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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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적 동네에는 서점들이 꽤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시절의 동네서점들은 소년만화, 참고서를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미나 지식형성을 위한 용도로만 책을 구입했으니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동네서점들은 대형서점들에 밀려 세월과 함께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주범들인 대형서점들도 일부 사라졌다. 온라인 서점의 등장 때문인데 나가지 않더라도 클릭질 한 번이면 자택까지 배달되는데다 가격할인을 비롯한 각종 혜택에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지않을 재간이 없었다 

 


실례로 몇 주 전 지방에서 장르소설이 와우북 형식의 판매행사로 개최된 전력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일부러 현장을 찾아 책을 사는 수고를 굳이 시도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책을 안 읽는 것도 문제지만 다들 익명이 보장된 공간에 틀어박혀 직접 책을 고르는 기쁨을 잊은 지 오래인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더구나 전자책이 미래에 활성화된다면 종이책의 구수한 향기(?)를 더 이상 맡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확실히 종이 출판업은 사양길에 접어든 게 맞을 거다. 그러한 현실과 대세라는 흐름이 안타까웠는지 종이책이 가진 고유의 매력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는 소설이 바로 <페넘브라의 24시 서점>이다.

 

 

 

작가 로빈 슬로언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 트윗에서 이런 방금 24시간 도서 반환통(BOOK DROP)24시간 서점(BOOK SHOP)로 잘못 읽었네.“라는 문구에서 로빈 슬로언은 설정을 착안하였다고 한다. 사소한 착각이 창작을 낳은 유머러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책은 입소문이 퍼져 세상에서 베스트셀러로 히트를 치게 된다. 이 소설이 가진 느낌들은 어떠했을까 확인해보자.

 

 

주인공은 웹디자이너 클레이 재넌이라는 청년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책은 물론이요, 종이 자체와는 직업적으로 담을 쌓아왔던 그가 잘 나가던 회사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실직자가 될 지경에 처하자 우선 살고 보자는 막연한 심정으로 이상한 서점에 취직한다. 24시간 운영하는 이 서점은 요즘 트렌드에도 맞질 않는데다 서점 주인은 페넘브라라는 영감님이다. 심야근무조인 클레이는 손님이 없다시피 한 이 서점이 어떻게 24시간 운영되며 자신에게 봉급을 줄 수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손님들도 괴상하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손님들은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이상한 암호 같은 책 제목을 대며 뒤쪽 서가의 책들만 빌려간다. “페넘브라씨는 찾아오는 손님들의 인상착의와 기분, 책을 빌리는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 생뚱맞은 내용들을 매일 업무일지에 기록하라고 시키기까지 한다. 참다 참다 못한 클레이는 서가의 책을 절대로 펼쳐보지 말라는 페넘브라씨의 규칙을 어기고 책을 펼치자 페넘브라씨가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500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이 서점의 불이 꺼지면서 심야의 단골손님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서점이 문을 닫는다. “페넘브라씨는 어느 비밀조직에 속해 있었는데 조직의 이름은 부러지지 않은 책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애서가 광신자 집단이라고 한다. 문제는 어떤 중요한 책이 조직의 본부에서 불태워질 예정이고 페넘브라씨의 행방을 좇는 가운데 클레이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께 문제의 책을 사수하기 위해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책 속에 숨은 비밀 암호를 풀고자 하는 조직의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그것을 통해 인류의 영원한 숙제에 대한 해답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그 해답이란 것이 아무도 이뤄낼 수 없었고,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영원한 꿈이자 이상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가며 얻고자 했기에 불가능한, 부질없는 짓거리였다. 이것은 마법이자 어드벤처이기도 하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실존했던 인쇄업과 관련된 인물(특히 "알두스 마누티우스"는 책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아서는 안될 인물이다.)과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가며 책을 사랑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셈까지, 읽을 수 록 페넘브라 서점이라는 공간은 매혹적이며 신비롭고 다채로우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책과 서점이 걸어온 발자취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사업이기도 했고 복제라는 범죄에 연루된 양심의 문제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책은 종이의 형태일 때만 존재의 가치가 있음을 킨들에 대한 지독한 반감으로 표출하면서 삶은 유한해도 책은 불멸불사로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낭만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물론 이 소설의 모든 면을 전부 이해하기에 나의 식견이 모자란 점은 일정부분 감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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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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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물심양면 지원받으며 온전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동안 눈앞의 문제들은 부모가 모두 알아서 처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 자신들을 양육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이 뒷받침 되는지 그 나이에는 짐작할 일 조차 없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행여나 나쁜 일에 휘말리지나 않게 되는지 노심초사하게 될 것이고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볼모 잡아 아이들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는 범죄야말로 인륜을 무참히 짓밟는 범죄일테니 가중 차벌로 강력 단죄해야 한다는 이 책 속의 주장은 일리가 있겠다 

