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이이치로의 도망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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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이치로 시리즈의 매력이라 한다면 전적으로 주인공에게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이름부터가 괴상하지 않은가. ‘아이이인지 아아이인지, 수시로 헷갈리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간단히 로 줄여 부르는 것이 편하다. 저자 아와사카 쓰마오도 글자 순서를 뒤섞은 애너그램으로 필명을 만들 정도니 주인공 이름만이 아니라 이 시리즈 내내 곳곳에서 비슷한 발음에서 착안한 언어유희로 유머를 시도하는 것은 일본소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자 이 시리즈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방식이기도 하다이제 시리즈도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했다. ‘낭패, ’사고에 이은 도망은 전작들의 재기발랄한 유머와 위트, 발상과 트릭, 캐릭터까지 똘똘 뭉친 이색추리세트의 방점을 찍는다. 독자들을 속인다는 트릭은 일견 기상천외하면서도 인간심리가 추종하는 편견이라는 맹점을 교묘히 비틀고 있기도 하다. 그것을 추리하는 과정은 엉뚱하지만 견고한 논리를 내세워 어설프다 욕할 수 없을 정도의 즐겁고 유쾌한 체험이다.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 중 인상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자. 아카시마 섬에는 서 일본 나체주의자 클럽이 운영하고 있는 나체촌이 있다. 일체의 문명이기와 격리된 채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모태로 모인 사람들은 알몸으로 지낸다. ‘가 이 섬에서 물고기 사진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괴한이 나타나 이들을 위협하며 한 여자를 납치하려는 소동이 일어난다. 사실 대단한 사건은 아니다. 괴한이 납치하려하는 여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의 예리한 관찰력은 사람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작은 단서에서 진실을 유추해내는 것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환상트릭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식의 입장은 <구형의 낙원>에서도 즉시 적용되니까. 종말에서 혼자 살겠다고 만든 거대한 구형의 방공호에서 숨진 대부호가 있다.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안전의 결정체에서 외부의 침입도 없는 상태로 죽은 대부호는 자살이었던가? 그렇게 사건을 위장은폐 하려한 범인의 수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안에 가둬두고 신체에 충격을 가하는 방식은 고정관념을 노린 참신함(?)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여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진정한 의의라면 항상 사건현장에서 얼쩡거리는 얼굴이 세모꼴이고 정장을 한 노부인의 정체가 마침내 밝혀진다는 점이다. 추리가 어떻고 트릭도 어쩌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노부인의 정체가 너무나 신경이 쓰여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기에 앞서 우선 의 정체를 아는 것이 급선무다. 알다시피 그는 각종 잡학 방면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이자 꽃미남에 세련된 패션까지 갖춰 가는 곳 마다 여자들의 폭풍 같은 인기를 한 몸에 누리고 있는 남자다. 한데 비주얼의 환상은 얼빠진 말과 행동으로 산산이 깨어지고 실소를 금치 못하도록 만들지만 가설로 펼치는 추리능력만큼은 누구도 부인 못할 탑 급의 수완을 발휘해 왔다

 

 

 

그런 그를 보며 여자들이 외모에 반해 공통적으로 떠올렸던 특정신분이 사실 실제였다는 걸로 드러나고 노부인의 정체도 의 신분과 연관 있는 것임이 추가로 알게 되면 자연히 아, 그런 거였나? 라는 반응이 따라 나오게 된다. 노부인이 의 주변에서 항상 맴돌았던 이유는 지극히 타당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에피소드는 올스타전이다. 화려하고 정겨운 피날레로 마침표를 찍게 되니 모든 상황은 얼렁뚱땅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설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시켜준다. '만일 탐정 명단이 만들어진다면 일본어, 알파벳 어떤 순서로 정렬하더라도 맨 앞에 올 수 있도록 '아 아이이치로'라고 이름 지은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대로 유머 감각과 논리의 조화만큼은 시대를 초월한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이고 유쾌하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 요절복통이여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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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은 밤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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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본격 미스터리 계열로 포문을 열었던 니시자와 야스히코와 가진 두 번째 만남은 SF의 딱지를 떼어낸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작품 <그녀가 죽은 밤>은 대학생 네 명을 주인공으로 한 닷쿠&닷키치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SF적 설정은 없지만 현실을 무대 삼아 본격 미스터리 계보에서는 다소 벗어난 듯 독특한 논리와 유머, 서술이 돋보이면서 역시 이색적이며 개성 강한 미스터리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집안이나 각자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여대생 미오의 집안은 부모님 모두 교육자로서 딸에게 엄격한 통금시간을 강요하는 고루하고 보수적인 가풍을 가지고 있다. 통금시간이 오후 여섯 시일 정도였으니 답답한 마음에 일탈을 꿈꾸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를 상황이었으니, 천우신조일까? 미국 플로리다에서 홈스테이 할 기회를 얻었는데... 한데 미오는 대학 동창생들과 환송회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더니 웬 낯선 여자가 거실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또한 여자의 옆에서는 스타킹에 잘려진 머리카락 한 뭉치까지 발견된다. 

