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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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애를 전에도 찾았어요. 그러니 다시 찾아줘요."

"나 한테 빚졌어요. 패트릭." 

 

나는 분명 할 바를 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지배한 건 반박이 아니라 분노였다. 모호하고 비논리적이면서 지난 12년 동안 점점 더 깊어지기만 했다. 

 

12년 전 내 판단은 틀렸다. 4400일이 지나는 동안 난 매일 그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판단은 옳았다. 아만다를 납치범들에게 남겨주었다면, 아무리 잘 돌봐준다해도 납치범들일뿐이다. 그녀를 되찾은 후 4400일동안 이 이론 역시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럼 뭐가 남는거지? 지금도 내가 잘못했다고 믿는 아내. 

 

"아저씨가 원하는 건 면죄부예요. 그래서 스스로 양심이 깨끗한 성직자를 찾는 거죠. 그런 성직자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널 왜 집에 데려다줬냐고? 그건 상황 윤리냐 사회 윤리냐의 문제야.

내가 사회 윤리를 택한 거겠지."  

 

언젠가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다해도 그 일을 막기엔 나 자신이 너무도 무기력하다는 불안감이 내 삶을 장악해, 이따금 세 번째 팔처럼 가슴 한가운데에서 자라날 것만 같았다. (본문 중에서)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으러 돌아 왔습니다. 켄지와 앤지는 결혼을 해서 지금 네살배기 어여쁜 공주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아서 두하멜 스탠디포드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부족한 수입원때문에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는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지요. 그래서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쨍하고 해뜰 날을 꿈꾸는 불확실한 미래를 기약중입니다.  

 

어느 날 새벽 3시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은 12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마음 한 켠에 꾹꾹 눌러담았던 기억의 편린을 끄집어내게 합니다. 납치당한 소녀 아만다를 찾아내어 친모에게 돌려주었던 그 사건. 그녀가 다시 실종되었다며 이모 베아트리체는 켄지에게 다시 찾아달라고 요청합니다. 12년전 사건은 켄지와 앤지 부부에게는 당시 둘 사이를 갈라놓을만큼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었지요. 엄마로서 최악이었던 친모 헬렌대신 아이를 제대로 키워줄 양부모에게 맡겨야된다는 앤지의 주장을 묵살하고 아무리 부모가 잘못했다해도 제멋대로 아기를 훔쳐, 제멋대로 아기를 키울 수 없으며,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켄지의 판단은 결국 아이를 친모에게 돌려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12년의 세월이 흘러 켄지도 앤지도 화해하여 그들도 딸을 둔 평범한 부모가 되었지만 켄지에게는 결코 잊혀진 과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만다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끝내지 못한 변비같았으니까요. 그렇게 12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아만다는 이제 열여섯의 여엿한 숙녀가 되어있었고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하던 친 엄마 헬렌과 그녀의 새 남편 케니는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정서적 학대로 인해 고통받으며 세상으로부터 구원받길 기다리는 친구 소피와는 반대로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하는 모범생으로 신망을 얻던 아만다는 세상의 게임에 적극 대응할 줄 아는 당차고 억척스러운 소녀로 성장해있어서 <가라 아이야 가라> 이후 아만다의 삶이 궁금했던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말 다행이었던거죠.

 

하지만 삶의 질곡 속에 짓눌려있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던 아만다 역시 다른 또래들처럼 올곧게 자랄 수 있는 가정환경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었나 봅니다. 켄지와 앤지가 수소문 끝에 찾아낸 아만다는 과거 자신이 겪어야했던 삶의 행보를 답습이라도 하듯 유사한 상황에 놓이면서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고 말겠노라며 투쟁을 다짐하는 아만다는 사실상 이번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건의 발단이자 종결까지 그녀가 좌지우지 하니까요.   

