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차일드
팀 보울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도서 증정이벤트에 응모했다가 덜컥 당첨되어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당첨의 기쁨을 뒤로 한 채, 작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팀 보울러는 처음 접해보는 작가인데 국외에서는 생각보다 큰 유명세를 얻고있는 작가인 듯 싶었다. 청소년 문학계의 가장 참신한 작가라고 평가받고 있다는데 우선 책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외딴 도로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해 쓰러진 주인공 소년 윌은 천신만고 끝에 구조를 받고 살아남지만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 주위 사람 모두를 기억할 수 없는 윌에게 핏빛 바다과 함께 검은 머리칼, 푸른 눈동자의 소녀가 계속해서 나타나 자신에게만 보이면서 마을에 무엇인가 끔직했던 일이었다는는 걸 무의식 중에 느끼게 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친 아이로 배척당하게된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핏빛 바다와 소녀의 환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괴한들로부터 생명의 위협마저 받게 되는데... 과연 이 마을에 어떠한 일이 있었던 걸까?  사고 현장에서 본 묘령 소녀는 누구이며, 핓빛 바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어떠한 비밀이 숨어있는 걸까?  

 

결말을 나름대로 추측하며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소년 윌이 숨겨진 진실을 캐기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 마다 그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마침내 밝혀진 결말은 어른들의 추악한 욕심이 아동범죄의 희생양을 만들었고 그 원통함을 소년 윌을 통해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왠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원혼의 한풀이 같기도 하다. 

 

자극적인 소재의 각종 스릴러들을 잔뜩 섭렵하고이 시점에서 이 책의 소재 결말은 상대적으로 진부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읽던 중간즈음에 이미 결말에 대한 예상이 가능할 정도로 뒷통수를 후려치는 충격적인 전개나 반전은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보이는 환영들에 대한 묘사가 반복되면서 지루하기까지 한 것도 사실이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이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던 같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개의 서명 셜록 홈즈 전집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홍색 연구>로부터 7년이 흘렀다. 범죄가 있어야 물 만난 고기가 되는 홈즈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왓슨과 함께 관찰과 추리의 차이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홈즈가 설명하는 둘의 차이점은 들어도 여전히 헷갈리지만 어쨌든 다르다. 그 때 젊고 매력적인 메어리 모스턴이라는 아가씨가 소문 듣고 찾아 왔다며 자신이 겪은 사건을 들려주는데...그녀의 직업은 가정교사이고 인도에서 군인으로 복무하셨던 아버지가 휴가차 런던으로 오신다는 전보가 도착했고 당일 약속시간에 맞춰 만나러 가니 아버지는 안 오셨다고 한다.

 

 

그렇게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알 수 없어 애태우던 딸에게 수년이 지나 현재까지 발신인을 알길 없는 진주가 계속 배달되어 왔다. 그래서 이 미스터리를 풀어주십사고 두 남자를 찾아왔던 것이다.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홈즈는 의뢰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사건을 조사한다. 그런데 진주를 보내준 사람을 찾아 사연을 듣고 그 사람의 형에게 같이 찾아가는데 남자의 형은 자신의 집에서 의자에 앉은 채, 죽어있었다.

 

 

살인 사건의 배후에 감춰진 과거의 진실들을 밝혀나가는 와중에 드러난 인간의 물욕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족을 몰라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에서 서로를 증오하고 죽고 죽이는 상황들은 살인을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의 합리화로 변질되어 버린다. 그렇게 해서 네 개의 서명은 배신을 증명하는 신호탄이었다.물론 제 밥그릇 뺏겨서 억울한 쪽에서는 무엇이 잘못된 거냐며 항변의 소지가 있겠지만 가정이 결과를 옹호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어쩔 수 없음에 체념하게 되는 마지막 회고담은 약간 안타까운 심정이 조금 들기는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건 왓슨의 사랑이다. 뜻하지 않은 전개 덕에 그녀의 사랑을 얻었으니 훈훈한 해피엔딩에 잠시 즐거웠다. 비록 셜록 홈즈에게 오명을 덧씌우는 약쟁이의 모습, 게다가 그 행위의 합리화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결국 건전생활은 이 남자의 길이 아닌 듯싶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홍색 연구 셜록 홈즈 전집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박상은 옮김 / 문예춘추사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추리소설을 읽지 않던 시절에도 내겐 언제나 명탐정은 셜록 홈즈였고, 추리소설의 효시였다. 성인이 되어 이 계열의 소설을 읽고 있지만 정작 셜록 홈즈 시리즈를 정식으로 접할 계기가 없었으니 이후에 읽은 것들은 외전 격에 해당된다 문예춘추사에서 완역본으로 이 시리즈가 출간되고 보니 이번에야말로 전체까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단 몇 권이라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이다.

