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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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2월 겨울 어느날,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소녀는 폭주족을 피해 달아나다 그들의 오토바이에 치어 사망한다. 한순간 생명이 빠져나간 냉기만이 남고 딸을 잃은 엄마의 비통한 심정과 결연한 각오, 이것은 피비린내는 비극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40대 중반의 여교사 곤도 아야코 D반 아이들의 출석을 부른뒤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다. "여러분은 인질입니다. 반항하면 죽이겠습니다."   

 

 

스물아홉명의 반 아이들은 일제히 코웃음을 친다. 평소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존재였던 곤도 아야코의 말 한마디가 우습게 들렸지만 한 녀석이 겁없이 대들었다가 총에 무참히 사살당하는 걸 보고 이것은 결코 꿈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발단이었을 뿐이다. 인질극이 시작되고 경찰과 언론, 학부모, 학교 관계자까지 나서 사태의 해결을 위한 집압시도를 하지만 그녀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이제 곤도 아야코에게 조금이라도 불응하는 아이들은 차례차례 죽어나간다. 그녀에게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총이나 칼 무기는 기본으로, 일대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호신술까지 내부의 인질은 물론, 외부의 침투로 부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감시시스템, 대인살상용 지뢰 같은 것도 구비함으로서 인질극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였다. 곤도 아야코는 돈을 요구하지만 프롤로그에서 보여준 상황들이 그것이 진짜 목적이 아님을, 담보로 잡은 돈은 또 다른 계획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필이면 극악무도한 문제아들만 D반에다 몽땅 집결시켜둔 설정은 작위적일수도 있겠지만 학교라는 시스템은 우등과 열등으로 분리해서 격리수용하는 방식이다. 같은 부류끼리 편성하여 순백을 물들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것. 취지는 알겠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인질극에 당위성이 충분히 성립된다고 본다. 물질적인 보상이나 정치적 요구를 하는 일반적인 인질극과는 달리 교사가 학생들을 인질로 삼는다는 설정은 딸을 잃은 모정이 강 건너에 있는 복수를 만나기 위한 임시가설교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1회용으로 소모되면 그것으로 끝일뿐. 여기에는 자비도 없다. 눈에 거슬리면 바로 즉결처분. 

 

그래서일까? 계속해서 인질로 잡힌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안타까움이 들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후안무치한 존재들이라 휴대폰으로 외부의 친구들에게 사태를 자랑하기도 하는가하면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낱낱이 까발려져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눈만 껌뻑할 뿐. 시간이 흐르면서 곤도 아야코 펼치는 논리에 점차 감화되고 명쾌함에 설득당하는데 부패를 촉진시키는 해충은 박멸만이 정답이니 착하고 힘없는 선량한 약자들이 우는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볼 수 있는 밝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소망은 사법제도의 테두리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곤도 아야코가 당기는 방아쇠마다 싹수가 노란 녀석들이 미리미리 제거되어 미래의 더 큰 불행을 차단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후련함은 없을 것 같다. 어찌 청소년 범죄에만 해당되겠는가? 사회에도 필연적으로 집행되었으면 한다. 평소 마음 속에 꾹꾹 눌러뒀던 억압된 울분을 해소시키는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에 진정한 가독성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인질극이 영원히 진행될수도 없으니 어떻게 종결지을까 궁금했었다. 평범하고 무기력했던 곤도 아야코 단시일내에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움을 준 조력자의 정체도 뜻밖이었거니와 인질 중에 어떤 의미를 짊어지고 있었던 어느 아이(본인은 전혀 짐작도 못했겠지만)가 어쩌면 사소한 행동으로 인하여 용서받을 줄 알았는데 죽음의 순서만 늦춰진 이유가 결국 악행의 고리를 잘라내지 못한 자업자득 때문이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그랬다. 인질극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끊임없이 서스펜스가 불꽃을 튀기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아야코와 경찰 간의 치밀한 심리전도 일품이라 읽는 내내 기분이 쫄깃했다. 

