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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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7년의 밤>은 한국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고 그 해 각종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크나큰 화제를 모았었다.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에서 해외작품들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있던 한국문단을 수호하는 대항마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고도 평가 받았었고. 역동적이고 묵직한 서사의 힘은 실로 엄청났고 대단했던 것이 <7년의 밤>이었으니까. 이제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나오는군.

 

 

2년여 만에 나온 이번 신작 <28>은 출간 전부터 주요 언론과 독자들이 올해 한국문학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예정된 평가를 받으며 모두가 세상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화제작이 되어 버렸다. 나도 개인적으로 사전예약을 통한 구매란 걸 처음 경험해보았으니 마치 아이의 출산만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근두근 심장이 뜀박질하는 설레임.

   

 

인구 29만이 살고 있는 수도권 인근도시 화양시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병한다. 아파트에서 개 번식업을 하던 중년남자는 개에 물린 이후로 눈이 빨갛게 붓고 전신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이더니 사망하고 만다. 이것이 최초의 발병 시점. 이 남자를 구조했던 119구조대원들도 하나 둘씩 빨간 눈 괴질에 감염되어 차례차례 죽어나가면서 이 병은 화양시 인구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는 전염병으로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화양시 전체에 비상사태, 아니 사실상 계엄령이나 마찬가지인 도시봉쇄를 통하여 화양시 외부로 동 괴질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제 화양시는 고립된 도시, 죽음의 도시가 되면서 무법천지가 되고 도시 밖을 탈출하려는 시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군인들 간에 피 흘리는 사투가 벌어지게 되고. 

 

 

서재형은 알래스카에서 한국인 최초로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 참가했던 썰매꾼이었다. 11년 전 자신의 개 썰매팀 쉬차를 이끌고 결승점으로 질주하던 중에 화이트 아웃에 갇히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늑대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개 썰매와 자신을 이어주는 줄을 끊고 살아남는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개들은 몰살당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울부짖었던 개들의 몸부림과 썰매 개들의 어머니인 암컷 마야는 다갈색으로 물었었다 대장. 내 아이들을 어쨌어?”라고. 그는 살아남았지만 세계 각국의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면서 사랑했던 썰매 개들을 늑대무리에게 희생양으로 내놓았다는 죄책감이 트라우마 되어 평생을 시달린다. 살려내지 못했다는 마음의 짓누름은 귀국 후 화양시에서 유기동물 보호소 드림랜드의 수의사로 살게 하면서 조금이나마 속죄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트라우마는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구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절실하게 잇는 공감이자 인연으로 안내하는 거대한 증언이 되어 계속 반복된다.

   

 

한진일보 기자 서윤주드림랜드에 대한 익명의 제보를 받고 서재형유기견들의 보호자인가? 악질적인 개장수인가?”라는 기사를 써서 그를 궁지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감동어린 미담으로 TV에 출연했던 서재형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결정적으로 개 썰매팀 쉬차의 개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으로 보도한다. 이것이야말로 악의적인 제보에 대한 확인절차 없이 무책임한 언론보도가 진실을 어떻게 호도하는 것인지 제대로 입증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서윤주서재형을 직접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빨간 눈 괴질이 개에게서 인간에게 전염되는 병으로 보도함으로써 끔찍한 후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작가 정유정은 돼지들을 살 처분하는 동영상을 보고 소설 <28>의 시놉시스를 떠 올렸다고 한다. 만약 살 처분해야 하는 대상이 돼지가 아니라 반려동물인 개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방식은 철저히 이분법적이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들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이 없다. 인간과 개 모두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이 괴질은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이 개에게, 개가 개에게, 개가 인간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의학적으로도 명백히 입증되지 않은 대재앙.

 

 

화양시들의 개들은 모두 깊은 구덩이 안에서 집단 생매장을 당하게 된다. 이 모든 발병의 원흉으로 개들이 매도당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개들은 죽음을 직감하면서 두려움에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날뛴다.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개들은 군인들에게 눈을 찔리고 몸뚱이를 꿰뚫린 채 피바다 되어 무저갱으로 떨어져간다. 인간들만이 우월한 종자로 단정 짓고 자신들만이 생존하기 위해 말 못하는 짐승들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무참하게 짓밟는다.진실이라는 가치가 야만적으로 압살당하고 만다. 그제서야 서윤주는 깨닫게 된다. “살려주세요.”라는 개들의 절규와 살아남았지만 고립된 인간들의 살려주세요.”는 결코 다르지가 않다는 점을.