 

사실 켄지와 앤지는 이번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한 것이 없습니다. 젊은 시절 같으면 혈기와 치기로 악에 맞서 총질해대며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무모한 커플이었겠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이들도 끝내 순응할 도리 밖에 없습니다. 나이 먹어 몸은 안 따라주지. 벌어먹여 살려야 할 딸을 생각하면 몸을 사려야 합니다. 특히 켄지의 딸내미 가브리엘라는 나무 얘기를 수백번도 더하고 얼꽝 부바 아찌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천하의 켄지도 아빠에게 안아달라며 안기는 아이 앞에 딸 바보 아빠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일테고 평생 처음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연민을 느낍니다. 분노대신 화해의 길을 진정 모색하는 것이죠. 이제 두 사람 모두 날이 많이 무뎌졌습니다. 예전의 모습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그렇기 때문에 앤지도 부바도 역할이 미미했던 것이고 대신 켄지와 아만다의 재회를 통해 12년 전 사건에 대해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상하는 자리로 대체됩니다.

 

아만다는 켄지가 친모에게 돌려주었던 행동을 원망했고 켄지는 미안해하면서도 딜레마가 낳은 아이러니임을 강조하며 어쩔 수 없었노라고 화답을 하는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와중에서도 분명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할 인생 설계 앞에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둥 아만다의 기지로 범죄사건이 해결되면서 동시에 이 시리즈가 종착역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6편이 나오는 동안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매력과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던 유머, 그리고 하드보일드한 액션 속에서 때론 짠하고 때론 분노하며 때론 눈물도 흘리면서 깊은 정이 들었던 걸작 시리즈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네요. 켄지와 앤지의 쓸쓸한 은퇴, 부바의 여인 간의 로맨스의 싹이 움터면서 종결을 고합니다. 그동안 행복했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화려한 문체와 조영학 역자의 깨소금같은 번역 덕분에요.   

 

bye bye 패트릭 켄지, 앤지 제나로(이쁜 딸 잘 키우삼 

  bye bye 최종살인병기 부바 로고프스키(신규사업이 번창하기를, 그리고 청춘사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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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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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절망"이라는 단어는 "1.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버림. 또는 그런 상태. 2. 인간이 극한 상태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함을 깨달았을 때의 정신 상태"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습니다. 다른 의미로는 동음이지만 한자표기가 다른 것으로 "간절히 바라다." 라는 뜻도 있죠.  

 

<절망노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의미가 조금씩 믹스되어 학교라는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악순환과 한계점에 도달한 피해자의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집요하리만치 파고 들어가는 미스터리라고 하겠지요. 아버지는 존 레논을 추종한 나머지 음악에 미쳐 가족의 생계에 무관심한 무능한 가장, 어머니 또한 남자 잘못 만난 죄로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나서 답답함을 안겨주는, 역시 원망스러운 사람. 게다가 아버지란 사람은 자식의 이름을 존 레논의 아들 이름을 따서 짓는 바람에 "다치가와 숀"은 졸지에 "다치('서다'라는 뜻)"와 "숀('소변'의 줄임말)"의 합성어가 되어 "다치숀(서서 소변을 보는 사람)"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변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제 숀의 분노와 원망은 깊어만 갑니다. 

 

