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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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라고 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요즘 우울하고 답답한 책들을 많이 읽었더니 쉬어가는 구간이 필요했다.



 전에는 길을 가는 낯선 사람을 흠씬 패서 눈을 시퍼렇게 만들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가시 같은 시선에 찔려 스벤의 마음은 피투성이가 됐을 것이다. 

 예전에 버스에 장애인과 그 친구가 탄 걸 본 적이 있다. 내가 맨 뒷자리에 앉아있어서 버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쳐다봤다. 고개를 돌려서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릴 때 딱하단 듯이 혀를 차며 내렸다. 타인인 나조차 불쾌한 시선들이었다. 그런데 그걸 인생에서 계속 마주쳤을 그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때리고 싶었던 순간이 아주 많았을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지금 카드 게임을 하고 싶어. 우리 애들 넷이랑."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피해를 내가 고스란히 겪는 경우가 있다. 재수 없게 똥 밟았다고 치기엔 똥 때문에 내 온몸에서 구린내가 진동한다. 더 화나는 건 그 피해를 극복하는 게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기죽고 가해자는 기세등등한 세상을 볼 때마다 환멸 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오지 않는 발작을 기다리고 있다.

 스벤과 파커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 이익을 쫓기 바쁜데, 주변을 돌아볼 눈을 가진 이 둘은 대단한 아이들이었다.



감상

 다름은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사회가 만든 견고한 편견이 각막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떼내고 떼도 계속 잔여물이 남아있다. 아니 어쩌면 편견이 편견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같지 않은 게 당연한데, 이 당연한 사실이 왜 통용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다름을 표현하고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융합'이란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름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오고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며 살길 바란다.

 청소년 동화를 거의 10년…? ㅋㅋㅋㅋㅋ만에 읽었는데 어릴 때 책 읽었던 느낌이 났다. 뒷얘기가 어떨지 궁금하고 주인공이 무사하길 바라는 감정을 느낀 게 참 오랜만이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 시야를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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