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도끼다 - 소설가들이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악스트 편집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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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인터뷰는 늘 흥미로운 분야다.
작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늘 그런 편이다.

이 책은 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너무 지난 글인가 싶은 게 
문학의 종말 (언제 적부터 하던 말인지 지겹기도...) 운운하는데
요즘은 텍스트 힙이 와글와글(이것도 좀 희미해지고 있지만) 하는 판이라서.

천명관 작가를 생각하면 <고래>때의 흥분과 그 이후의 거듭된 실망이라는 감정이 차례로 떠오르는데 시스템 안에서 태어난 작가가 아니라는 점과 첫 작품의 행운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 
나이가 들어감에도 여전한 도전적인 감각을 유지하려는 건 좋지만 구태하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윤기 감성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에서도 그 지점이 많이 느껴졌다.

- 사실 <고래> 이후에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없었다. 얼떨결에 등단하고 책까지 냈는데 웃기게도 곧바로 동력을 상실한 거다. - 18, 천명관

- 문학은 종교가 아니다. 숭고한 신념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말 중에 조이스 캐롤 오츠의 말이 있다. 문학에 예술만 있고 기술이 없다면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반면에 기술만 있고 예술이 없다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의 신념>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 기술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장인적 기술, 즉 대장장이가 쇠와 불을 다루는 기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문학에도 그런 기술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문학은 종교처럼 숭고한 태도와 정신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밥벌이는 천한 일이고 예술은 숭고하다는 식의. 이런 분위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 32, 천명관

- 편집위원이니 심사위원이니 하며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왜 선생님들의 지도 편달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능하고 영민한 편집자가 필요할 뿐이다. - 39, 천명관


공지영 작가의 인터뷰는 뭐 이리 깊이 없는 인터뷰를 하나 싶은 얼굴 타령이 좀 별로였고.

듀나의 익명성에 관한 이야기는 듀나라는 작가의 신상이 베일에 싸여있다는 점 외엔 오히려 더 오픈되어 있는 작가라는 관점이 의외의 깨달음 포인트였다.

- 제 이야기에서 세계 멸망은 일종의 이퀄라이저라고 생각해요.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에게 스스로의 모험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 88, 듀나


이장욱 작가의 학삐리 분위기가 천명관 작가와는 정반대 지점 같은 느낌이라 조금 웃기기도 했다.

- 가령 가부장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여성은 자기도 모르게 제 안에서 소수성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시인, 작가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마이너리티의 요소가 작가한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뻔한 얘기지만 대한민국은 수도권에 사는 중년-남성-이성애자-지식인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잖아요. 일단 구리죠. 이건 빼도 박도 못하고 메이저리티에 포함돼 있으니까. - 143, 이장욱

- 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분노, 절망, 슬픔, 비애, 사랑, 감동......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안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겪는 감정 경험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 203, 정유정

김탁환처럼 관심이 적었던 작가라도 즐겨읽는 작가가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급' 친밀감이 생긴다. 김탁환 작가의 글을 읽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2026. jan.

#이것이나의도끼다 #a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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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비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27
백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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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노래 같기도, 동화 같기도...

반복에 지쳐가며 읽다가
4부의 시들이 훅 들어오는 느낌으로 좋아져서
기분 좋은 놀람이 있었다.

- 뒤집힌 치마 / 노래가 완성되면 / 거꾸로의 세계에서
침묵을 배운다는 거 / 진짜 좆같아 - 소녀 경연 대회 중

- 영원과 순간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빛이 하는 게임에 모든 걸 걸고
파산하기를 반복했다 - 비신비 중

- 한없이 길어지는 파처럼 변곡점 위에서 우리는 왈츠를 추고, 누가 내 무엇을 가져갔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나는 내가 겪는 일들을 때로 믿을 수 없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있는 센서가 몸 안에 있으면 좋겠다. - 누가 내 무엇을 가져갔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중

- 가끔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아서
끝없는 숲 바다
상상은 얼마나 볼품없고
아름다운지 - 세계의 배꼽 중

-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일으켜 세워준다면 다시
넘어질 수 있을 텐데 - 메커닉 로맨스 중

-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어떤 노래는 사라진 자리에서 불쑥 솟아 내내 흐르다가 꿈에 정박한다고 그걸 번역하는 두 손이 오래도록 만지던 어둠이 있다고. - 꿈의 노래 중

