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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평점 :

일전에 한병철 작가의 <에로스의 종말> <피로 사회> 를 읽은적이 있었다.
결코 두꺼운 책이 아닌데, 그 책안에 든 내용은 전혀 쉽지 않았다.
단어 하나하나는 읽어갈 수 있지만 문장으로 그 단어를 흡수하려 할 때 생각보다 곱씹을게 많았었다.
근데 이번에 김영사에서 한병철 시리즈가 나오더라구?!
그 중에 현재를 제일 잘 표현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하는 <사물의 소멸> 을 읽어보기로 했다.

역시나 쉽진 않지만, 그래도 동시대를 통과하는 키워드라서 그런지 그나마 쉽고 공감이 엄청 된다.
특히 최근 일회용 카메라 필름을 인화해 보기도 했고, 라이프 사진전도 다녀와서 그런지
사진과 셀피, 서사와 순간 그 사이를 다룬 셀피 파트가 되게 와닿았다.
셀피는 사물이 아니라 정보 곧 반사물이다. 사진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반사물이 사물을 밀어낸다.' 스마트폰은 사진 사물을 소멸시킨다. 셀피는 정보로서 오로지 디지털 소통 안에서만 유효하다. 기억, 운명, 역사도 사진 사물과 함께 소멸된다. p.54
요즘 셀피를 그렇게 까지 찍는 편은 아니지만, 여전히 셀피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고 셀피 뿐 아니라 '디지털 순간 소통을 완성하는 스냅챗' 도 같이 범람하고 있다. 솔직히 이건 진짜 책에서 처럼 '전시'적인 성향을 가지며 보여주기 외에 다른 의미는 없는 것 같고, 일회적으로 주목받고 좋아요를 받고 휘발한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셀피가 주목받으면서 반대로 기억매체로서의 사진은 없어져 간다.
셀피는 실재 하지 않으면서 막상 실재하는 것을 없앤다는게 참 아이러니했다.

디지털 보정의 가능성은 피사체와의 결합을 약화한다. 그 사후 가공은 실재에 헌신하기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 중략 ...
존재하지 않는 그 과도현실은 더는 현실과, 실재하는 피사체들과 상응하지 않는다. 디지털 사진은 과도현실적이다.
p.53
게다가 보정!
요즘은 워낙 중국발 보정앱이 많잖아? 인스타만 봐도 워낙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 넘쳐나고!
사실 그걸 보면서 현실과의 괴리가 어마무시 할텐데 과연 실재하는 인물은 괜찮을까? 싶었음.
진짜 요즘은 과도현실에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진짜 자는시간 외에는 항상 함께하는 내 분신같은 스마트폰에 대한 단상도
참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은 탈신체화된, 바라봄이 없는 소통이다.
... 중략 ...
디지털화는 바라봄으로서의 타인을 소멸시킨다. p.37
요즘은 워낙 전화보다는 텍스트로, 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하는게 익숙하고 그게 편하다.
나 역시도 전화 거는게 너무 부담스럽다.
디지털화 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게 편해서인지... 스마트폰을 통한 소통이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동시에 디지털화 속에서 좋아요 등을 하면서 또 다른 연결을 갈망하는게 참 아이러니했다.
우리는 철저히 착취당하고 감시당하고 조종당하는데도 자유롭다고 느낀다. 자유를 착취하는 시스템 안에서 저항은 형성되지 않는다. 지배가 자유와 합쳐지는 순간, 지배는 완성된다. p.42
너무 멋진 문장이라 가져와봄!
미쳤어... 이게 딱 스마트폰과 디지털화를 표현하는 적절한 문장 아닌가.
진짜 자유를 착취하는 시스템 속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유롭다고 느끼며 순종하는 현대인이랄까...
나도 뭐 스마트폰 쓰고, 지금도 디지털 공간에 글을 남기고 있지만
가끔 다 끊어내고 잠수탄다랄까?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다들 비슷할듯!)
디지털디톡스가 괜히 있는게 아닌거 같다.

스마트폰, 셀피, 인공지능 등 지금 내가 살아가는 순간과 너무나도 와닿는 부분이라 그런가 더 재미있게,
내가 겪은 상황에 대입하면서 좀 더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번역이라 원어가 직관적으로 딱 오진 않아서 계속 생각하면서 읽긴 해야했지만
지금, 디지털 시대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나 조금은 다르게 지금을 보고싶다면
꼭 한번은 읽어봤으면 좋을 책이었다.
역시... 한병철 작가님 책은 참 생각할 거리도, 표현도, 느끼는 바도 많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