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방 - 4000명 부자의 방을 보고 알아낸 공간의 비밀
야노 케이조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4.0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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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서 살고 있나요? 지금 그곳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의 집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인가요?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다지도 구체적으로 장소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책 자체의 내용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환경을 바라보고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충분하다. 이 책은 경제력에 따라 살 곳을 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세상 어디에서 어떤 공간을 마련하고 살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졌고, 난 지금 그 답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저자가 '집 짓기 세미나'에서 만났거나 업무를 의뢰받았던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공간 활용의 좋은 예와 그렇지 않은 예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집이나 사무실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과 활용 사례를 본보기로 삼는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40 페이지 정도에 걸쳐 각 단원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본문을 궁금하게 만들고, 미처 생각지 못한 내용에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 기분이 이어져서 뒤에 이어지는 목차를 살피다보면, 목차 자체만으로도 유용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생각보다 사람은 사는 곳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영향을 받는 요인도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의 크기, 공간의 목적, 습도, 온도, 방향의 설정 등에 따라 생활의 질이, 가족간의 관계가, 건강이, 직업적 성공이 좌우된다는 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며 살아갈까. 혹시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든지, 몸이 약해진 느낌이 든다든지, 가족 간의 관계가 불편하다면 지금의 집에서 그 요인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의 제목이 '부자의 방'인 이유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물론 돈이 반드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의 생활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의미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서만 업무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를 즐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공간을 대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중요하게 다룬다. '공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자. 공간을 잘 선택해서 활용하면 오히려 다른 부분의 낭비가 없어지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더 이익'이라는 설명에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장소의 기억'이라는 개념이었다. 장소, 혹은 건물을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감정을 나누는 유기체로 다루는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새로운 관점이었고 묘하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다시 둘러보고 각 공간에 대한 내 인식은 어떤지, 혹시 나쁜 기억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집을 구할 때는 집을 내놓은 경위와 살던 사람들의 이력을 대략이나마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정적인 기억이 있는 집이라면 본인 스스로 긍정적인 기억으로 이전의 기억을 바꾸려고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부자들의 방식대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현실 상 자신의 집을 소유하기는 커녕 (나처럼) 전세라도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을 테니까. 그래서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적합하지도 않고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당장 거처를 옮기거나 새로운 공간을 찾아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먼저 공간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을 갖고, 긍정적인 기분으로 집을 바라보려는 시도,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결론.

 

결국 이 책의 본질은 공간을 바라보는 의식을 개선하고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단순히 크고 많은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현재 자신의 상황에 맞고 효율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편리하고 좋은 시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의 공간을 정리해서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집을 그저 먹고 자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발전시키는 무대, 안정감을 느끼면서 피로를 풀고 에너지를 보충하는 공간으로 여기고 진화시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 의지가 모여 자신의 삶을 더 좋은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책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독자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알려줄 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실용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공간 가꾸기' 팁을 제시한다. 내일 당장 나침반을 장만하고, 집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인다. 아, 또 화원에 가서 관엽식물을 주문해야겠다. 나처럼 누군가는 당장 화장실 청소를 시작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집 밖을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무엇부터 시작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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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10명의 물리학자
로드리 에번스.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김소정 옮김, 유민기 감수 / 푸른지식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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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물리학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실제로 바꾼 사람들입니다. 물리학이 없었다면, 목록에 올라간 물리학자(와 그 밖에 많은 물리학자)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과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현대 세계를 지탱하는 기술도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왜 물리학일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 세상에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물리학자라니.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딱딱하고 어렵고 지루할 것만 같다. 이런 지루한 학문을 연구했던 사람들의 역사는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물리학이 모든 과학의 기본이며,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중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이 학문을 연구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의 역사 또한 우리 개개인의 역사와 다름없이 흘렀고, 그렇게 지루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물리를 기반으로 화학과 생물의 이론이 확장되며(화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과학의 발전은 사람들의 의식을 변하게 한다. 이 변화는 다시 정치, 종교, 철학 등에 영향을 주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물리'에는 수많은 공식과 법칙들이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중요한 게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물리학자와 그들의 스토리. 그래서 아쉽다. 물리학 법칙을 발견하고 완성한 사람들, 그 과정에는 동기와 배경이 있다. 우리는 다만 이들이 이뤄낸 성과에만 관심을 갖고 그 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구나. 이런 걸 생각할 때면 내가 고등학교 물리를 왜 그렇게 힘겨워했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획일적이고 암기를 강조했던 (지금도 그렇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이런 방향을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했으니까. 단지 왜 공중에 45도 방향으로 공을 던져야만 하는지, 돌아가는 놀이기구의 원심력을 계산하는 방법이 어디에 필요한 건지 당최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성인이 된 지금이라도 물리를 흥미롭게 다룬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일 뿐이다. 이 책은 어른들에겐 과학 교양서로, 아이들에겐 학습서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이 남다른 이유는 10명의 물리학자를 선정한 방식에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물리학자들은 '유명한 물리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선정한 위대한 물리학자'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처럼 물리학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도 더러 있겠지만, 그렇기에 이 책이 더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미 익숙한 이름의 역사에서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러데이는 원래 책 제본공이었다. 제본하던 책에 관심을 둔 것을 계기로 과학 실험의 세계로 들어선 그는 대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는 사실. 전자기론의 초석을 마련하는 성과는 단지 열정과 독학에의 의지였다. 또 닐스 보어는 물리학에 기여한 공로로 평생 칼스버그 라거 맥주를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고. (난 여기서 물리학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의 부족한 사회성과 고집스러운 성격은 고전 물리학의 틀을 깨려는 시도에 가려져있다.