 

유괴된 아이가 내 자식이면 부모는 자식을 되찾기 위해 몸값 지불하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내 자식이 아니라면 선택은 달라진다. 게다가 더글라스 킹에게는 단순히 돈 문제를 떠나 사업의 명줄이 걸려있다. 어릴 적 지독한 가난 때문에 성공 지향적 인간이 되어버린 킹을 두고 구두 회사의 중역들은 그를 회유하여 회사를 집어 삼키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킹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에게는 회사운영과 관련된 별도의 플랜이 구상되어 있었으니.

 

 

 

그런데 어떤 돌발 변수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의 운전사의 아들을 킹의 아들로 착각해 납치 유괴하고서는 5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이 유괴당하지 읺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지만 뒤늦게 킹의 아들이 아니란 것을 알에 된 범인들은 킹에게 몸값을 대신 내놓으라는 생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이제 킹은 50만 달러냐? 아이의 목숨이냐?를 두고 심각한 도의적 딜레마에 빠진다 

 

?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닥쳤느냐고 울분을 토로할 만하다. 범인들의 요구대로 몸값을 주면 그의 사업인생은 파멸하게 된다. 회사의 중역들은 이것을 호재로 삼아 킹을 파멸시키기 위한 작당에 나서면서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세간의 비난 속으로 빠뜨릴 복안도 마련 중이다. 모든 것은 킹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이 책이 87분서 시리즈 중 가장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유괴범들로부터 유괴된 아이를 되찾는 이야기들도 물론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지만 87분서 형사들의 활약보다는 순전히 킹의 고뇌부분이 역시 중심이 된다. 특히 아이를 위해 조건 없이 몸값을 지불하기를 원하는 아내와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맞서는 킹의 논쟁은 차마 읽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이 압도적이다.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몸값을 지불하는 결정이 당연하겠지만 평생을 고생만 해온 그에게 사업에서의 낙마는 절대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논리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본다. 나라도 그런 결정 쉽게 못 내릴 것이다. 킹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해서 가슴에 사무치고 동화되면서 마치 내가 킹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누가 그에게 냉혈한이라고 돌을 던질 수가 있으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천국과 지옥은 원작과는 다른 결말이 그려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든 현실에서는 실재할 것만 같다. 킹에게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행위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책임하고 가혹한 처사이다. 유괴사건이 발생하자 킹에게 찾아와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기꾼의 등장이이나 87분서에 아이의 행방을 목격했다는 전화의 폭주는 일순 익살스레 묘사되어 킥킥대며 읽기도 했지만 타인의 고통을 악용하고 농간부리려는 혹자들의 저급한 시도가 얼마나 당사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지 모른 채 배려하는 마음의 양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도 악의적이다.  

 

그리하여 일련의 사태에 대한 주모자와 피해자가 모두 남성인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끊임없이 설득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까지 하는 능동적인 주체 모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어둠을 불 밝히는 등불 같은 역할이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고. 면죄부가 주어진 결말은 그런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포상으로 간주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87분서 시리즈는 다른 각도, 다른 차원에서 해석되면서 언제나 즐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검증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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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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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율리아 뒤랑 시리즈를 총 12편을 남겼고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은 시리즈의 두 번째 케이스에 해당된다. 1편부터 순차적으로 국내출간 되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유작부터 먼저 선을 보인 점은 뜬금없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차례차례 나와 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가. 보고 싶어도 1편만 선보이고 자취를 감춘 어느 인기 시리즈물이 복귀에 제동이 걸려 기약이 없다는 사례를 감안하면 고인이 된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사후에 비로소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범죄의 향연이 신묘하기만 하다. 이 시리즈는 그러하다.

