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9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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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메다는 지금도 여전하지요?”  

 

솔직히 처음에는 의아했었다. 왜 문동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이 포함된 것일까? 라고 말이다. 같은 문동의 블랙펜 클럽시리즈로 미미 여사의 솔로몬의 위증이 때마침 내 수중에 같이 들어오다 보니 그러한 의문점은 뭉게뭉게 피어올랐던 거다. 세계문학전집에 일본 추리소설이라니.... 아마도 그 이유로 인하여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이 커졌으리라.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새벽, 전차 조차장에서 한 남자가 얼굴이 뭉개진 시체로 발견된다. 전차가 이를 모르고 출발했었더라면 시체의 훼손이 어떠했으리라 불을 보 듯 뻔했다. 시체의 훼손 상태를 두고 보더라도 잔혹하기 그지없으며 피의자의 원한이 상당했으리라 짐작될 뿐이다. 경찰은 전날 밤 인근 술집에서 죽은 남자와 또 다른 남자 일행을 보았다는 목격담으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실마리의 가닥은 잡히지 않는다. 겨우 알아낸 단서라고는 불확실하지만 도호쿠 지역 사투리를 쓴 것 같았으며 대화중 가메다라는 단어가 있었던 것 같았다는 증언뿐. 사건은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미제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마니시 형사만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수사를 계속해 나간다. 하지만 관련된 인물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최초의 단서인 가메다도호쿠 사투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적 변수를 드러내며 도달한 진실에는 "그것"이 숨어 있었다.

 

이 소설 모래그릇은 드라마와 영화로 수차례 방영되었다니 일본에서의 대중적 관심과 인기는 상당했었던가 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속도감도 과학수사와도 거리가 먼 그 당시의 수사방식은 몰입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지 특산품으로 주판을 선물 받는 장면에서는 시대의 초침을 거꾸로 돌려버린 것 같은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이마니시 형사의 집념과 끈기만은 인정해 줄 한데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먼 길을 돌아 돌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결승점까지 당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맥이 빠지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 상황에서 찰나적 단서포착으로 다시 시동을 거는 그의 방식은 좋게 말하면 창의적 수사일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연의 남발, 작위적이라고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떠한 사실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단순히 지식의 나열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각도에서 수사에 필요한 지식을 추출하고 응용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공부 머리가 아닌 일 머리라고 봐야겠지. 그래서 내가 소설에서 설명하는 백과사전식 지식에 멍해 있을 때 그만은 어느 순간 출구를 빠져나온다결국 그가 밝혀낸 범인의 정체도 놀랍지만(개인적으로 범인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의심하도록 만든다.) 그 동기가 중요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동기에 승부수를 걸었다. 그것이 살인의 동기였단 말인가? 그런 이유로 그토록 잔혹하게 살해하였더란 말이냐? 정말 인간이란 존재의 살의에는 몇 가지로만 단정지울 수 없는 다양한 동기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우치다 야스오의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을 읽고 난 뒤의 우울한 기분이랄까, 소감이 똑같이 느껴진다 

 

더없이 일본 전후 시대의 사회적, 구조적 차별과 편견이 낳은 모순에 통렬한 비판과 저항이 담겨 있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대정신에 대한 가차 없는 메스를 들이대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야말로 세이초가 의도했던 방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어도 될 존재는 뻔뻔하게 살아남고 죽어서는 안 될 존재는 보호받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기에 슬프다. 살생부는 누구의 허락 하에 기록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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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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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랜드맨션이라는 단어와 결합하면 럭셔리 아파트화 되지만

실상은 4층짜리 공동주택일 뿐. 입주민도 들어온 지 30년도 더 되는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분양받아 나갈 능력이 안 되거나

얼마 남지 않는 노후를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나가려 않고 눌러앉으려 한다.

여기서는 60대면 청춘이다. 80대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저렴한 임대료만 내고 살던 1관 도로 건너편에는

10층짜리 현대식 2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서 민원의 소지가 발생하는데 바로 일조권 침해다.

제대로 굴러가는 대표자회의나 반상회 같은 거라도 있다면

입주민들이 궐기하고 나서겠지만 여기는 이웃끼리 살갑게 교류

하는 편이 아니라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대체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한 사람만 빼고.

 

닭장 속의 닭들 마냥 문을 걸어 잠그기만 하고

이웃이 나한테 피해만 안주면 개의치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단체행동에 들어가는 일이 없어서 2관은 순조롭게 올라간다.

