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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없는 꿈을 꾸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츠지무라 미즈키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직접 책으로 읽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으면서 말그대로 위시리스트에 최상위권을 지키는 작가였습니다. 이번에 작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단편집 <열쇠없는 꿈을 꾸다>로 처음 만날 기회가 막상 찾아오니 드디어라는 기쁨과 설레임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웃분들중에서도 작가의 열렬팬들이 많았던 관계로 누군가의 완소작가는 항상 동경과 호기심으로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고 싶은 이유도 상당부분을 차지하구요. 이 단편집에는 <니시노 마을의 도둑>,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 <기미모토 가의 유괴>까지 총 다섯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니시노 마을의 도둑>에서 미치루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어른이 되어 다시 우연히 사회에서 만납니다. 어릴 적 동창생 '리쓰코'는 마을에서 손버릇이 나쁜 엄마를 둔 이유로 세간의 곱지않은 눈초리에서도 묵묵히 생활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리쓰코는 어느날 문구점에서 지우개를 슬쩍 하다 미치루에게 들킵니다. 그 어미의 그 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인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서로의 사이는 급격히 멀어집니다. 원래 친구의 친구였기때문에 절친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들은 소문만 무성한 채 제 갈길로 가면서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회인으로 만나기 전 한 번 우연히 만난 기억을 떠올립니다. 여자들만의 우정은 어떤 색깔과 기억으로 남아있는걸까요? 엄마가 도둑질하다 들킨 일을 친구에게 눈물을 쏟으며 사죄했던 리쓰코는 부끄럽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해도 정작 '나'는 편견을 안고 마음의 빗장을 닫아버려 더이상 친구로 남을 기회를 놓칩니다. 손을 내밀어 따스하게 안고싶은 마음을 굴뚝같이 쏟아내지 못한 아쉬움 속에 각자 어른이 되어버린 동창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박제가 된 저만의 친구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새마을 공공상호공제 지부에 근무하는 쇼코는 소방단원인 동료인 오바야시가 자신을 좋아했다고 철썩 믿지만 정작 자신의 눈높이에 못미치는 그 남자를 혐오하며 싫어합니다. 그런데 쇼코의 마을에 방화가 일어났는데 그 남자를 용의자로 의심하게 되죠. 혹시 내가 보고싶은 마음에 조사차 방문시키 위한 꿍꿍이가 아니가하고 말입니다. 예전과 달리 사회적으로 제적으로 지위가 향상되면서 더이상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저울질할만큰 가치관이 변해버린 젊은 아가씨들의 내면에는 나란 존재는 소중하다는 자존감이 은연중에 배어있다는 걸 충분히 감지합니다. 귀엽고도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공감할 만한 스토리가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입니다.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은 결코 이루지못할 망상에 젖어있는 한 남자와 그의 곁에서 맴돌며 더이상 진전이 없는 관계에 질려하면서도 마지막 미련의 끈을 놓치못하는 한 여자의 로맨스가 인상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으로 거듭나주기를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끝내 절망하여 분사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꿈은 스스로 꾸어야지, 대리만족이라는 의지의 부족에 기대어서는 안 될 선택임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주인공인 미쿠의 극단적인 선택이 서두의 미스터리가 어떠한 비극적인 원인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은 여운이 남음과 동시에 나 자신이 바닥이 보이지 않은 지하세계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절절함이 느껴지는, 이 책의 대표적인 단편으로 손꼽고 싶습니다.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의 경우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임팩트없는 작품이었으며, <기미모토 가의 유괴>는 어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자연스런 모성애의 발동인지, 피할 수없는 숙명의 굴레인지 되묻게한다는 점에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엄마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의 공허한 눈빛이 연상됩니다. 이상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다섯명의 여 주인공들을 통해 여자들만의 섬세하고 미묘하게, 때로는 전혀 이해하기 힘든 심리세계를 남자의 시각에서 훔쳐본 감상이었습니다. 여자들이라야 틈새를 놓치지않고 공감대에 볼트를 단단히 조이겠다는, 또다른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들일 것 같으면서 비록 열쇠없는 꿈을 꾸고 있지만 꿈이 없는 인생보다는 구체적인 방향 설정이 가능하겠다는 전망도 해 봅니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것이 죄가 아니라면 그래도 꿈을 꾸는 것이 훨씬 행복하겠죠? 암튼 반가웠어요! 츠지무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