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머니 2 밀리언셀러 클럽 131
옌스 라피두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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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라피두스의 범죄소설 <이지 머니>는웨덴의 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범죄의 재구성이자 범죄와의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칠레 출신의 마약상 "호르헤"는 자신과 거래하던 조직의 수장 "라도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마약밀거래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지만 증오와 분노로 인해 교도소를 탈옥하고 나와서는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조직에 대한 복수를 꿈꿉니다. 스웨덴 토박이 대학생인 "JW"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과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하여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실종된 친누나의 행방을 좇고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갱 조직원인 "므라도"는 이혼한 부인과 사이에 둔 딸의 양육권 분쟁과 함께 예전에 친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 "므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독립하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세 명의 범죄자가 스웨덴에서 마약으로 벌어들이는 "눈먼 돈"를 쟁탈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을 생생하면서도 거칠고 잔인하며, 스피디한 전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미 영화로도 제작되어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개봉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범죄도 계급화, 세계화, 기업화되는 경향이 가속화중인 것 같습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극빈층의 신분상승의 꿈은 "JW"를 통해서도 가늠 가능하듯 범죄 조직에 대한 꾸준한 공급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범죄조직의 국적도 글로벌화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칠레, 아랍계까지 여러 국적의 범죄조직은 해가 지고 난 어두운 밤 거리의 이권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흡사 기업운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교묘히 합법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추세인 듯 합니다. 마약, 매춘을 비롯하여 다양한 업종방식과 더불어 스웨덴 경찰에서 공세를 진행 중인 대 범죄조직 소탕작전 "노바 프로젝트"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 조직간의 합종연횡 전략같은, 범죄의 끊임없는 자생력에 혀를 내두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아요.

 

 

저자 옌스 라피두스는 기존의 범죄소설들이 경찰 또는 탐정 위주의 캐릭터였다면 범죄자 그 자체를 그려보고 싶었으며. 범죄에 대한 해결보다는 플롯을 통해 범죄의 재구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형사 전문 변호사 로 활동 중인 옌스 라피두스는 과거에 참여했던 아파트 무장강도 사건 재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결국 "그 길 밖에 없었다."는 해답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화 대신 범죄의 길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라는 종착역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끝맺게 될 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범죄의 세계에 매혹되고 있습니다. 그들과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을 대중들에게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어떠한 감정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하류인생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지요. 그런 세상은 또 없으니까요. 그것이 호기심이든, 동경이든, 혐오든 상관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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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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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고즈넉이 저물려고 하는 자주 빛의 하늘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이 어디로인가 날아가는 중입니다, 고개 들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나와 있는 표지를 들여다보노라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왠지 담겨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작가가 누마타 마호카루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출간된 전작들로 극심한 호불호가 엇갈렸던 그녀의 소설들은 광명의 빛줄기 보다는 칠흑 같은 어둠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도록 독자들을 방임하는 것이 작풍으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두 남녀의 기묘한 동거는 달콤함이 아니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혐오와 경멸로 점철되어 불쾌한 마음에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지독한 악취가 글로 읽혀져 세상이 거부하고 싶게끔 하지요. 8년 전 자신을 철저하게 이용한 후 가차 없이 버린 쿠로사키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여자 토와코는 열다섯 연상의 진지라는 중년남자와 동거 중입니다. 진지는 볼품없고 지저분한 외모에다 어눌한 말투와 매사에 서투르고 미숙한 남자입니다. 여자들이라면 결코 쳐다보지도 않을 형편없는 남자라 토와코는 끔찍이 그를 싫어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기생하다시피 얹혀삽니다.

 

그렇지만 토와코의 경우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망상에 갇혀 살던 그녀는 백화점 직원 미즈시마와 불륜에 빠져있어 도적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점은 친 언니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도 별다른 반박을 못하는 토와코의 반응을 통해 독자들의 심정을 속 시원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죠. 정신적 공황에 놓여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옛 사랑 쿠로사키가 5년 전 부터 실종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녀는 혹시 진지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닐까라는 의혹을 품게되는데요. 현재 그녀가 만나는 미즈시마의 주변에도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자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자신의 사랑을 음해하려는 진지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날이 커져 갑니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환희에 젖어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듯한 사랑은 길어봐야 2년 반을 못 넘는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녀는 왜 아직도 쿠로사키를 못 잊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후반에 들어서 그 비밀이 드러나면 비로소 그녀가 가진 망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미즈시마는 그녀에게 타클라마칸 사막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는데 그 사막 이름에 담긴 드리운 죽음, 무한, 출구가 없는 것이란 의미들은 자생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그녀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네요.