 

한마디로 장르소설에서 독자가 원하는 쾌감을 제대로 구현했다고 볼 수 있는데 유쾌, 상쾌하지는 않지만 통쾌했다는 것. 그리고 아야코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그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려는 추악한 욕망이 아니었기에) 피끊는 모정에 대한 안타까움에다 인질로 잡혔다가 죽은 아이들의 부모 중 일부가 족쇄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끼는 대목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때론 희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울한 현실을 수용해야만 했고. 문득 그저께인가, TV에서 방영되었던 한 청소년 프로그램이 오버랩된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어느 학부모는 자식에게 위해를 가한 아이들 중 주범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반드시 원한다고 절규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순간 곤도 아야코 심정이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소설 속 주요 대목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니며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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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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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세추세츠 뉴턴 시티 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앤드루 바버는 신중하며 사려 깊은 아내 로리와 한창 사춘기에 해당되는 열네살 아들 제이콥과 함께 중산층 가정을 꾸리며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앤드류네가 살고 있는 뉴턴 시티는 범죄와는 거리가 멀고 자녀교육에 더없이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조용한 지방도시이다. 그런데 콜드스프링 공원에서 한 소년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뉴턴의 주민들에게는 불시의 타격이 되고 불안으로 뒤숭숭한 분위기가 된다. 지검의 넘버 2"앤드루"가 직접 사건을 담당하게 되는데 살해된 소년은 "제이컵"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또래 벤저민 리프킨이었고 사건발생 며칠 동안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앤드루는 인근에 사는 소아성애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면서 좀 더 밀어붙이면 그걸로 사건은 해결될 걸로 믿었다. 그러나 사건의 행방에 변수가 생기면서 앤드루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데 살인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흉기의 행방과 정황 등이 모두 자신의 아들 "제이컵"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면서 "앤드루"의 검사경력과 가정의 행복 모두 심각한 붕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은가? 그는 지금까지 사법제도를 신뢰하고 옹호하는 위치에 있었던 고상한 이었다. 그랬던 그가 사법제도에 대한 절대 신뢰를 부정하고 시스템에 대한 오류와 허점을 입증해서 아들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정반대의 입장, 로 격하되어버린 것이다. 죄의 유무만이 중요했던 이분법적 세계에 살았다고 인정하지만 하필이면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면 자신을 밟고 올라서기를 꿈꾸었던 야심만만한 후배검사 닐 라주디스와 대적하게 되었으니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또한 가족 중 범죄용의자가 존재한다는 건 일상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맹독이 스며든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동안 무탈하게 흘러왔던 가정은 비로소 구성원의 가치관이 불협화음을 빚으며 충돌하는 시발점에 놓이게 된다. 아들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던 부부는 그것이 과신이 아니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고 남편은 근거 없는 낙관론을 아내는 지나친 신중론을 펼치면서 아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현저한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생각이 옳다고 지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자녀양육이란 현실에 있어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여러모로 불완전하고 미숙한 점도 있고 반항도 하면서 그렇게 커나간다는 과정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방임할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방법 선택에 있어서는 낙관과 신중함 모두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작금에 닥친 불행을 두고 그런 관점에서의 부부의 고민과 충돌은 이해하고 싶어도 지나칠 정도로 반복적이어서 좀 줄여줄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적정 수준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들이라 컷팅이 필요했는데... 장르소설이라는 특성을 감안했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가정의 분열과 붕괴는 익히 다루어온 단골소재가 아니던가? 직계에서 대물림 되다시피 한 앤드루 집안의 살인유전자같은 비합리적 근거로 평결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려는 검사 측 시도도 현실적이지 못해 좀 황당한 설정인 것도 같은데 실제에서는 반영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직접 사건을 지휘하던 "앤드루"는 그 일에서 손을 떼게 되고 검사자리에서도 밀려나다시피 하게 되면서 결국 "제이컵"은 용의자로 재판을 받게 되고 "앤드루"는 증인이 되어 자신의 아들 "제이컵"의 무죄를 무조건적으로 믿으며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임한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부부 모두 아들 "제이컵"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아니면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한다. 이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정해진다. 무죄 입증이 아닌 유죄 입증불가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부부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고 그렇게 해서 승리의 깃발을 쟁취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용서와 화해, 신뢰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리라. 한 번 뒤집어쓴 오욕은 평생을 씻어도 악취가 가시지 않으리란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피해자의 아픔과 상처에 주목하고 있을 때 무고한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낙인이란 형벌에 무관심 할 때 숙명처럼 감내해야만 하는 그들의 현실이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보다.