 

 

일단 첫인상이 중요한 법, 표지가 맘에 든다. 홈즈와 왓슨을 실루엣화한 표지에 셜록 홈즈의 영문 제목이 화려한 붉은 색으로 강렬한 포인트를 잡고 있어 단연 눈에 확 들어온다. 주석도 이만하면 무난한 편이라 적은 분량과 더불어 시간에 쫓기는 일 없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시리즈의 첫 출발에서는 왓슨이 홈즈와 본격적으로 동거하게 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육군 군의관 출신의 왓슨은 제2차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다가 왼쪽 어깨뼈에 총상을 입는다

 

 

부상병이라 영국으로 송환되어 휴가를 명받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저렴한 집을 구하다가 옛 동료로부터 존 베이커가에 하숙집을 소개받는다. 단 하숙비 분담 차원에서 동거인이 필요했는데 셜록 홈즈라는 기이한 남자이다. 해부학과 화학에 능통하지만 문학지식 제로, 철학지식 조금, 천문학 지식 제로, 정치학 약간, 식물학도 부분적 해박(마약류 등) 등등 왓슨이 분류한 지식 범위표를 보면 이 남자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놀랍기도 하거니와 무지하기도 한 홈즈의 자기변호는 명쾌하다. 필요한 지식만 취사선택하여 머리 속에 저장해둔다는 것, 어쩌면 실사구시의 원칙에 다소 벗어난 것 같기도 하고 충실한 면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특별한 사건들이 마그마구 일어나야 두뇌에 기름칠하며 대활약을 펼칠 무대가 마련된다며 사건추리를 살아가는 소명으로 삼기에 런던경찰국의 그렉슨 형사로부터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아마 날아가는 기분이었겠지.

 

 

제목인 진홍색 연구는 인생을 실 뭉치에 비유하고 살인은 그 실 뭉치에 섞인 진홍색 실이므로 풀고 분리하여 그 부분만 세상에 드러내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문제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추리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추론의 과학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심증이 아닌 증거를 기반삼아 논리를 이끌어내고 반복 숙련된 데이터가 항상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면 번개처럼 뛰쳐나오는 그 순발력에 감탄했다.

 

 

 

대신 관찰과 추리의 차이점을 예시로 들며 눈으로 보고 그치고 마는 일차원적 반응을 뛰어넘어 필요충분조건을 반드시 성립시킨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사건의 동기를 설명하는 대목에 있는데 명탐정의 입을 통해 듣기 보다는 액자구조 같은 형식으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반적인 경위를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집중 않으면 다른 단편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장면 전환이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까닭이기도 하거니와 동기 그 자체에 얽힌 진실을 듣고 나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왜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악을 징벌하는 또 다른 얼굴의 악. 동정할 수 없게 만드는 미련이 남으니 인간이 인간답게 배려 받지 못해 생기는 증오는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추적하여 죄를 묻고 마는 그 집념과 끈기는 무엇보다 간담을 서늘케 했고 그 우직함에 감동받는다. 이번 사연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홈즈의 추리를 빛바래게 할 만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신. 처음에는 이산으로 보였었다. 흐흠 그럼 정조 이산에 관한 이야기인가? 아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분명히 이신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이었어, 라며 제목의 의미를 책을 통해 확인하니 한글로는 뜻을 알 수 없고 대신 한자로 표기했을 때만 속뜻이 분명해지는데.여기서 이신은 청나라 황제의 칙사, 조선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황제의 오른팔이다. 황제의 나라가 명에서 청으로 바뀐 제후국 조선에서 이신은 아버지가 폐주 광해의 내금위장이었고 아버지는 반정의 무리에 맞서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역도의 자식이 지금은 조선을 감시하는 칙사라니 운명의 장난도 이만하면 지나치다고 해야겠다.