어눌한 말투에 비호감적인 외모나 성격, 왜소한 체격이라는 악조건을 모드 갖춘 숀은 그야말로 또래 아이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그중에서 고레나가라고 불리는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으며, 체격도 커서 선생님을 비롯하여 같은 반 아이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는 실세입니다. 그런 녀석과 똘마니들은 친구라는 미명하에 숀에게 폭력을 가하고 가학적인 장난을 치며 갈취까지 합니다. 숀은 괴롭다 못해 담임 선생님께 호소하지만 이미 고레나가는 모두에게 호감가는 학생으로 인정받고 있던 터라 누가 봐도 찌질한 숀이 모함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죠. 오히려 고레나가같이 성격 좋은 아이와 어울리다 보면 숀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가 절망이다 보니 삶에 대한 희망은 내려놓은 지 오래이고 자신의 나약함을 자학하다 우연히 학교에서 주운 돌을 "오이네프기프트 신"으로 명명하고 절절한 소망을 빕니다, "고레나가를 제발 죽여 달라고"요. 그것을 "절망노트"라는 곳에 일기형식으로 써서 매일 매일의 괴로움을 함께 기록합니다. 그런데 신은 진정 있었던 것일까요? 고레가나가 죽습니다. 절망노트의 존재를 알고 숀을 용의자로 의심하던 다른 아이도 연달아 죽습니다. 그 죽음들은 신의 천벌이라고 믿고 싶은 숀의 마음을 둘러싼 슬프고 안타까우며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그런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가해 관련자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트릭들은 웬만하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라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았지만 우타노 쇼고가 반전의 대가답게 숨겨놓은 진짜 반전은 평소 추리실력이 딸려서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여서 놀랐습니다. 물론 뒤늦게 복선을 암시하는 단어가 중간에 들어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당연하다고 믿어서 그대로 흘려버린 현 상황에 비틀기를 시도했던 것입니다. 새삼 진실은 편견 없이 균형된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나무가 아닌 숲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숀 처럼 왕따 당하는 아이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왕따란 것이 없었다가 아니라 왕따 시키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꼴보기 싫으면 차라리 상대를 안했지 일부러 나서서 물리적,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으로서 잘못된 행동에 대한 공분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다른 아이에게는 가차없이 징벌을 내립니다. 못마땅하고 괘씸해서 일부러라도 괴롭히지 않는다면 살아갈 이유라도 없는 것처럼 무차별적이고 잔인합니다. 열린 마음이란 애시당초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아이에게는 짓밟아서라도 자신의 열등감을 대신 해소하려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결말은 막연히 작위적이라고 하기보다 현 세대의 아이들은 전혜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수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부모에게 자식은, 자식에게는 부모는 어떤 의미일까요? 과연 축복일지 로또일지는 불확실합니다. 부모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이런 아이들이 커서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난이 죄가 되고 왕따 문제는 학교에서 출발하여 사회에까지 어어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붕괴된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다치가와 숀이라는 아이는 불쌍하고 가엽지만 한 겨울 삭풍같은 섬뜩한 요기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남이 아니라 우리가 키우는 아이가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 혹자가 그 당시에 혹시 가해자가 아니면 피해자 중의 한 명은 아니었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않은, 일그러진 자화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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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하우스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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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칠흑 같은 밤입니다. 눈의 무게가 옷을 적시며 소년의 무릎과 허리를 부여잡고 맨살을 찢는 동안에 쥐고 있는 차가운 칼과 움켜진 손톱마저 붉게 물들이며 더없이 냉혹한 밤입니다. 소년을 추적하는 고함 소리와 개들이 짖는 소리 속에서 소년은 앞을 헤치며 달아나고 있습니다.

 

흠칫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생긴 동상의 흔적들과 흉터들을 어루만지며 마이클은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사랑하는 여인 엘레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갈 각오가 있는 남자라는 점을요, 동시에 그는 킬러입니다. 이제 그는 킬러의 길을 접고 조직을 탈퇴하여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가 꾸는 꿈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가 속해있는 조직은 오토 케이틀란이라는 수장이 이끄는 범죄조직인데 마이클은 누구보다 탁월한 킬러본능으로 보스의 신임을 절대 얻고 있었습니다. 이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노쇠한 보스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 마이클은 그에게 은퇴를 밝히며 그의 소원대로 죽음을 선물합니다. 평소 아버지의 신임을 독차지하던 마이클을 질시하던 보스의 아들 스티븐과 조직의 일원으로 마이클의 재능을 높이 사서 그가 조직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했던 지미는 그때부터 변절자에 대한 복수를 위해 사냥에 나섭니다. 가까스로 조직의 테러에서 목숨을 건진 마이클과 임신한 엘레나는 마이클이 어렸을 적에 헤어진 남동생 줄리앙을 찾아 그의 양부모인 상원의원 랜들 베인의 집을 방문합니다.

 

마이클과 줄리앙 형제는 "아이언 하우스"라는 고아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기약없는 미래를 포기하며 함께 자랐습니다. 강인한 형 대신 병약한 동생은 항상 못된 아이들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 때마다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 것은 믿음직한 형 마이클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을 못살게 굴던 아이를 살해해버린 줄리앙, 형 마이클은 자신이 동생 대신 죄를 뒤짚어쓰고 추적을 피해 달아납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던지, 그 날은 두 형제를 입양하러온 여인이 있었고 동생만 입양되어 버렸습니다.  

