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처럼 비웃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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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속신앙에 있어 지장은 수행승의 모습을 하고 여행객이나 어린아이를 지킨다고 하며 육아지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마을 어귀의 지장보살님은 언제나 방글방글 웃고 계시네." 라는 동요가 있을 정도로 지장은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누구라도 거리낌없이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세속화된 이미지라고 합니다. 그렇게 지장은 아이들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여  일본 곳곳에 많이 세워져 있는데 지장 동요의 노랫말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은 일본적이면서도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하는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미스터리와 민속학적 호러의 결합은 미쓰다 신조의 장기이자 단순히 괴이현상을 보여주어 공포의 극대화를 강조하는 밑그림의 역할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즐기고, 진짜 의미와 감춰진 진실을 들추어 합리적인 해석을 가능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요. 철저한 자료수집과 추리적 검증을 통해 괴이현상을 저주가 아닌 자연적 현상과 인위적인 개입이 원인인 것으로 설득하지만 끝내 논리적 도출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그것은 사건의 핵심을 비껴간 괴이, 그 자체로 인정하고 만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불가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인간내면의 부조리한 의식구조가 끼어들면 추론의 한계가 확장되면서 '뜻밖'이라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도조 겐야는 단번에 이 사람이 범인이다고 지목하는 대신 의심스러운 인물이든, 그 범주에 벗어난 인물이든 상관없이 모두 용의 선상에 일단 올려놓고 최소한의 의심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다시 반론을 펼쳐 한 명씩 용의 선상에서 차례차례 지워나가고 남는 최후의 1인이 결국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래서 범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이 처음 나올 경우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되리라는 필연이 예상되기에 마지막 페이지에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상당했던 것 같네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이지만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렇다고 안이하게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한심하다." 

 

부름산에서 일어난 괴이. 즉, 이리저리 날아드는 도깨비불, 갓난아기의 섬찟한 울음소리, 자신을 부르는 산마의 소리, 여섯 개의 무덤굴, 그 무덤 중에서 나온 손과 기분나쁜 웃음소리까지...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한 겐야의 조사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결말로 각각 정리되면서 안도의 한숨이 소름끼치는 여운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왜 호러가 이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여섯지장의 동요대로 차례차례 전개되는 연쇄살인의 배경이나 동기는 일반적으로 예상하게 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원한이 아니라 사소한 발단으로도 이 같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을 불길한 존재로 경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최후의 웃음소리는 실제로 귓가에 쟁쟁 울리는 착각이 들만큼 모골이 송연하고 가슴 한 켠에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두려움의 결정체입니다. 새삼 인간의 자존감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겠지요. 

 

가끔씩 추리소설은 이제 한계라는 정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는데요. 이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호러의 무대가 순간순간 펼쳐지는 와중에 틈틈히 선보이는 본격미스터리의 진수가 트릭과 반전으로 숨가쁘게 이어지면 세상에는 아직도 참으로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라는 게 있다는 걸 다시 믿게합니다. 산마가 나타나듯 툭툭 튀어나오는 기괴함은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도조 겐야식 특제소스라 그 맛은 얼얼하면서 외면하지는 못 할것 같아서요. 그래, 호평받아 마땅한 추리소설이란 이런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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