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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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흔히 차였다는 표현을 씁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되어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실연은 아랫배를 세게 차이는 느낌만큼이나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연증후군다른 고통에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심각한 충격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다른 충격에 반응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가슴 통증과 같은 심장마비와 전형적으로 유사한 증세를 보인다는군요.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정도 느낌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심장이 산산조각 난다면 어떨까요? 이 소설은 그러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열여섯 소녀 브리는 남자친구 제이콥으로부터 어느 날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 순간 브리는 정말 죽었습니다.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충격을 견디지 못해 심장이 부서져 버렸던 것이죠. 실연의 고통을 이처럼 극단적으로 묘사한 표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려 합니다. “브리는 유령이 되어 저승과 이승을 떠돕니다. 자신을 죽게 만든 원흉 제이컵의 주변을 맴돌며 복수한다며 갖은 해코지를 하기도 하지만 저승에서 만난 패트릭에게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배우면서 깨달음을 얻어 새로이 성장하게 됩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브리처럼 우리들도 그 나이에 벼락을 쾅쾅 맞은 것처럼 운명 같은 사랑을 맞이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엔 아직 어린 열여섯은 조건이 붙은 어른들의 세속적인 사랑 대신 무엇보다 순결하고 깨끗한 사랑에 빠지기도 쉽고 그만큼 상처받기 또한 쉬운 나이였을 테죠.

 

 

그래서 패트릭의 말처럼 안식을 찾아 새 출발 해야 한다는 것, 사람들을 미련 없이 떠나 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충고에도 쉽사리 마음 정리를 못했습니다. 설득당하지 않겠다며.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던 것, “제이컵이 평생 유일한 사랑이라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 거라는 믿음에 소녀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어른이 된 우리들은 잘 압니다. 그 순간뿐이라고, 아직 많은 여정이 남은 인생에서 첫 실연은 한 뼘 더 성장시키는 도약이고 진정한 사랑을 다시 하게 될 날이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진리를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딱 하루를 환생할 수 있다는 악마적 유혹에 빠질 뻔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패트릭의 한결같은 믿음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서투르고 미숙했던 소녀는 새로운 행복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응원했던 보람이 컸습니다. 읽는 내내요. 단지 청춘남녀만의 사랑을 떠나서 평소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미처 모르고 그냥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내가, 아니면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는 까닭도 더 이상 기회가 없기에 그 절박함과 안타까움도 배가 되는 듯합니다.

 

 

아니. 너나 똑똑히 들어. 넌 고통이 뭔지. 고독이 뭔지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모두가 너를 잊어버린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네가 이 세상에서 지워진다는 게.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273페이지>

 

 

이 소설 <상심증후군>에서 영혼이 이승에 추락해서 사물을 직접 조종할 수 있게 되까지의 과정이라든지, 영혼이 영혼을 사고파는 거래, 영혼이 자살을 하는 장소 등 로맨스를 넘어 재미있는 판타지적 설정은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를 지속시켜 주어 좋습니다. 때문에 피식거리게도 하였다가 갑자기 코끝 찡한 슬픔도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는 <상심증후군>은 이 가을, 메마른 정서에 충분한 힐링을 가져다 줄 만 이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실연당했을 때 심장이 부서지는 기분이란 어떤 경험인지 직접 읽고 느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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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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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오노 후유미<십이국기>는 귀가 따갑게 명성을 들었던 것 같아요. 서양에 <반지의 제왕>이 있다면 동양에는 바로 <십이국기>가 있다고요. 대단한 극찬이 아닐 수 없죠. 때마침 문학 동네서 사전 서평단을 선정해서 가제본을 보내주었기에 무척 부푼 기대를 안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1권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로 이 판타지를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여고생 요코. “요코양은 악몽을 자주 꿉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 생긴 짐승들이 그녀에게 점점 가까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몸은 옴짝달싹 못해서 이대로라면 죽고 말 것 같은 공포. 꿈을 꿀 때 마다 그 거리가 점점 좁혀오는데 단순히 꿈이라기엔 마음의 불안도 덩달아 커져 가지요.  

