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의 고백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맥신 패트로 지음, 원은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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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사람을 꼽자면 아무래도 제임스 패터슨을 빼놓고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총 19편을 올려놓았고, 연간 수입이 5천만불 이상이라고 하니 정보로만 인지하고 있는 명성 그 이상의 슈퍼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겠다. 그런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와 더불어 또 다른 인기 시리즈인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를 통해 귀동냥으로만 접했던 패터슨의 명성을 확인해볼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형사 린지, 검시관 클레어, 기자 신디, 검사 유키 네 여성 주인공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여덟 번째 시리즈인 "8인의 고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팀플레이로, 때론 개별의 사건들을 따로 국밥식으로 나눠 수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아침 출근길 통학버스가 갑자기 폭발하고 테러로 간주되어 용의자를 찾아야 하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곧 이어 거리의 성자로 불리던 한 노숙자가 처참하게 유린당해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고, 상류층 인사들이 연달아 변사로 발견되는 등, 끊임없는 사건들로 넘쳐나는데 이 사건들은 경찰의 업무과중과 중요도면에서 우선 해결순위가 정해진다.

 

 

린지클레어는 상류층 인사들의 연쇄죽음을 담당하게 되고 특종을 노리던 기자 디는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노숙자 사건을 검사 유키는 존속살해 사건을 맡아 각자의 임무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8인의 고백은 제목에 등장하는 다수의 숫자처럼 여러 사건들이 다발처럼 터지는 과정과 이것을 풀어나가는 수순에서는 나름 미스터리하면서도 거의 4페이지 이내의 빠른 챕터 전환과 간결한 문체로 술술 잘 읽혀진다는 특성이 있는데 이 점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간결함이라는 점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여성의 감수성과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장점에 있어서도 더욱 두드러지며 여성독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여성독자들이 더 좋아할만한 스타일이 아닌가 싶은 게 군데군데 양념처럼 끼어드는 로맨스는 하드보일드 아닌 소프트한 추리물로 완충시키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도 중요하지만 일도 잊어선 안 되는 법, 이 숙녀분들은 자주 마음이 흔들린다. 주위에 매력적인 남자 동료나 주변인물들이 등장하기에 그러는 것도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필살기처럼 남용하는 것 같아 산만해지면서 몰입에 받을 정도이니 정신건강을 생각해서 적당히들 하셨으면 좋겠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에 눈 멀지 말고.

 

 

결국에는 로맨스를 뒤로 물리더라도 사건의 해결과 집중을 통해 추리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반에 발생한 통학버스의 폭발은 시작부터 스케일과 긴장감 조성면에서 탁월하게 시선 집중하는데 성공하나 이후 사건들을 해결하는 단계들이 그냥 뒤지고 다니다 단서 포착, 범인 발견, 사건해결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범인의 정체는 허술하고 범행 동기는 더욱 개연성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신학적 분석에서 사이코패스로만 범행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크다.

 

 

분명 네 여성 주인공들은 캐릭터별로 개성이 강하고 좀 더 큰 물에서 놀 수 있는 재목들인 것 같은데 제임스 패터슨이 다작을 하는데 것 때문인지, 공저라는 시스템의 한계인지 급히 찍어낸 수제품으로 인식된다. 더군다나 초기작들도 단점의 반복들이 타인의 서평들에서 자주 지적되곤 하는데 뭐든지 과하면 부족함만 못할 듯 하다. 소재면에서도 참신성도 발견하기 힘들고 반전이라고 하기에도 미흡하지만 매끄럽게 전개되는 필력만큼은 구성의 결핍을 커버할만한 솜씨임은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래서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은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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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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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 시리즈를 꺼내 들었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라고 역시 앙앙에 수록 연재되었던 50편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것이 시리즈의 1탄이라고 하는데 왜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는지 내심 궁금해진다. 그러한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같은 이전 제목과는 달리 이번 것은 채소나 동물이 의인화 되어있지 않다. 그냥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그런 그런 이번 에세이도 여전히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익살과 해학이 있어 즐거운 독서가 가능했다. 우선 <리스토란테의 밤>을 들여다보자. “어느 특별한 밤에, 어느 특별한 여성과 아오야마의 어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래봐야 결국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축하한 것뿐이다. 뭐야아아, 시시하게, 시시하지 않나? 성격 급한 나는 이 문구의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뭐야아아, 이 아저씨 어떤 여성을 만나 밀회를 즐긴 거야?” 라며 혼자서 엉뚱한 오해를 해버렸다.

