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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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를 써도 악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윌 클라인에겐 거리의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코브넌트의 자선사업처럼 그 자신이사랑을 필요로 했다. 한없이 평범하고 나약한 우리 주인공 윌은 믿음과 존경, 가족과 연인이면 충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며 작별을 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11년 전, 윌이 사랑했던 여자가 죽었다. 유망한 전국구 테니스 선수이자 유일한 영웅이었던 형, 켄 클라인이 그녈 처참하게 살해한 용의자로 몰렸다. 형은 아슬아슬하게 포위망을 뚫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지금까지 도피 중이다.

 

당시의 충격은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으면서 윌의 가족들을 주저앉게 만들었는데 살인자의 가족들은 세간의 저주와 냉대에 기진맥진해버렸으니까.  11년 전, 그가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에서 완전 회복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지금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 사라졌다. 과거의 비극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었다. 사랑을 잃고 영웅을 잃어버린 윌에게 상처를 보듬어 줄 새로운 사랑마저 실종되어 버리니 모든 정황은 윌을 궁지로 내 몰 수밖에 없다. 살인자 형의 도주를 돕고 현재의 연인 실러마저 살해한 용감한 형제가 되어버린 윌에게 행방불명되었던 형, 켄이 살아있단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데 살인이 연이어 발생하며 혼돈의 중심에서 진실은 잔인한 현실 뒤에 숨어 그에게 찾으라 한다.

 

목숨을 걸고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가 원했던 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구였다. 모든 것을 되돌려 시련의 늪에서 빠져나와 사랑할 수만 있다면야.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영웅이 있듯 그의 영웅이었던 형이 살아있다는 소식 앞에서 우리 가족들이 알고 있는 형이라는 남자는 결코 손에 피를 묻힐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치명적 상처는 독약이 될 것이니 상상만 해도 몸서리 쳐진다. 나 또한 그렇게 믿고 윌을 응원했다. 차라리 그가 죽었다면 누명을 벗을 작은 불씨마저 꺼뜨리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른다. 이제 내려놓고 싶었는데 어쩌면 형이 살인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은 윌로 하여금 어떻게든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영웅을 동시에 찾아 나서도록 만든다.

 

그러면서 사건의 주변을 맴도는 유령과 어떤 배경은 선과 악이 왜 공존하기 어려운지를, 불분명한 실체로 다가와서는 원인과 과정, 결말에 이르는 동안 거짓과 조작은 없었는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을 하나씩 짚어보게 만든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연결고리에는 어떠한 복선들이 숨어 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의혹은 연인에게 향하면서 사랑을 잃는다는 것과 처음부터 그녀는 날 사랑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닫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끔찍한 일인지 두렵게 한다. 결코 두 사람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던 윌의 바람과는 달리 폭력에 한 번 물들게 된다면 희망과 경외심과 신뢰는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결국 진실의 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비밀은 예상 밖으로 순수하지 않다. 거짓말, 배신, 사랑 등 예측을 불허하는 각종 시나리오로 코벤의 주특기인 반전으로 이끌 때 그토록 믿고 싶었던 마음 한 구석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하여 종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이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누구보다도 아프고 배신당한 쓰라림은 믿음에 대한 근본적 기준과 원칙을 깨 부수어서 나 자신이 너무도 안일한 결말을 예상하지 않았나 반성하게도 된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지르게 만든 반전의 묘미와 등장인물의 심층적 심리묘사는 하고 싶었던 말들을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그래, 타고난 천성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그렇게 쉽게 변한다면 과거의 상처로만 잊혀질 일이지 다시 한 번 폭력이 범죄를 낳고, 범죄가 또 다른 폭력으로 연계될 리가 없다. 유령의 존재는 그런 만큼 특별했다. 개성강한 만큼 흥미와 속도 면에서 가속도를 높이며 사람은 양파껍질 까 듯 벗겨 봐도 그 바닥을 알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강하고 날렵하게 증명해 보인다. 그가 이번 소설의 재미를 이끈 일등공신인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코벤의 작품은 읽고 나면 그 미묘함이 가슴을 싹 휘두른다. 그 여운이 길고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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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종말의 날
더스틴 토머슨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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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마야인들에 의하면 은하계의 정렬이 25천년에 한번 일어나며 20121221일에 지구, 태양계, 은하계의 중심이 일직선으로 정렬되는데 이때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했다. 자기장 흐름이 어쩌고 저쩌고 엄청난 압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천문학쪽으로는 당췌 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지구에 닥친 대재앙, 그것이 종말이라는 핵심에만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더스틴 토머슨의 <12.21: 종말의 날>을 최소한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인터넷으로 사전검색해본 12.21.에 대한 정의였다.