 

 

다시 재판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정황 자체가 제이컵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진행되다 보니 이대로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검사와 변호사 측 공방도 추가 한 쪽으로 기울었다. 배심원단의 평결을 뒤집을만한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떤 터닝포인트를 기대했고 실제로 나왔지만 그런 뜬금없는 전개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 크게 달궈 놓은 것도 없지만 법정소설로서 급격히 냉각되는 패착이다. 이제까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결말을 향해 이 소설은 달려간다. 충격적인 반전이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맞이했다. 분명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 예상하며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있었다. 자세한 해설 없이 오로지 정황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유추케 하는데 예상했던 진실에는 맞아 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반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라스트 신은 놀랍다 못해 악몽이다. 실제로 책을 덮고 자면서 이상한 꿈들에 시달려야 했고 깨어나서도 어느 정도의 후유증이 남았다.

 

 

당신은 가족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이라고 했다. 그런 선택 말고는 다른 선택은 과연 없었을까? 그런데 묵직한 통증이 뒤통수를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회의가 동시에 발생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법정소설로는 밀도가 떨어지는 실패작이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취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정당성 부여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최선의 작품이 될 수도 있는 양자의 기로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솔직히 나는 법정소설의 최고봉을 기대했었다. 생생한 재판과정에서 파생되는 치밀한 플롯, 불꽃 튀는 논쟁 같은 것들을. 사실 이런 요소들은 없다. 낭패였다. 모든 것이 결말(또는 반전)을 위한 무의미한 소모전이었을 뿐이다. 법정이야기에 좀 더 완성도를 높였다면 나 또한 이 소설을 올해 최고작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종착역에 올인하기는 힘들다. 매끄럽지 않은 경유지로 인해 제이컵을 위하여(Defending Jacob)”의 심각한 옥의 티는 용서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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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밀리언셀러 클럽 104
모치즈키 료코 지음, 김우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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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소비 행위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일용한 양식거리를 제공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경외심을 늘 갖고 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다니는 말들을 잡는 것이라고. 그리고 소설가란 마음속에 괴물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고, 그 괴물을 키우면서 작가가 되고, 그 괴물에 잡아먹힐 때 자살한다....”라는 책 속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하지요.

 

 

추상적인 형태의 감성들을 직접 손에 의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출판사에는단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며 원고를 들이미는 보통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출판사에도 사정은 있겠지요. 무턱대고 그리하겠노라 무의미한 공수표 남발은 진흙탕 속에서 발을 빼기 힘들게 하기 때문에 냉정해져야만 합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면 이윤이 나는 부문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메꿔야하니까 문예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은 책의 공생관계.

 

 

문예 잡지의 편집장인 미무라는 그런 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너에게 판매부수 실적달성을 독려 당하던 그에게 어느 날 병원 내과 의사인 히로세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지요. 병원 환자 중 다카오카 마키라는 여성이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일이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미무라에게 원고를 보내 달라고 했다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무라는 만나본 적 없어 알지 못하는 관계라 어리둥절하던 차에 그녀가 썼다는 <녹색 원숭이>라는 소설 제목을 듣고는 수년 전 작가 지망생이었던 기스기 쿄코라는 여성의 작품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적잖이 놀랍니다.