 

 

근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된다고, 결혼기념일에 아내랑 외식했단 결말에 초반부터 파안대소하였다. 그런 비도덕적인 시나리오가 버젓이 나올 리도 없지만 결국은 일부일처제에 대한 귀여운 푸념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기혼남들의 감춰진 응큼한 속마음을 짧은 문구 속에 숨겨진 반전과 경쾌한 해피라이프를 잘 압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란 남자는 이런 사람이다. <리스토란테의 밤>의 그 뒷이야기는 기억에 남지 않는데 오직 서두만 기억에 남을 뿐.

 

 

<불에 태우기>는 또 어떤가? 소설가라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쓸데없는) 일에 연연하는 인종이라고 자가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왜 또, 뭐 이런같은 반응을 부르는 일에 신경을 쓰여 미치려고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인용하는 일화가 70년대에 여성해방 운동을 부르짖던 페미니스트들이 그 주장의 일환으로 브래지어를 태운 일을 언급한다. 남자여서 그 물건이 속박하는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알 길 없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냥 가던 길을 가지 않고 엉뚱한 발상을 그대로 전파해버린다. 새 것이었는지, 아님 착용하던 것인지에서 시작하여 다른 여성용품들은 왜 태우지 않고 브래지어만 희생양이 되었느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쓸데없는 잡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해 버린다면 하루키의 라디오 시리즈를 읽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다.

 

 

그런 외전 격인 상상들은 소설가로서 집필을 하는데 있어 원동력이랄까 소재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고 그 점은 일상의 정해진 루트대로 반복적인 경험과 할당된 목표에 대한 기능적 걱정에만 고착화 되어있는 나 같은 현대인들에게는 상상력의 부재나 고갈을 창의적인 발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극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눈앞에 보이는 그 현상 이외의 사실에 대한 고찰과 확대 재생산이 전혀 없는 나를 일깨울만한 신선한 아이디어화 하고 싶다. 그래서 브래지어에 대한 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아닌 진지하게 읽었던 것 같다. 한가해도 내 두뇌는 이미 굳어간다. 소설가들은 그래서 사고가 유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먹어본 적은 없지만 가키피란 일본식 과자가 있나 보다. 톡 쏘는 매운 맛의 감씨 모양과자와 통통하고 고소한 땅콩이 섞여있는 과자. 잘 배분하여 조화롭게 먹어야하는데 무슨 맛일까?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이 과자의 구성을 결혼생활에 비유하는 그 센스란... 위엄돋네. 감시가 들이대는역할로 공격적으로 치고 들어오면 땅콩은 받아주는역할을 맡아 그저 고개만 끄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받아칠 줄도 알아야 하는, 그야말로 핑퐁 같은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듣고 보니 결혼생활의 조화도 얘기하고 있는 거다. 땅콩을 좋아하는 아내에 투덜대면 가키피에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에 양자는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한다는 것.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배려이면서도 일부일처제에 대한 탄식을 잊지 않는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는 언제나 솔직해서 좋고 공감백배라서 좋다. 이번에도 하루키의 에세이는 머릴 싸매고 분석 안 해도 되니 더 좋은데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그의 소설과는 여전히 담을 쌓고 싶다. 하지만 그의 유쾌한 에세이라면 언제든지 읽어주마. 대환영일세. 그리고 나도 바쁜 아침에 귀찮은데 전날 저녁에 면도하고 잘까? 나름 괜찮지 않을려나. 물론 다음 날 오후 늦게면 코 밑이 거뭇거뭇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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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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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반열에 아직 올려놓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트렌드가 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가 ‘짠’ 하고 나왔다. 그의 소설은 내겐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랄까, 어쩐지 굉장히 딱딱하고 난해할 것 같아 이해불가 정도 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 몇 번 기웃거리기만 해 보았지 정작 제대로 도전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의 에세이들은 읽을만하다.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과자 CM송처럼 나올 때마다 관심이 간다. 세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접하며 그의 에세이는 읽기에 참 부담 없이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일본 잡지 “앙앙”에 연재되었던, 맛깔스러우면서 힘을 뺀 듯한 글과, 유치한 것 같지만 정작 유치하지 않은 담백한 삽화까지 한 몸이 되어있다. 어딘가 뻔뻔스럽고 야하기도 하면서 중년아저씨의 유유자적한 낭만이 깃들어 있어 좋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려는 것도 같지만 기본정신은 “중년 아저씨”니까 거기에 공감하며 낄낄 대며 웃을 수 있다는 건 나 또한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세월의 반증일까?