- 나는 내내 걷고 있었는데
건물이 쏟아지고 나무가 흔들리고
손끝부터 닳아가는 웃고 있는 사람들
풍경이 표정을 바꾸며 곁을 스쳐 지나가
(...)
다 알아버린 얼굴로
돌아오는 길 이제
그런 노래는 부르지 말자 - 비신비 중

- 나의 취미는 기만이고 나의 특기는 절망이다. 혹자는 나를 보고 할 줄 아는 게 절망뿐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절망이 아니라 절망이 도래하는 길인데, 왜 모를까. 진짜 절망뿐이라면 단 한 마디 절망이라고 쓰면 될 텐데. 내가 이런 얘길 하면 너는 갑자기 조용해진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사람. 아주 조금씩 움직여 결국 태산을 들어 올리는 사람. - 의미없는 삶 중

- 그런 이야기는 너무 쓸쓸해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지. 난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돌림노래 같다고 생각했어. 어떤 사람은 노래를 들어. 내내 무엇을 하든 배경 음악처럼 삶을 끈질기게 따라다녀. 그래서 받아 적는 거라고. 평생 자신의 노래를 눈치채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도 있겠지. 노래를 듣는 사람은 평생 노래를 온전히 해석해내는 법에 몰두하며 반복하게 되는 거고. 그건 어쩌면 춤이 될 수도 책이 될 수도 때론 그저 삶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전부 비슷한 지점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어. 듣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듣는 일은 가혹한 형벌 같기도 축복 같기도 해.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데. 어둠 속에 잠겨 생각하게 되잖아. 어째서 이 모든 것을 알아버린 걸까. - 노래를 듣는 사람 중

2026. jan.

#비신비 #백은선 #문학과지성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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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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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감동이 너무 커서 기대가 컸다.
며칠을 아껴두다 지지부진인 독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골랐으나
조금 밋밋한 노스탤지어.

- 올리브나무 집. 사람들은 그 집을 올리브나무 집이라고 불렀어요. 왜냐면 그 집에는 커다란 올리브나무가 있고, 그 나무 이름을 딴 "나나 올리브'가 살고 있다고 했거든요. 누군가는 나나 올리브가 젊은 사람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노인이라고 했어요. 또 누군가는 나나 올리브가 백이십 살이 넘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미 죽었다고 했죠. 누군가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여러 마리였다고 했어요. 사람들마다 얘기가 다 달랐어요. 하지만 그 집에 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모두가 똑같이 했어요. - 10

-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야. 드디어 내 순서가 온 거였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천천히 일어난 일 같기도 했어. 어쨌든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지. - 22

- 나는 손을 뻗어 바람을 쓰다듬어요. 그러면,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어요.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기 멈춰 있을 뿐이에요. - 39

- 우리 집은 시끄럽고 북적북적해요. 가끔은 서로에게 화를 내고, 울고,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 어느 것도 돌이키지 못할 것은 없어요. 다시 볼 수 있기만 하다면 돌이키지 못할 것은 없어요. - 51

- 그 수많은 '만약에' 중에, 왜 이것일까요.
이별을 받아들이고, 무력감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내 삶을 받아들이고. 이 삶에서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나는 나나가 받아들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게 된 삶에 대해서도. 숨을 들이켜듯이 받아들이고, 다시 내쉬듯이 체념해 버린 우리의 삶을요. - 52

- 우리는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오래도록, 시간을 들여 바라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요. - 81

-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슬픔을 안고 있어요. 그 사실이 나를 버티게 해요. 가끔은 슬픔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그만 잠겨 버리고 말 것 같을 때, 내 옆에 나처럼 턱밑까지 차오른 슬픔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아, 아직 괜찮구나, 하고 따라서 헤엄을 쳐요. 헤엄치는 나를 보고 또 다른 누군가 역시 헤엄을 치겠지요.
우리는 이렇게 시커먼 슬픔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지어 헤엄을 치고 있어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요. - 104

- 엉망인 사람도 살 수 있나? 망가진 인생도 살아도 되나? 수도 없이 생각해 왔어.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게 실패해 버린 내 인생을. 그런데 당신의 편지를 읽고 보니, 알겠어. 어떻게든 살아 내면 무언가가 남아. 아무것도 남길 게 없는 내 인생에조차 이 편지가 남았잖아.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야. 그렇지만 우리를 붙드는 건 언제나 남아 있는 것들이지. 그렇지? - 192

2025. dec.

