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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림스톤 ㅣ 펜더개스트 시리즈 3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랫동안 이 신작의 국내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작년 3월 출간예정에서 6월로, 다시 12월로 딜레이되더니 마침내 해가 바뀌어 이렇게 공개되니 감개무량할 지경입니다. 이쪽 세계에서 공저로서는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자랑하는 이 시리즈는 한 번 재미를 들이면 발을 끊기 힘든 이색적인 개성이 가득한 액션 스릴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2년만에 만나는 우리의 괴짜남 펜더개스트는 여전히 엉뚱발랄한 행보로 밀실살인에 얽힌 미스터리를 쉼 없는 팀플레이로 해결하고 있어 엔터테인먼트적 스릴러에 더없이 충실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롱아일랜드 주 사우스샘프턴의 한 저택에서 유명한 미술평론가인 제레미 그로브가 기이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외부로부터 침입흔적은 없고 밀폐된 실내는 유황(제목인 브림스톤의 의미) 냄새에 말발굽 모양의 그을음과 인체 내부로부터 자연발화가 발생되어 사망한 것입니다. 그밖의 어떤 곳에서도 일체의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은 이 사건을 두고 대중들 사이에서 악마와 계약하고 영혼까지 판 흑마술의 저주라는 소문이 일파만파 확산됩니다. 사건현장에 투입된 다고스타 경사는 과거 뉴욕 경찰서 강력부 부서장 출신으로 지금은 지역 경찰서의 경사라는 한직으로 복귀한 참인데 때마침 현장을 수상쩍게 어슬렁거리는 이상한 남자를 발견하고 내쫗으려 하지만 그 남자는 FBI 특별수사관 펜더개스트였습니다.
그들은 구면으로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데 우연을 가장하고 사건을 수사하러온 온 펜더와 다고스타는 다시 한 팀이 되어 이 괴이한 사건을 맡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방식의 밀실살인이 2건이 추가로 발생되고 점차 세상은 종말론으로 흉흉해지면서 무지몽매한 선민들을 군중심리로 선동시켜 메시아가 되겠다는 얼빠진 목사까지 가세해 치안질서의 위협마저 받게 됩니다. 혼란의 와중에서도 연쇄 밀실살인의 단서를 추적하던 팬더개스트 일행은 수사항뱡을 이탈리아로 확대해 살인피해자들 사이에 모종의 연계와 흑막이 있음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자연발화 현상에 숨겨진 트릭과 연쇄살인의 동기, 결정적으로 범인의 실체까지, 이 모두는 이들을 죽음의 수렁으로 내몰면서 정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네요.
FBI 수사관 펜더개스트는 알다시피한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이라고 할 만큼 역사, 대중예술을 비롯한 인류문화의 집대성이라고 할만한 다양한 지식들을 꿰고 있는 또다른 의미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지식을 활용한 수사는 불필요한 지식의 나열이거나 잘난 척, 똑똑한 척이 아니라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괴이에 대한 단서와 사건해결에 중요한 무기가 되죠.
외부적 원인없이 인체 내부에서의 자연발화 현상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싶어하는 맹점을 이용한 범인이 있는데요. 과학적 해석이 가능한 트릭을 악마의 저주로 둔갑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다른 펜더개스트는 불가해한 현상을 불가해한 현실로 단정짓지 않는 열린 발상을 가지고 진실을 밝혀냈으니 완전범죄는 그의 끈기 앞에 무릎꿇었다고 봐야겠죠.
'그대는 절망의 도시에 살고 있다.
내 눈에는 죽어 가는 그대의 모습이 보인다.
그대는 곧 무덤보다 낮은 곳으로 가라앉을 것이고,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그곳에 파묻힐 것이다.
그러니 선한 이웃이여!
이제 그만 만족하고 나와 함께 가자.'
또한,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여 혹세무민하는 벅 목사를 보면서 항상 난세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악용하거나 자신이 세상을 구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식의 망상에 빠진 혹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람사는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형태면서 "너 자신을 알라."는 식의 교훈이 담겨있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라는 점에서 중심부의 이야기와는 별개의 소소한 읽을거리입니다. 그리고 시리즈 속의 시리즈 "디오게네스 3부작"의 출발점답게 도전장을 보내서 친형인 펜더개스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동생 디오게네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를 것을 예감한 펜더는 상대가 가족이라는 사실이 무거운 중압감이 되어 이번 사건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도 디오게네스와의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드러나 그가 등장하는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상승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전쟁은 이제 서막을 열었을지도 모를... 거대한 광기의 폭풍전야에 긴장감은 미리 고조되는 듯 합니다. 속칭 "형제의 난"이 어떠한 혈겁을 불러일으킬지 단기간내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막을 연 이번 작품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군요.
솔직히 펜더개스트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중에서는 <브림스톤>을 보시고 두께의 위엄에 감탄 내지 미리 겁을 내시는 분들도 있으신 걸로 압니다만 <레오파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슬림한 편입니다. <레오파드>를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엄청난 두께의 압박에도 쿨하게 흥미를 끌었던 해리 홀레 형사의 활약에 지루할 틈을 최소화한 채 재미 만점이셨을줄 압니다. <브림 스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면 그건 거짓말일테고요. 중반까지는 몰입하면 읽었지만 이후는 가끔씩 놓치는 부분들도 있었던 건 사실인데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정말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의 힘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펜더개스트야 말할 것도 없고 다고스타 경사와 악당들 모두 섬세한 감성으로 익살과 함께 공간을 초월한 스피디한 전개, 중세 비밀결사조직 같은 댄 브라운 식 스릴(이건 진짜임)로 이끌나가는 이야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를 선사합니다. 감히 올해 읽은 스릴러 중 대중적 즐거움은 절대적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와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는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펜더개스트!!!
"어머 이건 사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