 

 

세상에는 갖가지 종말론이 판을 치는 가운데 이 책을 읽게 되는 시점에서 12.21은 이미 경과된 뒤라 시의적절진 않았지만 연말연시에 세기말적 기운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우리 문명의 위태로운 현실을 현시한다는 빈스 플린의 추천사에 인류는 언제까지 영원불멸할 것인지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인류가 이룩해 놓은 역사와 문명이 후계구도도 없이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다면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궁금해졌던 까닭이다. 어차피 상상의 산물이겠지만 지금도 파괴의 과정을 거쳐 공멸이라는 댓가를 져야만 하는 인류만 없어진다면.....

 

 

광우병 전문가인 게이브리얼 스탠튼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인 CDC에 근무하고 있다. 그는 0121211LA의 한 병원에서 전화를 받는데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이라고 불리는 FFI에 걸린 한 남자가 먹은 소고기와 우유 등에 어떠한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알코올 중독자인 줄 알았던 그 남자에게는 유전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라도 된 것일까? 신종 전염병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LA가 봉쇄된다. 이대로 원인을 찾기 전까지는 어떤 치료약도 없고 속수무책으로 희생자가 늘어나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 때 새로운 돌파구가 발견된다. 게티 박물관의 큐레이터 첼 마누는 고대 마야인들의 문서를 입수하게 되는데 그 문서에는 마야인들의 고대도시의 위치에 대한 단서가 들어있고 그곳에서 인류멸망을 막을 어떤 방편을 찾아내야만 한다. 스탠튼과 첼은 그 남자환자가 그 문서를 과테말라에서 몰래 들여왔었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단서는 과테말라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문서를 해독하여야만 하는데 그렇게 생존을 건 사투가 10일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마야인들의 역법대로라면 신봉자들은 인류역사를 크게 5단계로 나눈다. 지금의 인류를 4단계로 구분하여 지구상의 과학문명은 몰락하고 5단계의 인류가 나타나면서 현 인류는 멸망하게 될 거라는 이론을 펼친다.. 마치 생로병사의 단계처럼 인류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윤회과정을 단순히 순환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처럼 싸그리 쓸어버리고 새로운 판으로 재창조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눈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는 타인과의 접촉만으로도 치명적인 위협이다. LA만이 아닌 전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된 거대한 재앙은 현재진행형인 종말이 마침표가 되려고 하는 시점이다. 생존경쟁을 일거에 정지시킬 이 무시무시한 악몽은 흡사 헐리웃 재난영화를 보는 것 같은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일품이다. 그리고 과거 번영을 누렸던 마야문명의 잃어버린 도시야말로 안식과 구원을 가져다줄 영적공간이자 신들의 분노와 저주가 함께 시작되는 공존의 공간이기도 하다. 날로 강력해지는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면역체계를 마련하는 동안 예고된 종말대로 착착 진행되지만 결국은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운명 앞에서 체념하지 않고 마야인들의 몰락에 담긴 비밀로 인해 확대된 공포 속에서 이성의 힘을 놓지 않았던 공로가 크다. 그러기에 고고학과 전염성 질병에 관한 의학 분야는 읽는 맛을 제대로 북돋운다. 나름 흥미진진했다. 과학 스릴러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일부 신봉자들이 마야인등의 역법을 종말이론과 결부시켰다지만 세상에 종말은 닥치지 않았다. 난 지금 잘 살고 있다. 아직 죽을 타이밍은 아닌가보다. 잠시 절박함은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남겨둘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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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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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시내 중심가에서 눈꽃축제가 성황리에 열리는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았다. 하늘에서는 눈꽃이 흩날리고 아이들은 빙판에서 썰매를 신나게 타느라 여념이 없으며, 연인, 친구들과 포토존에서 이쁜 추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취를 맘껏 누리고 있었다. 특정한 날이 가져다주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데에는 종교적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지만 모두의 마음에 따듯한 외투를 둘러준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탄생을 의미하는 <노엘>을 지금 읽는다면 그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것 같다. 미치오 슈스케라면. 그는 이미 동화풍의 소설도 낸 적이 있으니 미스터리가 아니라도 선뜻 손에 들어보게 될 것이다.

