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브레스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3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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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유럽스릴러를 대표하는, 아니 전 유럽스릴러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해리 홀레를 가장 먼저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설령 영미권 스릴러를 선호하지 않는 일미 팬들이라도 최소한의 호기심이랄까, 아니면 시류에 편승한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한번쯤 읽어보겠노라고 다짐하는 반응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국가 선호도와 관계없이 이 시리즈는 핫한 트렌드로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고 봐야한다.

 

정말 해리 홀레가 보여주는 지독히 어둡고 자기파괴적인 음울한 감성들은 대중들을 열광시키고 그가 망가질수록 더욱 깊은 연민에 빠져들게 한다. 단순히 살인범을 쫓는 형사물로서의 추리적 쾌감이 아니라 영화 "트루먼 쇼"처럼 당사자만 모를 뿐이지만 우리 모두는 관객이 되어 해리의 일상 속의 개인사를 훔쳐보며 무한대의 즐거움을 얻고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작년 두 작품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의 정점을 처음 접했으니 이번에는 해리의 본격적인 영욕이 교차하는 창세기적인 출발을 만나게 된다. 1편과 2편은 호주와 태국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스탠드얼론이라고 한다면 모국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본류시리즈로도 해석이 가능할 듯 싶은데 노르웨이라는 국가적 특성을 감안하여 그들의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것이 "레드브레스트"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중요한 소재가 되고있는 건 2차 대전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해버렸다. 당시 인접국인 스웨덴은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독일군의 자국영토 통과를 묵인하여 침략을 면하였고 형제국인 노르웨이를 지원하지 않아서 독일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한 셈이 되었다. 그때문에 노르웨인인들은 스웨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독일의 점령기중에 노르웨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은 언제나 그렇듯 순응과 저항으로 나뉜다. 노르웨이의 파시스트 비드쿤 크비슬링의 괴뢰정부를 승인한 독일은 노르웨이에 대한 억압적 통치를 실시하여 많은 노르웨이인들을 군에 징집하거나 징용으로 끌고 갔으며 노르웨이 전역을 요새화하였다.

 

 

비드쿤 크비슬링요셉 테보르펜같은 매국노도 있었지만 또 다른 노르웨이인들은 산악지형을 이용한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독일에 저항하는가 하면 국왕은 영국으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세우고 해군과 공군을 만들고 선박으로 석유수송을 돕는 등 맹렬한 반 나치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독일의 패망으로 전쟁이 끝나자 노르웨이는 본격적으로 나치 협력자들을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하였는데 부역행위로 구속된 사람은 인구 10만명당 633명 정도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르웨이는 사형제도가 없지만 소급입법까지 만들어 기소를 하고 보복처형을 계속했다고 하니 반민족 행위에 대한 그들의 단호한 처벌방식은 역사는 승자가 정의이자 진리임을 입증한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우토야섬에서의 무차별 테러를 저지른 범인처럼 인종적 차별과 파시즘의 망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2차대전 중 깊숙이 뿌리내렸던 나치의 잔재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한 갈등과 불편함을 시대적 아픔과 고민으로 되새겨보고자 한 스릴러적 시도가 진중한 사색을 남기고 있어 적절한 울림을 주기는 하지만 그 파장이 크지 않다는 분명 아쉬운 점이다. 오히려 또 다른 살인사건에 관심과 시선은 몽땅 그곳으로 쏠려버린다. 하나의 작품 속에 두개의 사건은 어디에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느냐는 관점의 차이로 갈리는데 확실히 엘렌 살인사건에 더 집중된다.

 

 

이전 출간작인 "레오파드"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지만 모두로 부터 존경과 신망을 얻던 누군가를 해리가 처단해야만했던 사건은 분명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프린스"를 두고하는 이야기 같은데 흔히 경찰들은 동료가 살해된 사건에는 시효도 정하지 않고 범인을 검거할 때까지 끈질기게 수사를 한다고 하니 해리가 엘렌의 죽음에 얽힌 배후를 나중에 알게되었때 그가 보였을 반응은 어떠할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내부의 적이라면 말이다.

