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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ㅣ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5
샤를 보들레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흡혈귀의 변신
이 때 여인은 숯불 위의 뱀처럼 몸을 비비 꼬고
코르셋 철골 위에 유방을 짓이기며
딸기 같은 붉은 입술로 사향 냄새 배어든 말을 흘렸다
"나로 말하자면 젖은 입술로 잠든 침대 속에서
캐캐 먹은 양심을 없애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내 압도적인 유방 위에선 어떤 눈물도 말려주고
늙은이도 어린이 같은 웃음을 웃게 만들어요
홀랑 벗은 내 알몸을 보는 이에겐
나는 달이 되고 해가 되고 하늘과 별이 되어 주지
오~귀여운 학자님
나는 하도 관능에 통달해서
내 무서운 품 안에 사내를 꼭 껴안을 때
혹은 소심하고도 음란하며 여리고도 억센 내가
내 윗도리를 깨물도록 내맡길 때면
넋을 잃은 육체의 이 깔포단 위에선
정력 잃은 천사들도 지옥에라도 떨어질 지경"
그녀가 내 골수를 모두 빨아먹은 뒤
내가 사랑의 입맞춤을 돌려주려고
나른한 몸을 그녀 쪽으로 돌렸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오직
옆구리가 진득진득한 고름으로 가득 찬 가죽 부대뿐
등골이 오싹하여 두 눈 딱 감았다가 환한 불빛에 다시 떴을 땐
내 곁엔 피로 꽉 채운 듯한 억센 마네킨 같은 여체는 간 곳 없고
해골 조각들이 뒤섞여 떨고 있었으니
그 소린 풍향침의 삐거덕 소리인가
아니면 쇠막대기 끝에서 겨울밤 동안 바람에 흔들리며 간판이 울리는 소리인가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1957년에 출간되었지만, 그중 여섯 편의 시는 외설판정을 받아 유죄선고를 받는다. 다시 서른다섯 편의 시를 새로 싣고 문제의 시들을 삭제한 후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시집이란 말씀. 여기서 사장된 그 시들의 내용이 궁금하다.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기에? 그래서 검색해봤더니... 그중의 한편인 <흡혈귀의 변신>이란 작품이다.
역시 농염하다. 끈적끈적한 것이 노골적인 성적묘사나 악마주의 같은 단골소스가 진탕 첨가되어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남긴다.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 모두 함께 실렸다면 더욱 멋졌을 듯싶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들어본 적 있다. <악의 꽃>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시어 하나하나가 던져주는 날 것 그대로의 질감으로만 받아들이라고. 그마저 쉽지 않은 단계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온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글래머스러한 여인의 육체를 보면서 응큼한 욕망을 연상하기보다 단지 눈앞에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곡선과 배치에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어둡고 사악하다가도 미지의 격정을 느끼면 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