 

 

미오의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여자로 인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면 성가심을 물론, 홈스테이 일정까지 차질을 빚을 지도 모를 초조함이 엄습할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해할 것도 있고 친구들에게 뒤처리를 부탁한 무책임함에 이기적이다 비난할 수도 잇을 것도 상황이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해 등장하신 네 사람은 다양한 사정을 개인의 입장에서 변주하고 대처함으로서 배는 하나인데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갈 처지에 놓이게 된다

 

 

좌충우돌에 주책은 한 바가지요, 진지함이라고는 여간해서 찾기 힘든 보안선배와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사각지대까지 포착해내는 예리한 사고를 지녔지만 그것이 지나쳐 종종 삼천포에까지 발을 들여놓은 닷쿠’. 특히 사건의 배경을 미오 부모님의 엄격한 가풍에서 도출하여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문란한 사생활로 연계시키는 상상력만큼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닷쿠라는 캐릭터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동시에 그의 활약이 계속 보고 싶어서라도 후속작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맘이 굴뚝같게 한 데 있어서 일등공신이다. 

 

 

이 시리즈의 또 한 축인 여대생 다키치는 평면적 여성 캐릭터 대신 시크하면서 중성적 느낌에다 닷쿠의 추리가 가진 현실성 결여에 일침과 보완을 해 줄 수 있는 서포터적인 요소가 강했으니 아마도 다음 편에서는 그녀의 활약이 전면에서 부각되는 시기가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 또한 보안선배와 티격태격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이 깨닫지 못할 정도로 그의 부인처럼 결을 떠나지 못하고 챙기는 모습에서 남녀관계의 재밌는 일면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같은 남자라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가장 정이 가는 주인공은 단연 보안선배이기도 하고.   

 

 

여기에다 미오를 좋아하는 마음에 시체의 유기를 떠맡은 동급생 간타까지 사건 해결을 위해 일동이 나서지만 해결방안은 보이질 않고 럭비공처럼 마구 통통 튀다가 마지막에는 사회 미스터리 고유의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과 범행동기가 가진 모순이라는 단어가 술이 가진 알코올이라는 마력을 빌어 드러난다. 과학적 물증만을 인정하는 링컨 라임이나 거구의 몸집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으로 인하여 조수 아치 굿윈을 이용하는 네로 울프와는 또 다른 형태의 취중추리라는 는리에는 명탐정도, 유능한 경찰수사도, 피가 튀고 살을 도려내는 끔찍한 살인방식도 등장하진 않는다.

 

 

다만 술이 아니고선 나올 수 없는 기괴한 망상들이 낳은 가설과 가설의 무한 변주가 높은 확률에 도전할 뿐이다. 결코 프로가 아니며 사회에 아직 물들지 않은 그들만이 제시할 수 있는 청춘 미스터리라는 재미만큼은 신선했다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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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리 시즈카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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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테쓰야는 경찰이라는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세심한 전개와 묘사로 경찰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발군의 재능을 보여 왔다. 그럼 점에서 <히토리 시즈카>는 기존 자신의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외전격인 스타일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경찰은 등장하되 주역은 아닐뿐더러 주인공을 쫓는 술래와 술래잡기의 관계에 놓여 수수께끼라는 안개를 걷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이란 형상을 구축한 건 물론 이토리 시즈카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8세부터 31세까지의 인생을 여섯 개의 테마로 분류, 각각의 사건이 하나의 종점으로 귀결되는 구성을 택하여 눈앞의 단서에만 몰두함으로서 놓쳐버리는 진실과 배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달리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울산 와우북 갔을 때 씨엘 사장님께서직접 추천하신 책이었는데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이라고 하셨음. 그래서 질렀는데....