 

모두 태어나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바로 '의심과 증명 의지'. 과거의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을 거부했던 사람들이다. 설령 그런 시도로 누군가의 비난을 사고, 사회적인 고난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의심이 확신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증명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그런 시도들이 모여 사람들의 시야를 넓히고 기술은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존의 틀에 대한 의심, 그 틀을 깨려는 시도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연대기 순에 따라 인물 배치를 한 것도 그런 의도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이 10명의 물리학자들이 천재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어서 읽는 내내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지금껏 위대한 물리학자로 불리게 된 것이 단지 뛰어난 머리를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역사 안에서 겪었을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이 인정받을 만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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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에 만나요》

 

용윤선 / 달 / 2016-09-19
반양장본 / 300쪽 / 200*145mm / 390g

 

 

13월은 언제쯤일까. 겨울의 한가운데 즈음, 두꺼운 점퍼를 입고 시린 손을 비비며 따뜻한 마실 것을 찾는 내가 그려진다. 달력엔 없지만 가늠할 수는 있을 것 같은 13월. 포근함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전작 「울기 좋은 방」과 마찬가지로 커피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작가 자신이 좀 더 드러내어 삶의 희로애락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각자의 이야기는 특정 지명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목차를 보다가 제목과 장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 나름 상상도 해본다. 이런 책은 책을 구경하는 재미를 준다.

 

일상의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람, 그녀가 가는 곳,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싫든 좋든 사람의 말을 담아 집으로 돌아가 하루이틀을 함께 살았다. 하루이틀을 함께 살았던 말보다는 일주일 열흘을 함께 살았던 말이 더 많았고, 평생의 반을 함께 살고 있는 말도 있다. 이해되지 않는 말도, 노여웠던 못된 말도 집으로 돌아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더운물로 몸을 씻으며 살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었으며 노여움도 사라졌다. 혹여 끝까지 이해되지 않거나 노여움이 일면 가슴에 구멍 하나 파서 묻고 소주 한 병 마시고 긴 잠을 자고 일어나 지리멸렬하게 生을 이어가다보면 괜찮아지곤 하였다.
- 「청둥오리 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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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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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데다 판에 박힌 상투적인 말만 내뱉는 것이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이 정도로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하는데도 자신의 어디가 나쁜지 전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착한 사람이다." (p.59)

 

 

역시 니체다. 저자는 무능력한 약자들이나 니체를 읽고 간직하는 거라고 조소하지만 그래도 니체다. 나 역시도 "자존심 세고 유약한 젊은이"(p.23) 중 하나인걸까. 그래도 아직까진 니체다. 니체를 읽는 것은 보석을 정제하는 과정과 같다. 선별의 즐거움, 그것이 니체를 읽는 이유다.

 

저자는 니체를 경멸(실은 무관심)해왔지만, 지금의 일본을 설명하자면 니체의 방식이 필요했기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또 니체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일삼는 책들이 성에 차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정작 본인이 니체를 오해하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니체에 동의하거나 혹은 애정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극단적인 서술로 니체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착한 사람'에 대한 비난은 '니체'에 대한 우려로 끝이 난다. ​

 