 

 

게이스케는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바로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어려서부터 글쓰기가 특기이자 취미였던 게이스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름 유명한 동화작가 되어있다. 동창생들을 기다리던 게이스케는 야요이의 참석여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중학생 시절 게이스케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이들의 멸시와 학대를 당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일 때문에 늦으시는 엄마, 춥디추운 방에서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동화창작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의 구타 속에서 점차 지켜가던 그에게 한 소녀가 다가온다. 야요이라는 이름의 소녀와 친해지면서 두 사람은 이성의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게이스케는 글을 쓰고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는 협업을 통해 둘만의 동화책으로 위안과 동질감을 나누던 두 사람은 또 다른 여자아이까지 휘말린 어떤 불행한 사건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그만 절교하고 만다. 그리고 지금, 그녀 생각에 호텔 문을 나선 게이스케는 갑작스레 택시에 치어 쓰러진다.

 

 

내내 그랬던가. 게이스케와 야요이는 부모의 부재에 따른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게이스케야 뻔한 것이고 야요이의 아버지는 엄마를 폭행하고 딸의 알몸사진을 찍는 등의 인면수심에 파렴치한이니 애초에 두 사람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친구들이 외면하는 게이스케에 눈길이 자꾸 가는 야요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 타인의 불행에 자연스런 연민이 생기 수밖에. 그렇게 둘 만의 공통 관심사로 동화책을 만들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기를 응원하고 싶었는데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고 슈스케가 그냥 이쁜 사랑 하세요, 라고 배려할 사람이 아니지.

 

 

입만 놀리면서. 늘 내게 마음을 쓴다고, 배려한다면서 아무 것도 해주는 게 없다며 엄마를 원망하는 야요이의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라도 불러오기라도 한 것일까? 그날의 불행한 사건에도 엄마의 무관심이 한 몫 했거니와 결과적으로 자신을 진정 믿어주지 않는 게이스케에 대한 원망이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야요이에게 등 돌려 절교하는 게이스케를 그저 고개만 숙인 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은 쓰라리다. 네가 힘들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준 건 바로 나였어. 수업 중 게이스케를 깊은 눈길로 내내 응시하는 야요이의 모습은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계속 맴맴 돌 듯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 진실을 알고서는 가책을 받고 대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는데 너무 잔인한 설정에 심한 몰입에 빠져 버렸나 보다.

 

 

저기다. 야요이는 여전히 게이스케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게이스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경멸이 담기거나 야윈 개를 동정하는 듯한 어두운 눈이 아니라 야요이는 그저 차분하게 게이스케를 시야 중심에 잡아두고 있었다. - p.29 -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향방이 14년 후에 재회하게 된 그와 그녀의 용서와 화해로만 전개되지 않을까 성급한 예상을 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리가 굽혀 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짙은 소외감을 느끼다가 게이스케가 쓴 동화를 읽으며 상처를 극복한 리코, 은퇴 후 아내를 잃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려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도 게이스케의 동화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구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가 가지 의미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힐링이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의도는 분명 나쁘지 않다.

