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 Civil War 프로즈 노블 - 그래픽노블 <시빌 워> 소설판 마블 프로즈 노블
스튜어트 무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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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블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들이 슈퍼빌런들과의 싸움대신 내전을 겪는다면?

미국 코네티컷 주 스탬포드에서 뉴 워리어즈팀이 슈퍼빌런을 뒤쫓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론은 시한폭탄 같은 슈퍼히어로들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고 정부에서는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며 초인등록법을 제정해 모든 초인들의 신분을 공개하고 법적등록절차를 거쳐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키로 결정한다.

 

 

아이언맨은 처음엔 이를 반대하고자 했지만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게 되자 정부와 직접 교섭에 나서 절충안을 통해 수용하는 입장에 나선다. 하지만 모든 초인들이 이 법안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당연히 나왔으니 대표주자는 캡틴 아메리카이다. 그는 신분을 공개하며 정부의 통제를 받는 초인등록법이야말로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고 두 사람은 결국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한편 쉴드의 국장 닉 퓨리는 작전 중에 실종되었고 사령관인 마리아 힐이 국장직을 승계하면서 초인등록법에 입각하여 저항하는 초인들을 감금 수용할 시설을 지어놓고 무차별 검거작전에 나선다. 어쩔 수 없이 한 팀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언맨은 쉴드와 잦은 의견충돌을 빚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라도 저항군들을 달래보고자 하지만 아이언맨파와 캡틴 아메리카파는 각자 자신들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동시에 타협이 없는 격렬한 전투로 맞서면서 도시를 다시 위험과 혼란에 빠뜨린다. 이 와중에 평소 적이었던 일부 슈퍼빌런들 마저 양측에 합류하면서 정의라는 기준의 객관성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실 찬성파와 반대파 어느 쪽도 명분에서 확고한 우위에 놓여있지 않다.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꾀하자니 개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하고 인권을 우선순위에 두자니 세상이 안정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911테러 이후 안보 노이로제에 빠진 미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판타지 같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보수와 진보라는 기치아래 모두를 100% 만족시킬 완벽한 정책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떤 쪽을 지지해도 상대를 설득시킬 방법은 없다는 것. 아이언맨도 캡틴도 맹점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되어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결론 없는 소모전만 반복할 뿐이다. 세상사란, 정치란 이렇듯 정답이 없는 쳇바퀴 전쟁이다.

 

 

때문에 당초 그래픽노블을 소설로 옮기는 작업은 상당히 위험스러워 보였지만 액션의 합을 글로서 멋들어지게 표현해낸 동시에 가치관의 갈등 속에서 고민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초인들의 심리변화를 리얼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한 걸작이라고 하겠다. 가독성은 최고이며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치적으로 이슈화된 이 소설은 말이다. 작금의 세태를 두고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권, 여야모두를 겨냥한 저격으로 비쳐져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무엇이 옮고 그른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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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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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알게 된 것들을 언어로 쏟아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는 커피를 마시고 떠났다.

혼자 남을 수 없어 그녀도 덩달아 떠난다.

이번에는 파리에서 열차를 탄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부부는 사소한 문제로

잠시 다투는데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라 짧지만 끄덕였다.

 

 

남자는 핵존심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또한 그러하다.

여자는 틀린 걸 지적하려 했을 뿐인데 남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걸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나.

그렇지만 반대의 상황이 되면 마찬가지 아닌감.

지적하려 든다고 무척 질색하며 바리케이트를

사전에 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무수히 본다.

내로남불이라고 했던가?

 

 

주인공 나는 그런 점에서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

남편의 예민함을 잠시 잊었다며 미소 짓는 아내의

모습에서, 말로 하는 사과대신 진짜 애플을 내미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는 것, 익숙한 것, 이해하는 것들

전부가 배려심이라는 태양아래 녹는 아이스크림 같은

맛일 게다.

 

 

그리고 욕망에 충실하자는 의미로 얼핏 들리는

취중진담도 보이기 시작한다.

결혼이란 제도에 매여 한사람에게 충성하는 일이

권태로웠나보다. 외롭거나.

시작은 유통기한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사랑의

첫 키스에 눈이 멀어 일단 가고 보자며 스스로를

단디한다. 그러다 껌이 된다.

처음에 단물 안 빠졌을 때는 질겅질겅 맛있게

씹다가 단물 빠지면 계속 씹을 것인가,

아니면 껌 종이에 싸서 버릴 것인가의 기로에 서겠지.

 

그러면서 사랑의 결실을 찾으려들고

손익계산을 하는 동안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에는

바람처럼 훅 불면 달아날 것 같은 사랑이 들어 있을까,

외로움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까 끝없이 되묻는다.

겁먹고 있다. 우리 모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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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5
샤를 보들레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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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변신

 

이 때 여인은 숯불 위의 뱀처럼 몸을 비비 꼬고

코르셋 철골 위에 유방을 짓이기며

딸기 같은 붉은 입술로 사향 냄새 배어든 말을 흘렸다

 

"나로 말하자면 젖은 입술로 잠든 침대 속에서

캐캐 먹은 양심을 없애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내 압도적인 유방 위에선 어떤 눈물도 말려주고

늙은이도 어린이 같은 웃음을 웃게 만들어요

 

홀랑 벗은  알몸을 보는 이에겐

나는 달이 되고 해가 되고 하늘과 별이 되어 주지

~귀여운 학자님

나는 하도 관능에 통달해서

내 무서운 품 안에 사내를 꼭 껴안을 때

혹은 소심하고도 음란하며 여리고도 억센 내가

내 윗도리를 깨물도록 내맡길 때면

넋을 잃은 육체의 이 깔포단 위에선

정력 잃은 천사들도 지옥에라도 떨어질 지경"

