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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읽는다는 소비 행위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일용한 양식거리를 제공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경외심을 늘 갖고 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다니는 말들을 잡는 것이라고. 그리고 소설가란 마음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고, 그 괴물을 키우면서 작가가 되고, 그 괴물에 잡아먹힐 때 자살한다....”라는 책 속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하지요.
추상적인 형태의 감성들을 직접 손에 의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출판사에는단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며 원고를 들이미는 보통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출판사에도 사정은 있겠지요. 무턱대고 그리하겠노라 무의미한 공수표 남발은 진흙탕 속에서 발을 빼기 힘들게 하기 때문에 냉정해져야만 합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면 이윤이 나는 부문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메꿔야하니까 문예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은 책의 공생관계.
문예 잡지의 편집장인 미무라는 그런 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너에게 판매부수 실적달성을 독려 당하던 그에게 어느 날 병원 내과 의사인 히로세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지요. 병원 환자 중 다카오카 마키라는 여성이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일이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미무라에게 원고를 보내 달라고 했다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무라는 만나본 적 없어 알지 못하는 관계라 어리둥절하던 차에 그녀가 썼다는 <녹색 원숭이>라는 소설 제목을 듣고는 수년 전 작가 지망생이었던 기스기 쿄코라는 여성의 작품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적잖이 놀랍니다.
기스기 쿄코는 3년 전에 실종되었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거대한 원고 꾸러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오기와 집념, 끈기,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도는 말을 잡겠다는 각오를 실천했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키라는 여성을 만나보니 자신이 이 작품을 직접 썼다고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쿄코의 버릇 등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며 자신을 이 세계에 데려오지 않았냐며 의미심장한 말까지 남기죠.
어떻게 그녀가 교코의 작품을 알고 있을까? 알 길 없습니다. 연관관계의 맥락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혼토 모토코라는 여성 작가가 쓴 문학상 수상작 <꽃의 사람>이 교코의 작품을 도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네요. 누군가로부터 몰래 전달받아 자신의 창작으로 교묘히 위장하지는 않았을까, 수상쩍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원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출판사를 다니며 편집장들에게 출간을 의뢰하러 다니는 일은 역시 어려운 일이지요. <녹색 원숭이>가 범상치 않은 수준의 소설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세상에 나와 정식으로 소개되어 빛을 볼 기회마저 원천봉쇄 당했다면 꿈이 좌절된 자의 원념이 누군가를 조종하게 되지나 않을까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심 서글픈 일입니다.
여기, 진짜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동분서주하는 사람에 미무라와 히로세 말고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미치코도 포함됩니다. 게다가 어린이 실종사건까지 개입하는데 전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쿄코의 실종과 어린이 실종사건에는 어떤 흑막이 있을 것 같아요. 이쯤되면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작가의 행방불명은 어둠의 저편에서 신경을 건드리면서 남아있는 불안감으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 끝에는 어떤 종착역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소설 한편을 탄생시키기 위한 창작은 현실과 끊임없이 혼동하도록 만들죠. 어리석다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바를 갈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한 마리의 괴물로 변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 부와 명성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본능적으로 충족시키고자 했지만 내면의 붕괴는 좌절을 가져왔고 불가능에 부딪히자 증오의 화살이 타인에게 향해 버렸습니다. 마술사처럼 언어를 마음대로 부리고 깜짝 놀랄만한 소설을 내놓고 싶다는 세상 모든 작가 지망생들은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과연 공감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여전히 소설을 읽고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충만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