 

 

이토 시즈카의 그림자를 만나게 되는 첫 계기는 도쿄 고가네이 시의 연립주택에서 한 건달이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다. 현장에 출동한 기자키 경사는 피해자가 젊은 여성을 매춘과 마약에 찌들게 만든 무뢰배였으니 그를 증오할만한 용의자는 널리고 널렸을 거라는 점에 주목한다. 아니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는 어떤 착오를 뒤늦게나마 발견했단 점인데 사건은 해결된 것이 아니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어떤 존재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작은 이러했으니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별개로 인식되었던 살인사건의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짜 그림이 사건의 내막을 조종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름인 이토 시즈카라는 여성. 사건들 사이에서 미묘한 흔적만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녀를 번번이 놓치고 마니 신기루나 유령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각 사건을 담당한 경찰들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교묘히 개입하여 배후 조종하도록 만든 그녀의 미스터리함에 농락당하면서도 각자의 방식대로 행방과 단서를 뒤쫓는다.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그녀의 행보는 경찰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혼란을 제공하며 끊임없는 상상력으로 부족한 면을 보충시켜 이해불가지만 결승점으로 집결되도록 하는 셈이다. 타인을 괴롭히는 악은 벌레만도 못하니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소신과 증오를 동시에 지니는 이토리 시즈카를 선과 악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은 상당히 모호한 작업이다사회로부터 구제받지 못한 그녀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정의를 실현하려했을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만 하리라. 한편으론 현실에선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사적응징을 이런 방식으로라도 해서 결과적으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준 셈이니 속 시원했다. 그녀의 꾐에 빠져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살인자들을 대리인이나 소모품처럼 만들어버린 계략에는 감탄과 놀람을 금치 못했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불확실을 가능함으로 만든 그녀는 뱀 같은 여자!!!

 

 

그런 점에서 히토리 시즈카에는 다양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는데 혼자서 조용히홀아비 꽃대는 주인공의 이름인 동시에 누구의 도움에도 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고독한 길을, 보이지 않는 기개를 상징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에 모두가 그녀를 잡으려할 때마다 더 멀리 달아나버리는 과정을 반복 순환했던 그녀를 함축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각기 다른 화자의 입과 눈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며 조종하는 그녀에게서 해답을 못 들었기에 끝내 미스터리한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음은 보충과 여백이라는 미학이다. 물론 그 간극이 너무 커 좀 밍숭밍숭한데 역시 나에게는 칸테쓰와 이오카 콤비가 있어야 살 판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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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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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것은 실화이다. 무인도에 버려진 한 남자의 생존기는 자연스럽게 대니얼 디포의 <로빈스 크루소>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로빈스 크루소>에게는 야만에 대한 서구문명의 우월함을 역설하는 치명적 문제를 지닌 작품이라는 지적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반면 프랑수아 가르도의 이 작품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는 외견상 <로빈슨 크루소>와 여러모로 궤를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나르시스 펠티에가 로빈슨 크루소와 동일선상에 놓일 만한 출발선이 굉장히 유사하다. 프랑스 보르도를 출발하여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에 생폴호가 도착하게 된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기 전 까지는.

