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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램의 선택
제인 로저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인류의 문명은 날로 진보하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서 부작용이라고 봐야할지 다가올 대재앙의 전조로 봐야할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묵시록적인 현상들이 우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흔히 책에서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소재 삼아 단지 상상속의 미래가 아니라 머지않은 현실로 닥칠 것만 같은 피로감을 토로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제시 램의 선택>은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아서 클라크 상의 2012년 수상작인 동시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 부커 상의 2011년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된, 화려한 경력에 먼저 시선이 가는 가운데에서도 앞선 언급했던 인류의 존망과 직결된 스토리로 흥미와 불안감,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문제작이겠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시 램이라는 16살 소녀이다. 한창 꿈 많을 소녀시절을 보내야할 제시에게 세상은 크나큰 시련을 감당 못하고 혼란에 휩싸여 있다. 왜냐하면 모체 사망 증후군 MDS(Maternal Death Syndrome)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병은 말 그대로 임산부만 걸리는 병으로서 태아는 살거나 죽게 되지만 산모의 치사율은 100%인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이제 인류는 이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멸종하게 될 수밖에 없어서 선택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된다. ‘임플라논’이라는 시술에 의해 임신을 피함으로서 출산을 포기하면 여성들이 사망하지 않게 되거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명명된 시술로 16세 미만의 여성의 지원을 받아 보관 중이던 배아를 수정해 지원자의 몸에 이식을 시킨 뒤 생명이 잉태될 때까지 수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태아는 살릴 수 있지만 역시 산모의 생사는 장담할 수가 없다. 결국은 산모를 살릴 것이냐, 아니면 희생을 치러서라도 실험을 강행할 것이냐에 당사자들인 여성들은 격렬하게 찬반 반응을 보인다. 이 논쟁적 요소로 가득한 스토리를 읽으면서 여성들이 남성으로 변하게 되는 바이러스의 창궐을 다루었던 모 단편소설에서 느꼈던 성비 균형의 파괴가 불러온 갈등과 암울한 결말들이 즉시 오버랩 되었던 것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회적 시스템이든 그 어떤 이름으로도 해결이 안 된 세기말적 저주이자 족쇄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모성은 참 질기고도 엄숙한 숙명이자 굴레와도 같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이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제시의 선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은 소중해서, 그것이 자신이라면 더욱 사수해야함에도 어떤 사명감으로도 설명되기 힘든 그 선택에 박수를 보내야할지, 무모하다 해야 할지는 판단 내릴 수가 없는 과정이자 결말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도 저 출산 문제로 고민에 빠져있는 현재에 보낸, 늦기 전에 현명하고도 합리적인 대안을 속히 제시하지 못하면 제시와 같은 선택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혀진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