 

 

여기 또 하나의 시점이 존재한다. 약탈, 강간, 살인이 난무하는 무간지옥 화양시에서 희생양으로 전락한 개들의 분노와 생존본능을 대변하는 팀버울프 링고가 있다.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버림받고 투견으로 길러졌던 링고는 인간을 철저히 증오하고 불신한다. 우연히 서재형이 키우는 암컷 스타를 만나 첫눈에 반하면서 그녀만을 바라보며 그녀를 지키며 평생을 함께하는 행복을 꿈꾼다. ‘링고스타는 이름을 합치면 비틀즈의 멤버 링고스타가 되는데, 둘은 이름처럼 갈라놓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가 되지만 불행은 스타의 죽음으로 링고를 좌절이라는 상실감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 개입된 동해기준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다.

 

 

이 소설은 위에서 언급한 서재형’, ‘서윤주’, ‘링고’, ‘박동해’, ‘한기준’, ‘노수진까지 모두 다섯 명의 인물과 한 마리의 개의 시점이 번갈아 교차하며 이야기를 하나의 결승점으로 몰고 간다. 전염병이라는 소재는 일반적이나 시종일관 강력한 흡입력으로 깊은 울림과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구축해 둔 인간본성에 대한 탐구가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어떠한 낙관적인 기대나 희망도 없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 안타깝고 무고한 죽음이 연이어 계속된다는 전개가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이 사람 만큼은 살려내고 싶다고 바람을 걸어보지만 냉정하게도 그 가혹한 운명은 비켜가지 못했다. 죽어도 싼 놈이 있는가 하면 미처 피지 못한 한 떨기 생명 앞에서는 전염병에 대한 역학적 분석은 한낱 헛된 소망일뿐이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이라는 특급열차에서 하차하지 못하고 끝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비극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 한....

 

 

그래서일까? 다 읽고 나면서 긴 숨을 내쉬었다. 한참 동안을 숨을 죽여 가며 읽었던 것 같다. 실로 어마어마하다. 섬세한 묘사에 더해진 치밀한 긴장감, 게다가 미칠 듯이 폭주하는 이야기라는 힘은 외면하기가 힘들다. 한국소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흡족함이란...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야성과 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구원과 속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군림하고 지배할 권리가 있는 포식자가 아님을 안다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외경심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라고 읽은 소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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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 법정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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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라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마술 또는 주술·심령 등과 같은 비합리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최근의 문화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딱히 선을 그어 명쾌하게 정의내리기도 애매하니 현실 세계의 불안한 심리를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 이성과는 정면 배치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컬트에 대한 과도한 탐닉과 번성은 이 사회가 정신적으로 현실도피 해야 할만큼 구조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징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런 오컬트가 추리소설과 만난다면, 게다가 보너스로 현장이 밀실이라면 궁합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걸 기존의 추리소설들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는 물론이요, 미쓰다 신조 식 호러도 다 밀실 수수께끼와 불가능 범죄의 대가이자 오컬트 미스터리의 대가이기도 한 존 딕슨 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심지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서도 카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더라. “시계관의 살인에서 시시야 가토미가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인 후쿠니시 료타에게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를 물었을 때 두 사람 모두 카를 공통적으로 떠올리는데 이만하면 가히 전 방위적인 입지로다.

 

 

그런 까닭인지 화형법정은 카의 전성기를 대변하는 대표작 중 하나로, 역시 밀실 살인을 기본으로 사라진 시체, 벽 속으로 사라진 여인 등을 배경으로 한 스토리도 놀랍지만 유럽의 실제 역사를 꺼내 들어 죽은 인물이 살아 있다고 해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만드는 연출 방식은 특별히 돋보이는 대목이다. 17세기 악명을 떨친 희대의 독살범 '브랭빌리에 부인'이나 루이14세 때의 마녀 사건으로 유명한 '몽테스팡 부인' 같은 인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소설을 위해 가공된 인물로 오인하기 쉬운데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믹스함으로서 소설의 분위기는 진실에 대한 계속된 오판으로 몰아가는데 성공했다고 인정해 주자.