그동안 이 볼품없는 맨션에 현대 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농축된다.

층간소음, 살인, 절도, 스토킹, 사체유기

공공의 선을 잃어버린 지독한 개인주의가

범죄를 양산하고 이것은 다시 무관심했던 자신에게도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 아뿔싸 진즉에 도움을 청할 걸,

진즉에 잘할 걸, 같은 후회막심이 생긴다.

 

소설이나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질 때가 많다.

일곱 편의 에피소드들은 연작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별로 호실별로 입주민이 화자로 등장하다가

다음 편에서는 다른 입주민으로 화자로 변경된다.

그러면서 이전 에피소드의 각 화자들은 담장을 넘어가듯

주변인으로 재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연결고리로 구축되는 것이다.

 

결국 순서대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 복선이

숨어있고 서술트릭의 대가답게 각 에피소드의 결말에서

움찔하게 만드는 소소한 반전들이 놀랍다.

그래서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읽기를 권장한다.  

 

또한 특별히 눈길을 끄는 요인은 단순히 사회 고발적 성격을

뛰어넘어 미스터리 팬들을 잔잔히 매료시킬 밀실과 시점을 이용한 트릭,

그밖에 다양한 재간 등으로 이 소설이 장르소설임을 상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각개 격파했을 때는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각 호실이 하나 둘 모여 공동주택을 구성하듯이 이야기의 힘과 기술은

전부를 위한 하나였음을 뒤늦게라도 간파할 수만 있다면

진정한 재미를 깨닫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 같다.

성패는 거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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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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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P.9>

 

 

 

황혼기에 접어든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는 올해 예순 다섯 살의 동갑내기 부부이다.

법적으로는 43, 하지만 실제로는 유치원에서 같은 반으로 만나 사랑을 키워 왔기 때문에 사실상 60년을 부부로 지낸 셈이다. 에밀은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를 가르쳤고 정년퇴직 이후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전원생활을 꿈꾸고 싶었다. 때마침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는데 근처에는 똑같은 모양의 집이 한 채 있고 의사가 살고 있다 들었을 뿐인지라 기쁨과 평화가 오래 가리라 믿는다.

 

어느 날 오후 4.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문을 열어줬더니 에밀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그러니까 일흔 정도는 됨직한 뚱뚱한 사내가 서있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게 다반사인 도시의 삭막함과는 달리 거주인구가 백여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이웃끼리 방문하고 교류하는 일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베르나르댕이라는 이 남자는 처음부터 괴팍했다. 에밀이 아무리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그렇소.” 아니면 아니오.” 단답형이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 한번 씩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에밀 부부의 일상은 악몽으로 돌변한다. 이날 이후 매일 오후 4시에 방문해 여전히 단답형의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한 대답 말고는 자신의 주도로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일 없이 저녁 6시가 되면 돌아간다. 왜 그러는지? 무슨 의도로 계속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것인지 도통 속을 알 수 없어 점차 이 남자의 방문은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인내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어떡하든 이 남자의 방문을 기피할 요량으로 일부러 외출도 나갔다가 집에 없는 척도 해보지만 베르나르댕의 방문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랬다간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른데다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무례는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아무 의미가 없다. 베르나르댕의 침묵은 분통터지게 만드니까. 나라면 이런 상황을 겪으면 십중팔구 불면에 두통, 소화 장애, 불안 초조, 분노 조절 장애 등등 갖가지 증세에 시달려 히스테리컬 해버릴 것 같다. 에밀의 훈련받은 이성 대신 막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본성은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아내의 능청스런 보조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폭발해 버렸을 것이다. 점점 우화 같은 첫 분위기가 블랙 코미디로, 다시 괴담으로 변화무쌍한 단계를 밟는 동안 베르나르댕의 아내가 등장한다.

 

에밀과 베르나르댕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결국 타인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놓는 대신 관계 맺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응징을 취함으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베르나르댕의 아내 또한 원인제공자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설득과 타협에 지쳐가는 자아는 침몰하는 배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로 끝맺는 대화는 간결하면서도 속사포 같은 논리를 쏟아내고 전개는 지속적으로 흥미진진하다. 철학적이지만 결코 진중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구성 때문에 아멜리 노통브작풍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다음에도 만나고 싶은 작가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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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이야기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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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 루이즈 페니여사의 2009<냉혹한 이야기>을 읽었다. 그동안 참 기회가 안 닿는다 싶었는데 이제야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만나게 되는구나. 이번이 시리즈 중 다섯 번째 라고 한다. 그리고 루이즈 페니여사를 ‘cozy 미스터리계의 강자라는 말도 있던데 용어가 생소해서 피니스 아프리카에블로그에서 검색해 봤더니 ‘cozy’는 사전적 정의로 아늑한, 친밀한 이런 뜻이고 선정적이거나 잔인한 묘사가 없고 작은 마을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사건을 다룬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드럽고 온화한, 젠틀한 미스터리라는 말이렷다. 이렇게 모르는 미스터리 용어를 하나 배우고 시작해 본다.