#나나올리브에게 #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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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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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의 스토너 같은 이야기.

스토너를 읽었을 때 느낀 한 인간의 고요하고 뜨거운 삶에 대한 경외감.
그런 느낌을 한 여성 출판인의 인생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잔잔하게 격랑 없는 듯이 흐르는 생이지만 내내 뜨거웠다.

하나의 장르에 전부 쏟아내는 그런 삶에 대한 동의가 있는 편이라면 좋아하게 될 책이다.

-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부모의 삶은 그녀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여백으로 가득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 편하거나 풍족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삶은 예측하거나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척하고, 투쟁하고, 쟁취하는 대상도 아니었다. 그들은 삶이 내주는 과제들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방식으로, 기꺼이 감당하는 방식으로 삶에 순종했다. 평생 그악스럽고 억센 것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의 모습은 그런 태도 덕분인 것 같았다. - 29

- 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 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다. - 87

- 그날, 석주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그것은 닮은 꼴의 하루가 반복되는 진부한 이야기 같았다.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는 어떤 독자에게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먹먹함이 밀려왔다.
시시하고 평범한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삶이었다. - 263

- 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 272

2025. dec.

#오직그녀의것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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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뚫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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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용서가 본인에게 가능한 일인가 헷갈리는 청춘.

혼란스럽고 확신 없는 것이 정체성인 지점, 그것을 체념 증후군이라고 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요즘 여성작가의 글들을 여성문학이라고 지칭하지 않듯, 이 작품도 퀴어 문학이라고 딱히 규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 (심사평에 너무 많이 언급되기에 생각함)

그저 이젠 다 괜찮아, 다 흘러갈 거야라고 받아들이는 일이 타인의 일이 아니고,
나는 결코 뛰어넘지 못할 지점이 있을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드러나지 않은 엄마의 전사들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점이 재밌달까 예사롭지 않다 느끼기도 했다.

- 사랑했던 기억은 어디로 가나.
어디에도 없는데 어디에나 있는 듯 하다. - 11

- 애초에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긴 할까. 나는 나조차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는데. 그렇지만 엄마는 나를 낳아준 사람이 아닌가. 나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한때 하나였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두서없이 이어가다보면 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암담해졌다.
그러게, 왜 살아야 할까. - 13

-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사랑? 용서? 정말로 그런 걸 원했던 것일까. 그게 나한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 70

- 그럼에도 우리가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안의 상처들이 오롯이 엄마의 잘못으로 생긴 게 아님을 알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지만, 그래서 엄마를 안쓰럽게 여기는 순간들도 더러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 어떤 원망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을 분석하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해소할 수는 없는 것 같다. - 74

- 언젠가 형은 징그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대체 엄마를 어떻게 견디는 거야? 그 나이 먹고 왜 아직도 같이 살아? - 85

-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당연히 홧김에 뱉은 말이었다. 홧김에 속내를 털어놓는 건...... 집안 내력인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의 불행이 온전히 다른 누구의 탓일 수 있을까. 누가 누구를 그토록 전면적으로 망쳐놓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를 망치려고 든 적이 있었을까. 정말로 그런 순간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그럴 리가.
무엇보다 자신의 불행이 누구의 탓도 아님을, 그저 제 소관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럴 리가.
대체 우리는 왜 이 모양일까. - 86

- 나는 지나치리만큼 꾸준하게, 가끔은 누구보다 야멸찬 방식으로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내 의지나 노력과 무관한 일이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항상 내 잘못이었다.
내 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내 죄였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늘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신하건대 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도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 94

- 아마도 나는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 쓰는 것 같은데, 내가 남길 수 있는 게 글뿐이라 쓰는 듯한데, 그것이 나 같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영위했으면 싶은데...... 그래서인지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유서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지금 여기에 쓰는 문장들이 내가 남기는 마지막 편지 같은 것이라고. - 103

- 인간은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지닌 모순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까.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되니까.  - 116

- 엄마는 사십 년 가까이 조각난 천들을 한데 이어붙이며 살아왔다. 하나가 아니었던 것들을 기워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손가락이 바늘에 꿰뚫리곤 했으니 엄마가 지어낸 옷들에 엄마의 피가, 살점이, 영혼이 흩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엄마의 일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의 재봉질이 내가 하는 글쓰기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그 자리에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186

- 슬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그렇다. - 209

2026. feb.


#어둠뚫기 #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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