 

자신이 딛고 있는 이 세상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모른 채 모래구덩이에 발이 빠져 휘청거리며 허망하고 기이한 허무감이 몸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녀에게 사랑이야말로 새들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켜줄 구원의 손길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랑에 배신당한 그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일련의 행동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진지는 어렸을 적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불우한 성장환경으로 아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토와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집착 수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녀로부터 수시로 구박받고도 공세를 멈추지 않지요. 같은 남자가 봐도 숨 막힐 정도의 집착이지만 한편으로는 천성이 악한 남자가 아니기에 연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인 튀김우동, 소 이야기 등을 통해 자신이 못 누렸던 애정과 행복을 토와코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은 눈물겨운 순정이 담겨있기에 이런 순애보가 또 있을까 싶어 무작정 미워할 수 없게 하지요.

 

그렇게 왜곡된 사랑으로 힘겨운 전개를 보여주던 이야기가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라며 진지는 토와코에게 진정한 해방구를 제공하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남녀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진리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기준대로 반응하기를 기대하기에, 남녀 간의 사랑은 오해와 사고와 문제로 가득한 것이겠죠.

 

토와코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느끼는 회한을 보며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여성은 이상으로 사랑을 하고, 남성은 속셈으로 사랑을 한다는 명언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토와코를 만난 쿠로사키와 미즈시마가 그랬다면 목숨 걸고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진지는 속설을 거부한 남자기에 특별합니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사랑에 빠져 있기도 쉽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이므로. 하지만 한 사람 곁에 머물면서 그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랑을 주면서도 그 누구보다 외롭고 공허했던 두 사람 토와코와 진지. 처음부터 중반 이후까지 두 사람을 저주하던 제가 압도적인 결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랑을 준 사람도 후횐 따위 없었노라고 자신 있어 할 때 받은 사람도 억만금을 주어도 얻지 못할 진정한 행복을 누렸었음을 뒤늦게 알아 차렸기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사랑이 뭐길래 밉지 않나요? 이 순간에도 이 세상의 많은 남녀들이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울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이 탐탁치가 않다구요? 한 남자의 절대적 순애보를 한번 만난다면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감동과 슬픔에 몸을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2012년을 빛낸 최고의 일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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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
매튜 퀵 지음, 정윤희.유향란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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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 인생 자체가 앞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할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게다가 니키만 돌아오기만 하면, 곧바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될테고요. 이렇게 상담치료도 받고 명상도 하고. 매일 운동도 하면서 스스로 나아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거든 요."

 

사랑으로 다친 마음은 사랑으로 치유하라!

 

말은 참 쉽죠. 여기 사랑에 서투른 두 남녀에게는 그리 만만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은 그 벽을 단단히 더 단단히 넘보지 못할 지경에까지 높이 쌓아 올려놓았지요. 팻과 티파니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이 남자. 팻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꼭지가 돌아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순간의 분노로 감정을 폭발시켰더니 기억상실에 빠졌습니다. 정신병원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는 바깥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도 잃고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은 상태에서 감정조절을 위한 심리치료를 계속 받아야할 지경입니다. 여전히 4년전에 대한 기억은 못하면서도 전처인 니키와의 재회를 꿈꾸면서 매일을 운동으로 단련하며 사회 부적응과 우울증 같은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요.

 

그런데 같은 동네에 사는 절친의 와이프 언니인 티파니가 아무 말도 없이 팻을 스토커처럼 따라다닙니다. 팻의 조깅시간을 어찌 알았는지 불쑥 나타나 같이 동네 한 바퀴 도는가 하면 자기랑 섹스하고 싶냐는 말도 뜬금없이 내뱉을 정도로 이상한 여자랍니다. 팻은 티파니가 이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이미지 때문에 달가워 하지 않는데다 티파니는 남편과의 사별 이후 섹스 중독자가 되었다는 괴상한 소문마저 듣게되니 더욱 께름칙하죠. 그래도 상처받은 사람은 동족을 알아본다고 했던지 차츰 그녀의 괴팍한 성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날 엽기녀 티파니는 팻에게 묘한 제안을 내놓습니다. 사실 팻의 마음 속에는 티파니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지만 아내인 니키와의 재회는 꿈에도 그리는 절대소원으로 가득차 있고 이것을 잘 알고 있는 티파니는 아내와의 재회를 도와주는 메신저 역할을 자임하는 대신 우울증 탈출 댄스 대회에 함께 출전해서 우승을 하자고 요구합니다. 티파니의 꿍꿍이을 알 수없어 미심쩍어 하면서도 팻은 오로지 니키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댄스 대회 참가준비에 올인하구요.