 

 

그러면서 시한부 삶을 살며 투병 중인 리코의 할머니에게서는 오랜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을 떠올리며 간병에 지친 자녀들의 한숨은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에겐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절망이라는 현실을 직시한다. 비록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잘 알겠다. 루돌프 사슴 코 이야기는 대중에게 친숙한 캐롤을 대상으로 삼아 편하고 훈훈하게 다가오지만 그 후의 동화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간 것처럼 쉽사리 동화되기 어려웠다.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을 배제하고 계속 더 몰입할만한 구도는 없었을까? 중반까지의 몰입과 상반되는 중반 이후의 이탈은 그래서 불확실한 감상만을 남긴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는 공감이 가나 해법을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진정한 힐링 스토리가 되기엔 많이 역부족이었다. , 뿜겠네. 그래도 올만에 읽은 슈스케의 소설인데 이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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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인간 한스 올라브 랄룸 범죄 스릴러 시리즈 1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 / 책에이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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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로만 각인되어있던 노르웨이의 추리소설을 또 다른 이름의 작가로 드물게나마 만나게 되었다. 작가 한스 올라브 랄룸의 첫 추리소설 <파리인간>을 읽기에 앞서 역사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노르웨이 인문학자이며 특히, 전쟁역사학자로 모국에서는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유명인사로 설명되고 있는 저자의 이력은 그가 좀 유별난 사람인 것 같다는 점,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수시로 일을 벌이는 공사다망한 성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왜 뜬금없이 추리소설을 냈을까 라는 의문도 당연히 포함되면서 그의 첫 데뷔작은 그의 소감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뻔 했지만 다행히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향후 차기작 2편이 국내에 소개될 예정으로 되어 있다. 

 

1968년 노르웨이 오슬로 크렙스가 25번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대항하여 저항군으로 맹활약했고 종전 이후 정치적 입신까지 이룬 하랄 올레센이라는 인물이 살해된 것이었다.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사건해결을 위해 출동한 곳은 3층짜리 평범한 아파트였다. 살인동기와 범죄에 사용된 무기, 용의자와 관련된 단서까지 발견되지 않은, 결정적으로 범인이 어떻게 살인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밀실살인의 전형이다. 크리스티안센 경감은 어떤 계기로 장애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명석한 지능을 가진 열여덟 살 천재소녀 파트리시아의 도움을 받아 공조수사를 펼치게 된다. 전혀 진전이 없이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은 크리스티안센이 현장을 누비고 그의 설명을 들은 그녀가 추리해내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방식이다.

 

확실히 파트리시아의 총명함은 크리스티안센 경감의 부족한 2%를 꼼꼼히 메워나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낸다. 오히려 크리스티안센 경감의 멀쩡한 육신은 그녀의 지혜 앞에서는 빛이 바랠 정도니. 때때로 경감의 수사방식은 초보적인 면이 많아 그 직책에 오르기까지의 능력에 대 한 의문이 들 정도로 한심할 때도 있기는 하다. 이제 두 사람은 아파트 주민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일대일 심문에 들어간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던 망자와 주민들은 결국 어떤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있었다.

 

각자가 가진 사연들은 역사라는 과거가 현재에도 어떤 식으로 진행중이며 남들에게 말 못한 수치스런 개인사들이 거짓으로 위장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과거 특정시대의 사건은 노르웨이의 실제 과거사를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조차 저자의 주변인물에게 설정을 신세지고 있음도 고백한다. 파트리시아의 말처럼 과거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유사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거나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는 사람들을 비유하는 있는 파리인간이란 표현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가는 방식은 과도한 대화(마치 또 다른 존 버든 스타일을 보는 것 같은)로 채워지면서 알지 못했던,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들까지 따옴표와 설명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지루함이 증폭된다. 게다가 생뚱맞은 로맨스, 그리고 누가 범인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후반부는 아쉬움이 상당하다.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치밀하지 못한 탓에 범인을 조기 검거할 수 없었던 이유가 범인의 입으로 납득되어야 하니 그 허술함은 앞으로도 경감이 소녀의 협조 없이는 난국을 헤쳐 나가기 힘들거 라는 불완전한 미래가 뻔히 보이는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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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레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4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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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히메카와 레이코, 금기를 깨뜨리다 또 다른 금기와 조우하다.