 

또한 이신의 과거를 제대로 아는 이가 조정에는 없다. 이 당혹스런 결과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 못하고 구시대의 유산에만 답습하기에 급급한 임금과 조정신료의 우매함에서 비롯된 것일테다그랬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광해는 중원의 맹주가 교체되리란 예감에 여진과 명을 오가는 실리외교를 펼쳤고 국방강화에 힘써 장차 닥칠 화를 미리 방비하고자 했으니 임진년에 있었던 전란을 몸소 겪은 바 있던 광해의 행보는 선견지명이라는 혜안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이 같은 급진적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광해의 패륜을 빌미삼아 반정을 일으켰고 새로이 정권을 잡은 인조와 서인세력은 새로운 강자에 맞설 힘도 없이 후금을 오랑캐라 무시하는 간 큰 짓을 벌이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결국 터진 병자호란,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위정자들은 임진년 전란의 추태를 반복하더니 척화파의 주장대로 삼전도에서 백기 투항하는 치욕을 맛보게 된다.도무지 위정자란 집단은 학습능력이란 게 애시 당초 없나 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며 지들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다가 명나라에 대한 사대만이 명분의 우선순위가 되어 실리추구에 대한 기본적 상식과 개념, 더 나아가 죄의식이 없기에 백성을 버리고 전란에 피신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그까짓 허울 좋은 대의명분이 무엇이라고, 그까짓 자존심이 무엇일진대, 힘도 기르지 못한 채, 얻어터지면서 백성들만 사지의 고통으로 내몬단 말인가? 이신은 고통 받은 피해자 중 한사람이었다.

 

무려 50만이나 되는 수많은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갔고 포로였던 이신은 중도에 아내와 이별하게 된다이신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우여곡절 끝에 청 황제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손에 넣었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죄를 저질러 징계 차원에서 조선의 칙사로 파견된 것인데 황제의 눈에 들기까지의 과정은 조선의 위정자들의 시각에선 명에 대한 배신이자 오랑캐의 수족에 불과한 불충한 행위겠지만 이신은 어떡하든 살아남을 필요가 있었다.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야만 했고 징벌형인 칙사역은 오히려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피해자에게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된, 아이러니였다.조선인이 청 황제의 칙사가 되어 돌아오자 조선의 조정은 전전긍긍하며 각자의 속셈에 주판알을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

 

행여 청 황제가 자신을 입조할까 불안에 떠는 임금, 이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자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 임금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역도의 무리들, 이신의 권세에 빌붙어 아첨하려는 자들... 세상은 이신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지만 뒤에서는 시커먼 속내를 품고 있는 버러지만도 못한 위정자들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신은 분노로 복수의 칼을 간다. 칙사라는 신분을 활용하여.아내는 살아있으면 아마도 환향녀 소리를 들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이다. 흔히 화냥년이리고도 하는 호칭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갖은 고초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데들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한다.

 

나라가 힘이 없어 적국에 끌려가 씨받이가 되는 등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상황을 겪어야만 했던 이들이 오히려 모국에서 상처를 치유할 위로와 배려를 받기는커녕, 오랑캐에게 더럽혀졌다는 이유에 이혼과 자살, 심지어 타살까지 당하는 야만적 위협에 많은 희생을 낳았다. 이쯤하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 파렴치한 위선에 치가 떨릴 지경이다. 언제나 힘없는 백성들만 고통을 겪지만 위정자들은 인면수심의 집단들이라 소리 없는 울음은 소매를 적시고 망자의 한은 구천을 떠돌 뿐이다. 이신이 느끼는 분노는 백성들을 대변하며 그가 꿈꾸는 복수는 한 맺힌 칼끝이 되어 목젖을 직접 겨누게 될 때 응축된 울분을 해소시키려 하여 통쾌할 뻔했다.