 

 

기스기 쿄코는 3년 전에 실종되었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거대한 원고 꾸러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오기와 집념, 끈기,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떠도는 말을 잡겠다는 각오를 실천했던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키라는 여성을 만나보니 자신이 이 작품을 직접 썼다고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쿄코의 버릇 등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며 자신을 이 세계에 데려오지 않았냐며 의미심장한 말까지 남기죠.

 

 

어떻게 그녀가 교코의 작품을 알고 있을까? 알 길 없습니다. 연관관계의 맥락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혼토 모토코라는 여성 작가가 쓴 문학상 수상작 <꽃의 사람>이 교코의 작품을 도작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네요. 누군가로부터 몰래 전달받아 자신의 창작으로 교묘히 위장하지는 않았을까, 수상쩍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원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출판사를 다니며 편집장들에게 출간을 의뢰하러 다니는 일은 역시 어려운 일이지요. <녹색 원숭이>가 범상치 않은 수준의 소설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세상에 나와 정식으로 소개되어 빛을 볼 기회마저 원천봉쇄 당했다면 꿈이 좌절된 자의 원념이 누군가를 조종하게 되지나 않을까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심 서글픈 일입니다.

 

 

여기, 진짜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동분서주하는 사람에 미무라와 히로세 말고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미치코도 포함됩니다. 게다가 어린이 실종사건까지 개입하는데 전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쿄코의 실종과 어린이 실종사건에는 어떤 흑막이 있을 것 같아요. 이쯤되면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작가의 행방불명은 어둠의 저편에서 신경을 건드리면서 남아있는 불안감으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 끝에는 어떤 종착역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소설 한편을 탄생시키기 위한 창작은 현실과 끊임없이 혼동하도록 만들죠. 어리석다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바를 갈구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한 마리의 괴물로 변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 부와 명성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본능적으로 충족시키고자 했지만 내면의 붕괴는 좌절을 가져왔고 불가능에 부딪히자 증오의 화살이 타인에게 향해 버렸습니다. 마술사처럼 언어를 마음대로 부리고 깜짝 놀랄만한 소설을 내놓고 싶다는 세상 모든 작가 지망생들은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과연 공감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여전히 소설을 읽고요.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충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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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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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길을 걷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다른 이에게 묻기 전에 내겐 길을 걷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먼저 물어본다. 그것은 생각을 줍는 것, 반성과 희망을 꿈꾸는 것,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는 것 등등 여러가지 잡동사니같은 답안이 떠오른다. 낯선 길을 혼자 걷다가 어쩌다 어쩌다 낯선 이를 만나 동행하는 그 길에는 연록색의 수채화같은 그림들과 인생을 조율하는 감각적인 대사들이 넘실거리면서 물이 스며들 듯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책에서 나온 그 골목길들을 진짜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아름다운 골목길도 마냥 걷고싶다. 덥지만 않다면 말이다. 걷고 또 걷고 싶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과정에 놓이게 하는 힘이 이 책의 매력이다. 옛 사랑을 찾아 한국으로 온 미키의 행보와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배우로 인해 드디어 감독 데뷔라는 기회를 얻은 희수의 행보,,,, 그리고 로맨스는 어떻게 연결될지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두근두근 설레임으로 충만해진다. 그런데 알고보니 작가 주드 프라이데이는 남자다. 일순 놀랐지만 곧 "뭐 어때." 라며 훌훌 털어버린다. 감성돋는다는 표현은 이럴때 써야하는 법. 요런 걸 즐기는 나 또한 남자가 아니던가?  이런 책이 가끔씩 좋을 때가 있는데. 그래서 강추하는, 아름다운 대박!!!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 중인 주드 프라이데이의 "길에서 만나다"는 알고보면 그리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아직 자신의 창작물로 스크린에 내걸지 못한 은희수는 길을 정처없이 걷다 일본에서 온 미키를 만난다. 마치 비포 선라이즈 + 밤의 피크닉이 웹툰으로 탄생한 듯한 느낌. 대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서울을 배경으로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아름다운 골목길을 두 남녀의 동행과 함깨 한 폭의 작품집같은 션한 배경이 너무나도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눈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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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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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밀랍인형, 톱밥인형.