 

그러고보니 "레오파드"에서는 살인범이 "백마 탄 왕자님"이었고 여기서는 살인범이 "프린스"로 불리고 있으니 우연의 일치치고는 절묘하다 못해 센스만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마디로 왕자와 거지 간의 계속되는 대결이 되는 걸까? "네메시스"의 우리 제목이 "천벌"이니 이번에 해결못한 미제사건에 대한 단죄를 그 작품에서 다루고 있을 것 같은데 맞는지...

 

그리고 엘렌에 대한 기억의 편린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데 해리가 그녀의 집 자동응답 전화기에 남겨놓은 메시지들에는 빈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남자의 비애와 고통이 눈물없이도 절절함이 담겨져있어 깨달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란 말이 와닿는다. 어차피 이러한 일도 앞으로 해리가 겪어야 할 가시밭길의 시초일뿐이겠지만.. 또한 라켈과의 사랑의 시작도 차후에 어찌 정리되는지 결말을 미리 알고 있기에 다가올 미래도 모른 채 지금 해맑은 해리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다. 흡사 동굴속의 어둠에 웅크리고 있다가 밝은 세상으로 나왔을 때 눈부심에 적응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이 인생의 목표라고 요 네스뵈는 말했던가? 그렇다면 선과 악이라는 이중가면을 쓴 진짜 악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과 리켈과의 로맨스의 시작과 갈등, 파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해리 홀레라는 이 남자의 인생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알고싶어 그 여정을 따라가는 일도 독자들의 사명이자 의무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짐 빔에 중독되어있는 이 남자에게 중독되어 있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나보다.

 

해리 홀레 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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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2 - 보이지 않는 적,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2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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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 그리고 또 다른 사랑....

 

전작 <트와일라잇>에서 10대의 청춘과 방황을 뱀파이어라는 상상력으로 그려내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낸 스테파니 메이어가 이번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SF 로맨스 <호스트>를 내놓았다. 신작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재기발랄한 판타지 속에서 깊고 묵직하게 전달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현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듦으로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고 보여진다. 이제 뱀파이어가 아닌 또 다른 영혼의 이야기가 시작되려한다.

 

특정 시점을 추정할 수없는 어느 가까운 미래, 살아있는 생명체의 뇌에 침투해서 정신을 우선 잠식하고 점차 육신까지 장악해버리는 외계종족 "소울(SOUL)"에 의해 지구의 인간들은 그들에게 정복당한다. 얼마남지 않은 최후의 인간 저항군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정보가 필요하게 되고 붙잡혀 온 인간 멜라니의 뇌 속에 종족 중 가장 노련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는 "완다(방랑자)"를 삽입한다. 성공적인 미션으로 비춰졌던 이 수술은 뜻밖에도 멜라니의 영혼이 육체에 남아 완다와 동거하게 되는 기이한 결과를 낳는다. 소멸되었어야할 멜라니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 속에 감금당하고 그녀의 영혼은 완다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연인이 있는 곳으로 이끈다. 완다는 난생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져버려 괴로워하면서도 멜라니의 옛 연인과 피할 수없는, 치명적인 로맨스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또 다른 로맨스가 끼어들면서 사각관계로 진행되는데....

 

완다 같은 소울들은 단 한 번뿐인 삶이 아니라 여러번의 삶을 살 수 있고 자신들이 기생하게 되는 숙주인 "호스트"를 떠나 다른 호스트로 옮겨갈때마다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또 다른 호스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다가 그 곳에서 정착하여 죽게되면 그 순간에는 영원불멸과 작별을 고하게 되는 기구하면서도 신비한 여정을 걷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계속 옮겨 다닐 수 있다하여 끝없는 욕심만 추구해서는 안되기에 죽음의 순간은 말로 표현못할 만큼의 절절한 소망을 무쇠 녹이듯 강하다는 것을 완다는 안다. 이 가슴아픈 사랑이 멜라니를 위해서만 살아남을 것이고 완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는 우울함 앞에서 운명은 그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은 쓸쓸하다. 순간 눈물이 난다.

