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녕이 힘든
노지은 지음 / 위심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작가 자신의 이야기 솔직하게 써낸 에세이다.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안녕'이 아닌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너는 네 자리에 있으라는 '안녕'을 자기 자신과 독자에게 건넨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우리의 순간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200페이지를 걸쳐 건넨다."


계기

다른 사람 인생이 별로 안 궁금해서 이런 종류의 에세이는 잘 안 읽는데, 대표 글에 "나 역시 모든 것과 '안녕'하고 난 후에야 이 책을 쓸 수 있었으니까"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요즘 안녕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데 그 답을 혹시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독서 중


프롤로그를 읽는데 너무 뻔한 위로 멘트가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인터넷, 각종 위로 에세이의 대표 구절에서 수없이 많이 봤던 그런 문구들이 짜깁기되어 있어서 작가가 왜 이걸 프롤로그에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있지 미가야. 네가 하늘 나라에서 행복할 거라고 믿지만 더 자주 내 꿈에 나와주라. 언니는 아직 네가 살아있는 것 같아서 그래.

죽은 사람인 걸 아는데, 살면서 한 번도 헷갈린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꿈속에서 나는 그 사람이 살아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작가는 꿈에 미가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사람이 가끔 아주 가끔만 꿈에 나왔으면 좋겠다. 깨고 나면 그 꿈을 붙잡고 헤질 때까지 만지는 그 과정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아예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는데, 그러면 영원히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가끔만 보고 싶다.


이런 삶은 누군가는 동정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과정이 있어 비보다 질기며 바람보다 강한 강아지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자만심에 쩔어 남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해 동정하는 그들이게, 당신의 인생은 진심으로 안녕한지 묻고싶다. 타인을 동정하며 얻은 알량한 우월감을 양분삼아 겨우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어쩌면 엄마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가르쳐 주던 사람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으로 변하는 걸 수도 있다. 문득 엄마도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지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싶었다.

나도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세상이 이렇게 인내심이 없는 내게 사람으로서 구실 할 도리를 주는 것 같았다.

보답할 수 있음에 감사한 데, 막상 보답하려고 하면 감사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답답함만 남는다. 나는 아직 받은 걸 다 갚으려면 한참 남았나 보다.

그러니까 나한테 받아야 할 걸 다 뜯어낼 때까지 오래 사셨으면 한다.


그러니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돈 벌면 즐겁게 쓸 것이고, 하고 싶은 건 다 배워 볼 것이며, 내가 가고 싶은 속도대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살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나와 가는 장기 레이스니까.

사람은 각자 건너야 할 자기만의 바다가 있다. 내 바다가 있고, 내 수영 실력을 아는데 가끔 다른 사람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볼 때가 있다.

인생은 '나'와 가는 장기레이스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그나저나 다음 달 셋째 주 목요일, 서점에 새 책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소확행. 나는 이 말을 참 싫어한다.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큰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문득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운데 결과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큰 성공과 비싼 물건들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게 '견디는 마음'으로 나를 갉아먹으며 얻은 거라면 그렇게 해가면서 까지 얻을 가치가 있을까?

작가가 서점에 책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마음과 같이 나한테도 당장 내일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살면서 누구나 지옥 같은 불안이나 지옥 같은 공간 속에 있어야 할 때가 있겠지만, 찾아보면 중간중간 그 어디에 작은 천국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왜 지옥에만 집중했을까. 인생은 정말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내 지옥 속에도 분명 내가 놓쳤을 많은 천국이 있었을 텐데.

천국은 카멜레온 같다. 생긴 건 지옥과 비슷한데 가까이서 보면 분명히 다르다.


나이가 먹으면서 몸은 물론 뇌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솔직히 최선을 다하라는 신호도 내리지 않는다. 그냥 해야해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나는 남들이 다 청춘이라고 부르는 20대인데, 왜 위의 문장들이 정확히 내 인생을 표현하는 말 같을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인생은 나와 하는 장기레이스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게 내 인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건 평생 노력하면서 해결해나가야 할 일이니까 조급하게 마음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의 한계치를 넘기 전에는 왜 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봐야한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오니까.

너무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서 몇 년 째 거기에 인생을 쏟아 부었다. 지금은 거의 포기하고 미련만 남은 상태지만. 그런데 몇 년 동안 거기에 몰두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내가 왜 이 행동을 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어서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다.

요즘 미련이 다시 그 일로 나를 슬금슬금 끄는데, 나는 그 한계를 왜 넘고 싶은 건지 고민했다.

책장을 잠깐 덮고 한참을 고민했는데 '그냥'이었다. 나는 그냥 그게 너무 가지고 싶고 하고 싶다.

나는 또다시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내 머리를 밀어 넣고 있는 걸까.

많은 생각을 남기는 문장이다.



감상

한 줄 정리: 뿌연 거울 같은 책


의도: 더 단단한 작가 자신과 이 책을 읽으며 성찰을 통해 단단해질 독자를 위해 작가가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안녕과 작가의 안녕은 달랐다. 작가의 '안녕'은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너는 네 자리에 있으라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에세이였는데 글은 술술 읽혔다. 그런데 글을 읽은 시간보다 책장을 덮고 중간에 생각한 시간이 더 길었다. 참 신기하고 이상한 책이다.

나와 닮은 듯 다른 작가의 모습이 책 곳곳에 등장했는데 그걸 보면서 기분이 참 묘했다. '나만 버티는 게 아니구나. 나같이 버티고 있는 사람이 또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아픔을 양분 삼아 위로를 받은 게 아닌, 그냥 존재만으로 나에게 안도감이 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프롤로그의 글도 인터넷에 떠도는 위로 글 짜깁기가 아니었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공들여 쓴 것인 걸 책을 다 읽고 알았다.

요즘 계속 드는 생각인데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집중해야 하는 건 '나'이다. 작가도 2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을 쓰면서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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