헷갈리는 저로서는 범인들의 측면과 정면을 찍은 사진들에 무슨 예술적 가치가 담겨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거니는 예술적 성취감과 부수입이라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에 빠져있지만 아내 매들린은 강력계 뉴욕 강력계 형사에서 은퇴한 거니가 전원의 안락한 삶 대신 범죄의 잔여물들을 끝내 버리지못하고 집착과 미련을 가지는 것에는 당연히 싸늘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니는 예전에 이버지가 일에 빠져 가족들과 소원했던 관계를 기억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은 어버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며 닮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미 첫번째 결혼생활에서 무심한 아버지로 일관해 아들을 뺑소니사고로 잃은 전력이 있는데다 재혼에서도 부인과 아들에 대하여 가정적인 모습보다 범죄해결에 관심을 두는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일에는 프로페셔널이지만 가정에서는 여전히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거니는 후속작에서도 변함없지만 껄끄럽고 영혼없는 관계에 삐걱하다가도 결말은 화해의 여지를 담고있는 점은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존 버든은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조금씩 복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멜러리를 살해한 범인이 남긴 발자국이 숲 속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끊기면서 증발한다든지. 세리든 클라인 검사 사무실에서의 대책회의 분위기, 사건 해결 과정에서 겪는 범인과의 대치상황 등은 <악녀를 위한 밤>에서 헥토르가 살인 후 증발된 흔적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놀랄만치 데자뷰 현상을 느끼게한다는 사실은 우연인지 의도적인 선택인지 의문점을 낳는것이지요. 또한 과도한 심리묘사를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과도한 행동묘사 내지 상황묘사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표정을 설명할 때 그냥 ~~~~ 했다 하면 될 것을 마치 ~~~ 하는 것 처럼 ~~~~ 했다 라는 동일반복적인 패턴이 집요하리만큼 공식화되어있는 겁니다. 가량 도자기 가게에 황소를 들여놓는다는 표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염세적인 개구리의 표정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해서라도 유머스럽게 보이고자하는 강박증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네요. 그렇지만 오히려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이시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녀를 위한 밤>에서 보여준 상상플러스 + 넘겨짚기보다는 가설 자체가 좀 더 현실성이 있었던 점은 장점입니다. 숫자퀴즈에 숨겨진 트릭이 무엇일지 범인의 정체나 범행동기보다 더 궁금했던 제게 밝혀진 진실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단순한 발상에 기인하면 기본이 확인된다는 퀴즈를 푸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답니다. 한 번의 숫자게임은 우연에 운을 걸고, 또 한 번의 숫자게임은 지리적 잇점을 선점한,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넓게 보지 못하고 눈 앞의 허상에 매몰된 편협된 마음이 낳은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어쨌거나 데이브 거니 시리즈사 본궤도에 오르기 위한 션결과제가 많겠습니다만 여전히 독툭한 정신세계만큼은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다혈질이기도 하고요. 최향에 대한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임을 잊지 말야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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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없는 꿈을 꾸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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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츠지무라 미즈키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직접 책으로 읽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으면서 말그대로 위시리스트에 최상위권을 지키는 작가였습니다. 이번에 작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단편집 <열쇠없는 꿈을 꾸다>로 처음 만날 기회가 막상 찾아오니 드디어라는 기쁨과 설레임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웃분들중에서도 작가의 열렬팬들이 많았던 관계로 누군가의 완소작가는 항상 동경과 호기심으로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고 싶은 이유도 상당부분을 차지하구요. 이 단편집에는 <니시노 마을의 도둑>,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 <기미모토 가의 유괴>까지 총 다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니시노 마을의 도둑>에서 미치루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어른이 되어 다시 우연히 사회에서 만납니다. 