 

그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걸까요? 갑자기 게이키란 남자가 학교에 나타나 주인님이라 부르면서 적들을 피해 어서 피신해야 한다면서 요코양을 다짜고짜 어디론가 데려가려 합니다. 멘붕에 빠진 요코양은 끌려가다시피 해서 따라가던 차에 거대한 새가 나타나 공격을 해오고 검 한 자루를 넘겨받아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한 빙의로 인해 그 새를 베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혼자 다른 세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 세계는 자신이 살던 일본이 아니라 12개 나라로 구성된 또 다른 땅덩어리였는데 행불된 게이키를 찾아 다시 원래 세상으로 되돌아 갈 방법을 구하고자 방랑을 합니다. 도중에 요마들의 계속된 습격과 자신같이 다른 세계에서 우연히 넘어오게 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해객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람들의 추적도 받으면서 도움을 청할 이라는 나라로 향해요. 

 

각 나라마다 현재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연왕이라는 군주는 해객에게 차별과 위해를 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분이라면 자신을 함부로 내치지 않고 어떤 도움이나 실마릴 제공해 줄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또 어쩌면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타인이 원하는 그림대로 살지 않으면 버림받을까 억지로 범생인 것처럼 행동해야 했던 요코양이 두려움과 안주라는 껍질을 깨고 나가 자신의 의지대로 현실을 경영하려 하는 자아성장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듭니다. 자기 목소릴 내면서 말이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변화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전사가 되어갑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가진 보검이 마음 속 번민과 두려움을 가족과 친구, 주위사람들이 평소 그녀에게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 영상으로 보여줄 때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들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도록 만듭니다. 실종되었지만 엄마 말고는 그 누구도 요코양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소문과 추측, 비아냥만 난무하는데 나도 죽어버린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면 공상이 만들어낸 이상향으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단 평소 생각들이 오버랩 되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이 책은 그런 바람들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지요

 

차라리 죽는 게 고통이 적다. 모두가 자신을 이용하려할 뿐이다 면서 사악한 웃음을 날리는 푸른 원숭이라는 허상과의 심리전은 그래서 몰입도를 더욱 높여나갈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원숭이를 더 이상 보지 않는 순간부터 요코양은 정체성을 되찾아 비로소 자신이 여기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각성하게 되는 것이며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됩니다. 그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쥐의 모습을 한 라쿠슌이라는 반수와의 만남입니다.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믿음, 신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순순한 호의로 접근하지 않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부터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라쿠슌이 무척 좋았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영민하고 듬직함과 푸근함을 함께 느끼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엄마 뱃속이 아닌 열매에서 태어난다는 발상도 기막히네요. 요코양의 여기에서의 모습이 일본에서 살 때랑 다른지를 설명해 주는 결정적 이유였으니까요. 그렇게 판타지적인 여러 복합적 설정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애니로 이미지화한 후 책으로 보충설명을 이해하는 병행 방식이면 이 시리즈를 읽어나가는 일이 원활해 질 것 같네요. 단지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진짜 이유가 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보편적인 목적 대신 원한, 증오 같은 감정들이 변태적으로 분출되는 것 같아서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 이유라면 굳이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있나, 무의미한 희생 때문에 말리고 싶었지요. 정복전쟁이 아니면.... 

 

우야동동 출발점은 무난했던 것 같네요. 진정한 대작으로 이어질지는 후속편에서 두고 봐야 하겠죠. 만약 모든 것이 잘 마무리 된다면 요코양은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가 역시 주목할 만한 선택이겠습니다. 그 선택이 뻔히 보이기도 합니다만 대단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끝까지 가 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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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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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히로키의 경찰소설 <교장(敎場)>은 한자로 풀어보면 하면 교육장이 되겠네요.

