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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달까지 갔더니 세 사람 다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당장 하루하루 눈앞에 놓인 일이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달달해지는 이야기였다. 길거리에 파는 솜사탕 같은 아니 어쩌면 그 주변에 흩날리는 솜사탕 부스러기 같은 딱 그 정도.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었고 그래서 내게 벌어지는 일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회사 일'이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웃기는 일도, 화나는 일도, 통쾌한 일도, 기가 막힌 일도. (30쪽)
회사에 별 흥미도 없는데 일상이 온통 회사로 채워지는 게 참 슬퍼 보였다. 직장인들이 왜 그렇게 취미를 찾아 헤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앞에서 기죽은 척해주고 네네, 하고 고분고분한 척만 하면 된다. (중략) 그런데 나는 꼭 비꼬고 싶었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었다. 팀장이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인지할 수 있게 눈앞에 들이밀어 보여주고 비웃고 싶었다. (61쪽)
와 사람 심리 묘사 개쩐다. 누가 내 속마음을 글로 적어놓은 줄 알았다. 밉상인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났을 때, 딱 이 심정이다.
또 언니는 마론제과에 들어오기 전에 다니던 첫 회사의 퇴직금을 전부 주식에 부었다가 반 토막을 낸 경험이 있다. (중략) 가끔 저녁을 먹으러 가는 회사 근처 백반집 텔레비전에서 투자했던 회사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언니는 전에 없이 상스럽게 욕을 해댔다. '쥐벼룩을 놔도 뛸 장에 저 혼자 바닥을 쳐 뚫고 앉아 있는 개잡주'라면서 (88쪽)
표현력미쳤엌ㅋㅋㅋㅋ내 심정...^_ㅠ주식 투자하다 많이 잃은 게 본인 경험인지 주변 사람한테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저 표현을 얘기한 사람 상당한 금액을 잃은 것 같다. 혹시 작가님의 상상력에서 나오신 거면 창의력이 감탄스럽다.
감상
작가님이 사람 심리 묘사를 참 잘하신다. 내 속마음을 글로 옮겨놓은 듯한 부분을 많이 봤고 그 외에도 감탄이 나오는 묘사들이 여럿 있었다. 전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어보진 않았는데, 제목에 왜 감정이 들어가는지 벌써 알 것 같고, 기대된다. 꼭 읽어봐야겠다.
탁월한 심리묘사 덕인지 세 사람의 급변하는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와닿았다. 사실 보통은 노동 없이 번 돈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잘 없어서 이 책에서도 모두 함께 빚더미에 앉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작가님이 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정하셨을까 고민했는데, 이 삭막한 사회에 이 정도 달달함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책을 덮은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지송이, 다해, 은상 언니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 보면 작가님이 인물묘사를 참 잘하신다는 게 다시금 느껴진다. 여전히 그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