 

엇갈린 운명의 장난이었나 봅니다. 성인이 된 두 형제, 동생 줄리앙은 상원의원의 양자로서 동화작가로 성공합니다. 여전히 나약한 줄리앙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구요. 조직의 보스를 죽인 변절자이자 보스가 남긴 유산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마이클을 추적하는 어둠의 세력들과의 대결의 결말은 원 샷, 원 킬의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마이클의 반격, 조직의 와해입니다.

 

<라스트 차일드>, <다운 리버>에 이어 3번째로 읽은 존 하트의 스릴러 <아이언 하우스>는 존 하트가 가족이라는 구성단위에서 발생하는 부재와 불통이라는 일그러진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고통과 소외, 복원과 구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포맷으로 삼습니다. 대신 서정성이 줄고 스케일이 커지면서 집안에서 칩거하던 소년이 집을 뛰쳐나와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늘어난 액션의 비중이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과격한 스릴이 넘쳐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론 미스터리도 덩달아 소용돌이칩니다.

 

액션은 확실히 이전 작품들에서 만나지 못했던 색다른 형태이면서 신체훼손도 마다않는 잔인한 결단도 보여주어 확실히 효과적인 시퀀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액션 이후에는 미스터리가 그자리의 바통을 이어받는데요. 솔직히 마이클과 줄리앙 형제는 일반적으로 입양이라는 시스템에서는 상식을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나이도 많고 한 아이는 병약하다든지 하는 문제점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대신 입양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형제를 굳이 입양하려고 찾아온 여인 아비게일에게는 비극적인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무조건 이 형제들이어야만 했었던.....

 

그리고 상원의원의 저택 주변 호수에서 잇따라 남자 시체 세구가 발견되면서 경찰과 언론의 집중포화와 관심 속에 줄리앙이 살인용의자로 의심받고 베일 의원은 자신의 입지에 타격을 받을 것에 전전긍긍하고 아내이자 엄마인 아비게일은 아들을 지켜내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운데 배후에 얽힌 진실이라는 미스터리의 실체가 다각적이면서도 복잡하게 얽혀있음이 드러납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스케일이 커졌다고 언급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에는 두 형제를 둘러싼 삐뚤어진 모정과 출생의 비밀, 돈과 결탁한 추악한 밀약, 남자들은 결코 이해못할 여자들의 이상심리 등 스릴러에서 익숙한 소재들을 조합시켜 시종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구축되어있습니다. 여러가지 요소들은 자칫 잘못하면 무수한 가지처럼 산만한 결과를 만들어낼수도 있지만 다행히 이만하면 대접 하나에 재료들을 모두 잘 비벼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이크와 줄리앙 형제가 자신들을 얽어매는 비정한 굴레들에 맞서 엉켜버린 가족들의 관계회복에 고군분투하며 이루어 낸 산물들과 가슴아프면서 슬펐던 유년기의 비극을 사랑이라는 고루하지만 영원한 처방전으로 끝내 극복한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피 흘린 대가는 분명 크게 남겠지만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운 결말을 감정이라는 서스펜스와 액션,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삼위 일체로 찍은 정점이 좋습니다.

 

다만 가족관계의 구원이라는 반복적 주제 대신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존 하트가 눈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전히 유효하지만 언젠가는 자승자박이 될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기작에서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보고 싶다는 것이죠. 대중은 변덕스러운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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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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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아니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여성작가는 기리노 나쓰오밖에 없습니다.