어릴 적 동창생 '리쓰코'는 마을에서 손버릇이 나쁜 엄마를 둔 이유로 세간의 곱지않은 눈초리에서도 묵묵히 생활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리쓰코는 어느날 문구점에서 지우개를 슬쩍 하다 미치루에게 들킵니다. 그 어미의 그 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인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서로의 사이는 급격히 멀어집니다. 원래 친구의 친구였기때문에 절친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들은 소문만 무성한 채 제 갈길로 가면서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회인으로 만나기 전 한 번 우연히 만난 기억을 떠올립니다. 여자들만의 우정은 어떤 색깔과 기억으로 남아있는걸까요? 엄마가 도둑질하다 들킨 일을 친구에게 눈물을 쏟으며 사죄했던 리쓰코는 부끄럽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해도 정작 '나'는 편견을 안고 마음의 빗장을 닫아버려 더이상 친구로 남을 기회를 놓칩니다. 손을 내밀어 따스하게 안고싶은 마음을 굴뚝같이 쏟아내지 못한 아쉬움 속에 각자 어른이 되어버린 동창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박제가 된 저만의 친구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새마을 공공상호공제 지부에 근무하는 쇼코는 소방단원인 동료인 오바야시가 자신을 좋아했다고 철썩 믿지만 정작 자신의 눈높이에 못미치는 그 남자를 혐오하며 싫어합니다. 그런데 쇼코의 마을에 방화가 일어났는데 그 남자를 용의자로 의심하게 되죠. 혹시 내가 보고싶은 마음에 조사차 방문시키 위한 꿍꿍이가 아니가하고 말입니다. 예전과 달리 사회적으로 제적으로 지위가 향상되면서 더이상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저울질할만큰 가치관이 변해버린 젊은 아가씨들의 내면에는 나란 존재는 소중하다는 자존감이 은연중에 배어있다는 걸 충분히 감지합니다. 귀엽고도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공감할 만한 스토리가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입니다.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은 결코 이루지못할 망상에 젖어있는 한 남자와 그의 곁에서 맴돌며 더이상 진전이 없는 관계에 질려하면서도 마지막 미련의 끈을 놓치못하는 한 여자의 로맨스가 인상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으로 거듭나주기를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끝내 절망하여 분사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꿈은 스스로 꾸어야지, 대리만족이라는 의지의 부족에 기대어서는 안 될 선택임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주인공인 미쿠의 극단적인 선택이 서두의 미스터리가 어떠한 비극적인 원인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은 여운이 남음과 동시에 나 자신이 바닥이 보이지 않은 지하세계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는, 이 책의 대표적인 단편으로 손꼽고 싶습니다.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의 경우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임팩트없는 작품이었으며, <기미모토 가의 유괴>는 어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자연스런 모성애의 발동인지, 피할 수없는 숙명의 굴레인지 되묻게한다는 점에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엄마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의 공허한 눈빛이 연상됩니다. 이상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다섯명의 여 주인공들을 통해 여자들만의 섬세하고 미묘하게, 때로는 전혀 이해하기 힘든 심리세계를 남자의 시각에서 훔쳐본 감상이었습니다. 여자들이라야 틈새를 놓치지않고 공감대에 볼트를 단단히 조이겠다는, 또다른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들일 것 같으면서 비록 열쇠없는 꿈을 꾸고 있지만 꿈이 없는 인생보다는 구체적인 방향 설정이 가능하겠다는 전망도 해 봅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것이 죄가 아니라면 그래도 꿈을 꾸는 것이 훨씬 행복하겠죠? 암튼 반가웠어요!  츠지무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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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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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잎이 생리적 연령에 도달하여 식물에서 이탈하는 현상이라고 하겠지요. 이는 쇠락과 죽음을 암시하며 모두 덧없음의 이미지요, 지나간 날의 달콤함을 떠오르게 하지 않기에 지나간 여름의 향내라는 표현도 찾아보니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표지를 들여다보면 붉은 낙엽이 썩어 쌓인 토양에 언뜻 붉은 피가 저택의 창가와 문 밖으로 흘러내린 것도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작가 토머스 H. 쿡의 작품세계관은 낙관론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었음을 미리 고지하면서 삶은 우리가 원하는 행복한 결말로 진행되지도 않을 것임을 동시에 결론 내리고 있기도 합니다.