 

계속 발생하는 환자, 궁극적으로 사망자... 치료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마실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군도의 한 섬에 상륙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아직 어린 선원이었던 나르시스 펠티에는 동료들과 구역을 나누어 물을 찾다가 그만 복귀신호를 감지 못하고 그만이 혼자 섬에 남겨진다. 선장과 동료선원들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뱃머리를 돌려 떠난 뒤였다. 조난신호 표식을 남기면 자신을 찾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지만 그는 그 섬에서 무려 17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고립 속에서 탈진 상태에 빠졌다가 어느 날, 한 흑인 원주민 노파를 만나게 된다. 도무지 의사소통도 안 되는 상태에서 노파를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는 흑인 원주민 무리에 엉겁결에 합류하지만 이들 종족에 동화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서구 문명으로 대변되는 흰둥이와 야만인으로 대변되는 흑인 원주민 종족은 처음부터 이질적인 만남이었으니 태어나면서 야생으로 길들여진 정글북의 소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문명vs야만, 이성vs본능, 백인vs흑인. 이 모든 것이 무지와 충돌을 빚다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융합되기 시작하는 순간,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나르시스 펠티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흰둥이 야만인으로 변모해간다. 그래서 그들 무리 속에 섞여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17년 후 유럽의 한 상선에 나르시스 펠티에의 존재가 발견된다. 섬에 상륙했던 선원들이 원주민 무리 속에서 발견한 백인 남자를 시드니로 데려왔던 것.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이미 사망처리 되어 있었고 게다가 모국어인 프랑스어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프랑스어를 사용할 일도, 들을 일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언어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말이었고 모든 서구문화에 대한 규범과 예절 등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퇴화되었으며 흰둥이 야만인은 자칭 문명인으로 자부하는 유럽인들에게는 충격이자 색다른 호기심의 도구로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인 19세기 중반 유럽이 그러했다. 3세계 진출을 통한 식민지 쟁탈전 속에 피지배 종족들을 야만인으로 간주하면서 착취, 수탈이 만연하던 시기였으니 피부색이 자신들과 같은 야만인의 출현은 이해불가의 넌센스 였을 것이고 사르키 바트만 같은 인종 전시장의 유물로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르시스 펠티에를 다시 문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주변사람들의 시도는 문명속에 있다가 이탈했던 사람에게 다시 문명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흡사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학습효과와 유사한 형태가 된다. 그나마 그에게는 본능이 잠재되어 있다. 백지 상태애서 출발한 상태가 아니기에 언어부터 예절, 규범 같은 문화 재 습득 과정을 겪게 되면서 다시 이 세계로 편입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르시스 펠티에의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야만족들에게 가 있었다. 자신의 친 어머니 대신에 야만족의 노파를 먼저 생각한다. 이미 죽었지만 말이다.

 