 

그렇다면 한 종족의 몸에서 다른 종족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완다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비록 멜라니의 육체를 통해 자신을 해하려한 인간에 대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물리적인 저항을 행한 것에 두려움과 후회를 느끼는 완다의 불안한 심정은 이 모든 것이 우리네 인간들의 어두운 이기심의 발로라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인간의 몸을 지녔지만 인간취급을 못받고 신체적인 접촉에 대한 반응도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불합리한 정당성에 반해 정말 바보 같고 쉽게 감정에 치우치는 보잘 것 없는 생명일 뿐인 인간이야말로 타인을 기만하고 불리하면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할 존재일뿐이라는 반론을 되새겨 보면 가엾은 완다도 인간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의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지구라는 행성에 던져져 자신의 종족과도 동떨어져 살고 있지만 인간의 사랑에 동화되는 완다의 심리적 변화와 순응은 인간이 사랑이 변덕스럽고 미묘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 만큼 아프기도 하고 이룰 수 없기도 하다. 그러한 완다의 투쟁과 인간으로 체험하여 느끼는 감정 즉, 희생과 사랑은 숭고하기에 이기적인 인간들마저 끝내 감화시키고마는 동화같은 마력이 살아 숨쉰다. 그러는 동안 맘은 점점 온도가 올라간다. 그런데도 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지하동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단순히 로맨스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군상의 갈등과 대립이 화합으로 봉합되는 과정들로 실감나면서도 재밌지만 영화 예고편과 비교해서는 외계종족 소울이 보낸 수색자가 벌이는 액션신같은 시각적인 쾌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에서는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을 듯 싶다. 그렇다면 원작이 영화(비록 관람도 않고 추측컨대)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강점이라면 섬세하면서 애틋한 심리묘사의 감성적 파장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영상으로 옮겨담지 못할 아날로그적이면서 순수하고 깊은 울림을 대신할 그 무엇은 없지만 한 편으로는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로맨스와 SF액션의 갈림길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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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 1 - 보이지 않는 적,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하나의 몸, 두 개의 영혼, 그리고 또 다른 사랑....

 

전작 <트와일라잇>에서 10대의 청춘과 방황을 뱀파이어라는 상상력으로 그려내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낸 스테파니 메이어가 이번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SF 로맨스 <호스트>를 내놓았다. 신작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재기발랄한 판타지 속에서 깊고 묵직하게 전달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현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듦으로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고 보여진다. 이제 뱀파이어가 아닌 또 다른 영혼의 이야기가 시작되려한다. 

 

특정 시점을 추정할 수없는 어느 가까운 미래, 살아있는 생명체의 뇌에 침투해서 정신을 우선 잠식하고 점차 육신까지 장악해버리는 외계종족 "소울(SOUL)"에 의해 지구의 인간들은 그들에게 정복당한다. 얼마남지 않은 최후의 인간 저항군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정보가 필요하게 되고 붙잡혀 온 인간 멜라니의 뇌 속에 종족 중 가장 노련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는 "완다(방랑자)"를 삽입한다. 성공적인 미션으로 비춰졌던 이 수술은 뜻밖에도 멜라니의 영혼이 육체에 남아 완다와 동거하게 되는 기이한 결과를 낳는다. 소멸되었어야할 멜라니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 속에 감금당하고 그녀의 영혼은 완다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연인이 있는 곳으로 이끈다. 완다는 난생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져버려 괴로워하면서도 멜라니의 옛 연인과 피할 수없는, 치명적인 로맨스에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또 다른 로맨스가 끼어들면서 사각관계로 진행되는데....

 

 

완다 같은 소울들은 단 한 번뿐인 삶이 아니라 여러번의 삶을 살 수 있고 자신들이 기생하게 되는 숙주인 "호스트"를 떠나 다른 호스트로 옮겨갈때마다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또 다른 호스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다가 그 곳에서 정착하여 죽게되면 그 순간에는 영원불멸과 작별을 고하게 되는 기구하면서도 신비한 여정을 걷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계속 옮겨 다닐 수 있다하여 끝없는 욕심만 추구해서는 안되기에 죽음의 순간은 말로 표현못할 만큼의 절절한 소망을 무쇠 녹이듯 강하다는 것을 완다는 안다. 이 가슴아픈 사랑이 멜라니를 위해서만 살아남을 것이고 완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는 우울함 앞에서 운명은 그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은 쓸쓸하다. 순간 눈물이 난다.

