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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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데다 판에 박힌 상투적인 말만 내뱉는 것이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 이 정도로 친절하고 정중하게 설명하는데도 자신의 어디가 나쁜지 전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착한 사람이다." (p.59)

 

 

역시 니체다. 저자는 무능력한 약자들이나 니체를 읽고 간직하는 거라고 조소하지만 그래도 니체다. 나 역시도 "자존심 세고 유약한 젊은이"(p.23) 중 하나인걸까. 그래도 아직까진 니체다. 니체를 읽는 것은 보석을 정제하는 과정과 같다. 선별의 즐거움, 그것이 니체를 읽는 이유다.

 

저자는 니체를 경멸(실은 무관심)해왔지만, 지금의 일본을 설명하자면 니체의 방식이 필요했기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또 니체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일삼는 책들이 성에 차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정작 본인이 니체를 오해하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니체에 동의하거나 혹은 애정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극단적인 서술로 니체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착한 사람'에 대한 비난은 '니체'에 대한 우려로 끝이 난다. ​

 

이건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니체의 말을 빌렸을 뿐, 이 책의 내용이 니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비난이 니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니체 뒤에 숨어 본인의 생각을 니체의 이미지를 통해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니체를 에둘러 (소위 말하는) '까게'되는 효과랄까. 그런 면에서 저자는 참 똑똑하기도 하다. 동시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더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이렇게 비약과 배려없는 문장들이 이어지다보니, 논쟁의 소지는 다분할 것 같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강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할 것인데, 니체의 '초인'과 유사한 의미로 쓰여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자, 삶의 소명이 있고 도덕을 갖춘 자,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기꺼이 감수하는, 삶의 의지가 강한 자를 뜻한다. 즉 재산이나 직업 등 사회가 매긴 가치에 따라 이분적으로 나뉘는 개념이 아니라, '약자'가 아닌, 혹은 스스로 '약자'를 이겨낸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곡해하여 현실적 강자(금수저 혹은 권력자)의 이론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려가 된다. 많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입김을 행사하는, 사회의 축이 되어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그런 사람을 강자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피력하고 싶다. 진짜 강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스스로를 위험으로 내던지는 사람이며, 비겁하지 않고 진솔하면서도 소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불편한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많이 통쾌했다. 표시하던 문장도 너무 많아져서 관둬버리고 읽는 데만 집중했다. 니체를 등에 업은 저자는 냉철하고 직설적이며 과격하지만, 공감할 수만 있다면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니체다. 전혀 조심스럽지 않고 강박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뼈를 훑는 서늘한 직언. 내 안의 '약자'가 보일 때마다 불편함과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통쾌함을 느끼는 부조리.

 

저자는 '약자 =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자신의 결함을 선량함으로 표시하려는 약자들의 자기기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약자'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약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신의 무지를, 자신의 나태함을, 자신의 서투름을, 자신의 어설픔을, 자신의 인간적 매력의 결핍을 비하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뿐더러"(p.33), 그것을 오히려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돌려 자신의 약함을 옮음으로 정당화하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합리화하는 사람들. 그 사실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누군가 그들의 결핍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즉시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들. 강자로부터 배려받기만을 원하고 , 자신은 정작 변화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약자가 있는지, 매 페이지마다 누군가가 떠오르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약자의 근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확신한다. 그럼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결국 남겨진 문제이다. 내 지나온 삶은 물론이거니와 계획했던 앞으로의 삶까지 반성한다. 내가 가진 가치관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 삶을 나의 것으로 살아왔는지, 내 인생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냥 이대로 약자의 모습을 간직한 채 만족감에 젖어, 죽음만을 앞둔 삶을 그럭저럭 이어나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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