나르시스 펠티에는 많은 이들을 감화시켜 나간다. 그래서 정작 가르침을 받은 것은 나르시스 펠티에가 아니라 자신들이었다는 자기고백이 흘러나올 때면 그렇게 마음이 짠할 수가 없더란 말이지. 이것은 결코 서구문명의 자아도취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 돌아가라, 야만이라는 편견 속에 진정한 이상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말이다. 어설픈 편견과 얄팍한 신화로는 재단할 수 없어 감동적인 인류학적 고찰 앞에서 실존과 자아라는 정체성은 고전적인 기록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읽어 볼 가치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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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 죽은 남자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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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자와 야스히코가 95년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국내에 작품이 소개되었다. SF와 신본격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착안은 얼핏 이질적이고 부조화라는 색안경을 피해가기 어려울 법도 한데 읽어보고 나면 남들이 흔히 시도하지 않은 방식에서 느낀 기상천외함에 색다른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류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분명 마니아들로부터 얻은 꾸준한 인기와 함께 이 작품의 국내출간을 갈망해왔던 분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난해하다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고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설정 없이도 이만한 수준의 미스터리를 창안해 낼 수 있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정한 날의 특정 행동과 현상들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지만 오직 본인만이 캐치할 뿐, 주변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진행된다는 설정은 작가도 시인했지만 빌 머레이 주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나 자신도 즉각 떠 올렸다. 타임루프를 이 영화에서 최초시도하지 않았음에도 이유 불문하고 단단히 각인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정한 날로 되돌아가서 반복함정에 빠진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상상은 누구라도 한번 즈음은 해보지 않았을까? 이러한 SF적 설정에다 미스터리가 가미되면 그땐 어떠한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그 엉뚱 발랄함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더군다나 20여 전에 출간될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타임루프가 시도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실로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목차부터가 유머러스하지만 각 파트별로 사건이 어떤 식으로 발단되어 전개되고 결말을 맡게 될지 기본적인 설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타임루프가 가진 구간반복이라는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독자들은 어떻게든 나선형처럼 돌고 또 돌아야한다. 이것은 마치 원을 그릴 때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그 지점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안으로, 어떨 때는 밖으로 뒤틀리면서 계란형이 되었다가 보름달형이 되는 식으로 원형에서 탈피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방식이 반복함정이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인 소년 오바 히사사타로는 사건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인지하고 있다. 큐타로라고 잘못된 이름으로 오해받는 히사타로가 어느 순간 체험하기 시작한 건 원인을 알길 없는 이상 체질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전예고도 없이 어떤 날이 딱 아홉 번 반복된다. 어제와 오늘은 달라야 하는데 내일까지 똑같이 반복될 때 시작된 첫 날은 오리지날이 되고 다음 날 부터는 자신의 의도한 바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전개시킬 수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 자신의 입맛대로 규칙을 유리한 쪽으로 이용해왔다, 입시에서도 문제를 반복 입수하여 만점을 받고 천재 소릴 듣지만 이후에는 다시 꼴통으로 전락하는 등 실력을 요행으로 얼렁뚱땅 넘긴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설날에 히사타로는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게 된다. 사업에 성공해 가진 게 돈 뿐이지만 과거 괴팍한 성격 때문에 가족들과 불화를 겪어 세 딸 중 두 딸과 의절하고 지내왔던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재산과 사업체를 지정된 후계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수시로 마음이 바뀌어 후계자를 갈아치웠지만 공인된 유언장을 작성해 확정짓겠다는 말씀에 지금까지 서먹하게 지냈던 히사타로네 가족들과 이모네 가족들까지 모두 할아버지의 환심을 얻어 재산과 사업체를 독차지할 속셈에 각자가 동상이몽을 꿈꾼다.

 

 

이제 가족들 사이는 경쟁관계로 인해 긴장과 반복, 대립이 극심해지는데, 다음 날 히사타로는 이 시점에서 자신이 또 반복함정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인 타임루프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계속 반복해서 겪게 될 그 날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시체로 발견된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할아버지가 살해되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히사타로는 바쁘다. 반복함정에 빠질 때마다 범인의 살인시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럴 때 마다 철저히 어긋나버린다. 범인은 날마다 다른 사람이 되니까, 나비효과가 되어 매일 다른 결과를 낳는데 마지막 날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가 이토록 유쾌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웃음은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지속되면서 끊임없이 낄낄거리게 하지만 미스터리물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결코 잊지않는다. 변수란 녀석은 본래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살인이 어떤 억제력을 뿌리치고 일정의 뒤틀림을 가져다준다. 이것을 인과율이라고 달리 표현하는데 반복현상은 논리를 설명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고 반복학습과 수정작업을 통해 최적의 답안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히사타로의 고민은 깊어지고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긋남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오리지날이라고 부르는 첫날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대책을 강구한다.

 

 

사실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신본격을 표방하고 있지만 고도의 두뇌게임을 요하지 않는다. SF라지만 과학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미스터리를 선호하지 않는 일반 독자층도 충분히 선호할 만하다. 이것은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이라는 물리적 흐름에 주목하다보면 범인의 정체나 살해 동기 같은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해법보다는 반전에서 지금까지 구상된 트릭들이 의외성이 아니라 규칙의 반복에서 빚어진 착각이라는 개념임을 알게 된다. 퍼즐이 아니라 넌센스 퀴즈 같은 타입이니 재미와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그 점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자칫 마이너틱한 이미지로 전락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저자는 정통계열에서 벗어난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미스터리의 한 계보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직구만으로 타자를 상대할 수 없으니 이 같은 변화구도 때론 필요하다. 강속구 투수는 수도 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유희왕 같은 투수는 변칙이 자신 있게 살아남는 또 다른 유형이자 요령인 것이다. 아웃만 시켜낸다면 정통파나 기교파냐 하는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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