 

그렇다면 한 종족의 몸에서 다른 종족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완다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비록 멜라니의 육체를 통해 자신을 해하려한 인간에 대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물리적인 저항을 행한 것에 두려움과 후회를 느끼는 완다의 불안한 심정은 이 모든 것이 우리네 인간들의 어두운 이기심의 발로라는 불편한 현실이 있다. 인간의 몸을 지녔지만 인간취급을 못받고 신체적인 접촉에 대한 반응도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불합리한 정당성에 반해 정말 바보 같고 쉽게 감정에 치우치는 보잘 것 없는 생명일 뿐인 인간이야말로 타인을 기만하고 불리하면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할 존재일뿐이라는 반론을 되새겨 보면 가엾은 완다도 인간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의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지구라는 행성에 던져져 자신의 종족과도 동떨어져 살고 있지만 인간의 사랑에 동화되는 완다의 심리적 변화와 순응은 인간이 사랑이 변덕스럽고 미묘해서 가슴이 찢어질 듯 만큼 아프기도 하고 이룰 수 없기도 하다. 그러한 완다의 투쟁과 인간으로 체험하여 느끼는 감정 즉, 희생과 사랑은 숭고하기에 이기적인 인간들마저 끝내 감화시키고마는 동화같은 마력이 살아 숨쉰다. 그러는 동안 맘은 점점 온도가 올라간다. 그런데도 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지하동굴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단순히 로맨스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군상의 갈등과 대립이 화합으로 봉합되는 과정들로 실감나면서도 재밌지만 영화 예고편과 비교해서는 외계종족 소울이 보낸 수색자가 벌이는 액션신같은 시각적인 쾌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에서는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을 듯 싶다. 그렇다면 원작이 영화(비록 관람도 않고 추측컨대)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강점이라면 섬세하면서 애틋한 심리묘사의 감성적 파장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영상으로 옮겨담지 못할 아날로그적이면서 순수하고 깊은 울림을 대신할 그 무엇은 없지만 한 편으로는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로맨스와 SF액션의 갈림길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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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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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참 영리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히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식의 이분법으로 이 부부의 관계를 정리하기 보다는 두 사람 모두에게 페널티를 제시함으로서 어느 누구도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온도차가 달라지도록 교묘히 안배하여 논쟁이라는 뜨거운 불씨가 계속 살아 종국에는 활활 타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존리뷰가 8천개가 넘으면서 이 작품이 이슈화되는 일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결혼 5주년을 맞아 갑자기 사라진 아내 에이미. 어린 시절에 그녀를 주인공 모델로 한 동화책이 나올 정도로 인기와 지성, 미모, 재력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않던 그녀는 모두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여자였고, 그녀의 남편 닉은 다정한 미소와 자상하고 젠틀한 매력남으로 누가 보아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그런데 돌연 사라진 그녀를 찾아 닉이 동분서주하는 동안 경찰이 찾아낸 정황과 단서들은 모두 닉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누명을 벗고자하는 닉의 바람과는 달리 시시각각 불리한 상황으로 옥죄어오는 아내 살인범이라는 의심과 오명 앞에서 그제서야 그는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매년 결혼 기념일 마다 에이미가 이벤트처럼 벌이던 보물찾기 게임은 한때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증표였지만 이제는 그와 그녀의 결혼생활에 놓인 권태기와 더 나아가 관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풀어내야할 사명으로 변질된다. 사실 두 사람은 모두 페널티를 안고 있다고 사전에 언급했듯 일상에서 대부분의 부부들이 풀지못해 숙제처럼 쌓여가는 갈등과 문제점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남편인 닉은 신혼초까지는 해도 달도 따줄 것 같던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였지만 작금에 와서는 실직상태에 놓이면서 경제적 악화에 따른 불만이 커지면서 아내에게 냉담한 남자가 되버렸다.  

 

아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쌓이면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어린 여제자와 불륜에 빠져있는데 어머니에게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일정부분은 은연중에 닮아가는 유전적 필연을 거친다. 아내 에이미는 흔히 말하는 알파걸이지만 어릴적 그녀를 떠받들게 한 '어메이징 에이미 신드롬' 현상의 독에 빠진 그녀는 자신에게 여신적 지위를 부여해서 불종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징벌하도록 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한다.