 

 

미국출신이지만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연출력은 완전범죄를 더욱 믿게끔 만든다. 완전과 불완전함의 경계 사이에서 기발하고 정교한 트릭이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결말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두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독자들의 평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모두가 과학적 해석이 가능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밀실트릭은 숨겨진 비밀통로와 기계장치나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빚어내는 착시현상 등 해법이 정확히 제시되는 문제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과학과 논리의 힘으로도 해결 못 하는 현상도 분명 존재한다. 수학문제도 풀 수 있는 게 있고 못 푸는 문제가 있듯이...

 

 

에드워드의 아내 마리는 말한다. "가봐야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거야." 라고. 마일스가 독살되었다는 전보를 들고 저택을 찾아온 경찰 '브래넌'과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내 마리. 사건이 안개 같은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깜짝 등장하는 작가까지 하나의 의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걸 막고 배출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갈등과 의심을 최대한 증폭시켜 나간다.

 

 

사라진 시체에 대한 주의분산과 삽화의 배치를 통한 폐쇄성 강조, 살인 동기라는 거짓된 가면까지 추리소설에서 오컬트가 가진 순수한 두려움에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에 거짓에 관한 낭만적인 감상에 빠지게 된다. 100% 가까운 명백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읽어야겠지만, 아니 그 정도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추리가 있을까? 일부든 전부이든 추정이다. 가끔씩 잊고 기계적으로 읽을 때도 있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미스터리에 있는 이유처럼 카의 괴기적 취향도 충분히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흡수 가능하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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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컨피덴셜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1
제임스 엘로이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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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버두 산기슭의 한 모텔에 한 사나이가 현금과 헤로인, 총기를 소지하고 들어온다. LA최대의 범죄조직의 대부 미키 코헨의 부하들과 LA 경찰 양측으로부터 추적당하고 있던 그는 모텔에서 이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결국 경찰로부터 사살 당한다. 19512월에 있었던 화끈한 느와르로 포문을 여는 이 소설은 그해 1225일 또 다른 사회적 이슈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한 여섯 명의 혐의자가 있는 감방으로 몰려간 경찰들이 우발적인 집단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한 것. 이 폭행사건을 계기로 LA 경찰국은 운명의 갈림길로 인도되며 대립과 갈등의 정중앙으로 빠져 들어간다.

 

 

복잡한 줄거리와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름과 역할을 외우는 일이 벅찰 정도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은 크게 세 명의 경찰로 압축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년기 아버지의 폭력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던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지만 끝내 실현 못했던 웬들 화이트는 합법적인 응징을 위해 가정폭력범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며 이들을 처벌해나간다.

 

 

에드워드 엑슬리는 LA 최고의 사업가인 아버지와 죽은 형에 대한 미묘한 존경과 반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로 머리가 비상하며 성탄절 폭행사건을 양심적으로 폭로한 영웅으로 둔갑하게 된다. 사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에도 전사한 일본군을 마치 자신이 궤멸한 것으로 위장하여 이미 전쟁영웅으로 등극한 적이 있다. 순경출신으로 현장보다는 머리를 이용한 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 남자.

 

 

뛰어난 사건해결능력을 보이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탈되어 있는 잭 빈센즈까지 이들 세 명의 경찰들이 벌이는 애증의 관계와 거대한 사건들이 충돌을 빚으면서 1951년부터 1958년까지를 배경으로 50년대 미국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통해 관료주의의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

사실 이들 세 사람은 한 경찰국에서 같이 근무하는 등료라는 점 말고는 "밤 부엉이 사건"과 거물 범죄자 "미키 코헨"과의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각자의 길에서 상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을 건넌다.