이라 노래하는 것은 자명종.

 

누구나 장미및 인생을 꿈꾸지만 도중에, 아니 출발선부터가 남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 했고 행복에 대한 기준은 만족을 모르기에 그때부터 타협하는 것으로 안주하기 시작하지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하지만 꿈꾸던 소녀, 초등학교 5학년 열한살 후지코가 여기 있다.  한참 귀여움을 받고 자라야할 나이지만 태생이 추하다. 그렇다고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자신보다 약한 존재가 있으면 동정보다는 괴롭히고 싶은 잔인함이 본능적인 유전자로 가지고 있나 보다. 반 아이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면서 스스로 나는 이런 수준밖에 안되나보다 같은 자괴감이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밀랍인형, 톱밥인형으로 간주하기도한다. 그 인형들이 어쨋길래 싶어 정체를 확인해보면 후지코의 현 상황들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어쩜 이렇게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인가. 아무리 빙글빙글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해도 먼지와 곰팡이에 뒤덮인 곳에서 한 발자국도 떼어놓지 못하는 신세가 아니던가.  

 

문제적 아동은 결국 가정환경이나 교육에서 문제가 발단된다. 인간이 가장 먼저 구성하게 되는 기초적 집단 구성원인 가족 내부에서 구성원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경제적 무능함과 자녀교육에 아무런 역할을 목하는 후지코의 부모와 철없는 여동생까지. 양보만 해야하는 모리사와 후지코의 일상은 어느날 일가족이 참살되는 비극 속에서 혼자 살아남으면서 인생 제2막이 시작되는 전환기를 맞이했다. 남자 아이들의 성적 괴롭힘에도 변변한 저항마저 못했던 순간들이 안타깝고 왜 싫다는 소릴 못하느냐며 스스로 화도 나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서는 변변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그러나 한번 구겨진 인생은 다림질 하는 것 마냥 매끈하게 펴지지가 않았다. 매스컴의 호들갑스러운 보도 덕택에 극적으로 참극에서 살아남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포장되어 어른들의 관리와 보호를 받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이모가 있다. 이모는 친구를 신중히 사귀어야 미래를 담보받을 수 있다고 끊임없는 설교를 늘어놓으며 엄마를 닮아간다는 말로 후지코를 자극했다. 후지코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후지코가 그토록 싫어하는 엄마의 일생을 어느정도라도 따라가게 될 것이라는 짐작을 당연히 하겠지만 인생의 밝은 면을 보고 싶어하는 애쓰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와 후지코까지 포함이다. 그렇지만 후지코의 주변에는 어떡하든 그녀를 괴롭히거나 이용하려는 파렴치한밖에 없는 것도 업이라는 굴레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이다지도 무참히 짓밟혀야 할만큼 후지코의 일생은 혐오스러웠던가? 우연한 살인 그리고 그녀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길 때마다 반복되는 살인... 평범한 여자로 살 수도 있었던 후지코는 살인귀로 낙인찍히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된다. 마치 픽션같은 이야기 구조를 보여 더욱 그녀의 대한 동정과 연민이 짙어진다. 무엇이 그녀의 인생을 밝은 빛이 아닌 그림자가 뒤덮인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는지에 고민하게 된다. 이야미스의 세계는 그렇다. 질투, 분노, 미움, 살의 등이 부정적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혐오라는 산물을 쏟아내는 장르가 이야미스의 특징이라고 한다. 

 

애처롭다. 혐오스런 시선을 끝내 안고 살아야했던 한 여자의 일생은 씁쓸한 반전과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사라져간다. 인생이 해피하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이러한 인생도 있을 수 있구나, 불행이라는 업보를 남의 운명으로만 단정짓지말고 잠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일도 의미있지 읺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랬다면 살인귀 후지코라는 존재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겠지. 후지코에게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을 묻고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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