 

그녀가 내 골수를 모두 빨아먹은 뒤

내가 사랑의 입맞춤을 돌려주려고

나른한 몸을 그녀 쪽으로 돌렸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오직

옆구리가 진득진득한 고름으로 가득 찬 가죽 부대뿐

 

등골이 오싹하여 두 눈 딱 감았다가 환한 불빛에 다시 떴을 땐

내 곁엔 피로 꽉 채운 듯한 억센 마네킨 같은 여체는 간 곳 없고

해골 조각들이 뒤섞여 떨고 있었으니

그 소린 풍향침의 삐거덕 소리인가

아니면 쇠막대기 끝에서 겨울밤 동안 바람에 흔들리며 간판이 울리는 소리인가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1957년에 출간되었지만, 그중 여섯 편의 시는 외설판정을 받아 유죄선고를 받는다. 다시 서른다섯 편의 시를 새로 싣고 문제의 시들을 삭제한 후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시집이란 말씀. 여기서 사장된 그 시들의 내용이 궁금하다.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기에?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그중의 한편인 <흡혈귀의 변신>이란 작품이다.

        

 

역시 농염하다. 끈적끈적한 것이 노골적인 성적묘사나 악마주의 같은 단골소스가 진탕 첨가되어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남긴다.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 모두 함께 실렸다면 더욱 멋졌을 듯싶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들어본 적 있다. <악의 꽃>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시어 하나하나가 던져주는 날 것 그대로의 질감으로만 받아들이라고. 그마저 쉽지 않은 단계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온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글래머스러한 여인의 육체를 보면서 응큼한 욕망을 연상하기보다 단지 눈앞에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곡선과 배치에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어둡고 사악하다가도 미지의 격정을 느끼면 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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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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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의 이번 시대물은 인간에 대한 탐구와 고찰에 있어선 더할 나위 없는
능력자란 걸 여지없이 증명하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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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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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괜찮은 역사물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책 표지는 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짐 보따리 싸서 벚꽃놀이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할 만큼 숨 막히게 아름답다. 그래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속을 떠도는 시선은 더욱 따스해서 책을 덮고 나면 주인공 쇼노스케를 생각하게 된다. 결코 안정적이거나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했던 쇼노스케가 인간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관계란 측면과 성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측정지표를 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쇼노스케의 아버지 후루하시 소자에몬은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형과 자신의 눈앞에서. 사건의 발단은 번에서 시종관이라는 직책에 있었던 아버지가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는데 결정적으로 뇌물 잘 받았다는 아버지의 친필이 담긴 증좌까지 나와 버렸으니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이런 글을 써준 적이 없거늘,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난감해하다 결국은 할복하고야 만다. 아버지의 죽음을 코앞에서 직접 목격한 쇼노스케는 충격을 받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게 가문은 몰락한 채, 당시 출세의 지름길이었던 무 대신 문의 길을 선택하고자 했던 쇼노스케는 에도로 올라온다. 애초 에도까지 올라올 계획이 없었던 그가 여기에 온 것은 뇌물을 받았다는 증좌, 즉 증서의 친필여부에 의혹을 품던 중에 높으신 어느 나리께서 대서일수도 있다는 흑막을 들이대면서 그 대서인을 찾아 이 한을 풀어보라는 제안이자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대서인이라는 자가 실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직접 죽여 버릴까?, 아님 법의 처벌에 맡겨야하는 것일까? 그 고민과 갈등은 일단 제쳐두고 만나게 되면 그때 생각해보자.

 

 

 

이야기는 대서인을 찾아나서는 과정과 결말이 핵심이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일방통행하지 않는다. 중간 중간 다른 사건들이 발생한다. 소소한 미스터리들은 어쩌면 쇼노스케 라는 인물을 한 뼘 더 격상시키기 위한 디딤돌이겠다는 관점을 가질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단순히 문제를 마무리한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주변이웃들과의 어울림에서 이야기가 비롯되기 때문이다. 카리스마는 없지만 연약한 서생인 자신과 정을 쌓고 친분을 교류하면서 소위 말하는 인맥이 형성되기에 필요할 때 마다 도움을 주는 정다운 손길들이 넘쳐난다.

 

 

 

가만히 보면 나이 대와 상관없이 여인들에게도 인기가 상당한 듯하다. 그래서 어떤 여인네랑 썸을 타게 될 것인지 에도 은근 호기심이 발동했다. 와카라는 처자와의 만남은 방점을 찍는다. 그녀의 신체상의 핸디캡은 잘못 다스리면 신세한탄을 하며 항상 남편과 자식을 전장에 내몰았던 쇼노스케의 어머니 사토에와 거의 유사한 출발지점을 가질 뻔 했다. 크게 보면 여인 쪽이 성격이 대차고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자신은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다행이다. 그녀는 엇나가지 않는 대신 현명하고 똑똑해서 좋은 신부감이 될 만한 여자였으니 말이다. 야망과 성공가도에 혈안이 되어 앞만 보고 달렸던 어머니와 형이라는 가족 구성원에서 알 수 있듯이 피보다 물이 더 진한 경우가 있다는 냉혹한 관계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면서 이제 복수는 무의미한 지경이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인간이란 어떤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인지 자각하기 시작하는 쇼노스케는 뒤죽박죽이란 말 대신 벚꽃정령을 만나 벚꽃박죽의 호사 속에서도 진정한 대도의 길을 보여준 것이다. 인간이라는 기능적 측면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더 없이 탁월하다. 그래, 유자소주 같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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