 

 

버드가 감성주의자라면, 에드는 이성주의자이며, 잭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융합한 인물로 묘사할 수 있는데 초반부에 설정되는 이들의 성격의 패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융화되어 가는 듯하다. 잭은 처음부터 중도파였지만 교활한 기회주의자로만 비쳐졌던 에드가 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진정성 있는 인물로, 반영웅주의의 선두에 섰던 버드는 대책 없는 사고뭉치였다가 이성을 회복해나가는 인물로 변모한다. 성탄절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사이였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동의 노선 앞에서 그들로 한낱 경찰의 일원일 뿐이었다.

 

 

이들은 배신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가운데에서도 이성과 비이성, 합법과 비합법의 수단을 통해 무엇을 요구받는지,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모른 채 지나가며 쉽사리 현혹당하기 쉬운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사건의 본질은 진상을 파헤쳐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동료 경찰들에게 단서를 줘서도 안 되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며 자신보다 더 위험한 유일한 사람을 배신해야 할 때도 닥친다. 어떠한 희생을 강요받더라도 절대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LA경찰국의 요구답게 은폐되어 있던 진실을 들어냈을 때 절대적 명제를 훼손하는 쓸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상처 많은 인간으로 조심성 있고 나약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미숙하고 덜 영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연쇄폭발을 보이던 광기와 폭력을 잠재우고 이 거대한 서사시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방대한 분량과 스토리에 완전몰입과 이해가 결코 용이하지 않았지만 시대를 초월한 느와르의 수작임은 틀림없으리라. 오래전 영화에서 느꼈던 그 끈적끈적한 재즈음악이 문득 떠오르는 걸 보면 원작은 더 뛰어나지 않았을까? 당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세였던 타이타닉

대중적 인기의 영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영화는 스타일이 살아 있었던 것 같다.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케빈 스페이시, 킴 베이싱어까지.... 그들의 명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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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2 - 송지나 장편소설 신의 2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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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도 왕의 방패가 되라고.

죽는 순간에도 왕을 지키며 죽으라고 가르쳤으니까.

허나..... 멈칫하던 마음이 다시 묻는다.

그게 뭐 그리 애달픈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과연 더 분한 일인가?  

 

춥다. 냉기기 뼛속 깊이 스며든다. 얼어붙은 호수 위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꿈속의 그 곳에서 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아들에게 "아직 못 찾았느냐"고 물으신다. 그리운 목소리에 답을 하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꿈을 깬다. 그래, 하늘로 돌아가시려는 그 분을 강제로 붙잡지 않았는가? 의식이 남아있는 한 최영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지켜야 할 도리는 신의, 이제 그 분을 어떡해서든 무탈한 상태로 하늘나라로 돌려 보내드려야만 한다. 그것이 고려무사의 언약이다.

 

 

은수는 대학시절 짝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온 마음을 다해 그 남자를 따라다니며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그러나 결과는 비참했다. 다신 이런 경험 따윈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다짐 또 다짐했건만 대장에게는 이상하게도 신경이 쓰인다. 뭐지 이런 기분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평생 표정 없는 얼굴이었을 대장을 보면 화가 나고 붙들어서 성치 않은 그의 몸을 강제로 치료하고 싶은데 왜? 숨어서 이렇게 지켜보아야만 하는 걸까? 도대체... ? ? ?

 

 

최영 그 놈이 적월대의 대장이었던 문치후의 제자였다고? 문치후가 자질을 탐내었던 아이가 최영이라는 말을 듣고 기철최영에게 호기심이 동한다. 절대 내공의 소유자인 기철은 자신의 호적수를 찾지 못하게 되자 무공으로 겨룰 일도 없어지면서 세상사는 일이 따분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최영이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일단 소유하고 싶어 한다. 용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늘 아래 믿을 자는 오로지 최영, 너뿐이다. 나는 힘없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왕이 되려한다. 그러나 아무도 믿을 자가 없다. 민심은 돌아선지 오래고, 신하들은 덕성부원군에 빌붙어 나를 능멸하려고 하는 간신들만 득실거린다. 하지만 최영 이 남자라면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아니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그의 마음을 돌려야한다. 자신과 왕비를 고려로 호송하는 임무를 마치고 우달치 대장의 자리를 던지려는 그에게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싶다. 공민왕은 자신의 유약함을 탓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에 놓여있다가도 그래도 나는 이 나라의 군주인데 믿고 의지할 충성스런 신하가 하나쯤은 있어야 이 보위를 지켜낼 수 있는 선결과제라고 고민한다.