 

역시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여자. 그동안 부부는 에이미가 자신의 본성을 억압한 채 남편 닉을 위한 맞춤형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받고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고자 하는 그녀만의 부부 관계 재 정립을 위한 시도때문에 평온한 일상이 마침내 서스펜스로 촉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닉과 에이미의 시점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는 밀도높은 갈등과 순간순간의 위기상황들이 결말에 대한 예측을 불허하면서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할 정도의 긴박감 때문에 한시도 맘을 놓치 못했다.

 

닉이 처한 상황은 같은 남자로서 잘못에 대한 비판은 하면서도 그녀가 무의식중에 형성한 억압과 속박에 대한 반발로 인한 일탈에는 어느 정도의 공감을 했다. 에이미의 심리는 닉의 잘못된 처신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는 역시 공감하지만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특유의 사악한 요인들때문에 섬뜩한 한기를 자주 느껴야한다. 그러한 몇가지를 배제하고 주변상황들을 둘러보자면 닉을 아내 살인범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황색언론과 페미니즘의 무시무시한 위선적 광기 앞에서는 무수한 반발심과 혐오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특히 이 책에서 페미니즘이 올바른 공정성을 갖지 못하면 남성혐오증만 부추기는 편협된 마녀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나름 균형잡힌 작가의 시각은 여느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신선한 생각인 것 같다. 그렇기에 닉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자 도움을 주고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여동생 고와 보니 경관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여성캐릭터들과는 차별화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니까....

 