 

 

 

 

열두 살 소녀 카를라는 한 달 전 처음 시작한 생리로 성장통을 겪고 있던 평범한 아이였다. 우연히 친구의 꾐에 빠져 파티에 초대받아 갔던 그날 밤에 어떤 일을 겪는다.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어린 소녀를 음흉한 무리들이 가만히 내 버려둘 리 만무한 것.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법이고 카를라의 인생은 지옥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율리아 뒤랑에게 12송이 백합과 성경 구절을 인용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율리아는 혼란스러워한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편지를 보낸 것일까에 골몰하고 있을 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제야 알아차린다. 범인은 율리아에게 어떤 힌트를 남기면서 살인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율리아와 일면식이 있는 듯한데 그녀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듬뿍 담긴 살인예고장은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식의 전면적인 도발은 들어 있지 않지만 인용된 성경구절은 계속된 살인을 막기 위해 율리아에게 주어진 도전장이자 숙제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두통거리였기도 하고.

 

 

 

살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달아 발생하고 살인예고장에 담긴 의미를 밝혀내지 못한 율리아 뒤랑은 언제나 한발 늦게 범인의 그림자를 따라 가기에 급급하게 되는데 살해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저명인사들이었던 것도 특징이다. 율리아만 모를 뿐 독자들은 범인의 심리와 범행동기 그리고 범행실행을 빠뜨림 없이 확인하게 되는데 범인의 시점과 율리아 뒤랑의 시점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어떻게 하나의 뿌리로 다시 만나게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읽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8년 전의 사건이 불러온 비극은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 측의 지극히 사적인 복수극이다. 공권력에 의지하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이 이유이다.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연에는 생계 유지적 측면과 우발적인 측면, 원한, 돈 등이 대표적이겠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는 상류층에서의 범죄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겉으로는 화려한 성공에 풍족한 생활, 공인으로써 사회적 모범이란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면 뒤에 가려진 얼굴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상상 조차 하기 힘든 추악한 욕망 충족을 위해 위선적인 작태를 저지르고 있기에 평범한 소시민들은 그 실태를 상상 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 점을 노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행되는 이들의 범죄는 실로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으며 범인은 마치 도장 깨기를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몸통과 머리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어 처절한 피의 복수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살인자의 눈물겹고 안타까운 사연들은 누구도 그를 비난하기는커녕 두 손 모아 응원하게 되는 심정이 된다.

 

 

 

 

비록 범인이 원수를 상대하는 방법이 패턴화 되어 있다는 점이 우려할 만하나 의심을 피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악이라는 나무가 수많은 가지치기를 하고 있기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계통의 소설에서 범인이 범죄행위에 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속 뜻이 이런 용도로 재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은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선입견을 통렬히 와해시키면서 효과적으로 재생산해낸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기에 최고의 칭찬을 해 주고 싶은 결정적인 대목이다.

 

 

 

12송이 백합에 담긴 의미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숫자의 범위에 산정되지 않고 은밀히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방식은 얼마나 우아하고 산뜻한가. 틀에서 벗어나 관점을 확대시키는 그 시도가, 그 결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전개가 참 좋다. 무수한 상징과 은유들이 무리 없이 소설 전반에 잘 융화되니까 마지막 장을 덮고도 여운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사전에 꼼꼼한 조사를 통해 완성해 낸 결과물은 단지 일회성으로 즐기고 망각해버리는 가벼움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담아내면서 왜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는 안드레아스 프란츠로 통하게 되는지 세상에 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의의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작품세계는 당당히 전진한다. 여전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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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맞추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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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에드 맥베인을 경찰소설의 효시라고 부른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 하나,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일까? 경찰이 주인공인 경찰소설이 이전에는 없었던 것도 아닐테고, 경찰에 대한 세부적이고 전문적이며 리얼리티한 설정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분명 깔려 있어야함은 당연하겠지만 고전에 상당히 취약한 내가 역사를 제대로 꿰고 있을 리가 없으니 비교는 불가하다. 그러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렇게나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경찰소설을 만나기란 힘들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경찰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은 많지만 직업적인 설정일 뿐이고 사건과 추리에만 더 정성을 쏟고 있기에 경찰이라는 캐릭터에 생명을 제대로 불어넣어 읽을수록 찰지고 고소한 이 맛은 비견할 데가 없다