구체적으로는 일본 경찰학교의 교육장입니다. 저자는 경찰소설의 집필을 앞두고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출간된 경찰소설과 차별점을 만들고자 고민했으며, 그 결과로 경찰학교를 무대로 한 이번 작품을 내놨다고 합니다. 확실히 경찰학교를 전면에 내세운 경찰소설은 여태껏 본 적이 없어서 생경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소 특이한 점은 연작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어 특정한 인물 한 사람의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매 에피소드별 중심이 되는 생도가 있고, 그 생도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주변인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 생도들을 조율하고 경찰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통제관으로 가자마라는 교관이 따로 있습니다만 엄연히 생도가 주인공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입학과 동시에 바로 순경이라는 직급이 부여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직급은 무사히 수료했을 경우에 한해서 부여되는 줄 알았더니 아닌 가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실제로 수료해서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서 받는 교육과정들은 엄청나게 강도가 세고 따라서 혹독합니다. 불심검문, 체포술, 차량수색, 형사소송법 생도들이 통과해야 할 교과목들만 해도 까다로운데다 규율은 더욱 심신을 고되게 만들지요.

 

 

일례로 세 걸음까지는 걸어도 되지만 네 걸음부터는 반드시 뛰어야만 하고, 개인소지품에 자기 식별표시를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한다든지, 매일 일기를 의무적으로 써야하는 대신에 창작이 약간이라도 들어가든지 하면 체벌과 심할 경우에는 퇴학까지 당할 정도입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바로 탈락이라는 냉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피 끊는 청춘들은 단련 또 단련해야겠죠.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자신감을 유지하면서 실습 시 당황하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교육과정만 잘 따라가서 수료는 무난할 것 같지만 중도에 탈락자가 나옵니다. 단순히 실력 부족 탓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자진 퇴교하는 생도들이 매 에피소드에 꼭 한명씩 나오는데 마인드 컨트롤을 못한 일부 생도들이 또래 생도들과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어떤 불협화음들이 주원인입니다. 오해와 불신, 악의와 증오 등이 우리는 하나다 같은 동료의식을 밀어내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자주 벌어져요.

 

 

그것을 매의 눈으로 포착하는 수사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앞서 말한 가자마교관입니다. 불행한 사고의 원인과 동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정확히 꿰뚫어보면서 규율 내에서 문제적 생도들을 계속 안고 갈지, 중도 탈락시킬지 같은 칼자루를 쥐고 시험하기도, 기회를 다시 주기도 합니다. 경찰관이라는 자질을 단순히 교육과정을 잘 이수하는 것에만 두지 않고 인간의 심연에 두면서 이 직업을 투철히 수행할만한 성향인가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지혜도 있습니다. 그 과정들이 조용하면서도 교묘하고 효율적이어서 일체의 잡음이 들리지 않네요. 그런 식으로 소리 없는 카리스마를 작렬시켜주시는 가자마교관은 참으로 멋진 캐릭터였어요. 6개월이라는 단기는 짧다면 짧지만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생도들을 잘 유도하기도 하니까요

 

 

또한 경찰소설의 대가로 인정받는 요코야마 히데오"경의를 표한다. 항복이다!"라는 전설적인 독후감을 남겼다는 풍문이 이 소설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감상을 남겼는지 찾아볼 수만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데 가능했다면 그 독후감을 별도로 이 소설 마지막에 실어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대중적 기호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겠지만 갓 태어난 햇병아리들을 강하고 체계적인 신입경찰로 육성하고자 하는 그 공정들을 정밀하게 견학시켜 준 <교장>은 지금까지의 경찰소설 중 가장 그 본질을 제대로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감히 최고봉이라고 주장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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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즈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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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눈을 뜹니다. 머리는 지독한 편두통에다 늑골은 누군가 강철 쪼가리를 찔러 넣은 듯 무척이나 고통스럽습니다.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지갑도, 신분증도, 휴대폰도 없이 거리를 비틀비틀 걷던 이 남자는 결국엔 다시 쓰러졌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 병원입니다.그는 미연방 비밀수사국 요원 에단 버크예요. “에단이 기억하는 건 현 대통령의 이름, 헬기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 중동에 벌어진 전쟁에 참여했었다는 것, 서른일곱 살에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것, 실종된 동료요원들을 찾아 이 곳 웨이워드 파인즈라는 마을에 왔다는 점입니다.

 

 

이 마을에 도착함과 동시에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처음에 에단의 기억들과 보고 듣는, 모든 현상들이 정신적 외상장애 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과대망상에 빠진 돈 키호테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마을이 의문투성이에 이상한 곳이군요. 자신이 연방요원임을 내세워 보안관을 찾아가지만 오히려 동료요원을 살해한 범인으로 내몰립니다.