결국에는 말이다. 닉이 최후에 행한 선택은 부부는 배우자가 자신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말고 내가 스스로 배우자에게 베푼다는 이타심을 가지라는 교훈을 대신하는 행동일 것이다. 또한 남자는 가장으로써 부양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결혼의 행복과 만족이라는 척도에 관계없이 어떻게해서든 앞만 보고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숙명이라는 점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그런다고 백점짜리 남편이나 백점짜리 아버지 소릴 듣는 것은 아니겠지만 체념하고 살 닉의 앞날을 상상하면 맘이 서글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이건 마치 <빅 픽처>에서 벤이 이루지못할 꿈을 택했다가 현실이라는 가정에 안주해버리는 마지막 선택과 끔찍하리만치 유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 번 정도는 지금 당신의 침대 옆에서 누워자고 있는 배우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과연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사람과 한 침대를 쓰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알 수없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배우자도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결코 남 일 같지 않고 2012년에 미국에서 가장 히트를 쳤다는 이 작품을 뛰어넘는 대박작품이 <다크 플레이스>라고? 진정 믿어도 될까? 그렇다면 길리언 플린은 한계를 모르는 작가라는 말이 된다. 지금이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작품으로 우리들을 더 놀라게 할 비장의 카드를 남겨둔게 사실이라면 어서 그 패를 꺼내보고 싶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건 잠시 아껴두었다가 확인사살할 때 다시 써먹어보자.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제껏 읽었던 여성 스릴러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역대급이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다. 길리언 플린은 정말 기대되고 주목할만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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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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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혁곤 작가가 6년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전작 에 이어 이니셜 B로 시작되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나름 의미심장한 면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어떠한 선입견없이 읽고자 했지만 신작소개에서 전작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평가들때문에 신작에 대한 기대치가 다소 떨어지면서도 근래 한국 장르소설들의 부흥을 염원하듯 부쩍 접할 기회가 많이 제공되고 있는 것도 주목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밀리언셀러 클럽이 있구요. 일말의 불안감을 의식하며 읽었던 이 책은 기대를 넘어선 선방과 더불어 한계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한국형 웰메이드 스릴러 소설으로 탄생할 가능성은 어디까지 근접했는지 현 주소를 확인할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모텔에서 여자를 살해한 누명을 쓴 채 도주한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 그의 뒤를 좇아 특종을 낚고자 하는 신참 여기자 여에스더, 청부살인을 의뢰받지만 오히려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 킬러 미호, 그리고 킬러가 연관된 연쇄살인의 전모를 추적하는 고참기자 윤, 그 와중에서 정재계의 실세들이 차례대로 살해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네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교차되어 추격전과 액션, 서스펜스가 시종 스피디하게 전개됩니다. 특이하게도 이 네 사람은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이 아닌 소수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 메세지를 대중적 재미와 함께 버무립니다. 결코 가볍지만않은 진중함도 기하고 있어 중심축의 균형을 비교적 잘 지탱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족 출신 은행원 리영민은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은행에서도 인정받으며 전도유망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재였지만 한순간의 누명으로 인해 정상에서 벼랑으로 내몰립니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멸시와 차별이라는 폐쇄적 정체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철저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남습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마냥 호흠질환을 유발하는 주범이 되어 마스크없이 대화조차 싫은 민족공동체의 수성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앵글로색슨족에 끔뻑 죽다가도 인종적, 국적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합니다. 중국에서 박해받고 우리에게는 눈치를 받아야하는 비루한 현실 앞에서 한국인들의 위선적민 민족성을 비판하기에 불편함에 외면하다가 끝내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리고 민주일보의 두 기자 여에스더와 윤은 작가가 실제 기자로서 경험했던 언론의 보도관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스릴러적 요소와는 별개로 현장의 생생함을 견학하듯 만끽할 수 있도록 노련한 배치와 구성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자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낙종과 특종을 구분짓는 순간적 캐치, 정보제공을 두고 밀당을 하는 경찰과 기자라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공정보도는 개나 줘버리라며 황색보도에 우선하고 파벌싸움에 밥그릇 챙기는 일에 사활 건 언론인의 삐뚤어진 관행 등 시종일관 진실은 외면한 채 사리사욕에 발을 담근 언론의 음지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체험에서 우러난 진정한 직업관을 다루고 있어 리얼리티가 빛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인물인 킬러 미호는 남자로 태어났지먼 성 정체성에 혼란을 껵으면서 여자가 되고 싶은 상적 소수자에 해당됩니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입양되지만 짧은 행복도 잠시, 손에 피를 묻혀야했던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 청부업을 접고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 다짐하지요. 아픔이 묻어있는 과거는 통속적이고 신파적이긴 하지만 찰나의 안위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그녀의 삶에 한 줄기 훈풍이 불어와 얼었던 맘을 녹여주고픈 바람이 생길 정도로 잔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주류로 살아 남지 못한 네 사람을 B파일이라는 잉여인간 취급을 하는 것에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은 고기처럼 등급으로 매겨지는 거대자본의 횡포 앞에서 슬프고 우울하죠.

 

그렇게 네 사람은 각자의 루트에서 평행선을 달리다가 원더랜드라는 초고층 빌딩의 개관식에 모여 음모의 실체를 발히고자 합니다. 근원에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빌딩에서의 액션신은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의 박진감이 넘쳐 흐르지만 정작 머리는 불확실한 미스터리적 해결방식에 급격히 냉각되는 처지에 빠져버립니다. 리영민의 누명에 얽힌 원한의 실체는 비록 풀어내지마 연쇄살인의 희생자에 대한 동기와 배후에 대한 명백한 해답을 피한 채, 안개 속 처럼 모호한 처리로 마감해버립니다. 지금까지 한계마저 뛰어넘을 듯 무시무시한 주행을 하던 스토리가 타이어에 펑크난 것 처럼 허무한 마무리에 공든 탑에 배어있는 정성과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결말인지, 엉킨 실타래를 풀 창의성의 부족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독자의 입장에선 감점을 줘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네 사람의 그 후 행보는 인생극장에서의 선택적 기로처럼 무지개와 잿빛이 공존하였기에 이것이 쓰디쓴 인생이 아닐까라고도 곰곰히 생각들기에 평가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그렇게 본다면 급정지때문에 도로에 스키드마크를 진하게 남겼지만 한국적 스릴러의 현실에 후반부 헐리우드적 전개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장대한 스케일 속에는 폭발적인 추진력이 있는 소설이기에 한국 스릴러가 또 한 번 일취월장한 반등의 계기를 만든 최혁곤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합니다. 비판보다 격려가 더 필요한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끝맺고 싶은 말은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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