 

 

그런데 내가 보았을 때 그의 이 에세이는 결코 “감동적이지 않다.” 그냥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정신없는 나에게 잠시 장시간 운전을 멈추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서 용변도 보고 커피 한 잔 하며 출출하면 군것질도 챙기면서 여기에 들른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라는 식과 마찬가지니까. 그러한 행위들이 어떤 특정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니까 그런 여유가 참 좋은 거다.

 

 

무라키미 하루키는 에세이를 쓰다보면 ‘꼭’ 쓰게 되는 토픽으로 고양이와 음악, 채소를 지정한다. 이번에도 채소가 제목 속에 포함되어 있어 그의 유별난 채소사랑을 확인할 수도 있거니와 채식과 육식의 이율배반적인 제목의 배합은 누구도 생각하기 쉽지 않은 유쾌한 상상이 만들어낸 창조물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외면하기 쉬운 대목에서도 미묘한 공기와 색감, 질량을 불어넣어 그만의 신선한 수다로 재탄생되기에 언제나 즐거운 만남이다.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얼핏 들으면 솔깃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뭐야, 이 아저씨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냐.“며 푸념할 때 이 아저씨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누구도 채택해주지 않는다며 덩달아 푸념하는데 그마저도 귀엽고 푸근하다.

 

 

이것도 요전에 한가할 때 문득 생각한 건데 남아도는 성욕 같은 것도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성욕 역시 하나의 훌륭한 에너지니까 이걸 그냥 쓸모없이 버리는 것은 아깝다. 예를 들어 건강한 남자 고등학생이 ‘헌욕 수첩’을 만들어 ‘헌욕 센터’에 찾아간다. 그리고 “요즘 성욕이 남아돌아서 헌욕 하고 싶은데요.”라고 한다. 예쁜 간호사 누나는 “예, 고맙습니다. 얼른 도와 드릴게요.”하고 성욕이 그 자리에서 전력화되도록(시스템은 잘 모르겠지만)한다. 마지막으로 그 와트 수만큼 ‘헌욕 수첩’에 포인트를 가산한다. 아주 괜찮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이것으로 하절기 전력난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도 기꺼이 협력할...... 수 있으려나. (본문 중에서)

 

 

아! 정말 빵 터진다. 이렇게 길게 인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토씨하나 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뒤집어 지게 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는 마침 혼자여서 주위의 눈치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이 한참을 박장대소 하며 뒹굴었다. 지금도 볼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지극히 일본적인 발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참 신선하지 않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면서도 실제로 이런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혈기왕성한 청춘들의 불타는 욕구불만도 해소하면서 전력난 해소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앞서 언급한, 길거리의 바이크 머신을 활용한 발전 자원봉사보다는 이 시스템에 동참하고자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대열이 더 끊이지 않을 것 같고 에너지 효율도 엄청나게 고효율이 될 것 같은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하신지? 청소년들의 봉사활동 점수에도 반영을... 그러면서 “나도 기꺼이 협력할...... 수 있으려나.” 로 능청에 방점을 찍고 있는 하루키의 재치에 일상의 무게가 한순간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래 이런 식이다. 그의 에세이는 심각하게 고민하며 읽을 필요가 없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읽고 나면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말도 맞을 거다. 그렇지만 평소 진지하고 치열한 작품들에 머리를 달구다가도 무라카미 하루키식 수다에 의미를 떠나 계산을 하지 않아도 좋을 때가 많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뭔가 끔찍한 경우를 당했다면 끔찍한 일 정도여서 다행이다며, 비참한 일은 아니어 살았다”는 이 책 속 우디 앨런의 주장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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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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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걷고 있는 이 숲 말이에요. 메아리는 조금씩 작아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

지금까지도 그의 일부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죠. 살인은 항상 그런 메아리를 남겨요.”

 

삽을 든 아버지가 보인다. 열여덟 살이었던 폴 코플랜드가 당시 기억하는 아버지는 울고 계셨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름캠프에 참가한 많은 아이들 중 네 아이가 사라졌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 기억이전에 말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캠프장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거액의 위로금을 받아냈고 사건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세상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서는...

