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삶은 이유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 이 모든 시련이 나의 주관일리 없다고 다만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삶의 주관임을 알게 된다‘(해설 중)
그런 현실을 에두르지 않고 직시하는 이야기들.
약간, 아니 좀 자주 넘치다시피 소름을 유발하는 이야기.
그래서 인지 슬퍼지는 현실을 돌아보게 되고 욱하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는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되는 이야기.
이야기 속 전시되는 슬픈 현실들이 서글픈 이유는 그 안의 인물들은 그들이 자초하지도 않은 불행에 그저 주저앉아 있지 않고 나아지려고 행동을 하는데, 오히려 불행을 끌어들인 사회적 구조나, 좋지 않은 관계들이 너무 또렷하게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그 불행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안타까운 감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조금 다른 희망을 작가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자꾸 생각한다.

- 모르겠다.
요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때로 어긋나고 싶고 종종 가로지르고 싶고 옆도 뒤도 안돌아보고 한 번은 치달리고 싶은데 못 그러니까.
깊은 모름 가파른 모름 두터운 모름까지 못가고 어설픈 모름 속에서,
잔바람에도 진저리치며 더럽고 질긴 깃털만 떨구는 늙고 병든 새처럼,
다 떨구고 내 앙상한 모름의 뼈가 드러날 때까지
그때 까지만 쓸것인가.
모르겠다. - 작가의 말 중

2020. ma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던이란 것들이 촌스러움으로 변하는 시기에 그것을 민감하게 알아 챈 작가. 세계가 붕괴하는 20세기 말의 정서와 서정.
그 시기의 소란과 침묵 사이의 공기흐름을 적절하게 담아내는 작가. 세계의 붕괴 속의 개인을 들여다보는 시선.

십년 전이지만 무척 좋은 작품들이다.

-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 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 32,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 81, 세계의 끝 여자친구

- 그런데도 때ㅔ로 우리는 원래 만나기로 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또 사랑에 빠지고, 코발트블루에서 역청빛으로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광활한 밤하늘 속으로 머리를 불쑥 밀어넣는 것과 같은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이 도시와 청춘의 우리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리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극한의 절망과 다른 선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완강하고도 그만큼 멍청한 확신 사이를 한없이 오가면서 그 무엇도 아닌 존재에서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어떤 사람들. 시시각각 변하는, 그러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얼굴을 지녔지만, 결국 단 하나일 수밖에 없는 얼굴들. - 107,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 너무나 큰 세계였다. 흑두루미들은 그렇게 큰 세계를 가로질러 아무르 강변에서 이즈미까지 날아온 셈이었다. 우리가 그 세계를 증언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망각할 수도 없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 속에서 친구와 가족들은 하나둘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또 죽어갔다. 그의 사진들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로 살아갔는지, 하지만 그들은 또 얼마나 끊임없이 변해갔는지. 거기 서서 나는 비로소 그가 평생에 걸쳐서 찍은 친구와 가족들의 일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단 한번만 찍고 다시는 찍지 않았던,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 잊지 못할 노을˝을 이해할 수 있었다. - 198, 네가 누그든 얼마나 외롭든

- 모든 일이 지나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으로 행복했고 또 역설적으로 불행했다. - 235, 달로 간 코미디언

-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졵대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작가의 말 중.

2020. ma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ㅣ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명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트위터에서 ‘경의 중앙선‘을 읽고 책으로 나오면 꼭 사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아는 분 회사에서 작업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출간만 기다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매력적인 현대 한국사회에 맞춤한 SF들.

2020. feb.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향의 교집합은 조금 적은 작가지만 특유의 글맛은 여러권 읽어도 유쾌하고 즐겁고 그렇다. 참고되는 면도 많고.

제일 좋아하는 류의 문장은 ‘으아니!!‘식의 문장이다. 유쾌해.ㅋㅋ

- 꼭 읽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을 안기는 책을 읽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 책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종의 ‘의무적인 독자‘들이다. 다시 말해, 동종업계 종사자들과 까다로운 취향의 독서애호가들이 짐짓 무심한 척 던지는 ˝그 책 읽었지?˝ 같은 질문에 언제든지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31

- 무엇보다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사는 행위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종이냄새 풍기는 빳빳한 새책을 손에 쥐었다는 만족은 둘째요, 일단 손에 넣었으니 언제라도 읽을 수 있고 따라서 당장 읽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은 첫째다. 뿌듯한 마음으로 표지와 목차를 훑어 본 후,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 책장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당신의 강박은 치유되는 것이다. - 33

- 그가 세심하게 선별하고 있는 소설의 목록은 종종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할 정도로, 우리의 독서욕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현실에, 타성에, 권태에, 피곤에, 그 밖의 시급하고 또 구차한 많은 일에 지쳐 책을 놓는 우리들에게 소설의 세계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것이다. - 59

- 왜냐하면 그건 멜빌의 문체때문이었으니까. 단단한 동시에 경쾌하며, 종종 유머러스하고 때론 아름답기도 한 그의 문체는 별 볼일 없는 나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런 문체라면 웹사이트의 ‘서비스 이용약관‘과 ‘개인정보수집 이용‘에 관한 장문의 쓰레기도 단숨에 읽어버릴 수 있을것 같았다. - 85

- 가끔 스스로도 깜짝 놀랄만한 구상을 떠올릴 때가 있다. 완벽한 스토리에 생생한 캐릭터, 인간의 실존에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걸작도 이런 걸작이 없다. 일단 완성만 하면 노벨상도 시간문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손가락 운동을 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세상을 뒤흔들 준비는 되었나? 뚜둑. 뚜둑. 손가락관절이 대답한다. 좋아.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처럼, 천천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제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오늘.˝ 그야말로 완벽한 첫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단 하나, 카뮈가 70년 전에 썼다는 사실만 빼면...... - 93

-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라고 물은 것은 신형철이다. 물론 이것은 수사의문문이다. 질문도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조금 질투가 난다. 나보다 먼저 사랑을 고백한 평론가에 대한 질투. - 185

2020. ap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한 문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04
김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설에 언급된 ˝언제나 과잉이거나 언제나 결핍이다˝라는 말에 수긍.
트랜드일까?
그다지 취향은 아니라서 아쉽다.

- 여기서 조금도 가깝지 않다. 거기서도 아주 멀다. 조금 더 깊은 자국이 생겼다. 그걸 밟고 간다. 하마터면 지나쳤을 것이다. - 고향 중

- 우리는 어중간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러지거나 똑바로 서 있는 말을 좋아한다. 살아 있지 않으면 죽어 있는 말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추운 말을 원한다. 극도로 배고픈 말을 참고 있다. - 북방의 말 중

2020. ma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