 

제목인 '실버라이닝'은 속뜻을 모르고 대충 넘겨짚으면 단순 연애지침서 같은 의미가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실버라이닝'만 따로 해석하자면 구름의 흰 가장자리, 밝은 희망이라는 뜻이랍니다. 넓게보면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한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라는 뜻으로 희망을 주는 말로 주로 쓰인다고 하네요. ‘플레이북을 사전적 의미대신 이 책에서 중요한 에피소드거리가 되는 미식축구로 풀어본다면 '팀의 공격과 수비에 대한 작전을 기록한 책이나 플랜'같은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결국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밝은 희망을 위해 펼치는 전격 작전으로 나름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팻과 티파니가 만났으니 당근 달달한 로맨스를 구경할지도 라는 마음을 외면이나 하 듯, 둘 사이는 내내 별다른 진전이 없기 때문에 이거 로코를 선택한 것은 맞는지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냉랭한 분위기만 감지될 뿐입니다. 서로 말 없이 조깅하고, 말 없이 시리얼이나 한 그릇 때리고 작별인사도 없이 돌아서는 두 사람의 반복적인 만남보다는 미국 아니랄까봐 미식축구팀인 이글스 경기관람과 응원에 관한 에피소드가 비중도 높고 색다른 재미를 줄 정도니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지요.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은 팻과 티파니는 각자의 과거 트라우마 때문에 온전한 남녀사이로 관계가 진전되긴 어렵다는 겁니다. 더구나 팻이 전처 니키에 대한 집착을 놓기 전까지는요.

 

결국 돌고 돌아 길이 멀었지만 '실버라이닝'을 꿈꾸는 것은 팻이나 티파니나 다를 바 없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긍정의 마인드 속에서 한줄기 햇살 같은 희망의 실오라기를 쥐고 놓지 않겠다는 팻과 그를 통해 역시 상처 많은 티파니도 진실된 사랑을 찾음으로서 밝은 희망을 꿈꾸기에 사랑으로 다친 마음은 사랑으로 치유하게 될 것은 순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인상적으로 암시하는 수단들은 문학작품의 인용에 있다 하겠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도입부를 맘에 들어하던 팻은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랑을 얻을 수 없게되는 대목에서 좌절한 나머지 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 하는데, 특히 개츠비가 총에 맞아죽고 인간말종인 톰과 함께 하기로 한 데이지의 결정에서 이 소설을 행복한 결말에 대한 믿음의 상실 정도로 간주해버립니다. 어둠 끝에 빛이 있다고 믿지만 아직 그 빛을 찾아내지 못해서 울음을 참지 못하니 상처에 생채기만 덧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팻과 티파니의 관계변화와 정신적 성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그 소설의 결말부분에서 홀든이 동생을 놀이공원으로 데려가 회전목마를 태워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동생이 목마에서 황금고리를 잡으려 애쓰는 그 장면은 과거의 아픔을 놓아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부여잡겠다는 두 사람의 결연한 각오를 나타내는 멋진 비유여서 순간 울컥했지요. 우리가 두 번째 유년기를 살고 있다는 것은 목마에서 떨어져도 간섭만 있던 첫번째 유년기를 거쳐 현재는 거짓희망을 포기한 채 기억의 진흙 속을 빠져나와 서로가 필요하다는 말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용기를 얻었다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을 테지요.