 

 

또한, 아내에게 분명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실종된 요원은 폐가에서 침대에 묶여 죽어 있었구요. 모두 그를 정신병자 취급합니다. 아주 외딴 지역에 자리 잡은 마을은 전기 울타리에 둘러싸여 아무도 밖으로 탈출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보안관에게 반항하다 먼지 나게 두들겨 맞곤 병원에 강제 감금당해서 뭔가 약물도 투입하고 수술도 하려는 듯합니다. ! 위기일발의 순간에 바에서 만났던 바텐더 여인이 나타나 탈출을 돕습니다. 병원은 간신히 빠져나갔지만 그 때부터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두 사람을 뒤쫓습니다.

 

 

외부로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아나지만 결국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 잡혀 갈기갈기 찢겨 처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집요하게 추적하는 사람들 때문에 진실은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지며 에단은 미치광이가 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제정신임을 깨닫는 것임을 그제야 깨닫게 되죠. 꿈과 인생이라는 의식의 뗏목에 매달리는 일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이야기는 달려갑니다.

 

 

웨이워드 파인즈에서 새롭고 놀라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정신 상태를 의심케 할 만한 것들은 과연 자신이 진정 미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인지, 어쩌면 이 모든 의구심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그래서 손에 책을 잡는 순간 끝까지 손에서 뗄 수 없는 겁니다. 아름다운 지옥, 도시를 둘러싼 감옥의 철창,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 게다가 반군까지 존재하는 이유가 점점 알고 싶어서입니다. 이상한 생명체도 에단의 목숨을 위협하는데 합류하는군요.

 

 

피의 축제, 이상한 광기, 시간의 왜곡, 기억의 퇴행 등 계속적으로 충격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욱 놀랄만한 반전이 기다립니다. 2015년 미국 폭스 티비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기도 한데, 감독은 <식스 센스>“M. 나이트 샤말란감독이, 주인공 에단 버크역에는 맷 딜런이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가득 찬 이 소설에는 흡사 <혹성탈출>을 연상케 만드는 세상의 안과 밖이 존재하고 있는데, 생물의 진화 중에 인간의 진화는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묻습니다. 축복인가? 재앙인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인가? 그 점을 알려주는 웨이워드(wayward)”라는 마을 명은 변덕스러운, 제멋대로의, 다루기 힘든, 까다로운등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대단히 난폭합니다.

 

 

미스터리에서 출발하여 스릴러, 호러, 액션어드벤처, SF로 넘어가며 종횡무진 내달리죠. 놀라운 사실은 이제 3부작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을 펼쳐 놓았으면 궁극에 어떤 결말로 봉합할지 완결편 까지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을 거라는 것이죠. 아찔하고 현란한 속도감은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시작은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적이라서 부디 용두사마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그래서 근래 보기 드문 가독성이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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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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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는 나에게 중국 현대소설의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가슴에 새겨준 잊지 못할 작품이었고 웃음과 짠한 눈물이 교차하는 경험이라 기회만 된다면 그의 다른 작품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염원을 항상 담고 있었다. 그래서 신작 장편소설 <7>은 그의 작품세계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오랜만의 재회선물이거나 처음 그의 작품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입문작으로 손색이 없어서 역시 위화구나.하는 감탄이 든다. 작가 스스로도 ‘30년 문학 인생의 결정판으로 꼽는 작품이라고 하니 팬이라면 결코 놓쳐선 안 될 것이며 어느덧 우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중국 작가로 꼽힐 정도가 되었음은 영향력 면에서도 그 스펙트럼은 광대하다.

 

그런데 왜 소설의 제목이 <7>일까? 그것은 주인공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난 뒤 이승에서 저승으로 완전히 넘어가지 못하고 떠도는 "7일" 동안에 벌어지는 사후기를 의미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조물주가 엿새 날까지 일을 마치고 다음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었다고 되어있고 거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리하여 종교적 의미를 인간의 사후에 시간적, 공간적 의미로 변환함으로서 인생을 숙연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적 경계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마감한 이후(천수를 누렸거나, 병사를 했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죽음의 형태와 살아온 기간은 상관없이) 묘지에 안정되어 완전히 "저승"으로 넘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공간인 것이다. 살아서는 각자의 처지가 달랐던 인간들이 생전의 시간들에 대하여 추억을 되새기고 삶이라는 형태에 대한 해석을 거쳐 영원한 안식을 찾아가게 하는 셈이다.