 

다른 여성작가들과는 뭔가 특별한 포스가 그녀에게는 느껴집니다. 결코 달달하지도 않고 어둠 속에서 빛 조차 들어오지 않는 구원없는 세상을 집요하리만큼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세계가 편할리가 없음에도 괘념치 않고 끊임없이 찾아 읽게 만드는 마력의 실체를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오늘도 읽었습니다. <다크> <얼굴에 흩날리는 비>로 시작되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입니다. 두번째 작품인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은 어쩌다 못 읽고 건너뛰었지만 이 시리즈를 계속해서 읽을지는 이번 작품에 달려있습니다. <얼굴에...>는 읽은지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미로의 남편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살했고 다음 남자인 나루세미로의 밀고로 살해죄로 구속 수감되었다가 감방에서 목 매달아 자살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연약하고 무엇인가 소심한 둣한 평범한 여성이었다가 탐정으로 활동하면서 나름 강인한 모습으로 변모했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도 나름 정립된 똑부러진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동안의 공백은 미로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을 필요로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미로 시리즈 3편 <다크>은 이제껏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미로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에 철퇴를 내리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미로와 아버지 무라노 젠조와의 상극의 관계가 고정관념을 들고 요동을 칩니다. 의붓 부녀지간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미로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그야말로 적의에 가득 찬 시한폭탄이었습니다. 어릴적 친부가 죽고 의부가 젠조를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모녀지간을 갈라놓은 원흉으로 미워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나루세의 자살을 숨겼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죽이려 갑니다. 그 자리에서 애꿎은 개를 죽이고 지병이 있는 젠조가 약을 못 먹게해서 죽도록 만드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애정과 존경으로 이어져있을거라는 상식이 통렬히 산산조각납니다. 미로라는 여자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요,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척도로는 그녀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해졌어요.

 

이제 미로는 의붓아버지 젠조의 동거녀였던 맹인 마사지사 히사에와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게이 도모베, 아버지의 동료였던 대만계 야쿠자 데이, 3명의 추적을 받게되면서 우연히 만난 한국남자 서진호를 만나 위조여권을 받아 한국으로 밀입국합니다. 그녀를 쫓아 한국까지 온 히사에도모베를 피해 서진호와 동거하면서 짝퉁 명품을 파는 일을 돕게됩니다. 낯선나라 한국에서의 제2의 서막!!!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부산, 광주,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국에서의 여정은 한국독자라면 주목할만합니다. 서진호가 과거 겪었던 80년대 광주 민주화항쟁, 부산의 산동네 마을 등은 한국사람이라면 살면서 잊지못할 기억들인데 그 점들을 작가는 일본인의 관점에서 충실히 재현내었다고 여겨집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창작한 이유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후속 시리즈에서 이것 이상은 못 만날 것 같은 지옥같은 현실과 내면의 혼돈 속에서 끈이 툭하게 잘려나간 것같은 미로를 지켜봅니다(더군다나 성 폭행당해 아이까지 낳아버린). 최악의 상황에서 일본으로 귀국한 그녀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단절되어 고원무립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탐정이 아닌 하드보일드한 여성으로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그녀에 주어진 과제이자 숙명이 된 것 같네요. 앞으로는 더 어둡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거라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라고 자기 딸에게도 말했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잠재의식 속에는 싸구려 감동에 좌지우지 되지말라는 냉정함 가득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희망을 쥐똥만큼 흘렸을지도 모를 무라노 미로 시리즈에서 이제 더 이상 구원은 없다면 철저히 안면몰수하고 돌아서는 분기점이 이번 작품에서 드러났다고 판단됩니다. 무라노 젠조의 죽음 이후 무라노 미로의 남은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미지수겠네요. 그것을 써내려갈 기리노 나쓰오는 흉포합니다.

 

그 점에서 여전히 매료되고 중독됩니다.

이 불량식품같은 여자의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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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사슬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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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놈이 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난 너보다 더 거친 사람이다. 그리고 너보다 잔인한 사람이다. 넌 지금 내가 아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난 네가 지금까지 꿔왔던 어떤 악몽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다. 내 말을 믿겠나?"