 

누구나 살면서 고개를 넘는 일이 힘들어 숨을 깔딱이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겝니다. 삶이라는 고개의 고비 고비를 희망으로 극복해낸 팻과 티파니를 보면서 대단하진 않지만 단단한 의욕이 구름 속을 뚫고 한줄기 서광을 비추는 걸 느끼는 순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진정한 힐링이 됩니다. 진정 삶이 힘들고 지친 분들에게 꼬옥 권해드리고 싶은 참말로 훈훈한 소설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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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림스톤 펜더개스트 시리즈 3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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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동안 이 신작의 국내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작년 3월 출간예정에서 6월로, 다시 12월로 딜레이되더니 마침내 해가 바뀌어 이렇게 공개되니 감개무량할 지경입니다.  이쪽 세계에서 공저로서는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자랑하는 이 시리즈는 한 번 재미를 들이면 발을 끊기 힘든 이색적인 개성이 가득한 액션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2년만에 만나는 우리의 괴짜남 펜더개스트는 여전히 엉뚱발랄한 행보로 밀실살인에 얽힌 미스터리를 쉼 없는 팀플레이로 해결하고 있어 엔터테인먼트적 스릴러에 더없이 충실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롱아일랜드 주 사우스샘프턴의 한 저택에서 유명한 미술평론가인 제레미 그로브가 기이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외부로부터 침입흔적은 없고 밀폐된 실내는 유황(제목인 브림스톤의 의미) 냄새에 말발굽 모양의 그을음과 인체 내부로부터 자연발화가 발생되어 사망한 것입니다. 그밖의 어떤 곳에서도 일체의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은 이 사건을 두고 대중들 사이에서 악마와 계약하고 영혼까지 판 흑마술의 저주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확산됩니다. 사건현장에 투입된 다고스타 경사는 과거 뉴욕 경찰서 강력부 부서장 출신으로 지금은 지역 경찰서의 경사라는 한직으로 복귀한 참인데 때마침 현장을 수상쩍게 어슬렁거리는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내쫗으려 하지만 그 남자는 FBI 특별수사관 펜더개스트였습니다. 

 

그들은 구면으로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데 우연을 가장하고 사건을 수사하러온 온 펜더와 다고스타는 다시 한 팀이 되어 이 괴이한 사건을 맡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방식의 밀실살인이 2건이 추가로 발생되고 점차 세상은 종말론으로 흉흉해지면서 무지몽매한 선민들을 군중심리로 선동시켜 메시아가 되겠다는 얼빠진 목사까지 가세해 치안질서의 위협마저 받게 됩니다. 혼란의 와중에서도 연쇄 밀실살인의 단서를 추적하던 팬더개스트 일행은 수사항뱡을 이탈리아로 확대해 살인피해자들 사이에 모종의 연계와 흑막이 있음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자연발화 현상에 숨겨진 트릭과 연쇄살인의 동기, 결정적으로 범인의 실체까지, 이 모두는 이들을 죽음의 수렁으로 내몰면서 정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네요. 

 

FBI 수사관 펜더개스트는 알다시피한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이라고 할 만큼 역사, 대중예술을 비롯한 인류문화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다양한 지식들을 꿰고 있는 또다른 의미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지식을 활용한 수사는 불필요한 지식의 나열이거나 잘난 척, 똑똑한 척이 아니라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괴이에 대한 단서와 사건해결에 중요한 무기가 되죠.

 

외부적 원인없이 인체 내부에서의 자연발화 현상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싶어하는 맹점을 이용한 범인이 있는데요. 과학적 해석이 가능한 트릭을 악마의 저주로 둔갑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다른 펜더개스트는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실로 단정짓지 않는 열린 발상을 가지고 진실을 밝혀냈으니 완전범죄는 그의 끈기 앞에 무릎꿇었다고 봐야겠죠.

 

'그대는 절망의 도시에 살고 있다.

 내 눈에는 죽어 가는 그대의 모습이 보인다.

 그대는 곧 무덤보다 낮은 곳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그곳에 파묻힐 것이다.

 그러니 선한 이웃이여!

 이제 그만 만족하고 나와 함께 가자.'

 

또한,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여 혹세무민하는 벅 목사를 보면서 항상 난세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악용하거나 자신이 세상을 구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식의 망상에 빠진 혹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사는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형태면서 "너 자신을 알라."는 식의 교훈이 담겨있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중심부의 이야기와는 별개의 소소한 읽을거리입니다. 그리고 시리즈 속의 시리즈 "디오게네스 3부작"의 출발점답게 도전장을 보내서 친형인 펜더개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동생 디오게네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를 것을 예감한 펜더는 상대가 가족이라는 사실이 무거운 중압감이 되어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도 디오게네스와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드러나 그가 등장하는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상승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전쟁은 이제 서막을 열었을지도 모를... 거대한 광기의 폭풍전야에 긴장감은 미리 고조되는 듯 합니다. 속칭 "형제의 난"이 어떠한 혈겁을 불러일으킬지 단기간내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막을 연 이번 작품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군요.