 

 

 

87분서 시리즈는 돌아가며 87분서 소속 형사들을 주인공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조각 맞추기는 흑인 형사 아서 브라운이 되겠다. 87분서의 다른 형사들과는 별다른 개성이랄까, 특성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좀 있어서 한번 쯤 이 형사가 주인공인 87분서 시리즈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있었다. 보란 듯이 조각 맞추기는 나의 바람대로 아서 브라운 형사가 주인공이란다. 아마도 유색인종이란 유전적 요인에서 뭔가 튀는 점이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 점에서는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름이 블랙이었다면 검은 피부색이 더욱 강조되었겠지만 의외로 피부가 이름처럼 갈색이란다. 이런!! 아서 브라운은 흑인으로 분류되거나 차별당하는 것을 당연 원치 않았지만 그는 피부색의 컴플렉스에 온전히 구속받지 않는 것 같다. 여전히 성인인 되어서도 검은 피부는 백인들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치부되지만 생각보다 의연하게 잘 받아치고 잘 넘겨버리는 여유로움을 보이는데 이제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달관한 듯하다. “아 그러셔. 나는 검다. 어쩔래?”라고 당당히 대응할 수 있는 그 능청스러움이 좋다.

 

 

 

그래서일까? 아서 브라운에게 닥치는 인종차별적인 대사들은 상당히 민감하고 위험수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에드 멕베인은 논란을 교묘히 비껴나는 재주를 잘 부렸다. 인종차별적 요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일상적 유머로 승화시켜 흑인이 더 의연하고 백인이 더 구차하고 찌질하게 보일 수도 있는 조화로운 전개가 설정이 이번 작품의 최대강점이자 매력적인 요소라고 하겠다. 보라! 아서 브라운 형사의 저 당당함을 말이다. 그는 인종적 편견을 사건 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비장의 무기로도 적절히 활용해서 압박하는 묘안을 선보이는구나.

 

 

 

아서 브라운 형사는 이중 살인사건 현장으로 출동한다. 아파트에 침입한 남자와 집 주인 남자는 격투 끝에 서로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더 두고 볼 것도 없는 사건인 듯싶다. 강도에 맞선 정당방위처럼 종결될 뻔 했던 사건은 죽은 남자중 한 명이 손에 사진 조작을 쥐고 있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양상이 조금씩 달라진다. 보험 조사원 어빙 크러치가 87분서에 짠 하고 등장하는데 그 남자의 손에도 찢어진 사진 한 조각이 있었다. 어빙 크러치의 설명에 의하면 강도단이 거금을 털어 도주하다 경찰에게 사살당한 사건이 있었고 사살당한 현장에는 돈이 없었다고 한다. 그 거금의 소재는 사진으로 찍어 강도단들이 주변 사람들에 찢어서 나누어 주었는데 자신과 공조하여 돈을 찾아내자는 제안이었다. 이제 브라운과 카렐라 형사는 뻔한 뻔자가 아닌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돈을 찾기 위해 사진 조각을 찾아 탐문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해설에도 나왔듯이 원제 “JIGSAW”의 표기를 두고 직소지그소냐를 두고 역자는 고민했던 걸로 나오는데 표기 대신 그 뜻인 조각 맞추기를 사용한 것이 타당했다고 본다. 돈의 소재가 찍힌 사진 조각들은 임의로 찢어 갈라놓은 게 아니라 퍼즐의 행태대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제목만이 아니라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방식을 퍼즐 맞추기 한다는 표현에 적합하도록 한 구성과 안배가 그만큼 이채로왔다. 나머지 사진 조각들을 찾아 큰 틀을 맞추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아서 브라운 형사가 소유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 완성된 사진에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은 흡사 한정된 시간 내에 결과를 만들어내야만 할 것 같은 두근거림과 기묘한 설레임으로 즐겁게 하였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는 실과 바늘처럼 가까이에 있었으며 그 어떤 순간에도 유머는 빛을 발한다. 그 걸죽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인하여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재미란! 유머 없는 87분서 시리즈는 그 자체로 죽음이다. 그래서 미스터리적 요소보다는 인간의 탐욕과 인간관계에서 더한 강점을 발하는 87분서 시리즈에 계속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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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가운데 밀리언셀러 클럽 134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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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드보일드의 거장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죽음의 한 가운데(In The Midst Of Death)>를 읽었다. <아버지들의 죄>의 뒤를 이어 시리즈물로서는 두 번째 만남인데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에 수록된 단편에서도 이미 발견했던 것처럼 이 무면허 탐정은 항상 의와 악의 경계선상에서 도시의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미화원 같은 역할인 것 같다. 쓰레기를 청소해서 거리를 정화시키기도 하지만 청소 도중 습득한 고가의 분실물은 신고하지 않고 슬쩍 주머니로 챙겨 넣는 계산적인 면도 보이기에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로 각인된다.

