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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없는 동물원 - 수의사가 꿈꾸는 모두를 위한 공간
김정호 지음, 안지예 그림 / Mid(엠아이디) / 2021년 7월
평점 :
동물원은 동물을 관람하기 위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바꿔주는 책이었다. 작가가 동물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의 동물원의 모습이 어렴풋이 상상되었다.
동물들의 서식지가 잘 보존되어 동물원에 동물이 한 마리도 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
계기
인간이 동물을 보고 싶을 때, 사파리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이게 너무 기이하게 느껴졌다. 보고 싶다고 그들의 서식지를 침범할 권한이 주어지는 게 아닌데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침범한다. 작가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래 산다는 이유로 참 많은 것을 봤을 거북이들이다. 이곳 거북이의 앞 껍질 간격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선인장을 먹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 간격의 빈틈을 헤집고 공격할 포식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가 이 거북이들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되었다. (36쪽)
허공의 약속을 서로 믿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갈취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 심지어는 같은 인간조차 위협하는 인류의 종말은 뭘까. 이 종은 애초에 다른 종들과 공생할 생각 없이 모든 걸 독차지하길 원하는데 이 탐욕의 끝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무섭기도 하다.
이유야 어떻든 동물사 밖을 나온 하니는 자유로웠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몰랐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하니처럼 동물원에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이 대부분이다. (49쪽)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도 야생의 본능에 따라 상처를 보이는 걸 극도로 꺼리거나 높은 곳에서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인간의 본능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무슨 조치를 취했을 때 우리의 본능이 가장 두려워할지 궁금하다. 교도소를 떠올리면 자유를 제한하는 게 우리 본능을 억누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거기서도 또다시 사회가 형성되는 걸 보면 우리의 본능은 결속일까. 인간 개체 각각이 단절되고 고립되는 게 지구를 위한 길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헛웃음이 들었다.
최근 환경부의 정책도 멸종위기종의 증식과 보호보다 서식지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164쪽)
되게 의외다. 내 생각보다 더 정책의 방향이 바른쪽으로 가고 있어서 놀랐다. 서식지 관리가 잘되어 인공수정 같은 종 보존을 위한 노력이 무의미한 날이 왔으면 한다.
동물원의 동물은 문명에 길들여진 존재지만 야생의 생리와 본능을 가지고 있다. (170쪽)
동물들이 야생의 본능을 따르는 모습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인간이 서식지를 작살내고 개체를 멸종에 이르게 해놓고는 이제야 선심 쓰듯 종 보존을 해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현장이다. 물론 멸종에 이르게 한 사람과 종 보존을 해주는 사람이 다른 부류라는 걸 알지만 이게 동물 입장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감상
내가 흔히 생각했던 동물원과 작가가 일하는 청주동물원은 아주 달랐다. 동물을 애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나에게 투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동물원은 무조건 나쁘고 사라져야 하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야생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의 공간,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야생이 되어주는 공간이라면 지금 우리 사회에 충분히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야생 동물의 서식지가 잘 보존되어 긍정적인 의미의 동물원조차 더는 무의미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
작가는 야생으로 동물을 돌려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백수가 되는 게 작가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