 

 

전하, 그대는 이미 오래전에 저를 잊으셨겠지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대의 뒤를 따라 걸었지요. 그대를 얼마나 그리워했던지. 그 웃는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그대가 고려의 왕자 강릉대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대와 소통하고 싶어 일부러 고려의 말을 배웠고 저를 가엾은 고려의 여인으로 아셨을테죠. 저는 원나라의 공주지만 고려라는 나라와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모릅니다. 그냥 그대를 연모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바마마를 졸라 혼인을 하였습니다. 고려의 여인인 줄 아셨던 그대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겠지만 저는 머나먼 이국땅으로 그대를 따라 온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저에게 부디 마음을 여시고 미우나 고우나 지아비로서 당당한 위용을 보여주세요.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선 듯 안절부절 못하는 그대의 모습에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리고 최영 그 자는 저에게도 소중한 신하입니다. 제 목숨을 구명한 생명의 은인이니까요. 비록 정략결혼의 형식이 되어버렸지만 고려의 국모가 된 노국공주공민왕과의 옛 추억의 끈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아마도...

 

 

신의” 2편이다. 흔히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로 유명한 최영은 고려 충절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무심한 보통남자로 그려지고 있을뿐이다. 그에게는 과거 적월대의 일원으로 왜구무리들을 소탕하고 고려의 안위에 충심을 다한 적이 있지만 무능하고 방탕한 선대의 왕의 폭정에 문치후 대장과 목숨같이 사랑했던 여인 매희를 비롯한 동료들을 차례대로 잃은 후에는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었다.

 

 

충성을 바칠 나라도 왕도 모두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그래서 공민왕덕성부원군 기철 모두가 자신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냉담한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의선님을 다시 그 세상으로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언약 때문에 얼음장 같은 그의 내면에도 변화가 생길 조짐이 엿보인다. 누군가의 편에 서야한다는 선택이 기로에서 말이다.

 

 

신의 2을 읽으면서 드라마와 달리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역시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이다. 원나라의 내정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고려의 현실 앞에서 공민왕은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개혁의 깃발을 아직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최영을 탐하는 그도 남자로서의 능력에 질투하고 왕비에게 다정한 말보다 억하심정으로 퉁명스레 대하는 대목에서는 의기소침한 모습도 보여 진다. 왕은 태어나는 것인가? 대신 어떻게 왕을 만들 것 인가?에 대한 고민과 숙제가 엿보이는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기철에게 맞설 힘도, 의지도, 마스터플랜도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왕비에 대한 연민도 빼놓을 수 없겠다. 드라마에선 도도한 한 떨기 꽃 같은 아름다움만 존재했을 뿐인 그녀는 오로지 사랑 앞에서 결단을 내리고 위기에 처한 신하를 지키고자 하는 강단이 있어 소설과 드라마에서 배역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캐릭터인 것 같다. 공민왕 노국공주의 사랑은 시련을 이겨내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주안점으로 맞춰도 좋을 만큼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참 애절하더라.

 

 