 

대리만족이란 이런 것이다. 비록 복수의 칼날이 피를 보는 대신 이생의 지옥을 사무치도록 겪게끔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결말이 아쉽기는 하나 숨소리가 들릴 지척까지 칼날을 들이댄 것만으로도 인정해야만 하겠다. 더 과감했다면 좋았겠지만 어차피 목이 떨어져도 세상은 변하지 않음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같은 참담함이 마지막이 아니라 수백 년 후 다시 겪게 되리란 걸, 2의 환향녀는 현재에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걸, 그 같은 데자뷰는 작년에 출간된 한승원 작가의 <겨울잠, 봄꿈>에서 겪었었는데 그렇다면 올해는 바로 이 소설 <이신>에서 폭풍 같은 흡입력을 통해 느껴보기를 바란다. 무엇을 깨닫고 반성해야하는지를, 그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한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

 

 

요즘 젊은이들은 그 나이대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히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왜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느냐는 한탄을 덧붙여서 꿈을 찾고 목표를 세워야한다고 역설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니 내게는 꿈이 있었던가 라는 자문에 금세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 하긴 꿈의 설계가 먼저 성립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훌륭한 설계도만 가지고 완성된 건축물을 볼 수 없듯이 물음을 통해 답을 구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하겠다. 그러기에 앞서 지레 겁을 먹고 실패에 좌절하고 결국은 자포자기하는 부끄러움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작은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 책을 만난다

 

 

한동일씨는 바티칸의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이다. 최초의 한국인이자 두 번째 아시아인이며,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타 로마나의 930번째 변호사라고 한다. 최초가 어쩌고하는 부분에서 엄지손가락을 잠시 치켜세울 수 있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로타 로마나라는 곳은 여전히 생소하기에 낯설음에서 책의 여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 곳은 어떤 곳인가? 교황이 상소를 받기 위해 로마에 설치한 상설 법원으로 전 세계 천주교회의 민형사상 소송을 맡아 처리한다고 하는데 각국의 대법원에 진행되는 소송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과정은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 것일까?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연수원에서 기본적으로 판례나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을 라틴어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어공부도 만만치 않은데 세계적으로 공용되지 않는 언어, 즉 사어에 가까운 라틴어를 오직 로타 로마나에서만 교회언어의 수호차원에서 사용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어려운 배움인가! 라틴어가 그만큼 배우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간혹 들어봤는데 영어삼매경에 빠진 우리들에게 정말 난해하고 생소한 언어영역임에는 틀림없다.

 

 

저자도 오히려 영어공부가 쉽다고까지 하지 않던가 말이다. 게다가 수적으로 드물었던 동양인, 더군다나 한국인이란 사실은 현지 적응하는 데 있어서 꽤나 힘들었을 테고 인종적 편견 극복은 결과적으로 힘들었을 게다. 일화로 드는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긴 경기 결과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던 경우는 공부도, 한국인으로서의 삶도, 그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았음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그런데 저자는 성공의 비결이 자신의 영특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좌절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전달하려 하는데 자신의 실패담에서 타산지석을 삼으라 한다.

 

 

여기에는 꿈의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틈나는 대로 학업에 쏟아 부은 열정이라는 땀이 있는데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오기와 노력이 똘똘 뭉친 단 하나의 결정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특별한 학업성취기는 없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면 다음 스테이지로 도전하는 벽돌 깨기 식 성공담이다. 대신 그의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삐뚤어지지 않도록 올바르게 커나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 힘써주신 부모님과의 일화는 언제 읽어도 찡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가족의 부양에 지렛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버지지만 아들에게 밤하늘의 별을 통해 가슴을 펴고 원대한 꿈을 가지도록 가르침을 전하는 대목은 일상의 고단함을 올곧은 자신감으로 바꿔놓는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훗날 아들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위험과 실패를 무릅쓰고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선박의 키를 움켜지고 자신이 원하는 항구로 방향을 맞출 줄 아는 진정한 마도로스가 된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는 건 망망대해에서 최소한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나침반 같은 역할을 기대할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부하지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아직도 믿고 싶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