 

카운티 검사보 폴 코플랜드는 여성 성폭행 피해자 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던 중 여동생이 포함된 네 명의 아이들이 실종된 20년 전 사건과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무려 2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나서 그에게 찾아온 나비 한 마리는 당시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성인이 되어 여태 살아있었다는 것, 이 아이의 존재에 대해 누군가는 부인하고 진실을 은폐하려한다는 것, 그리고 여동생의 생사여부까지.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정체모를 불안과 의문이 점차 증폭되는 가운데r 그날 밤에 있었던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난다. 모두가 감추려고만 했던 그 날의 진실에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여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사건에 연루된 다른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각자의 비밀로 감춰둔 채, 세월이라는 풍화 속에 씻겨 내려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여동생의 죽음이후 부모님의 죽음까지 겪으면서 가족의 해체를 받아들였던 코플랜드의 입장에서는 우연히 찾아온 단서 앞에서 그냥 수수방관할 수는 없었다. 코플랜드의 미스터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깊어질수록 사건의 진실도 덩달아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숨어들어가 길을 잃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는다.

 

인간이 가진 어두운 본성이 여기에 있다. 아이들 실종사건의 이면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다가도 한순간 뒤 돌아서서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응분의 몫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이 100%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라며 내기를 걸어오는 것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언제나 우연한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후폭풍이 되어 돌아온다. 인생에서 경로 이탈 없이 올곧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번에도 적중했다. 시행착오의 반복 속에서 항상 후회를 반복하는 내겐 이러한 모습들은 낯설지가 않아 바늘이 온 몸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은 고통과 연민으로 지켜보게 한다. 스릴러라는 장르는 그래서 특별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오락적 체험도 짜릿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고 특별한 트릭과 반전도 즐겁다. 그리고 이야기의 즐거움 못지않게 추악한 인간성과 그것에 대한 반발과 대안으로 제시하는 인간성의 회복까지 상반된 양자를 충돌시키면서 사회적 공감이라는 또 다른 메시지까지 도출해낸다.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코벤이 곳곳에 숨겨놓은 덫을 무사히 피해서 수수께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차근차근 거쳐야만 하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20년 전 사건과도 정서적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코플랜드가 검사보로서 담당하고 있는 샤미크 존슨 사건도 진실을 둘러싼 공방전이 무척 흥미진진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겠다는 피고 측 아버지의 행동은 용서받기 힘든 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20년 전 사건에 대한 코플랜드 부모님들의 진실을 알고 나면,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용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수단이며 때론 수용하게 되리라는 교훈도 얻는다. 그리고 감동 한 웅큼까지도 덤으로 말이다.

 

또한 불행과 행복이 교차되는 마지막 장은 처연함과 위안이라는 조화를 이루면서 숲에서 있었던 사건의 근본적 배경이 지나치게 전통적이었다는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훈훈한 마무리 라는 점에서 맘에 든다.  물론 그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만. 인생은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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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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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정말 기다리고 있었다. 2013년 상반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의 영예에 빛나는 이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나 미쓰다 신조 같은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들과 순위권 경쟁에서 멋지게 제압했다는 점에서 더욱 호기심이 동했던 케이스다. 그런 기대감에 <곤걸>과 더불어 2013년 스페셜리스트로 일찍이 점찍어 둔 이 소설은 실로 경찰소설의 백미라고 감히 추켜 세울만한 대작이었다.

 

쇼와 64(1989) 한 소녀가 유괴된다. 경찰력이 총동원되어 사건해결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소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채, 범인도 놓쳐버린 미제사건은 “64”로 불리면서 14년이 지나 이제 공소시효 만기가 코 앞에 놓여있다. 사건 “64”의 해결을 독려하고 유족을 위로한다는 취지에서 경찰청장의 D현경 시찰 일정이 잡히는데 “64”를 빌미삼아 주도권을 놓고 경찰 내부 조직간의 헤게모니 게임을 그리고 있는 “64”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아니 10년간의 집필기간에 더 놀라야겠지만 단단하고 뜨겁게 탑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라가면서 독자들을 끝내 코너에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적유희도 속도감도 트릭도 반전도 없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것들을 상쇄할만란 클라스가 분명 존재한다. 아래에서 다루어보자.

 

경찰과 언론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인가?

 

주인공 미카미 경정은 예전 D현경의 형사부 소속 형사출신으로 지금은 인사발령에 의해 홍보실 소속의 홍보담당관으로 근무 중이다. 현장에서 잔뼈 굳은 형사로 남고 싶었던 바람은 조직의 원칙 없는 인사에 의해 원치 않는 보직을 맡게 되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홍보실을 개혁하여 소신 있는 홍보행정을 꾸려나가고자 한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되는 건 언론과의 관계 설정이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관련자들의 실명 공개여부와 내막을 어느 수준에서 조절하여 정보를 기자들에게 제공하느냐는 포인트는 소설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저울의 추를 맞출 수 없는 시소게임의 원동력이 된다.