경창군2권에서 가슴 절절하게 만든 인물들 중 하나인데 아직 천진난만할 나이지만 격변의 폭풍을 힘없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린 경창군이 너무 가여워서 오열할 뻔 했다. 그 어린 것이 무슨 죄라고? 그렇게 이 소설의 이야기가 다음 권으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방황과 애통한 마음에 감정이입이 심화되는 것 같아. 시대를 잘못 태어났을 뿐인 이들이 홀로 설 것인가, 복속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는 재미뿐만 아니라 통찰을 동시에 던져주기 때문에 3권이 기다려진다. 그래서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냐고? 난 이미 깊은 사랑에 빠진 기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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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1 - 송지나 장편소설 신의 1
송지나 지음 / 비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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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그분이 떠나시는 날, 내손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살아야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원작소설을 일부러 찾아본 적이 있는지? 암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나의 경우에는 확실히 없다는 것. 두 번씩이나 동일한 작품을 형태를 달리하여 비교할 정도로 너그러움이 없기에 대개 한 번의 감상이면 족하다. 드라마 "신의"만 해도 그렇다. 이미 종결된 이 드라마에 방영초기 잠깐 관심을 둔 적은 있으나 무협 판타지에 타임 슬립을 소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배경에서 어딘지 모르게 황당무계하면서 빈 그릇 같은 공허함이 느껴져 즉시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종영 이후 케이블에서 방영할 때 가끔씩 무료한 시간을 때울 겸 시청한 적은 있지만 꾸준하지 않았고 사실상 스토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연을 끝내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않게 원작소설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신의는 송지나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다. 송 작가 대본의 드라마 중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를 예전에 미친 듯이 좋아한 적은 있지만 그녀의 드라마 원작소설은 처음인데 이거 예상했던 것 보다 흥미를 당길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있어 읽는 즐거움이 상당한 소설이다. 그냥 기대 없이 읽은 소설이 기대 이상이었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때는 서기 1351년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의 볼모로 잡혀있다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책봉되어 왕비인 노국공주와 함께 최영이 이끄는 우달치의 호위를 받으며 고려로 돌아오던 중에 자객들의 계속된 습격을 받는다. 아무래도 고려와 원나라 사이를 이간질시키기 위한 암살시도인 것 같고 표적은 원의 공주인 노국공주인 듯하다. 악전고투 끝에 자객들의 암습에서 왕과 왕비의 목숨을 지켜내긴 하지만 왕비는 외상을 입고 만다. 최영은 공민왕으로부터 천혈로 가서 왕비를 치료할 하늘의 의원을 모시고 돌아오라는 어명을 받고 2012년 서울에서 의학 세미나 중인 성형외과 의사 유은수를 만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시도 끝에 그녀를 강제로 납치하여 과거의 고려로 데려오면서 시공을 초월한 역사 거꾸로 보기가 시작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뜬금포처럼 시청했던 드라마의 영상들이 파편처럼 뇌리에 각인되면서 그때 그 장면들이 담고 있던 배경과 상황 설명들을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림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라인들이다. 눈으로만 확인했던 인물들의 동선에 가려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와 심리묘사는 왜 드라마보다 원작소설인지 수긍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시각화는 가능하나 머리와 감성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안다.

 

 

그래서 소설은 덤덤하게 읽히다가도 한번 씩 마음을 울컥하게 뒤흔드는 대목들이 나오는데 최영, 유은수, 공민왕, 왕비, 기철까지 모두 다섯 명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의 시점과 심리가 교차로 전개된다. 그들의 속사정... 원의 내정간섭에 보국안민을 펼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왕들은 자주 교체되면서 신하와 백성들의 신망을 잃은 지 오래인지라 충절의 대명사인 최영에게도 왕에 대한 충성심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유은수는 얼떨결에 과거로 떨어져 역사라는 태풍의 한가운데 놓이면서 좌충우돌하지만 기죽지 않고 입담 쩌는, 당찬 현대여성이자 현대의술을 시전하며 의선으로 불리는 사람, 공민왕은 힘없는 나라의 새로운 군주로서 아직 자신의 소신을 펼치지 못해 자학하고 있는 나약한 사람, 공민왕을 연모하여 스스로 그의 여인이 되고자 자청한 원나라 위왕의 딸 노국공주, 내공을 익힌 절세고수이자 고려를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왕을 무릎 꿇려 조종하는 것에 더 관심 많은 야심가 기철까지, 이들이 펼쳐가는 판타지의 출발이 이제 시작되려 한다. 일단 시작의 느낌이 좋다.

 

 

작가가 일부러 드라마를 그대로 베끼듯 똑같이 집필하진 않을 것 같고 분명 드라마에서 시스템상 한계에 부딪쳐 미흡했던 부분들을 소설을 통해 마음껏 보완내지 그 이상의 완성도를 만들어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완전비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사실상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이제 2권으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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