 

캐나다 퀘벡 주 스리 파인즈의 숲속 외딴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사람이 건너편에 앉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도둑맞은 물건을 찾으러 군대가 오고 있다는 내용인데 사실인지 신화인지 분간할 길 없는 상황에서 이야길 마친 한 사람은 오두막을 떠난다. 그리고 스리 파인즈한가운데 있는 비스트로안에서 노숙자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그 누구도 노숙자의 신원을 모른다. 외모나 복장만으로 신분을 추측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좀 있다. 노숙자치곤 위생상태도 깔끔하고 치과치료 흔적도 있기에 상식을 벗어난 피해자였다. 얼마 만에 사건이 발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장으로 출동한 퀘백 경찰청 살인반 반장 "아르망 가마슈" 경감조차 시신에 대한 단서를 밝혀내지 못해 난감한 가운데 사건이 미궁에 빠질 법도 하다. 누군가의 일격에 의해 피도 최소한 흘린 상태였고 흉기로 의심되는 도구도 비스트로안에 있는 것도 같고 어두웠던 내부에 불이 켜진 것을 목격한 이는 없는지,

 

 

마지막으로 문단속으로 한 이는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숲에다 시체를 유기했으면 들짐승의 밥이 되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텐데 굳이 사람들 이목을 끄는 공개된 장소에 보란 듯이 버려두고 간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수사에 있어서의 최대난항이다.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 이 사건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 차례차례 용의자로 조사받게 된다. 그런데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올리비에"가 여러 정황 상 가장 큰 의심을 받는다. “가마슈경감이 부관인 보부아르에게 가르친 교훈, 살인자는 과거 오래 전 사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며 앞이 아닌 뒤로 물러나 곪은 상처를 찾아내라는 취지에서 보자면 "올리비에" 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으리란 판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낡은 해들리 저택이 외부에서 온 어느 부부에 의해 스파와 호텔로 리모델링되는 변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해들리 저택비스트로는 영업측면에서 경쟁관계를 벗어나 앙숙으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럽다. 그래서 가마슈경감은 과거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진실과 위선 사이의 거짓말이 분명 또아리를 틀고 있으리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범인은 자신의 인생에서, 마을에서 분명 쫓겨나리라... 누군가는 전전긍긍한다. 친절이란 가면을 쉽사리 벗지 못한 채, 속임수로 모두를 속이고 있는 자는 누구일까?

 

 

어찌 보면 오두막에서 발견된 소로<월든>“E.B 화이트<샬롯의 거미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이야기로부터 파생된 '' 자체의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말이 입을 떠나 상대의 귀에 계속적으로 전달되는 동안, 말은 독소가 되어 마음을 병들게 하고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드물 것이다. 사람의 인생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제목인 <냉혹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살롯의 거미줄을 이용한 트릭도 신선한 발상이었고, 보물찾기와 신화, 암호풀이 등 현대적 요소보다는 고전의 낭만과 향수를 듬뿍 담은 미스터리의 진수를 멋들어지게 담아냈다.

 

탐욕으로 시작해서 이기심이 가세하고 의심이 의심을 낳는 바람에 마을은 공동체의 단합보다는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로 출렁거렸다. 비록 난파라는 최악의 수는 비껴갔지만 완결되지 못한 상처와 여운을 남긴 의혹만이 남는다. 믿어도 되는 걸까? 진실은 회복된 것일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여지를 다음 편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다음 편이 최고 걸작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도 이번 작품의 열린 결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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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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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헤이는 여자라는 성에 뒤흔들렸다. 남자의 내면을 손쉽게 꿰뚫어 보고 약점을 파악해 계속 피해자로 남게 하는 동시에 가해자로 변모하는 여자라는 존재에. 

자신의 아내인 가나미라는 여자는 타고난 날카로운 칼을 지금에 와서는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이들에게 주어진 성() 전략이었다. (P. 268.) 