 

에릭 무어라는 이 남자는 이미 인생의 한파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동차 사고로 죽고 여동생은 병에 걸려 고통스런 죽음을 겪었으며, 형 워렌은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자기 주도적인 인생을 설계해 본 적 없는 낙오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의 부양을 자신의 진로에 걸림돌로 생각하고 독불장군으로 군림하여 숨통을 막으셨던 분이십니다. 유일하게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커왔던 에릭은 이 모든 불행이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의심할 뿐입니다. 결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아니 조금도 닮고 싶지 않았던 에릭에게도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아들 키이스를 대하는 방식이 겉으로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비쳐지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맞서지 않고 회피하고 순응하는 어린 시절로 인하여 마음 속 진정 우러나는 이해와 진심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에 의심을 조금씩 키워가던 에릭에게 두번 째 한파가 닥칩니다. 키이스가 이웃집 소녀를 돌봐주고 돌아온 후 그 애가 실종됩니다. 이제 모든 정황은 키이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진실을 둘러싼 세상의 편견에 맞서면서도 혹시라는 내면의 의심이 또다시 꿈틀거리는 걸 막지 못하게 됩니다. 불신은 아버지를, 형을, 아내를, 아들을 하나씩 집어삼켰다가 내뱉는 되새김질을 하는 와중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번 시작된 미세한 균열은 마냥 튼튼해보였던 그 축을 소리소문없이 붕괴시켜서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앞서 다른 분들도 언급하셨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포커스는 누가 범인이냐 같은 추리적 과정에 기인한 합의적 도출은 아닙니다. 오히려 심리적 갈등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리듬에 시선을 고정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족의 불행을 이미 겪은 세대원은 다시 한 번 시행착오를 되출하고야 마는 우를 범한 것이죠.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아집을 못 버린 에릭의 끊임없는 의심의 증폭이 모두를 이차적인 불행으로 이끈 것입니다. 어머니를 죽게 한 것은 아버지가 아닐까? 여동생 제니는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면? 아내는 딴 남자랑 놀아나고 있는 건가? 키이스가 정말 범인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두가 세상이라는 깨진 병 조각을 벗어나 편온하고 따스한 벽난로가 되고 싶은 마지막 보루의 절망을 지켜보며 우리 모두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달게 합니다. 더 불편하고 경멸스러운 사람들과 어쩔 수없이 기만과 위선으로 똘돌 뭉쳐 자학적인 동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은 에일리언이 부식성이 강한 액체를 토해내어 우주정거장의 한 층, 한 층을 차례대로 부식시키며 더 낮은 바닥수준으로 향한다는 소설 속 표현처럼 마음 속의 의심과 오해는 가차없이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스런 결말을 낳게하는지 그 폐해를 낱낱이 그려낸다는 점에서 살인마의 칼날보다 무섭고 뒤틀린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깊이 파고들어 고통의 산물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모든 아픔을 뒤로 한 채 가족은 화해하고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게 한다는 허무맹랑한 선택 대신 이럴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라는 듯한 마지막 선택때문에 고통과 슬픔이 극한까지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도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열렬히 아끼고 사랑하라는 명제를 얻게됩니다. 방심하면 그 틈새를 불신이 파고들어 쓰나미처럼 한 순간에 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준엄한 경고도요.... 그래서 소설 속 인물심리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면서 에릭에게 비난을 가할 자격이 없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똑 같은 존재입니다. 그것을 작가는 주인공이랑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죽음을 대하는 취약한 긍정의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제 <채덤 스쿨 어페어>가 금년 중에 출간되겠지요. 추리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토머스 H. 쿡의 명성을 다시 확인해 볼 좋은 기회가 어서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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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종말이 오다 - 종말문학 공모전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3
최경빈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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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개월여 동안 밀리언셀러클럽에서 한국장르소설들이 꾸준히, 그것도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우수서평 회원 자격으로 받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외국 장르소설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 기왕이면 한국소설 보다는 외국소설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배어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전정보도 없이 읽게 된 이번 단편집은 “10개월, 종말이 오다라는 제목의 종말문학 장르인데 좀 더 세분화하면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생소한 타이틀을 달고 있네요.  

 

신체강탈자문학의 정의랄까, 역사 같은 것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대중화된 장르는 아니겠죠. <옥상으로 가는 길>이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4>같이 먼저 출간된 작품들은 여전히 척박한 토양 속에서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국내 장르소설의 현실의 한계를 깨뜨리기 위한 작가들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결과만큼은 대박에 미치지 못한 채 편차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큰 기대 없이 읽은 이번 수상작 모음집은 그야말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박력과 흥분이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번 것들은 진짜였습니다. 당선작 <10개월>을 비롯하여 우수작 5편이 실려 있는데 편차가 크지 않음에 대만족이었습니다. 초속과 종속 차이가 크지 않은, 그야말로 오승환식 돌 직구였던 것입니다.  