 

 

 

무면허 탐정 매튜 스커드는 부패 경찰 제리 브로드필드의 의뢰를 받는다. 사실 제리 브로드필드는 그리 평판이 좋지 않다. 아니 최악에 가깝다. 매튜 스커드에게도 솔직히 털어 놓지만 청렴결백과는 거리가 먼, 부정부패와 결탁한 인물이었고 그런 자신이 경찰 비리를 검사에게 정보제공 하겠다고 설쳐대고 있으니 동료경찰들은 그를 배신자에 기회주의자로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적당한 부정부패는 당연한 필요악 정도로 간주하고 동료들의 구린 내를 까발리겠다는 이중성에는 그리 개의치 않음이다. 그런 제리 브로도필드가 매튜 스커드에게 의뢰한 일은 콜걸 포샤 카가 제리 브로드필드가 자신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고 협박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고소했기 때문인데 순전히 경찰 비리 폭로에 찜찜해진 어느 누군가가 배후에 그녀를 조종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매튜 스커드가 포샤 카를 만나고 난 다음 날 뜻밖에도 그녀가 제리 브로드필드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경찰은 용의자로 제리 브로드필드를 검거하고 결백을 주장하는 그를 보며 매튜 스커드는 진범을 찾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어찌 보면 악어와 악어새의 만남이라고 보일지도 모를 관계였다. 선의의 피해자가 아니라 구정물을 덮어쓴 의뢰인의 무죄를 밝히겠다고 나선 모양새가 남들이 보기엔 이쁜 그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녀석은 당해도 싸다는 식의, 실제로 무죄냐 유죄냐 하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론은, 특히 경찰들은 싸늘하고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게 없다. 여전히 매튜 스커드는 홀몸이었고 자신을 지지, 동정해줄 만한 이도 많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의뢰받은 것에 충실했을 뿐이었고 배경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숨은 진실의 배후를 알아내는 것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랑해선 안 될 누군가와 또 금지된 사랑에 빠졌을 뿐이다.

 

 

도덕적 잣대에는 무심하게, 그리고 일과 사랑은 과감히 구분해버리는 쿨한 남자... 알콜 중독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려는 과정이나 결심들이 과연 결실을 맺게 될지도 내심 궁금하게 만드는 행보를 보였다. 그 와중에 언급된 짐 빔에서 또 다른 동지 해리 홀레를 떠올리게 된 것은 거의 자동반사적인 연상이었다. 왠지 두 사람이 술을 나누는 그림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매튜 스커더의 추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답에 가까운 논리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 알아차리기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그만이 이미 범인은 알고 있으며 동기는 범인을 만나 범행을 발뺌하는 회피적 행위에 쐐기를 박아 넣는다, 그제서야 독자들은 범인의 정체를 눈치 채면서 그것이 육감이란 걸 알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방식에 대한 선호도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보다 트릭보다 비정한 현실과 분위기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 등에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 까 싶다. 이 소설만 해도 그렇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의기양양도 잠시, 끝내 피의 댓가를 치르고야 마는 결말은 허무함 그 차제이다.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매튜 스커더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나 보다. 알딸딸한 상태에서 죽음을 관망하면서 때론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하고 죽은 자의 사연에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의 헌화 한 송이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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