 

다카노 가즈아키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인터뷰에서 부조리한 현실 문제를 소재로만 그치지 않고 정면으로 파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자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노라고 밝힌 바 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지적인 면에서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을 수도 있으며, 책을 쓸 때에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고려한다고 말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 소설 <K.N의 비극>은 임신과 중절이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할 소재로 주제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싸락눈이 불어 닥치는 어두운 밤에 신사입구를 찾아 계단을 오르는 두 소녀가 있다. 신사 안에서는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있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두 소녀는 막연한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눈보라가 심해지기 전에 되돌아가면서 이날의 일을 모두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한다.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 자리에 오른 젊은 무명 자유기고가 나쓰키 슈헤이는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 덕분에 새 아파트를 구입, 이사하면서 아내 가나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어느 날 가나미는 임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기쁜 마음에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슈헤이는 아직 불안정한 수입과 대출상환금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로 키울 여력이 없으니 차후를 기약하고 중절 수술을 하자고 제안한다. 가나미는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지만 어쩔 수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기로 동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나미에게 다른 여성의 인격이 나타나고 정신과 의사 이소가이가 그녀의 치유를 위해 나서면서 불안과 두려움은 두 부부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분쿄의료대학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소가이는 도다 마이코라는 기혼여성의 상담을 맡았었다. 그녀는 불임이었고 시어머니로부터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모멸과 압박을 받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소가이의 집중관리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뛰어내려 식물인간이 되어버렸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그는 휴직계를 내고 쉬려 했지만 슈헤이의 간절한 요청에 가나미의 정신적 치료를 맡기로 한 것이다 

 

이쯤해서 모성애에 대한 미스터리가 발생한다. 그것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성 특유의 욕구가 아니던가? 부성애로 한데 묶을 수 없는, 절실한 갈망. 임신은 일종의 강박관념인 것인가? 인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공신은 여자들이 아이를 계속해서 출산해왔기 때문에 종족번식이라는 숙명의 달성이 가능했다. 하지만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점차 변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공포, 거부감 등은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는 아이 낳는 기계가 아니라며 반발심리가 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출산율은 떨어지고 인구감소 문제에다 섹스라는 행위는 종족번식이라는 본능이 아니 쾌락이라는 유희로 활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준비되지 않은 임신은 인공임신중절로 이어져 유기되어 살 처분 되는 애완동물보다 소리 없이 죽어나가는 태아들이 훨씬 더 많게 된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부모가 원하지도 않은 아이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성가신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아이도 있는가 하면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아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슈헤이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아이를 포기한다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비윤리적인 처사로 비난하게도 되고,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할 개인적 부담으로 용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심경이 복잡해진다. 가나미의 경우처럼 중절에 동의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정말 낳고 싶다는 절대적 갈망이 또 다른 자아분열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모호한 여성의 존재는 빙의 인격인지 진짜 영혼이 빙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슈헤이의 개인적 판단과 이소가이의 의학적 소견이 충돌하며 정신분석학적 이론이 총 동원된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이다. 그리고 슈헤이를 통해 드러난 숨겨진 과거는 생명이란 어떠한 이유로도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이기에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슈헤이의 내면의 변화와 결단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하다. 그리고 가나미의 또 다른 인격의 정체에 대해서도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예상이 결국으로 마감 짓는다. 그리고 또 예상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결말에 도달하기 전에 벌여놓았던 판을 잘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갈등은 모호하게, 흐지부지하게 덮어버리는 일에 급급했다. 허탈한 마무리에 그나마 달궈 놓은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급속도로 식어버리는 분위기는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어차피 전형적인 시나리오대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 정도는 반전을 내놓던지 공포라도 집중 부각시키던지 했으면, 아니면 미스터리에 대한 논리적 해결이라도... 전혀 준비된 것도 없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한 꼴이다. 

 

가나미의 불안한 심리상황에 대한 호기심만 부추기고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성교육 홍보는 순진하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도덕적 불감증에 대한 비판과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준비된 마음가짐까지 교훈에 대한 강박증만이 남고 재미라는 양념을 빠뜨렸으니 싱겁기 그지없구나. 섣부른 기대는 절대 금물, 다카노 가즈아키의 명성에 기대기에는 플롯이 너무 부실하다. 훅 불면 그냥 날아가 버릴 것 같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두에서 인용한 저 문구는 남자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라는 것이다. 여자라는 존재는 남자에게 여신일 때도 있고 미스터리하면서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니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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