 

 

또한 “7이라는 공간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는 회한과 오해와 앙금을 털고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화합의 한마당이 될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다. 묵은 때를 씻어내고 마음의 빚을 청산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인공 양페이는 자신을 임신한 어머니가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못 견뎌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그만 구멍으로 빠뜨려 이산가족이 된 아픔이 있었다. 철도원이 된 양아버지가 아이를 발견해 지극정성으로 키워냈고 나중에는 친어머니와 재회하지만 양아버지를 못 잊어 돌아온 양페이”. 어릴 적에는 부양이 힘들어 일시적으로 자신을 버린 적도 있었던 양아버지였지만 너무나도 사랑해주셨던 그 분이 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되자 양페이에게 짐이 되기 싫어 집을 나갔고 그 분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고 다녀야했던 그 기억은 양페이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었다. 그렇게 살아서는 만날 수 없었던 두 부자가 “7이라는 공간에서 상봉하게 되는 일은 어떠한 극적인 장치를 심지 않고도 은연중에 떨리는 슬픔과 기쁨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순간의 뭉클함이란!!!

 

그 밖에 양페이“7동안 많은 여러 사람을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된다. 생전에 자신의 옷깃을 스쳐갔던 인연들이 여기에 와서 재구성되는 걸 보면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도 인간의 관계라는 연줄은 어떤 식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게 진기했다.두 사람의 원한은 생사의 경계를 넘지 않았다. 원한은 저지당한 채 그 떠나간 세계에 남았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지지고 볶았던 악연들이 사후에는 아무런 쓸모없이 순백의 심성으로 어떤 편견이나 조건 없이도 상대를 재평가하는 공간이기에 죽어서 다시 만나는 그 곳은 욕심에 찌들려 아등바등 살아온 "이승"에서의 시간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지 깊숙이 깨닫게 된다. 

 

분명 이들에게 생전의 삶은 사회주의 체제에다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중국의 시장경제체제와 여전히 부패하고 경직된 관료라는 벽으로 인해 고달펐으리라. 그렇게 빈부의 격차에 시달렸던 이들은 인간다운 대접은 고사하고 억울한 죽음에도 세간의 관심도 못 받고 쓸쓸히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죽어서는 만인이 평등할 줄 알았는데... 적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논리는 죽어서도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돈이 없으면 누울 묘지도 없거나 슬퍼해 줄 유족도 없는 상황이라면 번호표를 뽑고 자신의 화장터에 가기 위한 채비를 한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통한가! 돈 많은 부자는 VIP로 대접받고 좋은 관에서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서 화장되는 호사를 누리지만 양페이같은 이들은 마냥 떠돌다가 부패해서 해골이 되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차별은 비참하지만 저승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인간이라는 의미,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의의를 다시 찾는 순간들과 깨달음이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작가는 부자들의 삶을 결코 반추하고 있지는 않다. 가난에 찌들었던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 물질적인 성공과 행복에 매진하며 선택의 기로에 놓을 수밖에 없어 결정해야했던 판단에 결코 옳고 그름이라는 무게를 두지 않는다. 인생이란 과정은 섣불리 어떠한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각자가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단지 이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한 체제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이번에도 유머와 눈물이 절묘하게 교배되는 구성으로 찔러댈 뿐이다. 그래,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는. 죽은 사람들 모두 평등하기를 바라는 세상을 염원하며 떠나가고 있구나

 

이제 작가의 한국방문 소식도 들리고 <허삼관 매혈기>가 배우 "하정우"의 연출로 2014년에 한국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니 여러모로 기쁘고 반갑다. 영화는 영상으로 어떻게 재해석될까? 문화혁명기의 중국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할 테니 분명 어떠한 변화가 있겠지. 부디 원작의 감동을 훼손하지 말고 최대한 가깝게 잘 살려내기를 바란다. 물론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든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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