 

<10개월>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이 남자로 변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바이러스처럼 전 세계적으로 남자 변이 증후군이 퍼지면서 성비의 균형이 점차 무너지고 여자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듭니다세상은 당연 일대 혼란이 벌어집니다. 어제까지 여자 친구였던 그녀가 수염에 떡대 좋은 남자로 돌변하고 아내이자 엄마였던 여자는 잠이 들면 남자로 변이된다는 소문에 남편과 아이들이 교대로 밤새 지켜가며 뜬눈으로 지새우려는 사투를 벌입니다. 남자였던 여자와 여자였던 남자는 성적호기심에 뒤바뀐 육체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야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여자의 숫자가 줄어들자 성적충동을 억제 못하는 일단의 남자들이 임산부를 납치해서 겁탈하려는 대목입니다. 임산부는 남자로 변하지 않는 특이현상(?)에 피그미족을 사냥하듯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욕구를 채우려는 것입니다.  

 

이성과 도덕의 마지막 경계가 무너진 말세 그 자체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 적도 드물다 생각하니 충격의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여자들의 수난에, 비록 소설이었지만 남자로서 읽는 동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맘이 들었고 혼돈의 세상 속에서는 소수자는 다수의 힘에 눌려 언제나 보호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공격당한다는 역사의 반복은 과거나 현재,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결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 식 소신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지면 어떠한 불행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전달과 함께 우리가 대처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수작입니다. 

 

<베르테르 증상>은 세계최고 수준의 자살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전직 유명 야구선수의 자살이 가져온 충격이 때마침 오버랩 되면서 자살증후군은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펴져나가는 내용입니다. 새삼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고민을 되새겨줍니다. 특히 자살을 유도하는 매개체가 물이라니 닥치면 피해가기 어려운 영겁의 저주가 따로 없습니다. 역시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귀환>의 경우에도 우주 탐사 후, 귀환한 탐사사선이 이미 멸망한 지구의 인류를 탐사한다는 내용인데 기술자들이 장난으로 프로그래밍한대로 자의적 판단대신 입력된 설정대로 탐사를 수행하면서 맞게 되는 기이한 생명체들과의 조우와 임무종료까지... 외국 유명 SF작가들의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보여주는데 무엇인가 뭉클함이 가슴 한켠을 치고 올라오는 순간은 말을 잊게 합니다. 그리고 여운이 남습니다. 작가의 범 우주론적 상상력이 뛰아나서 좋았습니다.

 

<미래도둑><10개월>과 함께 이번 수상작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두 외계인이라는 전개는 재밌고 독특한 설정이 아니라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죽음의 향연을 보여줍니다. 외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곧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됩니다. 즉 인간의 형상으로 바뀌게 되는데, 문제는 아이의 성장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서 단기간 내에 어른으로 자랍니다그런데다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엄마 이런 식으로 외모와 기억까지 전부 그대로 복제해버립니다진정한 신체복제 = 강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아들이 남편이 되고 딸은 아내가, 동생이 엄마역할을 같이 하는 대 혼돈의 가족동거가 되면서 근친상간이라는 최악의 악수마저 생깁니다.  

 

이제 원본은 카피본을 죽이려 들고 카피본은 원본을 죽여 먹으려 드는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극은 가족의 근간을 해체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드러내고 말죠. 극중 복제인간 은혜가 나랑 같이 죽을테냐.”며 진짜 은혜를 집요하게 쫒아오는 순간은 등골이 오싹하면서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공포스러웠습니다. 뒤돌아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후덜덜함이란 진정 압권 그 자체입니다. 밤에는 결코 두 번 다시 해당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쩜 이리도 읽는 이의 심장을 조여들어갈 수 있는지 작가의 진정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향후 주목해야할 국내작가 중 한 명이 아닐까 합니다. 브라보!!!  

 

그 밖에 한국근대문학에 신체강탈 소재를 퓨전화시킨 <운수 나쁜 날>이나 담배로 외계인과 대결하는 샐러리맨의 고군분투기 <금연 클럽>, 걸 그룹과 삼촌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 <HOOK>(극중 걸 그룹 지소는 분명 소시에 대한 풍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아이유를 연상시키는 비유도 있지요.)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고퀄의 진수를 뽐내고 있어 은연중에 국내 장르작가의 필력을 과소평가했던 저를 반성토록 합니다. 이 수상작 모두가 인류의 종말을 테마로 펼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후유증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독성과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초에 만난 대박작으로 손색이 없는 필견의 소설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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