 

소설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카미의 보직이 현장이 아니라 홍보라는 점에서 무게가 더 쏠리는 것이다. 수사상의 기밀보안 유지와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피칭과 캐칭처럼 왔다 갔다 하는 볼은 누가 보던 쉽사리 결정내리기 힘든 뜨거운 감자일 것이다. 진실을 호도하지 않겠다는 정보제공자와 인권의 보호라는 대명제를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현명한 정보 활용자라는 균형 잡힌 관계설정이 미카미의 고뇌와 결단이 수시로 위기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타협을 보는 과정과 결과가 대단히 아슬아슬하다.

그러면서 호흡이 절로 가빠지도록 설정한 작가의 탁월한 시놉시스가 돋보인다. 박수 짝짝!

 

경찰의 혁신은 무엇에서 기인하는가?

 

D현경의 양 축인 경무부와 형사부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조직의 인사관리와 현장수사를 맡고 있는 부서 간의 대의명분이라는 밥그릇이 한 그릇 밖에 없다는 공급의 원칙에서 출발한다. “64” 사건을 해결 못했으니 이에 책임을 물어 중앙이냐 지방이냐는 별개로 능력 있는 인사정책만이 경찰조직의 동맥경화를 방지하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쇄신 가능하다는 경무부는 중앙이라는 막후의 인사권을 등에 업고 화이트컬러의 정책을 실현하려 한다.

 

이에 반해 현장에서 민생치안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형사부는 블루컬러를 대변하여 중앙 집권식 통치에 반발, 자주적 경찰인사라는 기치를 내걸고 반기를 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직 형사부 출신이라는 경력은 미카미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양 측 어느 쪽도 확실한 명분의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해 박쥐, 심지어는 경무부의 개 취급당하면서 무엇이 D현경을 위해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하여 끊임없는 혼 란 속에서 불협화음을 봉합하고자 동분서주하는데 어느 조직에서도 볼 수 있는 라인은 있다.

 

어디에 줄을 서느냐에 따라 역적도 되었다가 충신도 되었다가 하는 식의.... 앞서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그랬지만 경무부와 형사부의 갈등 사이에서 힘겹게 버티고 선 미카미의 행보는 여러모로 애처롭고 안타까우며 예측 불가능한 미스터리를 서스펜스화하여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연민과 대작 경찰소설의 품격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64”라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

 

14년 전 유괴범에게 딸을 희생당한 아마미야가 선택할 수박에 없었던 일련의 행보들은 또한 어떠한가? 수사의지를 천명하고자 하는 경찰청장과 D현경에 대한 불신에서 모든 것을 상실한 아버지가 보여준 반전(반전은 분명 없지는 않다.)은 세상 모든 것을 바꿔서라도 억울한 죽음을 보상받고 싶은 절절함이 폭풍이 휩쓸고 가듯 맘을 쥐어짰다가 결국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 열린 결말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애절한 부정 앞에서 그 누가 눈물짓지 않을 수 있으랴?

 

마키미도 자신을 못난 외모를 닮은 딸이 절망해 가출하고 만 작금의 고통 앞에서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도 통하게 되는 서글픔에 따라 오열하지 않던가 말이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항상 수퍼맨이 되어야하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떠올리면서 문득 과거 일본 후쿠오카를 여행했던 기억도 중첩된다. 동료들과 파친코에 들렀던 일, 물론 나는 룰을 몰라 잠시 구경만 했는데 그 파친코 장의 여자 직원이 무척이나 추했다. 여자의 외모엔 관대한 나로서도 도저히 정면으로 응시 못하고 외면해야만 할 정도의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는데 그 당시 저런 외모로 살아야만 하는 그녀와 그녀를 낳은 부모는 어떠한 심정일까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보았다.

 

외모지상주의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 중 한 사람인 나는 그녀의 활짝 피지 못한 미소를 기억하면서 미카미와 어린 딸 아유미를 연관 짓게 되더라. 파친코의 그녀도 아유미도 분명 지금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으리라. 집 나간 아유미도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 올 것이고. 그러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하는 미카미의 심경변화는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소중함의 가치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소설 “64”는 경찰소설의 최고봉이자 인생의 경륜을 오롯이 써내려간 올해의 미스터리가 될 것 같다.

 

그런만큼 뜨겁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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