 

한적한 네브래스카의 한 시골마을에 들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방랑자 잭 리처는 술에 취해 환자의 호출을 거절하는 의사를 만나 그를 반강제적으로 차에 태워 환자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의사가 치료한 환자는 남편에게 얻어맞아 코피가 멈추지 않던 던컨 일가의 며느리 일리노어였고 이에 열받은 리처는 남편 세스 던컨을 찾아가 응분의 주먹을 먹입니다. 단순히 가정폭력에 개입했을 뿐인 것 처럼 보였던 이 행동은 던컨 일가의 대장인 세스의 아버지와 삼촌들의 분노를 자아내며 곧 바로 수하들에 의한 보복과 맞닥뜨립니다.

 

하지만 던컨 일가의 보복에 힘으로 제압하는 리처의 무력시위에 위기감을 느낀 던컨 일가는 리처를 제거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리처리처대로 이 마을은 던컨 일가가 농산물 운송사업의 장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을 통제하고 복종을 강요하며 군림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25년전 마을에서 어린 소녀의 실종사건이 있었고 모두 던컨 일가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의심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미제에 빠져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있음을 추가로 알게 됩니다. 던컨 일가에서 감지되는 악의 기운과 그들에게 굴종당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소녀의 실종에 얽힌 미스터리가 교차하면서 리처는 정면돌파하여 악을 처단하고자 던컨 일가에 맞서 대적하게 됩니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출간된 잭 리처 시리즈의 신간 <악의 사슬>은 전작 <하드웨이>에서 쓴 맛을 안겼던 표지의 실패의 만회를 염두에 둔 탓인지 시리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이미지(개인적으로)의 표지로 탄생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제목부터가 작가명대신 캐릭터를 내세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왔더군요. 덕분에 구매욕구의 충동이 생기면서 한동안 멀리했던 잭 리처 시리즈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잭 리처는 소속이 없고 독립적이어서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으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떠돌이지만 찰나의 호기심과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투철하고 확고한 신념때문에 항상 위험한 상황에 빠져듭니다. 옳은 것을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늘에 놓여있는 약자들의 고충을 대변하고 불의를 앞세운 강자에게는 철저히 힘으로 응징하는 인물이죠. 그렇지만 그를 다시 만난 텀이 길었던 탓인지 리처의 대응방식도 많이 냉혹해진 것 같습니다. 예전같으면 이 정도에서 손 봐주고 끝을 냈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기어이 총알을 박아 넣습니다. 인정 사정 봐주지 않고 손속이 잔인해진 면도 있는데 그만큼 통쾌하고 후련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오히려 악의 세력들은 자신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는 내분 덕에 먹이사슬이 꼬이면서 리처의 수고를 덜어주는 어리석음도 보여줍니다. 옳고 그른 일에 관해서는 한 치의 균열도 발생하지 않겠지만 불의에 관해서는 의리나 원칙같은 것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항상 상대방의 뒷통수를 치려고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탓에 사슬은 느슨해지면서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그 빈틈은 확실히 호재였습니다. 그리고 심리 스릴러가 아닌 액션 스릴러 계통이기에 글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인 역동성의 쾌감은 여전합니다. 더불어 25년전 실종된 소녀에 얽힌 미스터리를 해결하면서 전달되는 안타까운 진실에서 비롯되는 아픔 또한 악을 철저히 짓밣고 응징해야할 절대적 명분을 쌓아 올리는데에 성공했다고도 보여집니다. 던컨 일가에 대한 처단은 결말이 예상가능하지만 "그래, 그렇게 끝을 내야하는거라구" 라며 주먹을 불끈 쥐게 하지요.

그런데 <하드웨이>와 함께 지난 달 개봉한 <잭 리처>의 후속영화로 <악의 사슬>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잭 리처>의 원작인 <원 샷>보다 영화화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그가 가는 곳마다 먹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살이 내려쬐는 따뜻한 봄이 있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만인 것 같습니다. 잭 리처는 자주 만나기보다 한번씩 읽어주면 깊이는 없지만 시원시원 맛에 다시 찾게되는 그런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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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ungi2003 2013-02-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차일드의 글은 읽기 편합니다. 악의 사슬은 종전과는 조금 다른듯하여 즐겁게 보았습니다. 여행길에 들고가기를 강추합니다.

유마 2013-04-07 19:26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