 

야쿠자 조직인 야마토회 계열 이시도 조직 산하 진유회의 하부조직인 로쿠류회 조직원이 살해되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려는 찰나 야나이 겐토라는 남자가 범인이라는 의문의 제보가 날아드는데 이 남자에게는 9년 전 살해당한 누나가 있었고 피해자는 바로 누나의 애인이었던 것. 이것만이 아니다. 겐토의 아버지는 죽은 누나의 살해 용의자로 몰려 경관의 총을 낚아채어 자살했었다. 그렇다면 겐토는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에게 복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금기... 만약 겐토 아버지의 죽음이 경찰의 잘못된 수사가 빚어낸 애꿎은 희생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을 염려한 경시청 고위층은 은폐를 위해 야나이 겐토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다. 하지만 히메카와 레이코는 외압을 거부하고 은밀히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이것은 무모하리만치 만용일수도 있었다. 들키기라도 한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찍히게 될 텐데 말이다. 하나의 금기를 돌파하고 나니 의도하지 않았으며 예상치도 못했던 제2의 금기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 시키는 대로 했으면 또 다른 불행을 잉태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야나이 겐토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가 어떠한 성장과정을 거쳐 누나의 죽음을 목격한 후 복수를 실행하려는 과정을 그려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레이코와 겐토의 시점만 있진 않다. 야쿠자 조직 교쿠세이회의 회장 마키타 이사오도 자신에게 주요 정보제공자였던 겐토의 죽음을 조사하다 레이코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3인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맹렬히 돌진하지만 미스터리로서의 강점보다도 로맨스가 소설의 핵심 축이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레이코는 남자들만 득실한 경시청 조직에서 여성으로서 시기를 받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남자는 동료, 경쟁자, 범인이라는 3가지 타입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비록 부하직원인 기쿠타와는 어설픈 러브라인이 가동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의 신분도 모른 상황에서 마키타와 급격한 사항에 빠지다니 덩달아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다. 어떠한 조건이나 편견 없이 상대가 가진 원초적 매력에 한순간 빠져든 이 사랑은 세속적이며 조건부적인 사랑에 찌든 요즘 세태에 비하면 확실히 무결점의 본능이다.. 담배 냄새는 어느 순간 남성미의 상징이 되고 중년남자의 원숙함은 진짜 남자를 최초 체험케된 레이코가 정신없이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후끈해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나아간다.

 

 

 

와다 과장도 이마이즈미 계장에게 한 말이 있지 않나. 레이코는 집중력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고. 자기 안으로 쑤욱 빠져드는 듯 한, 그런 게 있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데에 이유가 없다는 말이 있을 때 지금 레이코의 심경은 그러했을 것이다. 사랑은 레이코 같은 경우도 있겠지만 겐토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동병상련을 느꼈나 보다. 둘이 되어 지독한 외로움을 사람의 정으로 채워 나가고자 한 여인의 지고지순한 면모도 사랑의 또 다른 이유로 설명 가능하리라. 그 밖의 이유라면 그때부터 내리는 빗물 속에 불순물이 조금씩 섞여 들어갈 것만 같다. 순수하지 않으면 자칫 탈모가 될 위험도 감수하겠다면 우산을 쓰지 말고 온 몸으로 비를 맞아야겠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동기는 비난하지 못하겠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문제지, 사랑은 죄가 아니다, 라는 어느 동성애자의 말도 있지만 어떤 탐욕이 배후에 개입된 상황이 아니라 상대를 조건 없이 사랑하여 그를 위해 계획하고 자신을 희생하려한 배려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이번에는 안쓰럽지만 잔인한 설정이 없었기에 약간의 불편만 감수한다면 읽기엔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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