 

솔직히 펜더개스트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중에서는 <브림스톤>을 보시고 두께의 위엄에 감탄 내지 미리 겁을 내시는 분들도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레오파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슬림한 편입니다. <레오파드>를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엄청난 두께의 압박에도 쿨하게 흥미를 끌었던 해리 홀레 형사의 활약에 지루할 틈을 최소화한 채 재미 만점이셨을줄 압니다. <브림 스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면 그건 거짓말일테고요. 중반까지는 몰입하면 읽었지만 이후는 가끔씩 놓치는 부분들도 있었던 건 사실인데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정말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의 힘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펜더개스트야 말할 것도 없고 다고스타 경사와 악당들 모두 섬세한 감성으로 익살과 함께 공간을 초월한 스피디한 전개, 중세 비밀결사조직 같은 댄 브라운 식 스릴(이건 진짜임)로 이끌나가는 이야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를 선사합니다. 감히 올해 읽은 스릴러 중 대중적 즐거움은 절대적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와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는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펜더개스트!!!

 

"어머 이건 사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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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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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속신앙에 있어 지장은 수행승의 모습을 하고 여행객이나 어린아이를 지킨다고 하며 육아지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마을 어귀의 지장보살님은 언제나 방글방글 웃고 계시네." 라는 동요가 있을 정도로 지장은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누구라도 거리낌없이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속화된 이미지라고 합니다. 그렇게 지장은 아이들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여  일본 곳곳에 많이 세워져 있는데 지장 동요의 노랫말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은 일본적이면서도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하는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미스터리와 민속학적 호러의 결합은 미쓰다 신조의 장기이자 단순히 괴이현상을 보여주어 공포의 극대화를 강조하는 밑그림의 역할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즐기고, 진짜 의미와 감춰진 진실을 들추어 합리적인 해석을 가능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철저한 자료수집과 추리적 검증을 통해 괴이현상을 저주가 아닌 자연적 현상과 인위적인 개입이 원인인 것으로 설득하지만 끝내 논리적 도출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그것은 사건의 핵심을 비껴간 괴이, 그 자체로 인정하고 만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불가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인간내면의 부조리한 의식구조가 끼어들면 추론의 한계가 확장되면서 '뜻밖'이라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도조 겐야는 단번에 이 사람이 범인이다고 지목하는 대신 의심스러운 인물이든, 그 범주에 벗어난 인물이든 상관없이 모두 용의 선상에 일단 올려놓고 최소한의 의심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다시 반론을 펼쳐 한 명씩 용의 선상에서 차례차례 지워나가고 남는 최후의 1인이 결국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래서 범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이 처음 나올 경우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되리라는 필연이 예상되기에 마지막 페이지에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상당했던 것 같네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이지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렇다고 안이하게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한심하다." 

 

부름산에서 일어난 괴이. 즉, 이리저리 날아드는 도깨비불, 갓난아기의 섬찟한 울음소리, 자신을 부르는 산마의 소리, 여섯 개의 무덤굴, 그 무덤 중에서 나온 손과 기분나쁜 웃음소리까지...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한 겐야의 조사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결말로 각각 정리되면서 안도의 한숨이 소름끼치는 여운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왜 호러가 이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여섯지장의 동요대로 차례차례 전개되는 연쇄살인의 배경이나 동기는 일반적으로 예상하게 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원한이 아니라 사소한 발단으로도 이 같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을 불길한 존재로 경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최후의 웃음소리는 실제로 귓가에 쟁쟁 울리는 착각이 들만큼 모골이 송연하고 가슴 한 켠에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두려움의 결정체입니다. 새삼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가끔씩 추리소설은 이제 한계라는 정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는데요. 이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러의 무대가 순간순간 펼쳐지는 와중에 틈틈히 선보이는 본격미스터리의 진수가 트릭과 반전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면 세상에는 아직도 참으로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라는 게 있다는 걸 다시 믿게합니다. 산마가 나타나듯 툭툭 튀어나오는 기괴함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도조 겐야식 특제소스라 그 맛은 얼얼하면서 외면하지는 못 할것 같아서요. 그래, 호평받아 마땅한 추리소설이란 이런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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