이건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니체의 말을 빌렸을 뿐, 이 책의 내용이 니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비난이 니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니체 뒤에 숨어 본인의 생각을 니체의 이미지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니체를 에둘러 (소위 말하는) '까게'되는 효과랄까. 그런 면에서 저자는 참 똑똑하기도 하다. 동시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더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이렇게 비약과 배려없는 문장들이 이어지다보니, 논쟁의 소지는 다분할 것 같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강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할 것인데, 니체의 '초인'과 유사한 의미로 쓰여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자, 삶의 소명이 있고 도덕을 갖춘 자,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하는, 삶의 의지가 강한 자를 뜻한다. 즉 재산이나 직업 등 사회가 매긴 가치에 따라 이분적으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라, '약자'가 아닌, 혹은 스스로 '약자'를 이겨낸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곡해하여 현실적 강자(금수저 혹은 권력자)의 이론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려가 된다. 많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입김을 행사하는, 사회의 축이 되어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그런 사람을 강자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피력하고 싶다. 진짜 강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던지는 사람이며, 비겁하지 않고 진솔하면서도 소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불편한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많이 통쾌했다. 표시하던 문장도 너무 많아져서 관둬버리고 읽는 데만 집중했다. 니체를 등에 업은 저자는 냉철하고 직설적이며 과격하지만, 공감할 수만 있다면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니체다. 전혀 조심스럽지 않고 강박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뼈를 훑는 서늘한 직언. 내 안의 '약자'가 보일 때마다 불편함과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통쾌함을 느끼는 부조리.

 

저자는 '약자 =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자신의 결함을 선량함으로 표시하려는 약자들의 자기기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약자'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약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신의 무지를, 자신의 나태함을, 자신의 서투름을, 자신의 어설픔을, 자신의 인간적 매력의 결핍을 비하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뿐더러"(p.33), 그것을 오히려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돌려 자신의 약함을 옮음으로 정당화하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합리화하는 사람들. 그 사실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누군가 그들의 결핍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즉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들. 강자로부터 배려받기만을 원하고 , 자신은 정작 변화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약자가 있는지, 매 페이지마다 누군가가 떠오르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약자의 근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확신한다.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결국 남겨진 문제이다. 내 지나온 삶은 물론이거니와 계획했던 앞으로의 삶까지 반성한다. 내가 가진 가치관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 삶을 나의 것으로 살아왔는지, 내 인생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냥 이대로 약자의 모습을 간직한 채 만족감에 젖어, 죽음만을 앞둔 삶을 그럭저럭 이어나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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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재의 비하인드》

 

권혁재 / 동아시아 / 2016-09-07
양장본 / 280쪽 / 233*177mm / 799g

 

 

사진 에세이다. 부제는 '세계를 발견하는 방법, 그리고 어떤 대화들'이다. 오랜 세월 사진전문기자로 일하면서 보고 들은 사람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고 한다. 때로는 찰나를 담은 사진이 쉼없이 움직이는 영상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을 순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셔터를 누르는 그 잠시의 순간에도 참 많은 고민이 필요했겠다, 싶다. 사진을 평소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만나고 함께 작업한 사람들을 보니 더욱 흥미가 생긴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이야기가 보일지 궁금해진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나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멋있게 찍고자 하는 고민과 그럴듯한 장소를 찾는 시간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래야만 독자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개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답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감을 할 때는 언제나처럼 세 가지 관점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나마 무턱대고 대상의 관점으로만 사진을 선택하는 일은 드물어졌습니다. 그들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더 컸던 까닭입니다.
- 머리말

 

 

 

 

 

 

 

 

 

《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 아작 / 2016-09-20
반양장본 / 356쪽 / 197*137mm / 407g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뛰어난 페미니즘 SF 작품들을 한 데 모았다고 한다. 소설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방향으로 사고의 확장을 시도한다고. 확실히 문학적으로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SF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왜 하필 SF여야 했을까. 
 

이 책의 편집자들이 가장 신경을 쓴 지점은 21세기 들어 SF 소설계가 맞고 있는 페미니즘 르네상스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SF 소설계의 페미니즘 논의도 크게 보면 전반적인 여성운동의 물결과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대변되는 1차 페미니즘 물결이 일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1970년대에 젠더와 성역할, 가부장제에 주목한 2차 페미니즘 물결이 일었다. 페미니즘 SF 소설의 황금기는 이 2차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 시작됐다. 1990년대에 시작된 3차 페미니즘 물결은 서구 백인 여성 중심에서 벗어나 여성들 간에 존재하는 인종적, 계급적, 개체적 차이를 인정하는 동시에 남녀의 경계를 넘어 보다 다양한 성 정체성과 여성적 지위에 있는 여러 대상들과의 연대에 주목한다. 현재 SF 소설계가 맞은 페미니즘 르네상스는 넓은 의미에서 이 3차 페미니즘 물결과 흐름을 같이 한다. 21세기 들어 SF 소설계에는 여성작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주요 상들을 석권하는 한편, 전에 없이 다양한 인종과 국적, 성 정체성,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목소리가 뚜렷이 반영되고 있다.
- 출판사 책소개 중에서.

 

나에겐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움을 마주하기 전에는 언제나 긴장과 설렘이 있다.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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